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2화. 딱 대.
콰아앙!
선두에 선 헌터들이 곧바로 적들을 몰아치기 시작했다. 상황은 더 할 나위 없이 유리했으나 적이 적인지라 쉽게 밀리지 않았다.
마제의 어둠을 직접적으로 받은 놈들을 생각보다 더 끈질겼다.
팔이 잘려도 어둠으로 지혈하며 남은 한 손으로 검을 휘둘렀다.
서서히 양측 모두 피해가 두드러지기 시작했다. 마법사의 광역 마법과 힐러들의 서포팅에 죽다 살아나길 반복했다.
당장 궁수가 도움을 준다면 전투를 더욱 유리하게 끌고 갈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당장 궁수는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저런 잔챙이가 아닌 더 큰 놈을 상대하기 위해 힘을 비축해야 했다.
다행히도 전장은 티아라의 성검과 법사의 초 광범위 마법으로 균형을 맞추고 있었다.
서서히 승기를 잡아가던 그 때.
콰아앙!
금이 간 성벽을 터트리며 다섯 명이 저벅 저벅 걸어 나왔다.
“나왔네.”
- 분신이군.
놈들에게 느껴지는 기운은 단순히 마제의 어둠이 아닌 마제 그 자체였다.
다섯 명을 마제가 동시에 조종하는 듯 눈을 마주치는 것만으로 전율이 돋았다.
“가자.”
“응 아빠.”
경직된 목소리에 광팔이가 굳게 고개를 끄덕였다. 광팔이와 함께 낙하하며 적을 죽이려던 찰나.
카카카캉!
어디선가 거슬리는 쇳소리가 귓가를 울렸다.
- 사슬이다!
“광팔아 네가 막아!”
“아빠는!?”
“난 저것들 막을게!”
빌어먹을.
계획이 틀어졌다. 저 다섯도 당장 상대하기 힘든 마당에 쇠사슬까지 납신다니.
그 수는 다섯 개. 광팔이라면 어떻게든 버틸 수 있을 것이다.
다소 터프하게 착지한 궁수가 적들을 노려보았다. 적들은 궁수가 올 줄 알았다는 듯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드디어 여기까지 왔구나, 대적자여.”
다섯 명이 동시에 똑같은 말을 하는 기이한 현상이었다.
기선제압을 하겠다는 듯 우스운 도발이었다. 이에 궁수는 행동으로 대답했다.
몰아치는 화살이 적들의 머리를 노리고 날아들었다. 하지만 이 기습이 적에게 닿는 일은 없었다.
땅을 박차고 궁수의 화살을 피해낸 놈들은 마음에 든다는 듯 다시 땅을 박차고 궁수에게 달려들었다.
“하하, 그래! 우리가 왈가왈부할 사이는 아니지!”
다섯 개의 분신이 어지럽게 궁수 주위를 맴돌며 호시탐탐 기회를 노렸다.
애석하게도 적들이 든 무기는 검과 전투 도끼, 워해머 같은 근접 전투류 무기였다.
그런데 수까지 다섯이라니, 궁수에게 있어 최악의 조합이었다.
카운터 격인 적들이었으나 궁수는 조금도 동요하지 않았다. 그저 잔잔하고 고요한 눈빛으로 전장을 아우를 뿐.
‘허허 좆됐네.’
[이 새끼 지금 ㅈ됐다고 한탄 중일 듯.]
ㄴ 궁익 만점ㄷㄷ
ㄴ 왜 왜 나한테만 그러냐고오, 시 시팔 새끼야아!
ㄴ 어, 어어어, 언제 마왕을 매수했냐아!
적들은 다섯인 만큼 그 어둠이 분산되었다. 전에 상대했던 1대 1과 비교했을 때 그 힘이 훨씬 떨어졌다.
개개인의 전투력은 전과 비교해 크게 떨어진다는 뜻이다.
다만 온 곳에서 날아드는 공격이 몹시도 예리하여 전력을 다해 피해야 했다.
찌르는 창이 궁수의 옆구리를 향해 날아들었다. 앞으로 몸을 젖힌 궁수가 등 뒤로 미끄러진 창을 꽉 잡았다.
그리고는 창을 잡고 곧바로 적까지 들어 올려 반대 편의 다른 놈에게 던져버렸다.
쾅!
끝까지 창을 놓지 않은 적은 표정 하나 변하지 않고 다시 그 자리에서 일어났다.
살아있는 것이 아닌 말 그대로 인형을 상대하는 느낌이었다.
“고통을 느끼지 못하는 건가.”
- 그러겠지.
“그럼 때려 부수면 되겠네.”
- 원초적인 방법이다만, 어쩔 수 없지.
기다릴 시간 따위 주지 않겠다는 듯 적들의 무기가 온 곳에서 궁수를 노리고 달려들었다.
단단하게 빗어진 다섯 개의 화살이 적들의 무기를 쳐내며 춤을 추었다.
수백 개의 화살이 아닌 오직 다섯 개의 화살에 집중하니 그 효율이 배는 뛰어났다.
이를 악문 궁수가 등 뒤로 날아드는 공격을 모두 받아내며 피식 웃었다.
“그새 늙었냐? 퇴물 새끼가 다됐네.”
“말만 잘하는군.”
대답을 하려는 듯 궁수의 입이 벌어졌다. 그러나 대답은 들려오지 않았다.
후방에 공격을 쳐내던 화살 중 한 개로 궁수의 위치가 바뀌었다.
창을 들고 있던 분신이 공격 대상이 사라지자 일순간 자세가 무너졌다.
궁수에게 있어선 최고의 기회였다. 손아귀에 2미터 길이의 기다란 화살이 들렸다.
부자연스럽게 자세를 회복한 분신이 궁수를 노리고 창을 휘둘렀으나 궁수는 화살로 창을 후려쳐 억지로 틈을 벌렸다.
푸욱!
손에 들린 창이 놈의 가슴팍에 꽂혔다.
분신은 고통도 느끼지 않는 듯 억지로 창을 뽑으려 했으나 궁수는 이를 놓치지 않고 창에 힘을 주어 놈을 하늘 위로 날려버렸다.
하늘을 올려다본 궁수가 왼손을 뻗고 주먹을 꽈악 쥐었다.
퍼엉!
화려한 주홍빛 폭염이 분신을 집어삼켰다. 터져 나온 강력한 물리력이 분신의 사지를 갈기갈기 찢어버렸다.
손을 털어낸 궁수는 피식 웃으며 마제에게 중지를 들어 올렸다.
“넌 말이라도 잘해보지 그러냐.”
“…흐음.”
마제가 노골적으로 심기가 불편한 기색을 내비췄으나 궁수는 눈 하나도 깜빡하지 않고 더욱 그를 도발했다.
“이딴 게 먹힐 거라고 생각해?”
말은 그랬으나 쏟아지는 공격은 하나같이 변칙적이어 막아내는 것이 쉽지 않았다.
근접 전투원 다섯 명과 궁수 단신의 전투는 몹시 팽팽하게 이어져 당장에라도 펑 터져버릴 것 같았다.
궁수는 마치 춤을 추는 것처럼 적들의 공격을 막아내며 여유로운 표정을 지었다.
다섯일 때는 불가능했지만 한 놈이 사라지니 비교적 여유가 남았다.
물론 평범한 헌터였다면 벌써 온몸에 구멍이 뚫렸을 것이다. 궁수이기에 가능한, 궁수다운 표정이었다.
카카캉!
자신 주변으로 화살을 모아 강하게 적들의 공격을 쳐낸 궁수가 툭툭 몸을 털었다. 그리고는 분신 중 한 놈에게 중지를 올리며 말했다.
“쫄?”
[무친 도발 ㅋㅋㅋㅋㅋㅋ]
[남자라면 이건 못 참지 ㅋㅋㅋㅋ]
[달려있다면 바로 달려들어야지.]
ㄴ 라임 봐라.
ㄴ 인형 놀이 하는 거에서 이미 탈락임.
ㄴ ㄹㅇㅋㅋ
궁수의 도발에도 마제는 하찮다는 듯 조소하며 대답했다.
“네 놈 따위가 감히 나를 감당할 수 있을 것 같으냐?”
극히 오만하고 깔보는 말투였으나 궁수는 발끈하지 않았다. 오히려 입꼬리가 찢어질라 미소 지으며 외쳤다.
“쫄?”
[진짜 가성비 개쩌네 ㅋㅋㅋ]
[ㅉ?]
[쫄리면 뒤지는 게 맞긴 해 ㅇㅇ;;]
[궁수좌 ‘쫄’ 한 마디로 정리.]
하지만 상대가 마제였기에 그런 시답잖은 도발은 통하지 않았다. 마제는 오히려 궁수가 귀여운 듯 피식 웃으며 전투를 이어나갔다.
카카캉!
무구들이 끈질기게 궁수의 뒤를 쫓아왔으나 맞추긴 커녕 궁수의 꽁무니조차 스치지 못했다.
멈춰있던 궁수의 광기가 돌아오며 전투의 열광에 몸이 달아올랐다.
콰앙!
땅을 즈려밟아 바람을 터트린 궁수가 적들을 향해 화살을 날렸다.
궁수의 인영이 즉시 사라지며 날아가는 적들의 복부에 주먹을 꽂아 넣었다. 단순히 ‘주먹’이 아닌 마력이 듬뿍 담긴 일격이었다.
어중간한 수준의 마물이라면 그것만으로 복부가 터져나갈 강력한 일격이었다.
네 번의 순간 이동과 네 번 날아간 주먹에 적들이 휘청거렸다.
고통을 느끼지 못하는 것이지 내부가 망가져도 움직이는 것은 아니다. 좀비도 다리를 자르면 빌빌 기는 것처럼 말이다.
어둠으로 궁수의 주먹을 상쇄한 놈들은 끼긱 끼긱 몸을 비틀며 다시 덤벼들었다.
그 모습이 몹시 이질적이었으나 오히려 위력은 전보다 더 높아졌다.
다만 그 속도가 형편없어 오죽하면 회피를 하는데 여유가 넘칠 지경이었다.
“느려.”
[아아 ‘느려’]
[지랄 났다 정말ㅋㅋㅋㅋㅋㅋㅋ]
[또 채팅 곱창나겠넼ㅋㅋㅋ]
[/고속모드.]
창을 피하고 파고든 궁수가 적의 목을 움켜쥐었다. 궁수의 손목에 핏줄이 올라오며 ‘우드득!’하고 섬뜩한 소리가 울렸다.
목이 완전히 부러진 적은 파르르 떨 뿐 그 자리에서 일어나진 못했다.
“어머 죽었네.”
궁수의 가장 강력한 힘 광기가 되살아나기 시작했다. 광소를 지으며 시체의 머리통을 잡고 적에게 던졌다.
자신의 분신임에도 놈은 아무런 부담 없이 몸을 베어버렸다.
“위험해!”
궁수가 던진 적의 몸에는 궁수의 화살이 잔뜩 박혀있었다. 궁수는 중지를 들어 올리며 적에게 외쳤다.
“내가!”
[ㅇㅇ 그래 보임.]
[나궁수 (아마도 인간)]
[이 새낀 헌터 아니었어도 위험할 놈임.]
ㄴ ㄹㅇ 길거리에서 마주치면 바로 눈 깔자너 ㅋㅋㅋㅋ
ㄴ 아 제가 땅 보고 걷는 걸 좋아해서 ㅋㅋㅋㅋ
ㄴ 땅보고 걷는 GIRL?
ㄴ 뭐라는 거야 미친 새끼가.
거대한 폭발이 적들을 집어삼켰다. 위력은 제법 강했으나 큰 피해는 입지 않았을 것이다.
당장에 두른 어둠이 누구 것인지 생각하면 멀쩡하고도 남았다.
“크허 이 집 샌드백 찰진 거 보소!”
궁수라기엔 눈이 따라가기 버거울 정도로 빠른 주먹의 향연이 이어졌다.
마제는 분신의 통제가 마음대로 되지 않는 듯 불편한 기색을 내비췄다.
“우리 공주님, 인형 놀이가 질리셨나?”
[이 새끼 스킬중에 도발 있음 ㄹㅇ임.]
[ㄹㅇ 수준급 도발이다.]
[이건 스님도 목탁 들고 달려들었음ㅋㅋㅋㅋ]
ㄴ 십자가로 처맞아도 인정임ㅋㅋㅋㅋ
ㄴ 아가리 매지션 나궁수 ㄷㄷㄷ
ㄴ 나궁수 / 직업 - 궁수/ 무기 - 주둥아리.
궁수는 그의 싸늘해진 태도에 신이 나서 더욱 미쳐 날뛰기 시작했다. 얼마나 신나는지 ‘크하하학!’ 웃으며 분쇄자를 휘둘렀다.
적의 마검과 궁수의 분쇄자가 격돌했다. 궁수의 근육이 터질 듯 부풀어 오르며 간단히 검을 후려쳤다.
콰앙!
“크하하하! 즐겁다! 재밌다! 신이 난다!”
[광전사 아닙니다, 궁수예요.]
ㄴ 광전사랑 그냥 미친놈은 구분해야죠;;
ㄴ 범지구적 미친놈이지.
ㄴ 지구에서 감당하기 힘들긴 해 ㅇㅇ;
ㄴ 화성 갈끄니까~
마검을 후려쳐 억지로 빈틈을 벌린 궁수가 분쇄자로 있는 힘껏 놈을 후려쳤다.
어둠에 쌓인 분신이 붕 떠오르며 하늘에 떠올랐다.
궁수의 손에 들린 아스트라가 밝게 빛났다. 적의 목숨을 거둬갈 사신이 궁수의 손아귀 위에서 이글거리고 있었다.
다급히 뒤에서 다른 분신이 궁수를 노리고 거대한 도끼를 휘둘렀다.
가볍게 발을 굴러 공중에 날아오른 궁수가 분신을 비웃으며 화살을 날렸다.
아스트라의 화려한 일격에 적의 어둠이 완전히 씻겨 나가며 파사삭 사그라들었다.
남은 적…. 샌드백은 둘, 궁수가 아쉬운 표정으로 입맛을 다셨다.
“이모 여기 리필 돼요?”
분신들의 폭발적인 경험치에 궁수의 눈이 빛났다. 분신의 마제의 힘을 효율적으로 사용하기 위해 만들어진 인형이다.
제작에 들어가는 재료가 범상치 않아서 그런지 나오는 경함치가 몹시 달콤했다.
자신의 분신을 고작 경험치로 밖에 보지 않는 궁수에 마제가 눈을 가늘게 떴다. 인정한다, 인정하지 않을 수가 없다.
도대체 그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궁수는 괴물이 되어 돌아왔다. 기존에도 상당했지만 감당하지 못할 수준은 아니었다.
그러나 지금은 그 차원이 달랐다.
무한에 가까운 마력과 조금도 지치지 않는 체력은 과연 저것이 인간이 맞는지 의문이 들 정도였다.
오랜만에 만나는 호적수.
‘그’가 권좌에서 일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