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6화. 제목 할게 없네.
사신의 서늘한 죽음이 궁수의 목숨을 조여왔다. 마계에 퍼진 마제의 핵은 네 개. 각각 마제의 힘을 25프로 씩 담고 있다고 생각해도 무방했다.
“저런 것들만 다 죽이면 된다 이거지?”
- 본체도 상대해야지.
“뭐? 본체가 있어?”
- 그럼, 핵만 부수고 죽을 놈이었다면 진즉 죽었을 거다.
“하….”
사신은 어둠을 뿌리며 칠흑의 낫을 그었다. 공간이 베이는 듯한 소리와 함께 궁수를 향해 참격이 나타났다.
콰앙!
화살을 돌려 위치를 바꾼 궁수가 짜증 섞인 한숨을 뱉었다. 불온하게 일렁이는 어둠이 지금도 궁수의 주변을 서서히 조여왔다.
머리를 쓸어 올린 궁수의 눈초리가 기울어졌다.
“개 같네.”
어둠 자체도 번거로운데 속도까지 엄청나다. 마제의 핵이기 때문에, 양 또한 방대하다.
물론 질 것 같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그러나 죽일 수 있을지는 의문이었다.
때려봤자 계속 부활한다. 일반적인 헌터라면 진즉에 마음이 꺾이겠으나 궁수는 아니었다.
“죽도록 패면 뭐라도 되겠지.”
불사는 지겹도록 상대해봤다. 불사를 필사로 만드는 궁수에게 있어 적은 패기 좋은 샌드백에 지나지 않았다.
촤악!
“흡!”
잠깐 쉬었다고 고속 참격이 궁수를 양단시키기 위해 날아들었다. 뒷목이 서늘해진 공격에 궁수는 곧바로 발을 놀려 공격을 피했다.
[뭐 보이냐;;]
[안 보임; 뭐 어떻게 피하는 거임?]
[싸움 수준이 다르구나…]
[난 3초도 못버틸 듯.]
ㄴ 토끼쉑.
ㄴ ?
적은 속도부터 위력까지 범상치 않다.
천궁을 흡수한 궁수가 땅을 박차고 뛰어올랐다. 수십 개의 화살이 일제히 사신을 노리고 날아들었다.
카카카캉!
날아든 모든 화살을 낫으로 베어낸 사신은 가소롭다는 듯 포효하며 궁수에게 날아왔다.
“어딜!”
분쇄자로 무길 바꾼 궁수가 적의 낫을 후려쳤다.
낫을 부숴버릴 작정으로 휘둘렀으나 적은 휘청할 뿐 별다른 반응은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적은 자신이 고작 인간에게 밀렸다는 것이 심히 마음에 들지 않는 듯 해골을 덜그럭거리며 날뛰었다.
끊임없이 몰아치는 낫들이 궁수를 노렸으나, 모두 분쇄자에 막혔다. 낫이 궁수의 머리털 끝을 스쳤다.
자세를 낮춘 궁수는 놈에게 파고들었다.
전신에 로브를 걸친 거대한 칠흑의 스켈레톤.
공격력은 최상위에 방어력은 미지수, 놈의 상태를 보건데 분명히 방어력도 어마어마할 것이다.
낫은 리치가 긴 무기다. 그렇기에 갑작스럽게 파고든 궁수를 내치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었다.
그런 단점을 보완하듯 등 뒤로 날린 촉수들이 궁수에게 쏟아졌다.
콰콰쾅!
날아드는 촉수들을 분쇄자로 모조리 후려친 궁수가 아쉬운 듯 입맛을 다셨다. 한방 크게 먹일 수 있는 기회를 날려버려 몹시 아쉬웠다.
“좀 치네.”
궁수가 차분히 숨을 고르며 놈을 노려보았다. 사신은 방금 전 일격으로 낫을 끌어당겨 궁수를 노려보고 있었다.
#(%@*$%-
알 수 없는 기괴한 노성을 내뱉으며 궁수를 겁박하고 있었다.
그러나 드래곤의 피어도 무시하는 궁수에게 그런 비명이 통할 리 없었다.
“흐음.”
놈을 유심히 바라본 궁수는 일부러 화살을 한 발씩 발사하며 놈을 도발했다. 분쇄자로 하나하나 쳐 내기에는 너무 느리다.
속전속결로 승부를 내야한다.
그러기 위해선 저 촉수부터 모두 제압해야 한다. 천궁을 흡수한 궁수의 눈가에 살기가 흘렀다.
이는 고요하고 잔잔하지만 언제 거대한 파도를 만들어낼지 모르는 바다와 같았다.
“후우….”
탓!
궁수가 기습적으로 화살을 내세워 놈에게 달려들었다.
곧바로 낫이 궁수를 응징하기 위해 내려왔으나 화살을 겹겹이 대어 이를 받아내었다.
“흐으으읍!”
거칠게 화살을 들어 올리자 낫이 확 올라가며 이번에도 놈의 품이 훤히 드러났다.
마치 당장에라도 죽여 달라는 듯 자신을 유혹했으나 궁수는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다.
최적의 타이밍에 최선의 공격을 한다. 궁수는 헌터다. 사냥꾼은 모름지기 노련하고 기다릴 줄 알아야 한다.
곧바로 촉수들이 겁 없는 침입자를 배제하기 위해 나타났다. 하지만 한번 당하지 두 번 당하는 궁수가 아니다.
“그렇지.”
놈이 궁수에게 관심이 팔린 틈을 타 화살 한 발이 놈의 다리 사이로 날아가 뒤를 잡았다.
그와 동시에 궁수의 모습이 흐려지며 자취를 감추었다.
궁수가 나타난 곳은 당연하게도 놈의 후방, 곧바로 궁수를 잡기 위해 촉수가 방향을 돌렸으나, 이미 틈은 벌어질 대로 벌어졌다.
푸푸푸푹!
궁수의 화살이 날아오는 촉수들에 박혔다.
단 한 개의 움직임도 허락하지 않겠다는 궁수의 압박에 모든 촉수는 그대로 벽에 처박혔다.
대못을 벽에 때려 박듯 궁수의 화살은 드릴처럼 회전하며 벽을 관통했다.
콰드드드드득!
#▦▶%^◆▦[email protected]▣%#!
고통에 찬 비명인지 분노에 미친 노성인지 궁수는 모른다.
확실한 것은 지금 본인이 승기를 잡았다는 것, 그리고 지금은 더더욱 몰아쳐야 할 때라는 것이다.
마치 날개를 묶여 매달린 새처럼 비참한 모습에 궁수는 그제야 마음에 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이게 맞지, 음음.”
[죽여 버려!]
[아 막타 칠 생각에 싱글벙글이네ㅋㅋ]
[ㅗㅜㅑ 묶어놓고 뭘 하려고.]
ㄴ 이 새낀 묶어놓고 패야할 것 같긴 함.
ㄴ 우리 친구는 아가리로 똥을 싸는 재주가 있군요!
ㄴ 아갈똥은 못참긴 해 ㅋㅋㅋㅋㅋ
방송창도 승기를 다잡은 궁수의 모습에 환호를 내질렀다. 지체할 시간이 없기에 궁수는 곧바로 천궁을 들었다.
궁수의 손에 들린 아스트라가 먹잇감을 확인한 듯 서늘하게 빛났다.
이를 본 사신은 겁에 질렸는지 연신 비명을 질렀으나 궁수는 중지를 들어 올려 이를 가볍게 묵살했다.
“하나 컷!”
아스트라에 모인 빛이 궁수의 손아귀를 떠나갔다.
놈은 속박되긴 하였으나 아직 어둠을 두른 상태다. 이를 꿰뚫기 위해서는 보다 예리한 화살이 필요했다.
바람과 신성력, 그리고 아스트라의 강력한 위력이 더해졌다. 아직 갈 길이 멀기에 시작부터 모든 수를 내보일 수는 없다.
화살이 손아귀를 떠났다.
콰지지지직!
막으려는 어둠과 꿰뚫으려는 빛의 격돌이 일어났다.
하지만 모든 촉수가 봉인당한 놈이 고작 낫만으로 궁수의 공격을 막아내기란 무리가 있었다.
콰득!
심장을 관통하는 아스트라의 화살이 어둠을 해치며 더욱 아름답게 빛나고 있었다.
***
전장에 나타난 어둠은 그간 싸워온 헌터들을 얼어붙게 만들기 충분했다.
초면이든 아니든 소름끼치는 어둠이 전장에 퍼지기 시작했다.
“냄새….”
법사는 몰려드는 어둠이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미간을 좁히며 코를 막았다.
“어둠 침식이다!”
“정화 바로 들어와!”
“제길 이건 또 뭐야!”
이전 마왕성이 지구에 침공했을 때 보았던 현상이 지금 전장에 펼쳐지고 있었다.
그렇지 않아도 어둠이 깔린 마계에 더욱 짙은 어둠이 깔리며 헌터들을 위협했다.
“법사! 이리 오게!”
“일단 정화 포션부터 뿌려!”
방어 대책을 강구함과 동시에 티아라의 성검이 어둠의 존재와 격돌했다.
콰아앙!
“끄으으윽!”
왼 손을 뻗은 것만으로 티아라의 기습을 막아낸 그는 가소롭다는 듯 웃었다.
“재미없군.”
“하앗!”
그녀 직속의 세이비어 팀들이 한 치의 틈도 없이 마제를 압박했다.
본체도 아니고 분신이거늘, 그들은 검 끝도 마제에게 닿지 못했다.
마제는 요리조리 공격을 피하며 흥미를 잃은 듯 팔짱을 끼웠다. 오만하고 권능적인 표정으로 더 없냐는 듯 고개를 까딱였다.
‘이 개잡놈이….’
티아라도 알고 있었다. 놈의 수준은 결코 여기서 당할 정도로 약하지 않다.
마음만 먹으면 조금 출혈이 있겠지만 충분히 헌터들을 모두 죽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는 그러지 않았다. 오히려 더욱 성장하여 언젠가는 자신에게 닿아주길 바라며 그들에게 자그마한 ‘시련’을 내려주었다.
“놀아줄 가치가 없군.”
그의 손짓 한 번에 갑작스럽게 헌터들 주변에 수십 개의 게이트가 발생했다. 그 안에서 느껴지는 마력은 최소 S급.
재앙급 마수들이 그 안에서 살아 숨 쉬는 것이 느껴질 정도였다.
“젠장….”
괴수들이 일제히 게이트 밖으로 나오려던 찰나.
“커허억!”
마제는 뭔가 심각한 상처를 입은 듯 가슴을 부여잡았다.
검은 피를 토하는 그는 무엇이 그리도 좋은지 입꼬리를 끌어올리며 사악한 미소를 지었다.
“그래…. 조금만 더, 조금이면 된다.”
지금 이런 피해를 입었다는 것은 그의 4개의 핵중 한 개가 당했다는 것이다.
이 곳에서 그와 비견될 자는 없으니 당연히 궁수가 벌인 일일 것이다.
마력이 비틀어지며 열리던 게이트가 닫혔다. 헌터들은 천만다행이라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느껴지는 기운도 험악하지만 방금 전의 기행으로 알 수 있었다.
놈은 쉽게 상대할 수 있는 녀석이 아니다. 재앙이 아니라 멸망급, 혹은 그 이상이다.
무기를 쥔 헌터들의 손이 파르르 떨렸다. 규격 외의 강자, 적은 상대한다는 것조차 상상하기 어려운 강자다.
하지만 겁먹은 헌터는 이곳에 올 생각조차 없었다.
“한대라도 치고 죽는다.”
“죽어도 돼, 팔 한쪽은 가져간다.”
“까짓 거 목숨 걸면 칼 한 대 정도는 박을 수 있겠지.”
물론 죽음은 두렵다. 고통은 생생하며 상처라도 입었다간 평생 무거운 상처를 입고 살아가는 것은 필수 불가결이다.
하지만 그들 뒤의 지구는 더욱 평화로운 삶을 이어갈 수 있을 것이다.
목숨을 걸고 지구를 지키러 나온 헌터들에게는 그거면 충분했다.
범접할 수 없는 강자의 등장에 헌터들의 사기가 오히려 더욱 치솟았다.
찍어 눌러도 누를 수 없는 억센 풀이 되어 적의 발목을 잡아, 언젠간 나무가 되어 적을 집어삼키리라.
마제는 그런 헌터들 보다 자신의 핵이 터졌다는 것에 신경이 쓰였다.
잠시 턱을 쓰다듬더니 이내 결정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쉽게 갈 순 없지.”
마제의 손아귀에 어둠이 모였다. 세 갈래로 갈라진 어둠은 땅에 스며들어 둥근 원을 빚어내었다.
형 이학적인 마법진이 땅 위에 모습을 드러내었다.
“막아!”
“또 뭘 소환하려는 거야!”
곧바로 헌터들의 융단 폭격이 이어졌으나, 그는 가소롭다는 듯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오히려 그의 수하들이 앞을 지키며 날아드는 공격을 막았다.
개중에는 공격에 맞아 죽는 놈들도 빈번하게 있었다.
하지만 어떻게든 마제만은 지켜내겠다는 듯 필사의 각오를 하고 있었다. 마제의 현 상태는 어둠, 그 자체다.
모든 공격을 투과시켜버리니 방어를 해도 별 의미는 없었다. 그 사이 소환을 완료한 마제의 입가에 비릿한 미소가 걸렸다.
‘네 놈이 언제 눈치챌까, 기대되는군.’
헌터들 앞에, 다른 세 개의 핵이 모습을 드러내었다. 그것도 섬뜩한 괴물의 형태로.
머리가 세 개인 드래곤과 건물을 집어삼킨 듯한 거대한 흑빛 늑대, 마지막으로 거대한 촉수 수백 개가 뭉쳐 만들어진 무언가.
방금 전까지 기세등등하던 헌터들의 표정에 당황과 절망이 묻어나오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