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근접병기 활-160화 (160/172)

◈ 160화. 문 열여 새꺄.

수수한 가죽옷에 손에 든 활과 화살.

“너 설마 궁수냐?”

궁수의 난입이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놈은 인상을 팍 구기며 대답했다.

“인사가 거친데.”

“동종업계끼리 뭘 그런 걸 따지냐?”

활을 쥔 다크엘프는 한숨을 푹 내쉬며 시위에 화살을 끼웠다. 그리고는 별다른 말도 없이 궁수를 향해 화살을 날렸다.

“허허 싹수없는 거 봐라.”

고개를 틀어 피한 궁수는 오히려 날아드는 화살을 잡아 놈에게 날려버렸다.

하지만 놈도 옆으로 한 바퀴 굴러 궁수의 화살을 피했다.

- 그래 저게 궁수지!

“뭐? 너 누구 보냐?”

- 크흠….

궁수는 투덜거리며 손에 활을 쥐었다.

다크엘프는 미리 들어 궁수에 대한 정보는 알고 있었으나, 활을 든 모습에 놈이 신기한 듯 궁수를 바라보았다.

“뭐, 활 든 궁수 처음 봐?”

“광전사같은 놈이 활을 드는 건 처음 보는군.”

명백히 궁수를 조롱하는 말이었지만 조금도 신경 쓰지 않았다. 궁수는 피식 웃으며 놈에게 중지를 올렸다.

“까고있네 활잽이 새끼가.”

그 말과 함께 기습적으로 궁수가 화살을 날렸다. 그도 곧바로 화살로부터 거리를 벌리며 궁수의 후방을 노렸다.

분명 빠른 속도였다. 평범한 헌터라면 곧바로 뒤를 내어주었을 정도로 눈 깜짝할 사이에 일어난 일이었다.

그러나 단순히 ‘빠르다’와 ‘순간이동’은 그 급이 달랐다.

살기를 느낀 궁수가 땅을 박차고 공중에서 한 바퀴 돌았다.

“놀아줄 시간 없다!”

궁수의 손에는 아스트로가 들려 있었다. 최근에 얻은 힘이기에 적도 평범한 활과 착각한 듯 가볍게 뜀걸음으로 거리를 벌렸다.

“어딜.”

뜀걸음이 아니라 아예 탑 밖으로 나갔어야지. 궁수의 손에서 섬광이 터져 나왔다.

마제조차도 두려워하는 그 힘은 일게 탑주에게는 재앙이었다.

거대한 섬광은 탑을 포함하여 탑주 그 자체를 죽여 버렸다.

콰아아앙!

“크흐으윽!”

거대한 탑이 붕괴하기 시작했다. 궁수는 파편들을 요리조리 피하며 화살을 날렸다.

어디로 화살이 날아가는지도 모른 채 일단 화살이 박힌 곳에 착지했다.

“후우…. 죽을 뻔….”

- 산 너머 산이로군.

다행히도 핵은 탑주 그 자체가 핵 역할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다른 동료들은 아직 늦어지고 있는지 결계는 풀리지 않았다.

궁수가 있는 곳은 적들의 성벽 앞, 그러나 미리 대기하던 적들이 궁수를 노리고 있었다.

멍청하게 적들이 공격할 수 있는 시간 따위 주지 않겠다는 듯 마제의 직속 기사단들이 궁수 주변을 완전히 통제했다.

“허허 좆됐네.”

느껴지는 기운도 심상치 않다. 마제의 어둠을 가장 근처에서 받는 놈들이라 그런지 방어력도 만만치 않아보였다.

드래곤 하트가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

채앵!

힘차게 내지른 티아라의 검이 마법사의 지팡이에 막혔다. 몸은 짜리몽땅하지만 그 힘은 결코 작지 않았다.

허공을 밟고 날아선 그녀의 검이 계속해서 몰아치며 적의 심장을 노렸다.

하지만 마법사는 그녀를 조롱하며 더욱 빠르게 몸을 놀렸다.

“느려 느려!”

“아오 진짜!”

처음에는 궁수나 다른 멤버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해 조심조심 싸웠다.

혹시나 소란을 일으켜 다음 전투에 피해를 줄까 두려웠기 때문이다.

물론 시작부터 탑을 때려 부순 그녀가 할 말은 아니지만.

파편을 밟고 돌진한 그녀가 한 바퀴 회전하여 검을 휘둘렀다.

카앙!

“학습 능력이 없나?”

이번에도 그녀의 검은 무색하게 막혔다. 그러나 지금 노린 것은 달랐다.

검에 머금은 황금빛 마력이 터지더니 그 충격파로 놈이 멀찍이 날아가 벽에 처박혔다.

콰앙!

조급하게 추격하지 않았다. 그녀는 숨을 고르고는 왼발을 앞으로 한걸음 내디뎠다.

양손으로 검을 쥐고 서서히 들어올렸다.

찬란히 빛나는 금빛 마력이 검에 모여들었다. 단숨에 죽이지 못하면 또 의미 없는 소모전만이 이어질 뿐이다.

“흐아아아!”

티아라의 힘찬 외침과 함께 검이 그어졌다. 적은 물론이요 탑까지 날려버리고자 날린 일격이었다.

“허억 허억….”

몸 곳곳에 생겨난 멍과 상처에 그녀가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툭 투툭.

돌조각이 떨어지고 먼지가 가라앉으며 적이 모습을 드러내었다. 가슴팍에 깊은 상처를 입고 피를 질질 흘리고 있었다.

“크흐으으윽….”

그 비명을 끝으로 무릎이 꿇리며 쓰러졌다. 방금 전까지 날뛰던 육체는 차갑게 식어 끝을 고했다.

“이, 이겼다….”

털썩!

티아라도 무리해서 전투한 나머지 쓰러지며 옅은 잠에 빠졌다.

***

“느헤헤헤헤헿!”

“우오오오오오!”

다른 탑에서는 법사와 근육몬의 싸움이 한창이었다. 법사가 해맑게 웃으며 쿼드러플 캐스팅에 들어갔다.

더블도 힘든데 쿼드러플 캐스팅을 아무렇지 않게 시전 했다.

만들어진 네 가지 속성의 창이 적이 목을 물어뜯고자 날뛰었다.

심지어 마법진의 위치도 적의 발아래나 등 뒤여서 여간 까다로웠다.

“인간 중에 이런 수준의 마법사가 있었다니!”

근육몬은 경악하며 법사의 공격 마법을 요리조리 피했다. 몇 번인가 스친 공격도 있었지만 다행히도 작은 생채기를 만드는 것에서 끝났다.

“맞아! 죽어 죽어!”

“드디어 수준에 맞는 마법사를 찾았는데 내가 왜!”

어울리지 않게 순백의 지팡이를 든 그는 초고속 영창과 함께 법사를 공격해왔다.

그러나 법사는 가소롭다는 듯 모든 공격을 파훼하며 오히려 재해석하여 자신에게 반격을 해왔다.

“이것도 피해 보시지!”

“느헿?”

거대한 화염구가 법사를 노리고 날아들었다. 다른 이도 아니고 법사의 신체 능력이라면 피하기가 불가능한 공격이었다.

하지만 법사는 손끝에 바람을 모아 이를 가볍게 베어버렸다.

그리고는 툭툭 옷을 털어내며 근육몬을 가리키며 외쳤다.

“좆밥!”

좆밥이니 좆밥이라 한 것뿐인데 그는 마음에 들지 않는 듯 울그락불그락 얼굴을 붉혔다.

“그래… 어디 한번 이것도 받아봐라.”

전까지 에피타이져였다면 이번에는 메인이다. 절대 봐주지 않겠다는 듯 서서히 하늘로 올라간 그가 칠흑의 마법진을 만들었다.

그 안에서 거대한 박쥐들이 찍찍 소리를 내며 빠져나오기 시작했다.

한두 마리도 아니고 수천마리의 박쥐들이 하늘을 가득 채웠다.

새까만 어둠이 법사를 급습하기 위해 날아들었다. 그러나 법사는 오히려 눈을 빛냈다. 법사가 좋아하는 것은 쾅쾅과 펑펑이다.

그것은 대상이 많으면 많을수록 좋았다. 다시 말해서 지금 이 상황은.

“호아아아아!”

법사에게 있어 차려진 만찬이나 다름없었다.

그런 법사를 바라본 근육몬은 드디어 법사가 미쳐버렸다고 생각했는지 피식 조소를 띄웠다.

그러나 그가 잘 모르는 것이 있다.

화아아악!

빔처럼 쏘아진 신성력에 박쥐들이 일제히 재가 되어 사라졌다.

“느헿!”

법사는 원래부터 미친놈이다. 터트리기 좋은 건물과 수많은 마물을 사랑하는 미친놈이다.

법사의 손에는 언제 꺼냈는지 모를 지팡이가 들려 있었다.

마법사에게 지팡이란 목숨과 같아서 그 유무의 차이가 몹시 거대하다.

화력 면에선 총알과 폭탄 수준의 차이가 났다.

그러나 맨손으로도 핵폭탄급 위력을 내는 법사가 지팡이를 들었다. 이는 곧 적에게 있어 재앙이 강림했음을 뜻했다.

“더! 더더!”

법사는 오히려 통통 튀며 박쥐를 더 달라고 아우성쳤다. 새까만 놈들을 일제히 쓸어버리는 쾌감이 생각보다 더 컸다.

땅에 기어 다니는 마물과는 또 다른 매력이 있었다.

그런 법사의 행동을 도발이라 생각했는지 근육몬의 머리에 힘줄이 빡 나타났다.

“감히! 감히 날 우롱해!”

“더 줘! 더 줘!”

법사의 금발이 찰랑거렸다. 긴 로브에 스태프를 쓴 청안 금발의 미소년이 전장을 뒤집었다.

“오냐 이것도 받아봐라!”

그는 적잖게 분노한 듯 마력을 듬뿍 담아 마법진을 일으켰다.

스파크가 튈 정도로 강렬한 마력이었다. 법사는 또 어떤 재밌는 적이 나올까 기대했다.

정확히는 어떤 ‘표적’이 나올까 기대했다.

“나와라아아!”

마법진이 일렁이더니 그 안에서 거대한 박쥐가 모습을 드러내었다.

이빨 한 개가 성인만한 크기의 놈은 듣기 싫은 소리를 내며 법사를 압박했다.

법사의 표정이 확 구겨졌다.

“하! 이제 못 이기겠지?”

법사가 지팡이를 척 들었다. 놈은 지금까지 나타났던 모든 박쥐들을 합쳐도 그 크기가 훨씬 거대했다.

하지만 법사에게 그런 것은 중요치 않았다.

박쥐가 자신을 공격하기 직전 법사가 불만족스러운 듯 입술을 쭉 내밀고 물었다.

“끝? 한 마리? 더 없떠?”

도발이 아닌 순수한 실망이었다. 차라리 이럴 거면 방금 전 같은 놈들로 1000마리를 주는 것이 훨씬 재미있다.

고작 한 마리를 누구 코에 붙이란 말인가.

그런 법사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적은 고성을 외치며 법사에게 달려들었다.

핏!

먼저 날개의 연결부에 두 선이 그어졌다.

“응?”

피피피피핏!

추가로 이어진 수십 번의 참격.

다름 아닌 나법사의 작품이었다. 바람에 신성력을 섞어 한계까지 압축한다.

당장에라도 터져버릴 듯한 이 힘을 아주 옅은 막으로 배출하여 강력한 신성 칼날을 발사했다.

보고도 피할 수 없는 강력한 마법에 박쥐의 몸이 산산조각 나 사라졌다.

법사는 더 보여줄 것은 없냐는 듯 왼 발로 땅을 툭툭치며 팔을 꼬았다.

“그, 그럼 이번에는 이것도…”

“재미없어.”

“어?”

재미없어라는 말이 그렇게도 소름 돋을 수 있는지 근육몬은 처음 깨달았다.

것도 그럴 것이 시야를 가득 채운 나법사의 마법진은 감히 피하려야 피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마법진 여러 개가 아닌 단 한 개. 다만 그 크기가 자신이 소환했던 박쥐보다 거대했다.

궁수는 흥미를 잃음 표정으로 지팡이를 들어올렸다.

스스스스스….

신성력을 직통으로 맞은 그는 외마디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한줌의 재가 되어 사라지고 말았다.

“노잼 노잼! 우씨!”

법사는 마음에 들지 않는 듯 괜히 땅바닥의 돌을 발로 차며 다른 탑으로 발길을 옮겼다.

***

셈은 상황이 조금 특별했다. 탑주와 직접적인 전투가 아닌 끊임없이 모여드는 좀비들과 싸우고 있었다.

“다, 당신은 힐러 아닌가요?”

“아하핳! 그렇게 불리던 시절도 있었지!”

지금도 힐러다. 다만 혼자 남아도 죽지 않고 일대 다수가 가능한 격투기형 힐러.

애초에 파티에서 힐러를 버리고 간다는 발상 자체가 말이 안된다.

하지만 그 힐러가 나만힐이라면 말이 다르다.

주먹에 신성력을 모으고 스탭을 밟는 그는 이미 평범한 힐러와는 작별인사를 나눈지 오래였다.

권갑이 나만힐의 신성력을 받아 밝게 빛났다.

좌우 좌우 거침없이 뎀프시롤을 밟으며 더욱 그 속도를 높였다. 주먹에는 거침이 없으며 주먹을 받아낼 적 또한 없었다.

다른 헌터에게는 베기 힘든 질긴 좀비였지만 그에게는 간단히 터트릴 수 있는 풍선에 지나지 않았다.

인벤토리에 포션도 아니고 권갑을 가지고 다니는 힐러가 세상 어디에 있단 말인가.

남은 적들을 모두 정리하고 나만힐은 신관 앞에 섰다.

그의 근육이 땀에 젖어 아름답게 빛났다. 신관은 벌벌 떨며 힐에게 자비를 구했다.

“살려주세요!”

마족인 만큼 기본적인 전투 자체는 자신이 있지만 상대가 나빴다. 고작 ‘기본적인’ 전투로는 어림도 없었다.

힐은 비굴한 그 태도에 피식 웃으며 말했다.

“까잡숴.”

퍼엉!

신관의 머리통이 날아갔다. 아주 화려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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