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근접병기 활-168화 (168/172)

◈ 168화. 남자의 싸움.

“아가리 꽉 물어라, 개자식아!”

주먹이 막혔으나, 궁수는 조금도 개의치 않고 다른 손으로 놈의 팔을 잡았다.

서늘하고 딱딱한, 감촉이 손길을 타고 느껴졌다.

늪같이 찐득한 어둠이 은근히 궁수를 타고 올라오며 잠식하려 했다. 손을 대는 것만으로 목숨을 위협하는 존재, 그것이 마제였다.

“어딜.”

곧바로 놈의 반대 쪽 주먹이 궁수의 머리통을 터트리기 위해 날아왔다.

막는다면 팔이 부러질 것 같았기에 궁수는 일단 거리를 두었다.

한계까지 궁지에 몰린 상황에도 그의 표정은 평온했다. 자신의 패배 따위 존재할 수 없다는 것처럼 극히 오만한 얼굴이었다.

그는 궁수가 마음에 들었는지 은은한 미소를 띄우며 고개를 흔들었다.

“아아, 이 얼마만에 느끼는 생명의 위협인가.”

적들에게 둘러싸인 이 상황 자체가 그를 흥분시키는 듯 그는 파르르 떨며 입이 찢어져라 광소를 터트렸다.

“뭐라는 거야 미친 마조히스트 새끼가.”

“크하하하! 좋다! 네 놈에게는 이 몸과의 독대를 허용하마!”

“하?”

그 주변으로 헌터들이 슬금슬금 모여들었다. 어중이 떠중이가 아닌 최소 세계랭킹 10위권은 최상위 랭커들이었다.

정예중의 정예들이 기세등등하게 살기를 띄우며 적 한 명을 위협하고 있었으나, 그 기세는 결코 밀리지 않았다.

일반인이라면 잠깐 느끼는 것만으로 쓰러질 듯한 지독한 살기였으나, 그는 아무렇지도 않는 듯 오히려 이 상황을 음미했다.

상황이 유리하다고 한들 방심하는 헌터는 한명도 없다.

인간 20명과 거대한 백두산 호랑이 한 마리와의 싸움에서 방심할 인간은 한명도 없을 것이다.

은밀히 신호를 주며 궁수는 입을 열었다.

“전 세계에서 인정하는 전술이 하나 있어.”

“으흠? 전술이라.”

궁수와의 일기토를 기대했던 그는 대뜸 전법이라는 말에 흥미를 돌렸다. 모든 헌터들이 자신의 비기의 사용 준비를 마쳤다.

거기까지 확인한 궁수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다구리 병신아.”

“죽여!”

혼잡하게 날아든 공격이 아니다. 머리, 몸, 팔, 다리, 모든 곳을 노리며 혹시나 도망갈 퇴로까지 계산한 완벽한 합공이었다.

“흐음, 독대를 허락한 것은 너 하나뿐이다만.”

하지만 그에게는 하찮은 공격이었다. 자신이 모욕당했다는 것에 기분이 상했는지 그는 표정을 구겼다.

제법 많은 양의 어둠을 걷어내었을 텐데, 놈에게 터져 나오는 어둠은 태산과 같았다.

“피ㅎ…!”

촤악!

파하라는 외침이 끝나기도 전에 그의 어둠이 헌터들을 베었다. 비명도 고통도 나오기 전, 가장 먼저 그들의 피가 허공에 뿌려졌다.

그는 귀찮은 짓하지 말라는 듯 손에 어둠을 모으고 있었다.

그것만으로 그가 얼마나 궁수와의 전투를 고대해왔는지 보이는 대목이었다.

“혼자 살아남은 기분이 어떤가?”

애석하게도 궁수에게는 어떤 공격도 가해지지 않았다.

궁수는 자신은 멀쩡한 채로 고통에 비명을 지르는 동료들을 바라보아야 했다.

“째지는데?”

탓!

궁수는 표정 하나 변하지 않고 천궁을 흡수하였다. 순식간에 놈의 뒤를 잡은 궁수가 주먹을 내질렀다.

그는 조금은 의외라는 듯 기묘한 표정으로 궁수를 바라보며 주먹을 막았다.

“동료가 걱정되지 않는게냐?”

“죽을 생각으로 온 사람들인데.”

궁수의 거친 공격은 타격이 쌓일수록 더욱 속도가 올랐다. 그는 흔들어보려는지 궁수를 비웃으며 말했다.

“결국에는 쓰다 버릴 동료다 이거냐?”

“저 사람들은 내가 오는 것보다 너한테 주먹 한 대라도 꽂아주는 게 더 기쁠걸?”

“핑계마저 한심하군.”

콰아앙!

순식간에 빗어진 거대한 길이의 화살 두 개가 그를 후려쳤다. 양 팔을 모아 공격을 막아낸 그는 툭툭 몸을 털었다.

“괜찮아, 어차피 우린 남이니까.”

“뭐…?”

뻘한 대답과는 달리 그의 입가엔 미소가 걸려 있었다. 이기적인 마인드가 마음에 들었는지 그는 흥미롭게 궁수를 바라보았다.

‘해본 말이지만.’

이 정도면 시간은 충분히 끌었다. 일부러 거대한 전투를 이어나가며 치료반이 헌터들을 데려갈 시간을 벌어주었다.

그도 그것을 모르는 것은 아닌지라 우습다는 듯 자신의 뒷 목을 쓸었다.

“그런 정이 네놈을 죽일 거다.”

“죽여봐.”

콰아아앙!

궁수의 화살과 그의 사슬이 격돌했다. 드래곤 하트를 얻어 한층 강력해진 궁수의 화살이 빛을 발했다.

절대 부러지지 않고 오히려 적의 사슬을 후려치며 반격까지 이어졌다.

“흐으읍!”

날아드는 사슬 고리의 틈에 화살을 처박았다. 사슬은 움직이지 못하고 화살에 고정되어 끙끙대고 있었다.

그 사이 궁수는 화살 한 발을 더 만들어 직접 마제에게 투척했다. 아스트라는 아니었지만 결코 그 위력이 약하지 않았다.

애석하게도 먼지가 걷히며 그는 조금도 상처입지 않은 모습으로 궁수 앞에 나타났다.

어둠이 아니라 본체에 타격을 맞았을 텐데도 그러했다.

그는 야성적인 궁수의 전투 스타일이 마음에 드는 듯 입이 찢어져라 웃으며 소리쳤다.

“하하하하! 그래 나를 더 즐겁게 만들어다오!”

- 조심해라!

하지만 이미 천궁의 말이 끝났을 때는 궁수는 그로부터 터져나온 어둠에 집어삼켜진 상태였다.

한치 앞도 제대로 볼수 없는 이곳은 어둠 그 자체였다.

모든 빛이 차단되어 신성력을 일으켜도 한치 앞도 보이지 않았다.

칠흑 속 모습을 드러낸 그가 뚜벅뚜벅 소리를 내며 궁수에게 다가왔다.

붉은 눈에 검은 머리칼, 구릿빛 피부에 검은 코트를 입은 그는 털썩 궁수 앞에 앉았다. 마치 의자가 있는 것처럼 그의 다리가 굽었다.

“이 개….”

“앉도록.”

그는 싸울 생각은 없는지 그윽한 눈빛으로 궁수를 바라보며 앉기를 권했다. 궁수의 뒤로 슬그머니 의자가 모습을 드러내었다.

“그쪽 세계의 옷처럼 입어봤다만, 어색한가?”

“…지금 뭐 하자는 거지?”

“흐음, 취향이 아닌가 보군.”

“애초에 난 남자는 거른다.”

“여자면 된다는 건가?”

“그래도 넌 거른다.”

그는 정말로 전투할 마음이 없는지 다리를 꼬고 턱을 괴었다.

궁수를 뜯어보듯 세심하게 관찰하며 점수를 매겼다. 결과는 당연 합격이었다.

“너, 내 것이 되어라.”

“응, 죽인다, 사지를 찢어 죽인다.”

“부하가 되라는 의미다. 물론 네가 원한다면 그런….”

촤악!

“까비.”

궁수의 화살이 정확히 그의 머리통을 노리고 날아갔으나 그는 표정 하나도 변하지 않고 이를 피했다.

“지금 마계는 심각한 상황에 처해있다.”

“관심 없어, 다 죽어.”

“이미 마계가 감당할 수 있는 마족의 수는 수천년 전에 가뿐히 넘겼다.”

“어쩌라고.”

도통 이야기를 들을 생각이 없는 궁수였으나 그는 아무렇지 않다는 듯 뻔뻔하게 대화를 이어나갔다.

“그러던 도중 발견한 것이 인간계다.”

그 이후로는 뻔했다. 개체 수 과다 현상을 해결하기 위해 인간계를 침공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순전히 자신들의 편의를 위해 가만히 있던 지구를 침공했다는 것이다.

그것도 과격하기 짝이 없는 무력 침공을 동반하여.

“하…. 그래서 뭐 어쩌라고?”

궁수는 도통 말을 들어 먹지 않는 놈의 태도에 짜증이나 퉁명스럽게 물었다.

처음으로 궁수가 대답을 하자 그가 만족스럽다는 듯 말을 이었다.

“네 놈은 그곳에 있기 너무나 아까운 존재다.”

칭찬일 것인데, 조금도 기분이 좋지 않았다. 마치 자신이 사는 지구를 비하하는 모습에 궁수의 반발이 더욱 커졌다.

“자꾸 개 같은 소리하면 죽인…. 아니다, 안 해도 죽인다.”

다른 이도 아니도 마계 전체를 지배하는 마제의 제안이다. 그는 진심인 듯 궁수에게 말했다.

“내 밑으로 들어와 네가 원하는 만큼 마계를 부숴라, 학살해라.”

“어차피 그럴건데?”

드넓은 마계의 마왕성을 때려 부쉈을 뿐 아직 주민들을 모두 죽이진 않았다.

물론 덤벼들었다면 모두 죽였겠으나, 그들은 굳이 궁수에게 덤비지 않았다.

물론 그건 그때의 이야기고, 궁수는 저 주민이란 놈들을 조금도 살려둘 마음이 없었다.

그간 저 새끼들이 지구에 입힌 피해를 생각하면 갈아마셔도 시원찮을 놈들이다.

계속되는 궁수의 거절에 그는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궁수를 바라보았다.

“마계의 주민을 모두 죽이고 강해져 나를 죽이면 되는 것 아닌가?”

“허? 뭐가 어쩌고 저째?”

그 말은 곧 지금은 자신이 죽이지 못한다는 것처럼 들리지 않는가.

그는 한술 더 떠서 궁수를 도발했다.

“이곳에는 네 놈의 잘난 마법사도, 용도 어떤 동료도 없다.”

“…….”

궁수의 표정이 굳으며 잠시 침묵이 이어졌다. 정곡을 찔렀다 생각했는지 그는 계속해서 세치같은 혀를 놀렸다.

“그럴 바에는 내 밑으로 들어와 착실하게 실력을 쌓는 것이….”

“한국에는 이런 노래가 있어.”

궁수는 그의 말을 끊으며 머리를 쓸어 올렸다. 이마에 힘줄이 터질 듯 부풀어 오른 것이 어지간히 분노한 듯했다.

그런 궁수는 매마른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자신의 일은 스스로 하자♬”

“…뭐?”

상황과 조금도 어울리지 않는 대사에 그가 잠시 당황했으나, 궁수는 아무렇지 않다는 듯 대화를 이어나갔다.

“구몽이라고 K - 에듀케이션 모르냐?”

“관심 없다만.”

궁수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 피식 웃으며 마력을 일으켰다. 그가 눈을 깜빡였을 때, 궁수는 더 이상 그곳에 존재하지 않았다.

찬란한 빛줄기가 등 뒤에서 빗발쳤다.

“할 거면 네가 직접 하라고 새꺄~”

콰아아앙!

작정하고 만든 화살 수백 개가 그를 향해 쏟아져 내렸다.

무분별하게 내리는 화살비가 아닌, 모든 화살이 정확히 그를 향해 쏟아지고 있었다.

“가소롭군.”

“그래?”

쏟아지는 화살들을 모두 받아내며 그는 궁수를 한심하게 바라보았다.

하지만 궁수의 손에 들린 것은 아스트라였다.

“내가 좀 가소롭지.”

빛무리가 화살 촉에 모이며 찬란한 길을 자아내기 시작했다.

어두운 우주 속 빛나는 찬란한 태양처럼 존재감을 과시하는 아스트라가 주인의 의지를 받아 분노했다.

피잉!

현에서 손을 때니 당연하게도 화살이 날아갔다. 주춤한 그의 앞에 거대한 빛의 기둥이 친히 강림했다.

“큭.”

고통에 찬 짧은 비명, 이걸 비명이라고 할 수 있을지 조차 애매했으나, 궁수는 분명히 들었다.

그와 동시에 주변을 가득 채우던 어둠이 사라졌다.

서서히 어둠이 걷히며 그의 모습이 드러났다. 입고 있던 옷은 갈갈이 찢겨 그의 본 모습이 나타났다.

“…뭐?”

순간 전신에 갑주를 입은 것이 아닐까 할 정도로 엄청난 근육이 눈에 들어왔다.

저런 대단한 근육을 가지고 왜 이런 짓을 벌이는지 궁수는 도통 이해할 수 없었다.

“저 근육을 이런 곳에 쓰다니….”

진심으로 아쉽다는 듯 궁수가 애석하게 그를 바라보았다. 주먹을 꽉 쥐고 고개를 숙이고 있던 그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이건, 한방 먹었군.”

그는 그런 말을 하며 아무것도 없는 공간에서 어둠으로 빚어진 검 한 자루를 꺼내들었다.

“지금까지와는 다를 거다.”

한쪽에는 등 뒤로 수천 발의 화살을 만든 궁수가 공중에 떠 있었고, 다른 한쪽에선 흑검을 든 마제가 서로를 노려보고 있었다.

상대적으로 그를 내려다보는 궁수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가소롭군.”

그리고 궁수의 앞에 높이 100미터가 넘는 거대한 검격이 날아왔다.

“아.”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