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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접병기 활-159화 (159/172)

◈ 159화. 공략 on

지구의 상황은 너무나도 평화로웠다.

혹시 몰라 항상 게이트의 등장을 예의주시했으나 지구는 평온하기 그지없었다.

나타난 마왕들을 모두 죽이고 파도까지 막아낸 그들은 승리에 취하지 않았다. 아직 근본적인 적은 살아있다.

그저 궁수가 무사히 계획에 성공하길 빌며 묵묵히 다음 ‘계획’의 준비를 할 뿐이었다.

***

“이놈이 마지막이네.”

전쟁보다는 일방적인 학살에 가까웠다. 하지만 시체는 그리 많이 없었다.

대부분이 광팔이의 배속에 들어가 운명을 함께했기 때문이다.

마왕을 깡그리 죽여 모든 마왕성을 발아래 두었다. 남은 적은 ‘놈’ 한명. 마른 입술을 핥으며 궁수가 고개를 돌렸다.

어둠 아래에 지배되는 성이 섬뜩한 기운을 흘리며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었다.

절로 침을 꼴깍 삼킨 궁수가 성큼 그곳을 향해 발을 내딛었다.

“할 수 있겠어?”

“우리가 못하면 누가 해.”

“그건 그렇지만….”

티아라조차도 걱정스러운 듯 어둠을 바라보았다.

늘 자신감에 차있던 그녀도 입술을 깨물었다. 긴장은 했을지언정 불안 따윈 없다.

***

“군주시여, 준비가 된 모양입니다.”

[내 선물은 잘 받았나보군.]

마왕들 따위 전력이라고 생각조차 안했다.

호시탐탐 왕위를 노리는 주제에 힘은 턱없이 부족한 놈들, 그것이 마왕에 대한 평가였다.

언제 자신의 목에 칼을 들이 밀어줄지 기대했건만, 저 놈들은 반역조차 생각하지 못했다.

힘이 모든 걸 지배하는 마계에서 말이다.

그러나 그것은 곧 그 호전적인 마족들조차 그의 힘 앞에서는 한수 접는다는 뜻이다.

종족의 특성조차 고쳐버리는 그의 힘은 너무나도 강대했다.

몇 세기가 지나도록 위협조차 느껴본 적이 없을 지경이니.

그런 상황에서 등장한 궁수는 그에게 있어 매우 먹음직스러운 장난감이었다.

오죽하면 ‘대적자’라고 불리우며 지금도 자신의 목을 조여 오고 있다.

쓰레기 같긴 해도 그 수가 제법 되었기 때문에 다소 피해는 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어떻게 다시 태어났는지는 몰라도 지난 전투에서 입힌 피해도 상당했고 말이다.

그러나 놈은 오히려 배는 강해져서 돌아왔다.

생사를 넘으며 도대체 무슨 경험을 했는지는 몰라도 전과 비교조차 할 수 없는 압도적은 힘을 손에 쥐었다.

적이 강해졌음에도 마제는 더욱 기뻐했다.

자신의 장난감이 더욱 단단해졌으니 말이다. 분신을 썼을 때야 비등비등할지 몰라도 본체는 다르다.

‘마음 같아서는 직접 출격하고 싶다만.’

당장에 마계를 지탱하는 그가 왕좌를 비운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몰랐다.

아직 남아있는 분신의 수도 많다.

그 뒤로 자신의 직속 병사들 또한 차고 넘쳤다. 모자란 마왕군이 아닌 마제가 직접 선별한 군사들이다.

오직 마제의 명에 복종하며 적을 죽이는 사냥개들이었다.

[기대되는군.]

그의 드넓은 성 앞에, 차곡차곡 병력이 쌓이기 시작했다. 아무리 적이 날고 긴다 하더라도 숫자부터 다르다.

머저리만 몇 만 있는 것이 아닌 자신이 ‘직접’ 키운 엘리트중의 엘리트들이 20만이다.

그는 승리를 의심치 않았다. 오히려 드디어 이 엘리트들을 전장에 보낼 수 있다는 것에 환호했다.

훈련만을 반복하며 지친 이들에게 혈의 향연을 펼쳐줄 때가 된 것이다.

“군주시여, 놈들이 거의 도달했습니다.”

[그래, 어디 얼마나 성장했나 보지.]

***

마계 중심부에 도달한 궁수의 표정은 이전 마왕을 상대할 때와는 판이하게 달랐다.

웃음기는 사라지고 차분한 표정이 궁수의 안면에 자리 잡았다.

목숨을 걸어서라도 처리해야하는 일이다. 실제로 목숨을 잃을지도 모른다.

죽기 직전까지 싸우는 것, 그것이 궁수가 해야 할 일이었다.

여태까지 해 왔던 일이기도 하고.

거대한 마제의 성을 중심으로 하여 주변에 다섯 개의 탑이 솟아나 있었다.

천궁의 말로는 탑에 있는 다섯 개의 핵을 부숴야만 결계를 해제할 수 있다고 한다.

다른 이도 아니고 마제가 직접 고민하여 만든 결계이니 어지간한 공격으로는 흠집조차 나지 않을 것이다.

“궁수야 바로 할까?”

“아니, 아직은 아니야.”

저 탑을 공략하는 것도 쉽지 않을 것이다. 원래라면 탑을 무너트리겠지만 지금은 그것도 불가능하다.

다시 말해서 하나하나 뚫고 들어가야 한다는 것이다.

적들의 바람대로 움직여줘야 한다는 사실이 궁수는 끔찍이도 싫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적이 적이니 만큼 최소한의 예의를 갖춘다고 생각하며 가장 가까운 탑에 은밀하게 잠입했다.

기척을 지우고 어둠에 스며드니 다행히도 적은 쉽게 눈치채지 못했다.

‘더럽게 크네.’

탑은 궁수의 생각보다 훨씬 거대했다. 거의 한 개 한 개가 서울의 63빌딩을 떠올랐다.

핏!

은밀히 날아간 궁수의 화살이 탑의 문에 꽂혔다.

갑작스럽게 날아온 화살에 문지기들이 반응하기도 전에 궁수가 놈의 목을 꺾어주었다.

우드득!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죽은 놈들을 바라보며 궁수는 한 번 더 머리통에 화살을 처박았다. 확인사살은 필수.

여기서 들켰다간 일을 모두 그르칠 수 있다.

문지기의 시체를 치운 궁수가 동료들에게 괜찮다는 사인을 보냈다.

인간으로 폴리모프한 광팔이를 필두로 동료들이 조심스럽게 다가왔다.

‘핵은 어디에 있어?’

- 꼭대기에 있다.

‘젠장, 결국 다 죽여야 한다는 거네.’

그것도 소리 없이. 몹시 어려운 일이었으나 불가능한 일도 아니었다.

궁수의 뒤로 얇은 화살 다섯 개가 모습을 드러내었다.

신성력을 머금고 화살촉에는 꿰뚫는 바람이 몰아치고 있었다. 관통 한 번에 적을 죽이겠다는 소리였다.

쐐애액! 푹!

소리 없이 날아간 화살이 마족 셋의 목을 일제히 관통했다. 피거품이 올라오며 놈들의 입이 턱 막혔다.

그리고는 선회하는 화살이 놈들의 심장을 꿰뚫었다.

시체, 이제는 전리품이 되어버린 적들을 인벤토리에 넣으며 궁수가 조용히 탑을 올랐다.

티아라나 법사가 뭘 하기도 전에 궁수가 휙휙 위치를 바꿔가며 적들을 암살해버리니 뭘 할 필요가 없었다.

궁수에 근접 딜러에 이제는 암살까지 한다. 점점 탑이 텅 비는 것이 느껴졌다.

드문드문 들리던 마족들의 대화조차 없다.

슈육 날아가 푸욱 찌른다.

그리고는 털썩.

그것이 전부였다.

탑을 오르며 최상층에 도착하자 오래된 철문이 나타났다. 두께도 제법 되는 것이 소리 없이 들어가긴 힘들어 보였다.

“어떻게 할까?”

“문만 터트리고 들어가서 죽이는 게?”

“흐음, 제법 소리가 날 것 같단 말이야.”

“아빠, 내가 할게.”

화르륵!

광팔이의 손 위로 순백의 불꽃이 나타났다. 닿는 것만으로 굳게 닫힌 문의 손잡이가 녹아버렸다.

끼이이익.

어렵지 않게 문을 열며 내부로 들어감과 동시에 노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마치 올 것을 미리 알고 있었다는 듯 여유가 넘쳤다.

“홀홀홀…. 내 생전 대적자를 보게 되다니.”

외관은 노인일지언정 그에게 흘러나오는 마력은 결코 약하지 않았다.

마력을 완전히 차단할 수도 있었으나, 그러지 않았다.

키는 고작 120은 되려나. 자그마한 크기의 몸에 손에는 오래된 나무 스태프를 쥔 놈이었다.

수염이 자글자글하여 얼핏 드워프처럼 보이기도 했다.

“핵은 어디있지?”

“젊어서 그런지 성격도 급해.”

궁수가 함부로 덤벼들지 않도록 먼저 제한을 둔 것이다.

하지만 고작 그런 것에 궁수가 발목을 잡힐 정도로 바보는 아니었다.

화살을 날렸으나 그는 오히려 스태프를 휘둘러 화살을 꺾어버렸다. 감히 궁수가 텔레포트 할 수 없도록 말이다.

이를 바라본 궁수는 얼굴을 구기며 말했다.

“놈도 알고 있나?”

“글쎄다, 그분께서 모르는 게 있을 것 같으냐?”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는 건가.’

그렇다면 이렇게 조용하게 일을 벌일 필요도 없다.

마력을 터트리며 돌진한 궁수의 주먹과 노인의 지팡이가 격돌했다.

지팡이를 들었으나 그는 마법사가 아니었다. 오히려 혈기를 둘러 격투술을 보여주고 있었다.

“뭐야, 격투가야?”

“마법사다만?”

“이게 어딜 봐서?”

“자네가 할 말은 아닌 것 같군.”

마법사다. 다만 스킬들을 모두 신체 강화에 몰빵 했을 뿐인 마법사.

‘최대한 빠르게 제압해야 한다.’

놈이 알고 있는 이상 이렇게 노닥거릴 시간이 없었다.

궁수가 본격적으로 전투의 시작을 알리려던 찰나, 티아라가 그 앞을 막아섰다.

그녀 또한 상황을 눈치챘는지 표정이 썩 좋진 않았다.

“이럴 시간 없어, 내가 상대할 테니까 먼저 가.”

“뭐?”

“핵도 내가 부술 테니까 빨리 가라고!”

다른 이도 아니고 티아라다. 그녀 정도의 실력이라면 믿을 수 있을 것이다.

물론 머리로는 그것을 이해하고 있었지만 궁수는 쉽사리 발길을 때지 못했다.

“가!”

그 말과 동시에 그녀의 검이 땅에 꽂혔다. 티아라의 전매특허, 거대한 성검이 탑에 낙하했다.

콰아앙!

“어이쿠! 남의 집을 이렇게 함부로 부수면 어떡하나!”

“어차피 지옥으로 이사할 건데 뭐!”

“허허 고년 말하는 것하고는!”

전투는 비등해 보였다. 황금빛 마력이 기승을 부리며 조금은 그녀가 우위를 점하는 듯했다.

거기까지 확인하고 나서야 궁수는 다음 탑으로 이동했다.

“법사야 바로 안에 쓸어버려!”

어차피 들킨 이상 조용히 갈 필요가 없다. 법사의 손에는 아름답게 빗어진 신성의 창이 들려 있었다.

파지직 전기가 흐르는 것이 일렉트릭 스피어에 신성력을 섞은 듯했다.

전류가 매개체가 되어 연쇄적으로 피해를 만들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한 법사는 해맑은 웃음과 함께 창을 내던졌다.

카가가각!

“쯧.”

강렬한 법사의 마법을 점지했는지 이번에는 먼저 탑의 주인이 바깥으로 나와 법사의 공격을 막았다.

마법 장벽을 펼친 그는 우락부락한 근육을 자랑하는 대머리였다.

피부가 보라색인 것이 적어도 인간은 아니었다.

“저거 설마 마법사는….”

“하! 마제 직속 수석 마법사인 이 몸이 상대해주마!”

“시팔 마법만 쓴다고 마법사 아니라고!”

잠시 힐이 니가 할 말이냐는 듯 어이없는 표정을 궁수를 흘겨보았다.

이전에는 티아라를 버렸…이 아니고 믿고 맡겼다.

법사도 자신이 있는지 맡겨 주라는 듯 궁수에게 고개를 끄덕였다.

“믿는다!”

“느헤헤헤헿!”

다음은 누구를 버릴…이 아니라, 믿고 맡길지 고민하며 궁수가 다음 탑으로 질주했다.

이번에는 탑 전체가 초록빛을 띄고 있었다.

은은하게 빛나고 있어 외관은 아름다웠으나 그 기척은 몹시 거슬렸다. 더 이상 참을 필요도 없다.

궁수의 손아귀를 떠나간 화살이 탑과 격돌하여 거대한 폭발을 일으켰다.

“어!? 어어어!? 안돼!”

“돼!”

안에서는 힐러로 보이는 마신관이 스태프를 들고 주문을 외우고 있었다.

그녀 자체는 별것 없어보였으나 그 앞에 언데드 상태로 부활한 적들의 수가 제법 되었다.

궁수는 이번에는 먼저 힐에게 소리쳤다.

“가라 힐! 너로 정했다!”

“응?! 난 힐런데?”

“개소리 말고 가서 싸워요!”

“젠장!”

불평하면서도 힐은 양손에 권갑을 차고 적을 향해 날아들었다.

콰아아앙!

제법 화려한 시작을 끊었는지 탑 내부에서 엄청난 흙먼지가 일어났다.

“아빠 나는?”

마침 남은 탑은 두 개.

그것이 뜻하는 바를 예측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광팔이를 탑에 보내고 남은 탑 한 개를 향해 돌진했다.

화살을 밟고 질주한 궁수의 속도는 훨씬 빨랐다.

“흐으으읍!”

신성력을 가득 머금은 궁수의 주먹이 다짜고짜 탑의 최심부를 후려쳤다.

콰아아앙!

단숨에 벽돌이 무너지며 그 안에 존재하던 탑주의 모습이 드러났다.

“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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