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4화. 시공의 폭풍은 정말 최고야.
“이게 무슨!?”
“바닥 좀 단단하게 쓰지 그랬어?”
콰아아아앙!
알현실의 돌바닥이 무너지며 성 내부의 모습이 훤히 드러났다.
“흐음…?”
알현실이 최상층인 듯 복도에 착지한 궁수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덜그럭 덜그럭.
살아있는 것은 아니었다. 갑주에 어둠을 불어넣어 억지로 움직이는 것처럼 보였다.
소위 친위대들이 성을 상주하며 침입자를 배제하는 듯했다.
“마제는?”
- 흐음, 어디로 갔는지는 모르겠다만, 놈이 본체는 아닐 거다.
“그래, 핵 같은 게 있겠지.”
그 정도로 철두철미한 성격이라면 과언도 아니다.
바닥을 터트려 아래층으로 내려온 궁수 주변에는 수많은 어둠 기사들이 모여 있었다.
고작 어둠을 두른 것에 불과했으나 어중간한 물리력은 통하지도 않았다.
촤악!
네 발의 화살이 기사 한 놈의 목을 관통했다.
평범한 화살이라면 씨알도 먹히지 않았겠지만, 신성력을 머금어 그런지 효과는 있었다.
다만 휘청하는 것이지 쓰러지는 것은 아니어서 궁수는 부지런히 화살을 난사했다.
쿵!
그렇게 거의 사지를 찢듯이 화살을 난사한 후에야 기사 하나가 쓰러졌다.
‘효율이 너무 안 좋아.’
당장에 놈들도 궁수의 적이긴 했지만 이렇게 하나하나 상대해 줄 시간이 없다.
온 사방에서 날아오는 공격을 피하며 쓰러트린 것이 고작 한 놈.
거기까지 생각한 궁수는 냅다 화살을 처박으며 높게 뛰어올랐다.
바닥에 박힌 화살을 폭파하여 아래층으로 내려가려는 생각이었다.
퍼어엉!
화려한 폭발에 궁수의 시야가 섬광으로 가득 찼다. 빛이 잦아들며 서서히 바닥이 드러났다.
“아 젠장.”
바닥은 큰 금이 가기는 했지만 뚫리진 않았다. 최상층의 바닥이 얇았던 건지 아래의 바닥은 급이 달랐다.
저걸 뚫으려면 몇 번이나 터트려야 할지
감도 잘 오지 않았다.
- 어쩔 수 없겠군.
어둠 기사들의 붉은 안광이 궁수를 관통했다. 부담스러울 정도의 살기에 궁수가 고개를 내저었다.
“성에 엘리베이터 하나 쯤 있어도 되는 거 아니냐고.”
산업화되지 못한 성을 탓하며 궁수가 적들을 향해 돌격했다.
***
전장의 격돌은 혈흔이 낭자하며 비명이 가득했다. 적들이 죽어 나가는 만큼 헌터들 또한 죽거나 치명상을 입기 일쑤였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실력 좋은 힐러들 덕분에 살아만 있다면 목숨은 건질 수 있었다.
“더 몰아쳐라 더!”
“어차피 죽지만 않으면 돼!”
“으어어어! 죽어라! 죽어!”
어디가 좀비고 어디가 인간인지 분간되지 않는 전투가 이어졌다.
팔이 잘린 인간이 다시 새 팔이 돋아나서 오질 않나, 가슴에 구멍이 뚫린 인간이 멀쩡해져서 오지 않나.
힐러가 한 둘도 아니고 수천 명이 일제히 치유를 때려 박아버리니 살아나지 않고선 배길 수 없었다.
“야! 저기 환자다!”
“응!? 나 안 다쳤어!”
“닥쳐! 손가락 베인 거 봤어!”
“으잉!? 이거 맞아!?”
나중에는 자신들이 직접 환자들을 노리며 힐을 무식하게 쏟아 부으니, 헌터들 입장에선 죽어도 죽을 수가 없었다.
오히려 이 무식한 집단 앞에서 죽을 수 있을지 그것이 더 걱정이었다.
“다치기만 해봐라.”
“감히 내 앞에서 피를 흘려?”
“어어? 비명? 감히 고통에 찬 비명을 질러?”
“죽으면 죽여 버릴 거니까 그런 줄 알아!”
전투용 사축이 이런 기분이 아닐까. 죽음조차 허락받지 못하고 날뛰는 그들은 오히려 더욱 신이 났다.
경험치는 달콤하고 어지간하면 목숨도 잃지
않는다.
“차라리 죽여줘! 죽여 달라고!”
“이승이 당신을 부른다!”
“크하하하! 수명을 늘려주마!”
“낄낄낄 만수무강 해버리시지!”
아마도, 아마도 아군을 살리는 힐러들이다. 조금 그 수단이 과격할 뿐, 실제로 아군의 사망률은 갈수록 낮아지고 있었다.
“힐! 그레이트 힐! 멕시멈 힐!”
“크하하하! 살아! 살아! 살아!”
“너흰 그냥 힐 받는 기계야 기계!”
“너! 상처, 쌓여 있잖아?”
사람을 살리는 과격 치유 집단의 탄생이었다.
***
궁수는 묵은 숨을 내쉬며 옷을 털어내었다. 눈에 띄는 상처는 없었으나 옅은 생채기들이 가득했다.
기사들이 어둠을 품고 있다 보니 공격이 워낙에 변칙적이었다.
상반신을 다섯 바퀴나 돌려 오질 않나 어깨를 뽑아 후려치질 않나. 괴물도 아니고 인간도 아닌 것이 상대하기 여간 까다로웠다.
그마저도 옅은 상처로 끝났기에 다행이다. 궁수의 주변에 적들의 시체가 가득했다.
해봐야 반파된 갑주나 무기들이었으나, 방금 전까지만 해도 어둠에 미쳐 궁수를 공격하던 놈들이었다.
짧은 휴식을 끝으로 궁수가 ‘문’ 앞에 섰다. 30미터가 넘어가는 거대한 문은 기이한 문양을 띄고 있었다.
“흐으으으읍!”
쿠구구구구….
얼마나 오랫동안 사용하지 않았는지 문은 바닥을 긁으며 천천히 열리기 시작했다.
촤악!
“흥!”
문을 열자마자 날아온 단검이 궁수의 머릿결을 스쳤다.
고개를 비틀어 단검을 피해낸 궁수는 안을 유심히 바라보았다. 온통 시커먼 어둠 때문에 도통
적이 보이질 않았다.
하지만 늘 규격 외의 삶을 살아온 궁수에게 있어 이런 상황은 아무렇지도 않았다. ‘궁수’ 로서 어둠이 깔린 곳에서 암살자에게 노려지고 있다.
암살자의 실력은 최소 S급.
평범함 상황이라면 이미 제사상에서 육개장을 뜨고 있는 것이 현실적이었다.
그러나 궁수는 별 감흥 없이 화살을 빗어내 불꽃을 일으켰다.
“혼자로군.”
“어 아직 싱글이야.”
이내 수십 개의 화살에 불이 붙었다. 궁수는 내부가 타버리던 말던 화살을 발사하여 안을 환하게 비추었다.
“뭣!?”
“이제야 좀 보이네.”
[아 느그 집이지 내 집이냐고 ㅋㅋㅋㅋㅋ]
[꼬우면 불 키던가 ㅋㅋㅋㅋㅋ]
[??? : 불 좀 키고 있어라!]
ㄴ 니들이 어둠의 자식들이냐!
ㄴ ㄹㅇ 고정멘트 ㅋㅋㅋㅋㅋㅋㅋㅋㅋ
궁수의 돌발 행동에 당황한 암살자가 눈을 부라렸다. 어떤 정신병자가 외부도 아니고 내부에 불화살을 뿌려댄단 말인가.
“하마터면 그분이 다칠뻔 했잖느냐!”
“말 들어보니 잘 찾아왔네.”
아마도 마제의 핵은 이곳에 있는 모양이다. 만족스러운 궁수와는 달리 암살자는 표정을 마구 구기며 분노했다.
불화살을 한두 발도 아니고 수십 발을 뿌린다니. 이곳이 만약 서고라도 됐다면 대참사가 일어날 뻔했다.
그는 어차피 들킨 이상 더욱 대범하게 궁수를 공격했다.
어둠에 몸을 숨겨 단검을 손에 쥐고 궁수를 급습했다.
‘빠르다.’
빠르고 정교하다.
딱 거기까지가 궁수가 느낀 감상이었다. 궁수는 달려드는 놈의 뒤로 화살을 날렸다.
궁수의 인영이 흐려지며 놈의 뒤를 잡았다.
궁수의 주먹이 놈의 뒤통수를 후려치려던 찰나 그 역시도 모습이 흐려지더니 궁수의 후방에서 모습을 드러내었다.
“왜, 당황스럽나?”
“조금?”
어둠에 동화된 그는 어둠 안에서라면 어디든지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다.
실제로 궁수의 그림자에서 솟아난 그는 낄낄거리며 단검을 그었다.
놈의 팔을 후려쳐 단검을 피해낸 궁수가 땅을 박차고 거리를 벌렸다. 그는 가소롭다는 듯 웃으며 궁수에게 말했다.
“순간 이동이 네 놈만의 전유물인 것 같으냐?”
벌써 이겼다고 생각했는지 놈은 의기양양하여 궁수를 깔보았다.
하긴, 생각해보면 놈은 암살자다. 궁수라는 직업의 최고 카운터격 직업이다.
‘밖에서 내 소문을 못 들었나?’
놈은 이상하리만치 궁수를 얕보고 있었다. 그것도 그럴 것이 이곳은 마제의 5핵 보관 위치 중 중앙부다.
이곳을 들어올 수 있는 이는 마제에게 허락을 받은 관리자나 그 이외에는 절대 들어올 수 없다.
거의 바깥과 단절된 것이나 다름없는 장소, 그러기에 놈이 궁수를 모르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어찌 됐든 적이 자신을 모르면 그것은 좋은 일이다.
뭔 죄다 자신을 알고 있어 불편한 것도 있었다.
고작 인간 한명에 뭘 그리 공을 들인단 소리인가. 다시 말하면 궁수가 그만큼 지대한 영향력을 끼치고 있다는 소리이기도 했다.
거기까지 생각한 궁수는 피식 웃으며 엄청난 수의 화살을 방 안 가득히 발사했다.
신성력이나 불꽃은 붙어있지 않았다.
하지만 시청자들은 알고 있었다. 방금 이 행동으로 이곳은 궁수의 홈그라운드가 되었다는 것을.
[방장 사기맵이네 ㅋㅋㅋㅋㅋ]
[무한 점멸 나궁수 ㅋㅋㅋㅋ]
[벌써 꼴깝 떨 생각에 파르르 떨리누 ㅋㅋㅋㅋ]
[정보 - 암살자 카운터는 궁수다.]
ㄴ ?
ㄴ ‘나궁수’ 다.
ㄴ 이게 맞지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죽기 직전의 돌발 행동이라 생각했는지 암살자는 피식 웃으며 궁수를 흘겨보았다.
아무런 속성도 없는 화살을 온통 뿌려대었다. 모르는 사람이 봤다면 정말 마지막의 호기로 보였을 것이다.
“야.”
궁수가 한걸음을 다 걷기도 전, 그 모습이 사라졌다. 암살자의 코앞에서 모습을 드러낸 궁수가 씨익 웃었다.
살기가 다분한, 동시에 장난기가 넘치는 표정이었다.
“까꿍.”
“잔재주를!”
카앙!
곧바로 휘둘러진 단검은 당연하게도 궁수의 분쇄자에 막혔다.
궁수라고 생각했던 적이 대뜸 몽둥이를 들고 나타났다. 그것도 못이 수없이 박힌 무시무시한 몽둥이를.
가볍게 단검을 후려친 궁수는 혹여나 도망칠까 놈의 멱살을 잡고 띄웠다.
뒤늦게 어둠을 펼쳤으나 떨어지면서 분쇄자에 옆구리가 스치고 말았다.
“야 너 눈치 좋다.”
“크흑!”
암살자는 이를 악물고 옆구리를 잡았다. 흐르는 피에 검은 옷이 젖었다.
당장에 치료를 하기엔 눈을 시퍼렇게 뜨고 있는 녀석에 겁이 났다.
어떻게 올라온 자리인데 이런 곳에서 죽을 순 없다.
마제에게 인정받아 여기까지 도달하길 수백 년이 걸렸다. 그런데 고작 인간 침입자 하나를 막아내지 못해 죽는다니.
다른 사람이 인정해도 그가 절대 인정하지 못한다.
최후의 발악을 준비하듯 어둠이 끓어오르기 시작했다.
평소의 궁수라면 어디 한번 해보라는 듯 시간을 주겠으나, 지금은 그럴 때가 아니다.
지금도 충분히 늦었다. 빌어먹을 기사들 때문에 계획이 크게 틀어졌다.
궁수는 핵까지 한 번에 날려버리고자 아스트라를 손에 들었다.
“크흐흐흐 그렇게 날뛰고 마지막은 활인가.”
“궁수니까 당연하지.”
어둠이 폭풍처럼 몰아치며 날카로운 칼날을 만들어내었다.
그가 평생을 바쳐 연구한 어둠이 최후의 불꽃이 되어 장렬하게 타오르고 있었다.
반대서는 궁수가 아스트라에 힘을 모으며 시위를 당겼다. 신성력이 모이며 날개가 달린 것처럼 어둠을 쫓아내었다.
[오 간지.]
[응 궁수가 이겨~]
[이겨야지 그럼, 지면 우리도 큰일 난다.]
“내가 죽더라도, 네 놈은 데려가겠다!”
“돌아가신 니 엄마랑 놀아 새꺄.”
[ㄷㄷㄷㄷㄷㄷㄷ]
[활로 딜 20 넣었는데 입으로 한 20000 넣은 듯 ㅋㅋㅋㅋㅋㅋㅋㅋ]
콰아아아앙!
흑백의 격돌은 생각보다 더 치열했다. 궁수야 아니지만 적은 목숨을 건 마지막 공격이다.
최후의 일격이 적에게 도달하길 바라며 자신의 모든 수를 쏟아 부었다.
암살의 극에 달한 최후의 일격은.
“가서 먼저 간 가족한테 안부 전해줘라.”
알싸한 패드립과 함께 끝을 내었다. 놈의 심장을 관통한 화살이 타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