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70화. 그건 니 사정이고.
아이는 살생을 멈추지 않았다. 비열하고 저속하고 은밀하게, 약자들을 노리며 그들의 마석을 훔쳤다.
피에 적신 마석을 씹어 먹을 때면 자신도 모르게 미소가 입에 번졌다.
죽인 수가 100이 넘어갔을 때, 그는 더 이상 꼬마의 모습을 하지 않았다.
더 이상 남들이 무시하지 않는 모습이 되었지만 꼬마는 좋아하지 않았다.
이제 순수한 척 다가가 죽이는 것이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꼬마의 목표는 현 마제.
이런 개같은 제도를 만든 놈의 마석을 씹어 주는 것이 목표였다.
그렇기 위해서는 더욱 강해져야 했다. 자신보다 강한 놈의 마석을 먹고 더 위로 올라간다.
딱히 문제가 되는 것도 아니었다. 마계에서는 강한 놈이 곧 법이자 규칙이었으니까.
죽으면 죽은거지 그 이상의 의미는 없다. 그렇기에 그는 더욱 날뛰었다.
적에게 독약을 타고 가족을 인질로 잡고 연인을 납치하며 온갖 추악한 일을 저질렀다.
그렇게 그는, 점차 망가졌다. 닳고 닳은 마족이 오직 독기 하나만으로 굴러가고 있는 정말 ‘마족’다운 모습이었다.
그가 마지막으로 이 구역의 마왕의 마석을 씹었을 때는, 더 이상 주변의 어중이떠중이 들은 자신의 상대가 되지 못했다.
물론 여기까지의 여정이 순탄했던 것은 아니다.
수만, 수십만 번의 암살 시도와 결투, 심지어는 거대 패거리까지 상대했다.
하지만 그는 끝끝내 살아남았다. 악착같이 살아남아 놈들의 마석을 모조리 씹어 먹었다.
이 구역의 마왕이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텅 빈 마음은 조금도 채워지지 않았다.
자신이 살던 고향은 이미 친히 찾아가 어릴 적의 ‘보답’을 해 주었다. 강자도 아닌 놈들인데 씹히는 마석의 맛이 일품이었다.
북수는 죽은이를 위한 것이 아니다. 살아있는 이가 버티지 못해서 하는 것일 뿐.
애석하게도 그가 이 이치를 깨닫기에는 그때는 나이가 너무 어렸다.
마음 같아서는 영지의 모든 놈들의 마석을 씹어주고 싶었지만 놈들은 너무나 약했다.
결국, 그가 눈을 돌린 것은 다른 마왕들이었다. 새로운 마왕이 등장하는 것은 흔한 일이 아니다.
그렇지 않아도 강력한 마왕을 그의 홈그라운드에서 죽이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괜히 마왕이 ‘왕’인 것이 아니다. 하지만 그에게는 재능이 있었다.
검술이나 마법도 있지만 ‘전투’와 폭력에 대한 압도적인 재능이 있었다.
암살술 같은 것은 배워본 적도 없다.
오직 직감으로 근육의 미세한 움직임만으로 약점을 찾아내 그곳으로 검로를 그린다. 그럼에도 그를 상대할 적은 아무도 없었다.
그가 마왕의 자리에 오르고 가장 먼저 준비한 것은 다름아닌 전쟁이었다.
“전 군 위치로.”
그가 직접 키워낸 기사들이다. 기사의 명예따위 조금도 신경쓰지 않고 오직 전투와 학살에 중점을 둔 살인 기계들이다.
기사도 정신이니 고결함이니 그런거 다 모두 개소리다. 힘, 세상은 오직 힘이 지배한다. 그렇기에 그는 더욱 힘을 갈망했다.
마왕의 자리에 올랐다만 보통 몸을 사리기 마련이지만 그는 매 전투마다 최선봉에 섰다.
감히 일계 마족 따위가 마왕을 막을 수 있을리 없었다.
그것도 천년을 넘어 만년에 한번 태어날까 말까 한 전투의 귀재를 상대로는 더더욱.
그의 검이 아름다운 검로를 그릴 때면 어김없이 보답하듯 적들의 목이 떨어졌다.
감히 비명조차 허락하지 않는 그의 검은 무명검이라고 불렸다.
이름도 없고 비명도 없으니, 그에게 걸맞은 이름이었다. 오직 시체만을 남기는 검이 전장을 호령했다.
그의 입에 씹히는 마왕의 마석이 늘어날 때마다 검은 마계를 호령했다.
죽인 마왕의 수도 더 이상 기억하지 못했다. 이미 수많은 마왕들을 집어삼킨 그로서는 매마른 전투 그 뿐이었다.
그렇게 마제를 제외한 모든 마계를 평정했을 때, 그는 마지막으로 마제의 성 앞에 섰다.
그 뒤로는 흡수한 수많은 전력들이 침을 꼴깍 삼키고 무기를 쥐었다.
마제는 마계에 군림하는 절대적인 존재였다. 결코 무너지지 않으리라 예상했고 실제로 그의 무패 신화는 긴 세월을 이어오고 있었다.
그러나 지금.
그 신화가 무너지고 있다. 기강이 해이해진 친위대가 얼마 전까지도 치열한 전투를 숱하게 넘어온 이들을 막을 수 있을리 없었다.
모든 적들을 죽였다. 항복을 하던 공격을 하던 모두 목을 베여 마석을 씹었다.
과연, 꼴에 마제의 친위대라고 마석에 깃든 힘이 제법 달콤했다.
“이제 네 차례다.”
“…….”
알현실에 들어선 그가 검을 들었다. 마제와의 전투는 나름대로 치열했다.
몇 날 며칠을 검을 부딪히며 죽음의 문턱을 넘나드는 전투가 이어졌다.
털썩!
동이 트면서 결국에는 승부가 났다. 마제의 성은 반파되어 폐허가 되었고 주변 부하들도 전투에 말려들까 멀찍하게 후퇴한 상태였다.
무릎을 꿇은 마제가 텅빈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후계자를 벌써 정할 줄은 몰랐는데.”
“그만하면 됐다. 늙은이.”
서걱!
그의 검이 가감없이 전 마제의 목을 갈랐다. 새로운 마제의 탄생이었다.
마제를 죽이고 새로운 마제가 되었다. 마계를 좀먹던 빌어먹을 재물 제도도 없앴다.
원로원 놈들이 새로 들어온 마제를 얕보며 조금씩 내정을 간섭하려 하자 친히 찾아가 놈들의 모든 마석을 씹어 주었다.
“늙었으면 뒤져야지.”
그의 검에는 피 한방울도 묻어있지 않았다. 수천년을 이어온 원로원들을 학살하는 간단한 일을 마친 그는 다시 집무실로 되돌아왔다.
마계 과다 현상.
재물 제도를 폐지했기 때문에 그세 또 마족의 수가 늘어나 있었다. 영토 분쟁은 물론 자원들도 너무나 부족했다.
당장에 획기적인 방법이 필요했다. 그리하여 발견한 것이 바로 지구였다.
약해빠진 생명체에 넘처나는 자원, 쉽게 말해서 먹잇감들이 ‘나 잡아먹어주세요’하고 걸어다니는 꼴이나 다름없었다.
“여기다!”
엄격히 기준을 가른 차원의 벽에 구멍을 뚫기란 결코 쉽지 않았다.
하지만 마족의 미래를 위해서라도 이것은 어떻게든 해내야만 했다. 그리하여 그는 또 지고의 세월을 연구했다.
어떻게 하면 저 차원에 구멍을 뚫을 수 있을지 수천 년을 연구했다.
그리하여 결국 그는 구멍을 뚫었다. 궁극의 어둠을 만들어 차원을 억지로 벌려버렸다. 감히 차원이 빨아들일 수 없는 압도적인 어둠이었다.
그리하여 그는 처음으로 지구 침략을 시작했다.
***
“…뭐 어쩌자는 거지.”
궁수는 옆에서 소년의 모든 성장 과정을 바라보았다. 다행히 실제로 수천년을 지내지는 않았다.
빠르게 돌아가는 영상처럼 휙휙 바뀌며 순식간에 수천 년을 스킵했다.
그리고 모든 일을 다 바라보았을 때.
화아아악!
“…어?”
궁수는 아무 일 없다는 듯 마제를 노려보며 서 있었다.
- 정신 차려라! 이런 상황에서 뭐하는 거냐!
“나궁수! 왜 멍때리고 있어!”
“정신공격에 당한 거 아니야!? 디스펠 걸어!”
“없어! 아무것도 걸린 게 없다고!”
오직 마제만이 능글맞은 미소를 지으며 궁수를 바라보았다.
궁수라면 자신을 이해해줄 수 있을거라 생각했는지 그는 무기도 들지 않고 성큼성큼 궁수에게 다가갔다.
“조금 생각이 바뀌었…?”
푸욱!
놈이 다가옴과 동시에 궁수의 화살이 복부에 처박혔다. 사정이 불쌍한 것은 알았다.
마제가 현재 심각한 상황에 처해있는 것도 알았다.
“그게 뭐 어쩌라고?”
자기들 심각하다고 다른 곳에 와서 다 죽이고 뺏어도 된다는 것인가. 당장에 지구인만 수억 명이 죽었다.
그딴 개소리를 받아주기에는 피해가 너무나도 컸다.
주륵.
그의 입가에 검은 피가 흘렀다. 하지만 그는 덤덤하게 배에서 궁수의 화살을 뽑았다. 그리곤 아쉽다는 듯 궁수를 바라보았다.
“아쉽군, 30년만 더 성장했다면, 다음 마제는 네가 되었을 텐데.”
“악덕 기업은 쳐다도 안 보는 주의라.”
대화도 잠시.
콰앙!
다시 둘의 격돌이 이어졌다. 마제는 무엇이 그리도 아쉬운지 연신 찝찝한 표정으로 궁수의 화살을 받아쳤다.
“넌 절대 날 이길 수 없다.”
“개소리도 정도것 해야지.”
지금도 주변에서 날아오는 수만 개의 버프들이 궁수를 강화시키고 있었다.
화살과 어둠이 만날 때마다 거대한 폭탄이라도 터진듯한 소리가 전장을 뒤흔들었다.
수차례 공격을 이어나가도 별 차이가 없자 그는 결국 어둠을 일으켜 궁수로부터 거리를 벌렸다.
“하, 이것만은 꺼내지 않으려 했건만.”
[지옥 참마도?]
ㄴ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ㄴ 아 진지하게 보다가 뿜었네 ㅋㅋㅋㅋㅋ
그가 한쪽 무릎을 꿇더니 바닥에 손을 쑥 넣었다. 짙은 어둠이 그의 손에 얽히며 스멀스멀 불길한 기운을 만들었다.
“나와라, 나의 오랜 벗이여.”
“어림없지.”
변신할 때 기다려 주는 것이 예의라지만, 궁수의 생각은 달랐다. 변신할 때 공격하는 것만큼 짜릿한 게 없다.
눈 깜빡할 사이에 마제의 주변을 둘러싼 화살들이 폭풍우처럼 몰아치며 그를 사지로 몰았다.
하지만 그에게 느껴지는 기운은 더욱 사나워질 뿐 별다른 효과는 없었다.
서걱.
그 한 번에 궁수의 모든 화살들이 베였다. 화살 잔해물들이 후두둑 떨어지며 안에 있던 마제가 모습을 드러내었다.
칠흑의 갑주에 칠흑의 검을 든 흑기사의 모습이었다.
흘러나오는 기운 또한 예사것이 아니어서 궁수조차도 침을 꼴깍 삼킬 지경이었다.
“야 저거….”
- 위험하군.
“괜찮아, 내가 이겨.”
- …무운을 비마.
그 천궁 조차도 꺼리는 상대다. 강자를 상대한다는 짜릿함에 궁수가 섬뜩한 미소를 지었다. 지금은 자신의 모든 힘을 써야 할 때다.
[트루 스나이핑]
- 진리를 꿰뚫는 마안 - 魔眼을 가집니다.
[속성 화살.]
- 모든 속성에 통달합니다. 모든 기운이 당신을 비호합니다.
스킬 [쉐도우 파트너]가 [쉐도우 아처]로 강화되었습니다. 당신을 따르는 그림자 궁수들이 전장에 참여합니다.
[쉐도우 아처의 수준은 당신의 실력에 비례합니다.]
오호.
마음에 드는 스킬이다.
곧바로 스킬을 사용하니 수많은 쉐도우 아처들이 모습을 드러내었다.
인간의 심장을 가지고 있었다며 이미 마나를 모두 사용하여 마나번이 왔겠지만, 지금의 궁수는 인간을 아득히 초월했다.
수백의 쉐도우 아처가 마제 주변을 완전히 통제했다. 그림자 아스트라를 들고 일제히 시위를 당겼다.
“그간 구질구질했잖아?”
불리한 상황이지만 그의 표정에는 한치의 당황도 없었다. 모든 것을 집어삼키는 고요한 바다처럼 그는 부드럽게 검을 들었다.
푸푸푸푸푹!
발사된 아스트라가 일제히 놈의 몸에 처박혔다.
그림자라 하더라도 아스트라의 위력까진 재현이 힘들었는지 그 힘이 상당히 경감되어 있었다.
하지만 그것도 결코 약하진 않아 수많은 화살들이 마제의 몸에 처 박혔다. 고통에 찬 비명도, 죽음의 두려움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가 검을 들었다.
매마른 표정으로 검을 든 그는 무표정하게 검을 휘둘렀다.
“이 정도로는 한참 모자라다만.”
짙은 어둠이 차원을 가르듯 스산하게 퍼졌다. 본능적으로 위험을 느낀 궁수가 마른 입술을 핥았다.
동시에 이 전투가 마지막 싸움이 되리란 것도 어렴풋이 느낄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