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7화. 두 개의 심장(이었던 것)
“나궁수!”
“아빠아아!”
피를 쏟아내며 떨어지던 궁수를 잽싸게 광팔이가 받았다.
곧바로 셈이 달려와 나궁수에게 치유 마법을 걸었으나 찢겨진 심장을 다시 생성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포션! 포션 있는대로 때려 부어!”
“안돼! 일단 데리고 나가야 해!”
“나가는 도중에 죽는다고!”
“포션만 뿌린다고 심장이 생길 리 없잖아!”
궁수의 의식이 흐려졌다. 귀를 찌르듯 따가운 목소리들이 점차 몽롱하게 바뀌어갔다.
‘아직 죽을 순….’
살고자하는 의지는 강했으나 의지만으로 죽음을 거스를 수 있을 리 없었다.
손가락 하나도 까딱할 수 없었다. 당장에 궁수의 안색이 뜨며 창백해지기 시작했다.
“일어나! 나궁수 일어나라고! 씨발 야!”
“구…궁수? 궁수…? 궁수? 궁수…!”
법사가 그럴 리 없다는 듯 식어가는 궁수의 양 뺨을 쥐었다. 고개를 흔들어봐도 뺨을 때려도 궁수는 일어날 수 없었다.
“궁수! 궁수…! 궁수! 아…아아아아악!”
감정이 서투른 법사마저 절망에 소리를 질렀다.
힐이 미친 듯이 치유 마법을 쓰고 있었으나 잠시 죽음을 늦출 뿐 큰 효과는 없었다.
모두가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궁수를 바라보자, 결심한 듯 침을 꿀꺽 삼킨 광팔이가 다가왔다.
인간의 모습으로 폴리모프를 하고 궁수 옆에 무릎을 꿇었다.
“힐 아저씨.”
“왜!”
“비켜요.”
딱딱한 말투와 함께 굳은 표정의 광팔이가 궁수의 옆에 쪼그려 앉았다.
“후우….”
“뭘 하려고?”
광팔이는 한 손은 궁수의 가슴팍에 다른 한손은 자신의 가슴에 가져다 대었다.
성룡인 자신이 가지고 있는 드래곤 하트는 두 개.
다시 말해서 심장이 두 개란 뜻이었다. 고룡이 되면 그 개수는 더 늘어나지만 이제 막 성룡이 된 광팔이는 두 개가 전부였다.
마력이 광팔이의 가슴팍을 타고 들어가며 붉은 심장이 스르륵 모습을 드러내었다.
억만금을 주고도 구할 수 없는 전설의 보물인 드래곤 하트.
광팔이는 부모인 궁수를 살리기 위해 1분도 고민하지 않고 자신의 심장을 꺼냈다.
드래곤으로서 힘이 절반으로 줄어든다는 것은 결코 쉬이 생각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강대한 드래곤이 반푼어치 드래곤이 된다는 것.
그것은 곧 강자의 세계에서 도태된다는 것을 의미했다. 그럼에도 광팔이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었다.
“인간한테 드래곤 하트라니!”
“아빠라면 괜찮아.”
물론 ‘평범한’ 인간이라면 불가능할 것이다. 하지만 궁수라면 인간 중 최고 존엄급 개또라이기 때문에 충분히 가능성이 있다.
아니, 설사 실패하더라도 시도는 해야한다.
이대로 영웅을 죽게 둘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눈을 감고 집중한 광팔이가 궁수의 수술에 들어갔다.
먼저 어둠에 문드러져 썩은 부분을 완전히 도려내었다.
그 위로 광팔이의 붉은 심장이 서서히 내려오기 시작한다. 동맥과 같은 복잡한 부분을 모두 마력으로 이어 하트에 연결시켰다.
마력을 여과시키는 것은 할 수 없다.
당장에 심장을 넣는것만 해도 상당히 버거운 작업이기 때문에 마력을 여과하는 배려는 할 수 없었다.
당장에 마력이 역류하여 전신이 폭발하여도 이상하지 않을 상황이었다.
그러나 이를 악문 드래곤의 마력 컨트롤 능력이란 그리 간단한 것이 아니었다.
“광팔아….”
“건들지 마!”
진땀을 흘리는 광팔이가 온 신경을 집중하여 궁수의 전신을 살폈다.
좁디좁은 인간의 마력 회로 자체를 뜯어 고쳐야하는 작업이기에 결코 쉽지 않았다.
강제로 회로를 넓혀 마력이 역류하지 않도록 유지하며 겨우겨우 심장 봉합을 완료했다.
그리고 그 위로 힐의 치유 마법이 더해지자 다행히도 궁수의 상처 위로 새 살이 돋아났다.
하아.
“어?!”
“수, 숨쉰다! 숨 쉬는 거 맞지!?”
“맞아! 살았어! 살아났다고!”
분명 죽었다고 생각했는데, 둔해진 궁수의 감각이 점차 되돌아오기 시작했다.
심장에서는 따뜻하고 기분좋은 고동이 울리고 있었다.
“…허어.”
전신이 너무나도 개운했다. 한숨 푹 자고 일어난 것처럼, 아니 그것보다 배는 더 상태가 좋았다.
전투에서 생사를 왔다갔다 했는데 이런 상태라니, 가뿐하게 자리에서 일어난 궁수가 주변을 둘러보았다.
눈물 콧물을 질질 흘리는 궁수와 눈 주변이 붉어진 티아라와 힐이 자신을 바라보았다.
광팔이는 자신의 가슴에 머리를 대고 잠들었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이지?”
“정신이 들어? 나 누군지 알겠지!?”
“알아, 그래서 뭔 일인데.”
궁수가 궁금함에 동료들에게 물었으나 그들은 광팔이에게 들으라며 대답을 회피했다.
당장 동료들이 지쳤기에 당장은 휴식을 취했다.
단순히 한, 두 시간 쉬는 것이 아닌 하룻밤 취침을 하였다.
지금까지 쉬지 않고 달려왔으니, 이제는 다시 에너지를 보충해야한다.
“내가 불침번 할게요. 쉬어요.”
당장에 수면을 취하려고 해도 워낙에 힘이 넘쳐나다 보니 휴식이 필요치 않았다.
오히려 마계에 들어오기 전보다 기운이 넘치는 듯했다.
“분명 심장이 뚫렸었지….”
천궁을 등에 대고 조용히 당시 상황을 떠올렸다.
당장에 주마등까지 보고 온 주제에 이승을 운운하는 것이 웃긴 일이었다.
자신이 심장을 찢긴 것은 분명 있었던 일이다. 그럼 가슴에서 느껴지는 이 고동은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설마….”
- 눈치 채는게 느리군.
“죽다 살아난 놈한테 할 말이냐?”
- 좋은 아들을 뒀더군, 자신의 심장을 선뜻 내어주고 말이야.
천궁에게 설명을 들어 궁수도 알고 있다.
드래곤은 두 개의 심장을 가진다는 것을. 다만 그 심장이 얼마나 중요한 일을 하는지 알고 있기에 궁수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최고 전력인 광팔이가 반푼어치 드래곤이 되어버렸다.
- 그래서, 버릴거냐?
“내가 미쳤냐?”
자신에게 목숨 절반을 내어준 드래곤이다. 당장에 자신이 죽는 한이 있어도 광팔이는 지킬 것이다.
그것이 최소한의 궁수가 할 수 있는 보답이라고 생각했다.
- 그래서 지금부터 어떻게 할 거냐.
“뭐가?”
- 손님이 왔잖느냐.
“응? 아아 괜찮아.”
냄새를 맡았는지 궁수의 앞으로 마족들이 모습을 드러내었다. 어둠 장막을 내리며 궁수를 노려보았다.
수는 약 1000마리 정도.
처음 느껴보는 압도적인 출력과 함께 궁수의 마력이 날뛰기 시작했다. 일반 엔진에서 F1엔진으로 바꾸어 단 기분이었다.
그야 말로 배는 차이나는 압도적인 출력에 궁수의 입가에 호선이 그어졌다.
“내가 지키면 그만이지.”
조용히 모여든 화살들이 하나 둘 그 개수를 늘려나갔다.
100개도 버겁게 통제하던 궁수는 이제는 코웃음치며 수백의 화살을 늘렸다.
키에에에엑!
푸푸푸푹!
마족이 함성을 외침과 동시에 궁수의 화살 수십 개가 일제히 놈의 머리통에 꽂히며 터졌다.
궁수는 씨익 웃으며 검지로 입술을 두드렸다.
“쉿, 얘들 잔다.”
화살 수백개가 만들어낸 신성 토네이도가 적들을 쓸어 담기 시작했다.
손짓 몇 번에 적들의 사지가 찢겨져 나가는 광경은 환상적이었다.
더욱 대단한 점은 마력이 조금도 부족하지 않다는 점이다. 드래곤 하트가 흡수하는 마력의 양은 무한에 가까웠다.
수십개의 대단위 마법도 아니고 고작 화살 좀 다룬다고 마력이 부족하기에는 그 품질이 너무나도 훌륭했다.
과연 평범한 인간이 다룰 수 있을까 조금 걱정했으나, 궁수는 오히려 보란 듯이 적들을 학살하며 자신이 얼마나 심장에 적합한지 보여주었다.
적들의 비명조차 들리지 않고 조용한 학살이 진행되었다.
신성은 더욱 포악하게 적들을 물어뜯으며 선을 행했다.
적에게는 절망을 아군에게는 희망을 배푸는 이중적인 태도에 궁수가 미소지었다.
마물 1000마리를 학살하는데 걸린 시간은 고작 40분. 이마저도 소음을 내지 않기 위해 조심스럽게 사냥하느라 걸린 시간이다.
앞, 뒤 보지 않고 날뛴다면 훨씬 시간이 경감되었을 것이다.
- 큰놈 온다.
“죽이면 돼.”
방금 전은 전초전이었는지 이번에는 더욱 기세등등하게 살기를 피우며 궁수가 앞으로 나아갔다.
적은 그 크기가 100미터가 넘는 거인이다.
진흙으로 만들어졌으나 그 파괴력은 결코 무시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물론 적은 강력했지만 애석하게도 궁수는 골렘을 상대하는 것에 이견이 났다.
먼저 트루 스나이핑을 활성화하여 핵의 위치를 특정했다. 놈의 몸에 깃든 핵은 다섯 개.
“다섯 발이면 되겠네.”
이번에 궁수가 손에 든 것은 아스트로, 유서 깊은 파마의 활은 궁수의 기대를 배신하지 않았다.
오히려 더욱 양질의 마력을 제공받아 윤기가 흐를 지경이었다.
화살을 걸고 시위를 당긴다. 혹시나 핵이 이동하나 잠시 노려보았으나 핵은 그 자리에 고정되어 움직이지 않았다.
“자 일단 한 ㅂ….”
삐이이이-
“어?”
뭐여 내 시야 돌려줘요.
온 세상이 순백으로 물들었다. 이것이 진정한 자신의 힘이라는 듯 아스트로가 빛났다.
태양이 뜬 것처럼 섬광을 터트린 아스트로는 거인을 집어삼켰다.
화살 한 발에 발을 제외한 거인의 모든 것이 날아갔다. 다섯 발이 아닌 고작 한 발로 거신병을 제압했다.
예상을 아득히 뛰어넘는 위력에 궁수의 어안이 벙벙했다.
“이거 맞아?”
- 어 응 어….
아쉬운 것은 위력이 위력인 만큼 엄청난 양의 마력이 빠져나갔다.
드래곤 하트라 하더라도 무시할 수 없는 엄청난 양의 마력이었다.
전이라면 거의 모든 마력을 사용해야 비견될 수준이었다. 그래도 잘 생각하면 자신만의 엄청난 필살기를 얻었다.
공격 사거리가 80미터도 아니고 반경이 80 미터라니.
원래도 궁수보다는 개인 병기에 가까웠다. 하지만 지금은 핵폭탄을 무한으로 발사하는 전투기가 된 느낌이었다.
***
눈을 뜬 동료들이 기지개를 하며 일어났다. 미리 주변에는 마력으로 외부와 차단을 해두었기 때문에 개운하게 잔 듯 보였다.
“하암, 잘잤…어?”
간단하게 기지개를 피며 밖으로 나온 티아라는 경악을 참을 수 없었다.
은거지 바깥에 쌓인 수만 마리의 마족 시체에 덜컥 겁이 났다.
가까이 다가가니 적들의 몸에 화살 수십발이 박혀 있었다. 어떤 놈은 대놓고 상방신이 날아가기도 했다.
“엄청 날뛰었네….”
그런 그녀를 바라보며 상쾌한 표정의 궁수가 손을 흔들었다.
마계는 해가 뜨지 않기에 피를 뒤집어 쓴 궁수는 매우 섬뜩했다.
자칫 적으로 오해하여 검을 휘두를 뻔했다.
궁수는 상큼한 미소와 함께 ‘굿모닝!’이라며 인사를 건넸다. 그녀는 떨떠름한 표정으로 인사를 받아주었다.
“저거 다 네가 죽인거야?”
“응? 아 운동 좀 했지.”
“운동…? 저게?”
티아라도 전투에는 이골이 났다. 자신도 몇 백마리 정도라면 목숨을 건다면 어떻게든 모두 죽일 수 있다.
그러나 수천, 수만 마리라면 말이 다르다.
전투고 뭐고 적들에게 쓸려나갈 수 있다. 다구리 앞에 장사 없다는 말이 괜히 있는 것이 아니다.
어안이 벙벙한 티아라를 바라보며 궁수가 어떠냐는 듯 의기양양하게 가슴을 피고 말했다
“얘들 다 깨워! 마왕 족치러 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