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7화. 너 좀 맞자.
“뭐야 왜 없어!?”
곧바로 다른 핵을 처리하기 위해 날아온 궁수는 텅 비어있는 폐허에 당황했다.
혹여나 기습이나 함정인가 하여 주변을 경계했으나 마력은커녕 물리적인 함정조차 없었다.
말 그대로 텅 비어있는 폐허였다.
궁수가 당황하는 사이 곧바로 정보를 물고 온 시청자들이 우르르 채팅으로 위험을 알렸다.
[님 본진에 일터졌어요 빨리 가야함.]
[본진에 괴물 3마리 나왔다는데, 저거 다 핵인거 같은데.]
“뭐? 본진에 그게 왜 나와?”
[저도 모름 ㅇㅇ 적장이 갑자기 소환시킴.]
“아.”
속았구나.
다른 것도 아니고 마제의 핵이다. 심장이나 다름없는 자신의 약점을 아무렇게나 내버려둘 리 없었다.
속았다는 짜증도 잠시 이미 궁수는 광팔이에게 본진으로 가자며 소리치고 있었다.
제발 피해가 경미하길 빌며 조급한 마음으로 전장으로 복귀했다.
***
“어차피 피할 수도 없다! 최대한 버텨!”
“벽도 있는 대로 쌓아!”
헌터들은 적의 등장과 동시에 알 수 있었다. 저것은 싸우는 것이 아니라 ‘버텨야’할 적이다.
마제 직속 친위대와 핵 세 마리, 그리고 건재한 마제까지.
도저히 이곳의 헌터들만으로 상대할 수 있는 놈들이 아니었다.
하다못해 저 두 눈에 쌍심지를 키고 있는 마제라도 없었다면 뭐라도 해볼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고 이대로 손 놓고 구경만 할 수는 없는 노릇, 헌터들은 급조된 성벽에 올라 공격을 준비했다.
계란으로 바위 치기라는 생각이 들었으나, 공격 준비는 순식간에 완료됐다.
이건 사살이 목적이 아니다. 이후 찾아올 그를 위해 최대한의 피해를 안겨주는 것이 목적이다.
지팡이를 쥔 법사가 입을 앙다물었다. 그토록 좋아하는 표적들이 저리 널려있는데, 오늘은 어째서인지 흥이 나지 않았다.
수많은 적을 날려버리기도 했던 만큼 더욱 미쳐 날뛰어야 할 때인데, 지금은 도통 힘이 나지 않았다.
“짜증, 피곤.”
부정적인 마음은 곧 분노가 되고 분노는 곧 전투의 원동력이 된다. 지팡이를 치켜든 법사가 낮게 으르렁거렸다.
“끝나고, 아이스크림! 초코 베리베리 2배!”
자신이 먹었던 음식 중 가장 맛있었던 것을 떠오르며 법사의 캐스팅이 시작됐다.
“온다!”
그와 동시에 괴물들 또한 헌터들을 집어삼키기 위해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했다.
하늘을 나는 드래곤이 독성이 진득한 브레스를 뱉었으며 늑대의 근접 전투력은 상상을 초월했다.
촉수는 예측할 수 없는 방향에서 기묘한 공격을 섞어 들어오니 거대한 난전이 발생했다.
그러나 헌터들은 이를 악물고 버티며 소리쳤다.
“법사! 법사만 지켜!”
“다 못지켜요!”
“나법사만 지키라고!”
마탑이나 다른 쟁쟁한 마법사들도 대단하지만, 법사의 초 대단위 마법은 그 궤를 달리했다.
적을 쓸어버리고 짓이기는데 최적화된 마법사, 그것이 나법사였다.
그리고 그는 지금 누적된 피로에 적잖게 분노한 상태다.
드래곤도 아니고 인간이, 한두 번도 아니고 하루 수십 수백 개의 대단위 마법을 사용하니 피로가 쌓일 수밖에 없었다.
평범한 인간이라면 벌써 마력 회로가 붕괴되어 탈진하고 쓰러질 수준이었으나 법사의 회로는 훨씬 튼튼했다.
지구 최고의 마법사의 분노는 가볍게 여길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최근 광팔이의 마법을 보고 법사의 수준은 배로 올라갔다.
감히 인간이 드래곤의 마법을 따라하는 것은 참새가 황새를 따라하는 격이지만 법사는 달랐다.
불가능하다는 그 경지에, 판타지로 따지자면 9서클을 아득히 넘은 경지에 발을 들였다.
이미 인간의 몸이라고 부르기엔 그에게 흐르는 마력은 너무나 강대했다.
핵들의 머리 위로 각각 마법진들이 한 개씩 등장했다.
아무리 놈들이 거칠게 움직여도 고정된 마법진을 이를 놓치지 않았다.
적을 완벽히 잡아내며 저격하는 마법진, 이것만으로도 일류 마법사들의 입을 쩌억 벌 릴 수준이었으나, 법사는 이제 시작이었다.
법사도 어렴풋이 알고 있었다.
당장에 자신의 마법으로도 저 놈들을 모두 죽이는 것은 무리라는 것을, 그렇기에 법사도 사살이 아닌 제압을 목표로 마법을 실행했다.
법사의 발 아래로 순백색의 마법진이 생겨났다. 눈이 멀 정도로 찬란하게 빛나는 마법은 적들의 심기를 건들었다.
어둠에 살아가는 이들에게 빛이란 늘 꼴 보기 싫은 존재였다.
괴물들의 분노 섞인 포효가 전장을 흔들었다. 오히려 법사는 더 해보라는 듯 적들을 도발하며 더욱 힘차게 마력을 일으켰다.
이런 상황에서 괴물들이 법사에게 달려드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다.
“온다 막아!”
“어떻게든 막아! 법사 죽으면 우리도 죽어!”
“버텨! 어떻게든 다 받아 쳐!”
날아오는 모든 공격에 헌터들의 대응이 이어졌다. 단 한발도 놓치지 않겠다는 듯 강렬한 의지가 담겼다.
아무리 빠른 마법 탄환도 법사 주변을 지키는 헌터들에게 쳐내졌다.
심지어는 자신의 몸을 던져 공격을 막아내는 헌터마저 생겼다. 물론 당한 이의 목숨은 거기서 끝이었다.
헌터들의 함성과 처절한 반격이 가득했다. 승패를 가늠할 수 없는 전장에서 예상을 뒤엎는 패, 나법사의 마법이 완성되었다.
“hagalaz - nauthiz - isa.”
오랜만에 마법 문자를 뱉은 법사가 묵은 숨을 내쉬었다. 뜨겁고 타들어 갈 듯한 숨에 헌터들이 꼴깍 침을 삼켰다.
그렇지 않아도 강력한 그가 마음먹고 힘을 사용하면 어떤 일이 벌어진단 말인가.
그의 자그마한 입에서 찬란한 새 마법이 탄생하고 있었다.
인간의 한계를 넘어 드래곤조차 경악할 마법, 지금 이 자리에 광팔이가 있었다면 법사를 스승으로 모실 정도의 마법.
그것이 지금 이 전장에 현현했다.
아니, 정확히는 ‘강림했다’라는 표현이 걸맞을 것이다.
적들의 머리 위에 나타난 마법진에서 순백색 사슬이 순식간에 적들의 몸을 관통했다.
단단히 묶인 사슬이 메인 줄기를 따라서 나뭇가지처럼 추가로 사슬을 만들어내기 시작했다.
이내 사슬은 적들을 완전히 집어 삼켜버렸다. 저 괴물들을 단순에 속박했다.
그것만으로 마법사들의 눈에 지진이 일어날 정도의 대마법이었으나 법사는 한술 더 떴다.
고작 이 정도로는 드래곤의 스승이 될 수 없다. 지팡이를 옆에 꽂은 법사가 사슬을 엮어 세 괴물을 한 대 모았다.
으드득.
법사의 진지한 표정에 다른 마법사들이 침을 꼴깍 삼켰다.
바보같고 멍청한 모습만 보여주던 그가 입을 다물고 진지하게 전투에 임하니 그 박력이 대단했다.
찰랑거리는 금발이 나부끼며 거센 바람이 불어왔다.
처음 헌터가 되던 날, 나법사가 유심히 바라본 것이 있다. 전장에 떨어지는 벼락도, 화려한 폭발도, 강대한 메테오도 아니었다.
법사가 탐구한 것은.
“게이트 오픈.”
무엇이든 삼키고 무엇이든 뱉는 희대의 개 사기 스킬, 게이트였다.
묶인 적들을 삼키려는 포식자가 모습을 드러내었다. 마치 짐승이 연 것처럼 갈기갈기 찢겨 있었으나 그 위력만큼은 진짜였다.
“크흐으윽….”
이를 악문 법사의 입가로 피가 흘렀다. 맑은 청안에는 마력이 가득하여 전신에 푸른 기류가 흘렀다.
“가.”
결국에는 거대화된 게이트가 마물들을 집어삼켰다.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깔끔하게, 순식간에 전장의 큰 위협 셋이 사라졌다.
정확히는 게이트에 완전히 ‘갈려버렸다’라는 표현이 올바를 것이다.
마계의 땅속 깊숙한 곳에서 수백 개의 잔재에 몸이 갈기갈기 찢겨졌다.
“…….”
환호조차 나오지 않았다. 기함도 나오지 않았다. 적도, 아군도, 심지어는 마제도 그 마법에 당황하여 뭐라 입을 열지 못했다.
전장에 깔린 침묵만이 그들의 마음을 대변할 뿐이었다.
‘어찌하여 저런 인재가 인간에 태어났단 말인가.’
마족이었다면 벌써 자신을 처치하고 새로운 왕이 군림할 수 있었을 텐데.
종족의 차이에 한탄하며 그가 탄식을 뱉었다.
자신의 핵이 파괴된 것보다 인간의 몸으로 홀로 저런 마법을 사용했다는 것이 더욱 대단했다.
너무나 탐나고 저런 인재를 가지고 있다는 나궁수가 너무나 부러웠다.
뭐든지 가질 수 있는 자가 처음으로 가질 수 없는 것이 나타났다.
오랜만에 욕심이라는 것이 불쑥 모습을 드러내었다.
“크흑….”
대마법을 일으킨 장본인은 지팡이를 쥐고 굳어 있었다. 그것은 곧 전장에 적들이 남아있는 한 절대로 쓰러지지 않겠다는….
“힘드렁.”
건 아니었다.
그저 마력 회로를 무지막지하게 혹사한 나머지 몸이 딱딱하게 굳어버렸다.
마제의 어둠이 더욱 짙어졌다. 핵이 모두 사라지며 그의 진정한 모습이 강림했다.
경외하고 두려워할 대상인 그는 주변의 다른 놈들에겐 눈길조차 주지 않고 법사에게 다가갔다.
날개도 없이 자유롭게 마계를 날아다니며 그는 차분하게 법사의 옆에 착지했다.
“……!”
헌터들이 움찔하며 이를 저지하려 했으나 그의 압도적인 위용 앞에 손가락 하나 깜짝할 수 없었다.
다른 벌레에게는 관심 없다는 듯 그는 법사를 바라보며 물었다.
“인간의 몸은 답답하지 않은가?”
“….”
“하다못해 드래곤이나 마족으로 태어났다면 신이 될 재능이거늘.”
그는 아쉬운 듯 조심스레 법사의 머릿결을 향해 손을 뻗었다.
“그만.”
먼저 어둠을 깨고 나타난 티아라가 그의 목에 검을 겨누었다.
“어허 어딜 남의 가족을 건드려.”
두 번째로는 셈이 우락부락한 근육을 자랑하며 방패로 그와 법사 사이를 갈랐다.
“대가리 수준 딱 보이니까, 꺼지셈.”
베로니카가 당장에라도 벽을 올릴 듯 마력을 키웠고.
“리커버리 블레싱.”
힐이 지친 법사에게 치유를 걸어주었다. 그 뒤로 권갑을 쓴 허가연과 후라이팬을 든 고수혁이 놈을 노려보고 있었다.
“허.”
그들에게 느껴지는 기운도 결코 약하지 않았다. 그러나 본체를 되찾은 그에게 있어 이들은 하룻강아지에 지나지 않았다.
“내 말을 끊다니.”
용기가 가상하다고 해야 할지 겁이 없다고 해야 할지, 그는 피식 웃으며 어둠을 일으켰다.
“그래, 내가 그간 너무 만만하게 보였나 보군.”
이제는 진심을 보여야 할 때다. 약하다면 죽이고 자신보다 강하다면 죽임을 당할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며 적들을 쓸어버릴 어둠이 넘실거렸다.
형태조차 없는 검은 칼날이 그들의 목을 치려던 그때.
콰직!
수십 미터가 넘는 화살 한발이 그 앞에 처박혔다. 눈이 따갑게 빛나는 신성력을 가득 머금은 화살이었다.
이런 화살을 쏠 궁수는 이 전장에서, 너머 이 세계에서 단 한 명밖에 없다.
콰앙!
다급히 광팔이의 등 위에서 뛰어내린 궁수가 정확히 마제의 코앞에 착지했다.
“슈-퍼 히어로 랜딩.”
안전(?)하게 바닥을 다 때려 부수고 착지한 궁수가 새하얀 이를 드러내었다.
“너.”
“흐음.”
콰앙!
궁수의 주먹이 마제의 손에 간단히 막혔다. 그러나 궁수는 오히려 환호했다.
이제 공격이 먹힌다. 자신의 공격이 놈에게 유효타로 돌아갈 수 있다.
거기까지 확인한 궁수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너 좀 맞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