◈ 171화. 종막.
“그딴 거 보여주면 내가 뭐라도 이해해줄 줄 알았냐?”
“쯧.”
딱하다는 생각은 조금도 들지 않았다. 오히려 저 개자식에게 죽어 나간 사람들이 몇인데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자기 가족이 죽었다고 다른 가족을 수억을 학살하는 짓을 벌이다니, 광기도 정도가 있다.
헌터 나궁수는 정신과 의사 나궁수(물리)로 전직했다!
“난, 마지막 기회를 줬다.”
“나는 관 들어가기 전까진 항복 안 해.”
콰아아앙!
기습적으로 이어진 광팔이의 마법이 그를 향해 쏟아져 내렸다. 곧바로 궁수에게 수백 겹의 보호막이 걸려왔다.
후방에서 대기하던 헌터들의 보호 마법이었다. 그 밖에도 최정예 헌터들의 압도적인 화력이 오직 한 놈에게 몰아쳤다.
“크흐으윽.”
눈이 따가울 정도의 마법이 이어졌다.
S급 괴물 따위는 1초도 버티지 못하고 녹아버릴 압도적인 화력이 전장을 수놓았다. 그 모든 공격이 오직 한 놈을 향했다.
- 압도적인 화력이다만….
궁수의 눈이 빛나며 마안이 모습을 드러내었다. 이글이글 불꽃처럼 타오르는 마안은 곧바로 마제의 모습을 특정하여 포착했다.
“미친.”
궁수는 당연히 그가 어둠을 둘러 공격을 받아내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어둠을 사용하지 않았다.
오히려 미친 듯이 검을 휘둘러 날아드는 모든 마법들을 베어내고 있었다.
혹시나 했지만 역시나 먹히지 않는다. 궁수는 다급히 아스트라에 화살을 걸었다.
콰앙!
“어딜!”
“크흡!”
그러나 곧바로 아스트라의 기운을 눈치챈 마제가 포효하며 모든 마법을 어그러트렸다.
함성만으로 마력을 부순 그가 눈에 핏발을 세우고 궁수에게 달려들었다.
거친 어둠을 두른 검이 적을 찢어발기고자 거세게 포효했다. 궁수의 앞머리를 스친 검은 곧바로 다시 솟아오르며 배를 노려왔다.
“하압!”
올라오는 검을 아스트라가 막아섰다. 과연 이것이 궁수로서 올바른 전투법인지는 잘 모른다.
하지만 어쩔 수 없다. 저 괴물을 상대할 수 있는 놈은 이 전장에서 자신밖에 없다.
본인만 고생하고 희생하면 저들은 평화를 얻을 수 있다. 그렇기에 하루빨리 저 어두운 중2병 정신병자를 묵사발 내어야 한다.
그래야 이것을 보고 있는 소중한 사람들의 마음도 편할 테니까. 긴장된 팔 근육이 더욱 부풀어 오르며 본격적으로 붉은 혈색을 띄웠다.
“나는.”
으드득.
거세게 악문 이가 비명을 질렀다. 상관없다.
아스트라에 더욱 힘이 들어가며 놈을 짓누르기 시작했다.
“크흑!”
“빨리 이 개같은 전투를 끝내고…!”
카앙!
위협을 느낀 그가 급히 검을 빼며 궁수로부터 거리를 벌렸다. 손에서 피가 흐를 정도로 아스트라를 거세게 쥔 궁수가 시위를 당겼다.
마안과 신성력이 빛나며 궁수의 전신에 신묘한 기운이 감돌았다.
분노한 포식자가 생태계를 호령하듯 궁수의 기운이 확 퍼져나갔다.
어둠을 두른 그에게 이 전장에서 네 놈이 설 곳은 없다는 듯 압박했다.
“아빠.”
궁수 앞으로 거대한 마법진이 생겨났다. 그 크기는 지름만 20미터는 될법한 대 마법진이었다.
지친 듯 억지로 입가를 끌어올린 궁수가 화살을 날렸다.
“헬스장에 갈 거다.”
화살이 마법진을 거치며 더욱 몰아치기 시작했다. 거대한 토네이도가 가로로 몰아치듯 강력한 일격이 놈을 향했다.
콰앙!
강하게 발을 구른 그는 어둠을 끌어올려 검에 힘을 모았다.
그토록 강렬한 힘을 강구했던 그가 결국에 손에 넣었던 힘, 어둠을 넘어 심연이 검에 깃들었다.
“크핫!”
검은 스파크가 튀기며 강렬한 반응이 일어났다.
사람이라면 순식간에 전신이 익어버릴 거센 힘이었으나, 그는 만족스러운 듯 오히려 피식 웃었다.
“따끔따끔하군!”
콰아아앙!
토네이도와 비슷한 크기의 거대한 검기가 격돌했다. 공간을 가를 정도로 어두운 검기는 모든 빛을 빨아들이며 아스트라에 맞섰다.
음양의 조화라고 했던가, 그딴 것은 전혀 없었다.
오히려 흑과 백이 조금이라도 서로를 물어뜯고 잡아먹기 위해 무참히 날뛰고 있었다.
화아아아악!
어둠과 빛이 격돌하며 눈이 따가울 정도로 강렬한 반발이 일어났다. 전장이 울리며 보는 이의 손에 땀을 쥘 정도로 격렬했다.
콰아아앙!
거대한 폭음이 궁수의 귓가를 때렸다. 너무 많은 힘을 소모했기 때문에, 자칫 쓰러질 뻔한 궁수가 아스트라에 의지하여 자세를 다잡았다.
드래곤 하트가 미친 듯이 요동치며 마력을 빨아들이기 시작했다.
아무리 드래곤 하트라도 텅 빈 마력을 다시 채우려면 조금은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애초에 드래곤처럼 여러 개의 심장을 가진 것도 아니고 한 개의 심장이니 지극히 당연했다.
평온한 고동이 궁수의 가슴을 울리며 사나운 정신을 침착하게 만들었다.
“하 진짜….”
마제도 나름대로 힘을 사용한 듯 거친 숨을 몰아쉬며 궁수를 노려보았다.
핏발이 선 눈과 그에게 흘러나오는 어둠은 마치 사신을 연상시켰다.
궁수를 노려보며 검을 치켜든 그가 전장이 울려라 쩌렁쩌렁 소리쳤다. 어둠이 몰아치며 그의 등 뒤로 날개 두 쌍이 돋아났다.
“나! 마제 카인이 네 놈을 호적수로 인정한다!”
뭐 어쩌라고.
비틀거리며 활을 쥔 궁수가 비명을 지르는 몸을 이끌고 고개를 들었다. 놈을 향해 중지를 들어 올리며 궁수도 소리쳤다.
“닥쳐 중 2병.”
아스트라는 마력의 부담이 너무 크다. 천궁을 흡수한 궁수가 등 뒤로 세 발의 화살을 만들었다. 지금 상태로는 이게 한계였다.
상태는 개판이었지만 궁수는 일부러 놈을 더 분노하게 만들기 위해 궁수가 입을, 주둥아리를 열었다.
“가족도 지키지 못한 한심한 놈한테 질 순 없지.”
콰아아!
“네 놈의 혓바닥을 잘라 성문에 걸어주마.”
말이 다 끝나기도 전에 발끈한 놈이 어둠을 폭파시키며 궁수에게 달려들었다.
얼마나 분노했는지 이를 악문 그의 입가에서 피가 한줄기 흘러내릴 정도였다.
콰아아아앙!
세상 모든 것을 베어버릴 듯 날뛰던 놈의 검은 어떤 거대한 벽에 막혔다.
“셈!”
“푸핫! 어디서 혼자 독식하려고!”
[제에에에에엔장 믿고 있었다고오오오!]
[오이오이 꽤나 멋진 ‘등장’이지 않는가!]
[대머리!대머리!대머리!대머리!대머리!대머리!]
[오늘부터 해가 뜨면 대머리가 반짝이는 줄 알겠습니다.]
ㄴ 나쁜 새끼 ㅋㅋㅋㅋㅋㅋㅋㅋㅋ
마력을 듬뿍 두른 셈의 대방패가 적의 검을 아슬아슬하게 막아내고 있었다. 그의 왼쪽 팔에는 처음보는 기계가 달려 있었다.
“사이보그?”
“요즘엔 기술력이 좋더군!”
인벤토리를 뒤적이며 마석을 꺼내든 그가 기계에 그것을 넣었다. 마왕을 죽여서 나온 마왕석이 셈에게 넘치는 힘을 선사했다.
“네 놈!”
그의 눈에는 셈이 동족의 심장을 이용하여 힘을 발휘하는 것이다. 아무리 동족을 생각하지 않는다 해도 본능적인 거부감이 있다.
궁수도 마족이 인간의 심장을 사용하여 힘을 사용한다면 거부감이 들 테니까.
셈은 경악하는 그를 바라보며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웃으며 말했다.
“네 부하 쩔드라.”
어디서 배워왔는지 뻔히 보이는 아주 발칙한 말투였다.
“성역선포!”
“그레이트 힐!”
“리커버리 블레싱!”
곧바로 지친 궁수를 향해 최상위 치유마법이 쏟아졌다. 성녀도 다른 헌터도 아닌 오직 힐 혼자서 사용한 치유 마법이었다.
성녀를 넘어서 압도적인 치유력을 자랑하는 그가 궁수를 비호했다.
그리고 그 뒤로.
“느헤헿.”
“우헤헤! 아빠!”
전장에 장난기 가득한 두 악동의 웃음소리가 퍼졌다. 마제 주변에는 이미 수백 개의 마법진이 그를 포위했다.
그 옆으로는 은우가 피칠갑을 두른 채로 섰다.
“꼴이 왜 그래요?”
“헌터님에 비할 건 아니네요.”
“그러게요, 좀 살려줄래요?”
“안 그래도 살리려고 왔습니다.”
어째선지 피식 웃음이 나왔다. 마지막이 돼서야 동료들과 싸운다는 것이 B급 신파극 같았지만 마음이 진정되었다.
뒤로는 고수혁이 미친 듯이 버프 요리를 뿌리고 베로니카가 부상자를 위한 진지를 구축하였다.
모두 궁수의 명령을 기다리듯 그 자리에서 마력을 흘리며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었다.
이런 오글거리는 분위기는 썩 좋아하지 않지만, 궁수는 비틀거리며 물통을 꺼내 그 안에 마력 포션 다섯 병을 넣었다.
“설마…!”
마지막으로 꺼낸 것은 다름 아닌 프로틴. 마력 포션에 프로틴이 가득 들어갔다.
쉐이커가 힘차게 흔들리는 소리가 주변을 가득 채웠다. 마제는 지금 이게 무슨 상황인지 이해할 수 없어 그를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뻥! 벌컥 벌컥.
쉐이크 통이 열리며 궁수는 그 자리에서 모든 마력 프로틴을 들이켰다.
“크하! 프로틴도 마셨고!”
한 방울도 놓치지 않고 깔끔하게 프로틴을 마신 궁수가 다시 아스트라를 손에 쥐었다.
아직 이 마궁을 사용할 수 있을 정도로 회복되진 않았다. 하지만 지금은 목숨을 내던질 때였다.
사리다간 사망할 수 있으니 거침없이 마력을 사용해야 한다. 마안이 나타나며 궁수의 전신으로 새하얀 신성력이 용솟음 쳤다.
“이제 운동하러 갑시다.”
“크핳! 무산소는 근손실 나는데!”
그럼에도 셈의 입가에는 미소가 걸려 있었다.
수많은 전장을 동고동락하며 넘어왔던 동료들이다. 함을 맞출 필요도 없이 완벽한 연계가 이어졌다.
먼저 방패를 들고 돌격한 셈이 사자후를 외치며 아군에게 버프를 걸어주었다.
“지원해! 있는 대로 마법 쏟아부어!”
곧바로 후방의 헌터들도 사용할 수 있는 모든 버프를 멤버들에게 사용했다.
방패로 시야를 가린 셈이 한 번 더 놈을 몰아치려 했으나 상대는 마제다.
무(武)도 마(魔)도 정점에 도달한 이는 쉬이 당해주지 않았다. 땅을 박차고 뛰어오른 그가 곧바로 궁수를 향해 달려들었다.
콰아앙!
“어딜!”
방금 전까지 궁수 옆을 지키던 은우가 달려나가 놈의 검을 후려쳤다.
궁수와 이어진 격돌로 마제는 제법 약해져 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은우의 손이 떨리며 어둠이 전해져 왔다.
‘이런 걸 혼자 상대했다고?’
다시금 궁수가 얼마나 규격외의 존재인지 생각했다.
“네 놈은 또 뭐냐.”
“공무원.”
날카로운 찌르기가 마제의 눈을 노렸다. 얼굴을 구기고 모든검을 받아친 그가 표정을 구겼다.
자신의 공격이 먹히는 것을 확인한 은우는 더욱 속도를 높였다.
“지금은 출장 업무 중이다.”
새하얀 검광이 전장을 울리며 마제를 노려왔다. 검을 휘두르면 휘두를수록 빨라지는 폭풍검이 그의 심장을 노려왔다.
“어딜 날파리가!”
그의 호령과 함께 어둠이 터져 나오며 은우를 노려왔으나 그는 이미 셈의 방패 뒤로 후퇴한 후였다.
“느헿!”
“가자!”
곧바로 두 악동의 포화가 이어졌다. 고작 둘이 사용하는 마법임에도 전의 헌터들의 포화와 견줄 압도적인 화력이었다.
마력탄 한 발 한 발의 경지가 다르다. 검으로 쳐내고 싶어도 검이 튕겨날 정도로 그 질이 다르다.
“감히! 감히! 감히! 감히! 감히이이이!”
노기 섞인 그의 발악에도 마법은 끊어지지 않았다. 전장을 아름답게 수놓은 마법을 보며 궁수가 천궁을 손에 쥐었다.
원래 그의 포지션.
궁수가 궁수(弓手)로서 있을 수 있는 위치에서 그가 활을 쥐었다.
“프리딜 각 날카롭게 섰다.”
어쩐지 궁수는 즐거워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