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6화. 반짝!
“나 이러면 눈에 뵈는 게 없는데?”
정작 말은 이렇게 하고 있지만 상황은 좋지 않았다. 분명 활의 위력은 어마어마했다.
분신이라 하더라도 단 한 발로 저 끈질긴 마제를 두 동강 내버렸다.
다만 연비가 문제였다. 한 발에 마력이 뭉텅이로 깎여나가다 보니 마냥 난사할 수도 없었다.
정말로 최적이자 최고의 상황에서 발사해야 하는, 최후의 보루였다.
심연이 몰려오며 주변을 가득 덮었다. 마치 시커먼 먹구름에 갇힌 느낌이었다.
다만 이 빌어먹을 어둠은 먹구름과 달리 흘러가지 않고 집요하게 가 궁수를 가두었다.
“하, 진짜 구질구질하네.”
- 시간을 버는군.
“시간?”
- 본체를 끌고 오기 전까지 네가 도망가지 못하도록 잡아두는 거지.
“흐음 그러셔.”
천궁을 흡수한 궁수의 손 위로 각 다섯 발의 화살이 만들어졌다. 촉을 날카롭게 갈아 만든 화살을 신성력을 머금어 빛났다.
촤악!
“먹히네.”
마치 짐승의 손톱처럼 화살을 내려그은 궁수는 어둠이 갈라지는 것을 바라보고는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흐으으으읍….”
정신을 집중한 궁수의 주변으로 빛나는 화살이 하나 둘 생겨나기 시작했다.
하나가 열이 열이 백이 되어 찬란하게 빛나기 시작했다.
- 호오….
“까짓거 찢어버리면 그만.”
어둠 속 수백의 화살이 찬란히 빛나기 시작했다.
어둠 속 반짝이는 별처럼 그 힘을 키우며 은은하게 빛나고 있었다. 다만 그 별들은 끊임없이 어둠을 먹어치우고 있었다.
일사분란하게 몰아치기 시작한 화살들은 어둠 따위가 자신의 앞길을 막는 것을 허락지 않았다.
짐승처럼 날뛰며 갈갈이 분노하는 화살을 어둠은 막지 못했다.
- 조심해라, 거대한 어둠이 다가오고 있다.
“본체?”
- 아니, 분신이겠지.
궁수도 미약하게나마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놈은 전까지 상대했던 그 어떤 놈들보다 강하다는 것을.
- 왔군.
화아아아악!
뿌려진 어둠이 순식간에 흡수되며 마제가 모습을 드러내었다.
허리까지 내려오는 흑발에 심연을 담은 검은 눈, 검은 제복을 입고 손에 쥔 칠흑의 검은 보는 것만으로 전율이 돋았다.
‘저게 본체가 아니라니….’
자신이 올라야 할 탑이 얼마나 높은지 확인한 궁수는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어둠을 밟고 있는 그는 마치 먹구름을 타고 있는 것 같았다.
궁수는 그런 놈을 노려보며 인사차 화살 한 발을 날렸다. 화살이 놈 뒤로 날아가며 궁수가 모습을 드러내었다.
“본캐로 오라 했지.”
콰앙!
전력을 담아 휘두른 분쇄자가 놈의 왼 손에 막혔다.
보지도 않고 공격을 받아낸 그는 분쇄자를 잡아 궁수를 땅에 던져버렸다.
콰앙!
“크허어억!”
반응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순간이동에 익숙해 지면서 속도전에는 자신이 있는 궁수였지만 이것은 결이 달랐다.
마계의 딱딱한 땅바닥에 처박힌 궁수는 다리를 후들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통증보다는 두려움이었다.
“좆같네.”
두려움 때문에 괜시리 쌍욕을 뱉은 궁수는 광팔이를 불렀다. 어둠에 방황하던 광팔이가 즉시 궁수를 등에 태웠다.
“잠시 피해 있어요.”
“뭐? 그게 무슨 개소리야! 피해 있으라니!”
“아래에서 보조 부탁합니다. 좀 날뛰어야 할 것 같아서.”
“응? 궁수! 쾅쾅?”
“그래, 나 말고 저 놈한테.”
말이 보조지 사실상 방해되니 빠지라는 소리였다. 궁수와 합을 맞춰온 멤버들이 이를 눈치채지 못할 리 없었다.
멤버들을 내려놓고 날아오른 궁수는 광팔이의 뿔에 손을 대며 말했다.
“광팔아, 네가 태어난지 얼마나 됐지?”
“몰라!”
“죽을 날은 정해졌을지도 모르겠다.”
“응? 나 죽어?”
“글쎄.”
전력을 다해 부딪혀도 승리를 장담할 수 없는 적, 심지어 그것이 고작 분신이다.
마제의 분신은 결코 약하지 않다. 다만 궁수가 상대하는 놈은 분신 중에서도 중위권에 위치하는 녀석이다.
가장 높은 분신도 아니고 고작 중간 분신에게 밀려야 한다니.
“개같네.”
이를 악문 궁수가 광팔이와 함께 날아올랐다. 과연 드래곤답게 그 위로 신성 보호막이 씌워졌다.
그 말은 곧 광팔이가 속도를 조절하지 않겠다는 뜻이었다.
“셈! 나 죽으면 내 직박구리 좀 지워줘요!”
드래곤 피어가 전장을 울렸다. 본격적인 전투의 시작을 알리듯 마제 주변을 마법진이 가득 채웠다.
완전히 존재를 지워버리겠다는 듯 신성 폭풍이 몰아쳤다.
속전속결로도 승리를 장담할 수 없는 적이다. 장기전으로 간다면 손해는 누구일지 뻔했다.
곧바로 궁수가 아스트라를 손에 쥐었다.
상쾌하고 서늘한 감각이 손끝을 타고 올라오며 궁수의 정신을 환기시켰다. 화살 한 발을 넣고 시위를 당겼다.
- 신중하게 쏴라.
“시끄러.”
전장을 뒤흔들 거대한 태풍이 궁수의 손끝에서 잠들고 있었다.
저 정신 나간 마제는 날아드는 모든 공격들을 베며 마법진들을 부숴버리고 있었다.
‘괴물같은 자식.’
광팔이는 복잡하게 마법진 수십 개를 다루면서도 궁수의 앞에 마법진을 들이밀었다.
“치워, 네가 못 받아.”
광팔이가 진심을 담은 마법진이라면 몰라도 이런 간이 마법진으로는 활의 힘을 받아낼 수 없다.
경외하는 적에게 살기를 담아, 시위를 놓았다.
하지만 그도 예상하고 있었는지 곧바로 전신에 집약된 어둠을 터트렸다.
그간은 몸풀기에 불과했는지 순식간에 주변에 모든 마법진이 파괴되었다.
그리고 궁수의 공격에 대응하듯 그 또한 칠흑의 검을 세로로 그었다. 빛과 어둠의 대결은 생각보다 훨씬 더 치열했다.
서로의 목숨을 물어뜯기 위해 치열하게 힘싸움을 벌이며 폭풍이 몰아치고 있었다.
생각보다 더 거센 저항에 마제도 표정을 구겼다.
“가소롭군.”
“버겁다고 얼굴에 써 있다 새꺄!”
아주 미약하긴 하지만 조금씩 놈의 표정에 분노가 차오르는 것이 느껴졌다.
광팔이와 궁수의 합공이 고작 분신과 비등하다는 것이 아쉽기는 하였지만 말이다.
분노할지언정 여유를 잃지 않는다. 잔잔한 호수에 파문을 일으키듯 그가 조용히 어둠을 발동했다.
“아 제발.”
“그래, 어디까지 성장했나 보자꾸나.”
전신을 속박하는 기운에 궁수가 이를 악물었다. 비등하다니, 오만도 정도가 있는 법이다.
아슬아슬하게 유지되던 무게추가 순식간에 기울었다.
“제길….”
놈 뒤로 만들어진 거대한 쇠사슬 다섯 개가 넘실거리며 궁수를 노려보고 있었다.
“그런 플레이는 싫은데.”
“고작 여기서 죽이기는 아깝다만.”
그의 손짓과 함께 사슬들이 궁수를 노리고 날아왔다. 마녀의 사슬과는 비교조차 되지 않을 정도로 섬뜩한 힘을 품고 있었다.
“광팔아!”
“응!”
광팔이도 쇠사슬을 보자마자 날개를 크게 펼치고 하늘로 날아올랐다.
처음도 아니고 두 번째로 마주치는 공격이지만, 그 위력은 결코 무시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급선회한 광팔이가 이를 악물고 거리를 벌렸으나 사슬 역시나 끈질기게 광팔이를 따라왔다.
더군다나 한 개도 아니고 다섯 개라니.
치열하게 공방을 펼치는 사슬은 전후좌우 모든 곳을 교묘하게 공격하며 광팔이를 조여왔다.
“조금만 더 버텨!”
“아빠 빨리!”
당황하기에는 상황이 너무나도 긴박했다. 천궁을 흡수한 궁수가 눈을 빛내며 사슬을 노려보았다.
직접적인 타격도 좋겠지만 지금은 그것보다는 더 좋은 것이 있다.
거대하거나 강력한 화살도 아니었다. 신성력을 머금었을 뿐 평범한 화살 수백 개가 궁수 주변을 맴돌았다.
손을 튕기자 화살들은 먼저 가장 가까운 사슬들을 향해 날아갔다.
“후우….”
궁수가 진땀을 흘리며 화살 컨트롤에 들어갔다. 단순히 화살을 날려 맞춘다가 아닌 정교한 조종 실력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카카카칵!
“나이스!”
화살들이 쇠사슬에 뚫린 구멍에 들어가며 그 행동을 멈추었다.
다섯 개의 쇠사슬 전부를 통제한 궁수가 진땀을 흘리며 이를 악물었다.
‘젠장, 못 움직여.’
궁수야 견디기 버겁지만 광팔이는 다행히도 궁수를 데리고 더욱 거리를 벌렸다.
마제는 궁수를 쫓지 않았다. 가소롭다는 듯 차가운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미숙하군.”
숨겨둔 쇠사슬 한 개가 공기를 찢고 궁수를 향해 날아갔다. 다른 사슬들은 통제를 풀어버리고 오직 사슬 한 개에 전력을 담았다.
진심을 가하는 마제의 공격은 궁수의 생각보다 더 위협적이었다.
통제하던 사슬에 힘이 빠지며 등 뒤에서 사신과 같은 어둠이 느껴졌다.
일반인도 놀라 뒤를 돌아볼 정도의 사슬을 궁수가 보지 못할 리 없었다.
“아빠!”
“위로! 한 바퀴 돌아!”
‘쉽게는 놔주지 않겠다 이건가.’
왜 하필 여자도 아니고 저런 남자가 자신을 노린단 말인가.
물론 여자라 해도 저렇게 달려들면 놀라 도망가겠지만 말이다.
하늘 높게 선회를 시작한 광팔이가 마치 롤러코스터의 360도 회전처럼 거꾸로 돌았다.
궁수는 기다렸다는 듯 광팔이의 등에서 쇠사슬로 떨어졌다.
“아빠!?”
“도망가!”
희생할 생각 따위는 추호도 없었다. 통제가 풀린 화살들을 등 뒤로 하여 궁수가 마제를 향해 돌진했다.
도망은커녕 오히려 자신에게 달려드는 궁수를 바라보며 마제는 표정을 구겼다.
용기와 만용은 구분해야 하거늘, 지금 그의 눈에 궁수는 하룻강아지로 밖에 보이지 않았다.
“어리석은 놈.”
그렇게까지 죽고 싶다면 어쩔 수 없지.
궁수의 화살이 빠져나옴과 동시에 통제권을 되찾은 쇠사슬들이 일제히 궁수를 노리고 날아들었다.
한 대만 맞아도 몸이 공중분해 될 강대한 힘을 가지고 있었다.
화살을 퍼트리며 궁수의 인영이 이리 저리 위치를 바꾸었다.
아무리 마제라도 이 수많은 화살중 궁수가 어디에서 나올지 예측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놈과의 거리는 이제 고작 10미터. 표정을 망가트린 놈과 비릿한 미소를 짓는 궁수의 눈이 마주쳤다.
살기를 담은 화살이 놈을 향해 날아갔다.
앞으로는 견제용 화살 한발과 신성력 화살 한발, 그리고 궁수의 뒤로도 화살이 한발 빠져나갔다.
“크흑….”
“통제가 미숙하군.”
수많은 화살을 통제하느라 지쳤다고 생각했는지 마제가 혀를 찼다. 자신에게 날아온 화살도 별볼이 없는 수준이었다.
궁수의 모습이 흐려지며 그 모습이 사라졌다.
그러나 마제는 당연히 자신을 향해 이동 할 것이라 생각하며 앞으로 사슬을 날렸다.
“이만 죽어라.”
하지만 궁수는 그 앞에 나타나지 않았다.
“도망?”
궁수는 뒤로 날린 화살로 먼저 위치를 바꿨다.
예상대로 놈은 궁수가 이동할 위치를 예측하여 자신의 앞에 사슬을 꽂았다.
하지만 애먼 공간을 때릴 뿐 궁수는 그 곳에 없었다.
공격을 흘리고 나서야 독기를 품은 궁수가 미리 날려둔 화살을 타고 등장했다.
손에는 날아가던 화살을 잡아 그대로 놈의 어깨에 처박아 주었다.
“뭣!?”
“말했지.”
궁수의 손에는 어느새 단아한 분위기의 활이 들려 있었다.
“본캐로 와라!”
“어딜!”
푸욱!
궁수의 강력한 일격이 놈의 상방신과 하반신 일부를 완전히 날려버렸다.
“크허어억!”
하지만 궁수의 몸에도 구멍이 뚫렸다. 놈이 죽기 직전 어둠으로 만들어진 검을 들어 궁수의 심장을 꿰뚫었다.
“아.”
심장이 관통당한 수준이 아니다. 심장이 완전히 칼에 찢겨 어둠에 먹히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