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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접병기 활-169화 (169/172)

◈ 169화. 흑역사 ON

“이건 아니지!”

하필 뒤에는 헌터들이 있어 피할 수도 없다. 어떻게든 자신이 막아내야만 한다. 생각도 전에 몸이 먼저 마력을 끌어올리고 있었다.

‘막을 수 있을까?’

죽음이 엄습하며 궁수의 호흡이 거칠게 뛰었다. 막아야만 한다.

피한다는 선택지는 없다. 칠흑의 검기는 얇고 거대하였다.

분쇄자를 손에 든 궁수가 마력 회로를 혹사하여 있는 힘껏 신성력을 우겨넣었다.

손이 저릿할 정도로 강렬한 힘이 궁수의 근육에 가득 찼다.

잘못하면 힘줄 자체가 터져버릴 위험한 행동이나, 궁수는 조금도 고민하지 않았다. 반으로 갈라져 죽는 것보다 배는 낫다.

빠드득.

이를 악문 궁수는 묵은 숨을 내쉬며 분쇄자에 힘을 실었다.

아름답고 부드러운 신성력은 궁수의 분노에 답하듯 숨겨진 야성을 드러내었다.

“후우….”

뜨거운 숨은 곧 분노로 바뀌고 분노는 곧 힘으로 바뀌었다.

“후으으으읍!”

콰아아앙!

거대한 검기와 궁수의 분쇄자가 격돌했다. 신성과 어둠의 격렬한 마찰이 거대하게 터져 나오며 스파크가 튀었다.

이를 악문 궁수의 입가에서 피가 한 줄기 주륵 흘러나왔다.

쏘아진 어둠을 모두 받아내고 궁수가 입가에 묻은 피를 닦아내며 피식 웃었다.

“이게 전부냐?”

‘시팔 존나 아파 미친.’

[이 새끼 표정관리 안되는데.]

[손 떨리는거 보니 존나 아픈 듯.]

[그렇다고 헌터들 앞에서 아픈척 하겠냐.]

ㄴ 생각해보니 진짜 짠하네…

ㄴ 아프다고 말도 못하네…

숙연해진 사람들 앞에 궁수가 분쇄자를 질질 끌고 그 앞에 섰다.

인간의 몸으로 대등하게 적의 어둠을 받아내는 그 모습은 철벽처럼 믿음직스러웠다.

‘하느님 잘 못했어요 착하게 살게요, 한 번만 살려주세요.’

막상 거침없이 지르긴 하였으나 그에게 흘러나오는 어둠은 쉬이 거스를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개구리의 몸으로 뱀 앞에 선 것처럼 궁수의 몸이 얼었다.

하지만 나궁수, 그는 평범한 개구리가 아니었다.

“야.”

콰앙!

궁수의 이마가 마제의 머리와 부딪혔다.

아무리 해깅 사라졌다 하더라도 인간의 몸인 궁수가 마제보다 단단한 신체를 가지고 있을리 만무했다.

주르륵.

궁수의 이마가 찢어지며 피가 한줄기 흘러내렸다. 그러나 오히려 그것이 더욱 궁수의 극적인 분위기를 더했다.

“용감하군.”

“내가 좀.”

“그리고.”

놈의 손 끝에 짙은 어둠이 모아졌다. 당장에라도 세상을 갈라버릴 듯 섬뜩한 어둠은 그대로 궁수의 미간을 향했다.

“어리석어.”

“하.”

콰악!

어둠을 쏘려던 놈의 검지를 궁수가 부서져라 강하게 쥐었다.

평범한 사람이라면 벌써 손가락이 꺾여 기괴한 모양이 되었겠지만 그의 손가락은 조금도 꺾이지 않았다.

물론 궁수도 이리 쉽게 해결할 수 있을거란 생각은 조금도 없었다.

눈을 가라앉히고 마음을 내린 궁수가 놈의 검지를 자신의 머리에 가져다 대었다.

“쏴봐.”

다른 손에는 길이가 50미터가 넘는 거대한 화살을 놈에게 조준한 채로, 도발적으로 말이다.

“푸핳.”

지고의 시간을 살아왔다. 수많은 도전자가 있었지만 이토록 자신에게 막 나오는 이는 단 한놈도 없었다.

놈들은 모두 마족으로 태어나 마족답게 살며 마족의 정점에 가까운 놈들이었다.

다시 말해서 씨앗부터 강자의 힘을 타고난 놈들이었다는 소리다.

그러나 눈 앞의 남자는 다르다.

나궁수.

숱한 도전자들의 이름 따위 모두 잊었다. 강력한 마족의 이름보다도 인간의 이름이 자신에게 기억될 줄이야, 상상조차 못 했다.

“역시, 네 놈 마음에 들었다.”

“이거 어쩌냐, 난 네가 존나게 싫은데.”

살기가 다분한 안광이 번뜩이며 궁수의 화살이 놈의 머리통에 격돌했다. 순간적으로 터져 나온 어둠이 둘을 집어삼켰다.

***

처음 느껴보는 신기한 감각.

아무것도 없는 세상, 발을 디딜 곳조차 존재하지 않아 부유하고 있었다.

“여기가 어디지…?”

당장에 똑바로 서지도 못하는 곳에서 주변을 둘러본다고 뭘 알 수 있을 리 없었다.

잠깐 부유하길 잠시, 저 끝에서 터져 나온 빛이 모습을 드러내더니 이내 순식간에 어둠을 집어삼켰다.

시야가 점멸하며 잠시 어지럼증이 몰려왔다.

“으윽…. 뭐야.”

어지러운 시야를 바로잡고 눈을 비벼 자리에서 일어섰다. 정확히는 ‘날아올랐다’라는 표현이 적절할 것이다.

“뭐야 이게 어어!?”

무작정 하늘로 떠오르진 않았다. 영혼이 된다면 이런 기분일까, 상황이 어찌 된지 모르는 궁수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겉으로는 평범한 마을이었다. 외관이 마계라는 것만 제외하면 말이다.

마을을 쏘다니는 놈들도 당연히 모두 마족이었다. 뿔과 날카로운 이빨을 가진 마족들이 제 할 일을 하고 있었다.

다행히도 그들은 궁수의 모습을 보지 못하는지 투명인간 취급하며 거리를 다녔다.

“뭐야 이게…?”

천궁도, 뭣도 없이 자신의 몸만이 덩그러니 떨어졌다.

더군다나 무슨 영혼과 같은 상태로 저 놈들은 자신의 모습을 볼 수 없다.

말도 안되는 상황에 심한 이질감을 느끼며 궁수는 혹시나 마력을 일으켰다.

당연하지만 마력은커녕 스킬조차 사용할 수 없었다.

할 수 있는 것은 오직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몸을 움직이는 것뿐이었다. 당황감과 당혹감에 패닉이 온 그 때.

“꺄아아아악! 싫어! 이거 놔!”

“안돼! 하지 마! 하지 마라고! 이번에는 우리 차례 아니잖아!”

여성과 어린 아이의 절망에 찬 절규가 들려왔다.

하지만 여자를 우악스럽게 끌고 가는 거한 둘은 그녀를 놔줄 생각이 없어 보였다.

“누나! 안돼! 누나아아아악!”

“얘가 죽지 않으면 우리집 애가 죽는다고!”

“어쩌라고 개자식아! 네가 찍힌 걸 왜 우리한테 탓 해!”

“이게 보자보자 하니까!”

뻐억!

“크허억!”

매달리던 아이에게 사내의 발길질이 이어졌다.

성인 남성도 견디기 힘들 투박한 폭력이었으나 꼬마는 이를 악물고 그녀를 놓지 않았다.

“놔! 놓으라고 이 개자식들아! 놓지 않으면 다 죽여버릴 거야! 안 놔!?”

“하, 그래, 이 자식아.”

그녀를 질질 끌고 온 남자들은 마을 중앙에 있던 ‘제단’에 도착했다.

주변에 다른 마족들이 가득했으나 익숙한 광경인 듯 아무도 제지하지 않았다.

오히려 요깃거리를 즐기며 이 참상을 구경하고 있었다. 제단 앞, 그들은 울고 불며 쌍욕을 뱉는 꼬마를 바라보며 물었다.

“꼬마야, 네 누나를 살리는 방법이 딱 하나 있다.”

“…히끅…. 뭔데.”

그들은 서로 눈치를 살피더니 의견을 맞춘 듯 피식 웃으며 꼬마에게 말했다.

“뭐긴, 네가 대신 죽는거지.”

“…뭐?”

“네가 죽으면 어쨌든 ‘제물’은 채워지는 거니까.”

마계 마족 과다 현상.

마계에 마족이 넘치다 못해 터질 정도로 늘어난 현상, 모든 땅, 볼모지를 가리지 않고 주인이 생겼으며, 오죽하면 지하도시까지 생겨날 지경이었다.

그리하여 고민 끝에 만들어낸 제도가 이겄이다.

제물 제도.

각 마을 별로 일주일에 한 놈씩 마족을 죽이는 것이다. 얻은 마석은 모두 모여 중앙의 현 마제에게 이동된다.

마제는 마석으로 강해질 수 있으니 좋고, 덤으로 마계에 넘치는 마족들도 수를 줄일 수 있으니 좋다.

제물로 바쳐지는 것은 대부분 힘없는 약소 마족들.

약육강식을 삶의 이면으로 생각하는 이들에게 있어 이는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다.

마제 또한 마계의 떨거지들을 솎아낸다는 이유로 더욱 이를 관장했다.

약하단 이유만으로 희생되는 불합리 하면서도 합리적인 제도에 희생되는 이들의 절망은 조금도 신경쓰지 않고서.

“그래서, 네가 이 년 대신에 죽을거야?”

꼬마와 잡힌 여자는 남매 사이였다. 부모를 일직이 여의고 의지할 것이 서로 밖에 남지 않은 각별한 사이였다.

그렇기에 꼬마가 그렇게 구타를 당하면서도 그녀를 지키는 이유였다.

그러나 다른 어른들이 보기에는 놈들은 먹기 좋은 사냥감에 불과하지 않았다.

부모가 없는 고아들은 늘상 ‘제물’로서 최고의 재료였고, 자신들의 아이가 희생당할까 두려웠던 그들은 나몰라라 했다.

언젠가 자신들의 차례가 올 것도 모른체로.

“그, 그건….”

“그럴 깡도 없으면 닥치고 있어, 어차피 너도 곧 가니까.”

“아, 안돼! 안돼 이 개자식들아! 안된다고!”

“흥, 불만이 있다면 강했어야지.”

어째서 자신이 죽어야 하는지도 모르는 체로, 꼬마가 처절하게 울부짖었다.

그녀의 누나가 제단에 서고, 서슬 퍼런 검에 목이 잘리는 순간까지도, 꼬마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혈육의 피분수는 보는 것만으로 역겨움이 올라와 구토를 자아내었다.

그렇지 않아도 먹을 수 있는 것이 물 밖에 없어 구역질 조차 제대로 할 수 없었다.

“자, 마석부터 꺼내자고.”

마석을 뒤진다는 명목으로 시체를 뒤적이는 그들의 모습은 꼬마로 하여금 공포와 두려움을 자아내었다.

꼬마도 어렴풋이 알고 누나 다음은 자신이라는 것을, 부모도, 누나도 사라지고 홀로 남은 자신은, 그들이 보기에 너무나도 탐스러운 먹잇감이었다.

그렇기에 꼬마는,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혈육이 희롱당하는 모습을 보며 더 이상 소리지르지 못했다.

괜히 여기서 더 날뛰다간 자신이 어떻게 될지 알았기에. 조용히 일어나 조용히 도망가는 것이, 꼬마가 할 수 있는 전부였다.

마족은 기본적으로 마석을 먹으면 성장한다.

자신보다 약한 마족의 마석이라면 성장이 더디고 비교적 강한 마족이라면 그 성장 폭이 대단하다.

유일한 가족을 잃은 꼬마는 그때 뼈아프게 깨달았다.

자신을 지킬 수 있는 것은 힘이라고, 강하지 않고서는 아무것도 지켜낼 수 없다는 것을.

그렇기에 꼬마는 제법 큰 돌맹이를 들었다.

시간은 땅거미가 지고 그렇지 않아도 어두운 마계가 훨씬 어두워졌다. 값비싼 마전등이 없는 이곳에 완벽한 어둠이 깔렸다.

불빛 없이는 한치 앞도 볼 수 없는 어두운 세계, 그곳에서 꼬마가 저벅 저벅 무거운 발을 움직였다.

땅을 꾹 꾹 눌러가며 앞으로 나아간다.

소년의 움직임에는 거리낌이 없고 억센 발걸음에는 살기가 다분했다.

끼이이익.

닫힌 문을 조심스럽게 연 꼬마가 기척을 죽이고 조용히 방으로 들어갔다.

드르렁…. 쿨….

낮에 봤던 사내의 얼굴이 보였다. 자신의 누이를 죽인 개잡놈의 얼굴이 보였다.

순간 분노감에 이성을 잃을뻔 하였지만 꼬마는 참았다.

조용히 발길을 돌려 따로 잠에 든 아기를 바라보았다. 마족답게 자그마한 뿔이 난 아기가 곤히 잠에 들었다.

“너희도 한번 느껴봐.”

들어 올린 바위는 힘차게 떨어졌다. 돌에 맞은 아기 마족이 움직이는 일은 없었다.

비명조차 지르지 않고 조용히, 숨을 거두었다.

시체를 뒤져 마석을 찾은 꼬마가 피식 웃었다.

‘뭐야, 아무것도 아니잖아.’

누군갈 죽였다는 죄책감도 희열도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메마른 감정은 늘 메말랐을 뿐, 죽음조차 꼬마의 마음에 별다른 느낌을 주지 못했다.

와작!

아이의 마석을 씹은 꼬마는 은밀하게 마을 밖을 나섰다.

내일 아침이 되면 마을은 난리가 날 것이다. 눈에 핏발을 세운 사내가 소리를 지르고 난동을 부릴 것이다.

하지만 상관없다. 자신은 더 이상 그 마을에 없다.

모르는 일이다. 모르는 마을이고 모르는 아기였다.

다만 그것 하나만큼은 기억했다.

마석은 달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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