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4화. 대충 댄디한 제목.
“와, 독하다 독해? 저걸 다 죽여?”
마계 원로회에서 비상 회의가 걸렸다. 마계에 침입한 무력집단 때문이다.
궁수와 드래곤을 필두로 하여 짜여진 멤버는 마계에 극심한 피해를 낳고 있었다.
“그분께서는 뭐라고 하시던가?”
“마제께서요?”
“그래, 그래도 마계의 주인이신데, 이대로 보고만 계실 겁니까.”
“어…그게 어제 사실 말씀을 하시긴 하셨는데요.”
양의 뿔을 달고 있는 마족은 무언가 보여주길 꺼리는 듯 양피지를 들고 머뭇거리고 있었다.
이내 답답한 다른 원로가 그의 손에서 양피지를 낚아챘다.
“흥! 어디 뭐 얼마나 대단한 진언이….”
“어?”
“…이걸 마제께서 보내셨다고?”
“예, 제가 보는 앞에서 직접 쓰셨습니다.”
“…허어.”
[나는 키워서 먹어.]
***
“어딜 도망가 어딜!”
“사…. 살려!”
“죽어!”
궁수의 화살이 마지막 마족의 머리를 터트렸다.
손에 묻은 피를 털고 일어난 궁수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온통 마족들의 시체가 강을 이루었다.
“아빠, 우리 이제 뭐해?”
“뭐하긴, 또 들어가야지.”
“또?”
“우리는 ‘그놈’ 잡을 때까지 못 돌아가.”
궁수의 비장한 말투에 광팔이도 꼴깍 침을 삼켰다. 이는 곧 모든 마계의 정점을 죽인다는 뜻.
그렇기에 강대한 드래곤이라 하더라도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태어나고 처음으로 자신보다 우월한 존재와 싸운다는 것이기에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긴장할 지언정 겁은 먹지 않았다. 죽이지 못하면 죽는다는 것을 알기에 더욱 필사적이었다.
지금도 게이트 바깥에서 치열한 전투를 이어갈 동료들을 위해 조금이라도 더 빨리 결판을 지어야만 했다.
“계속 들어간다.”
“…응.”
궁수의 표정엔 웃음기가 사라져갔다. 갈수록 어둠이 짙어졌기에 짜증이 났다.
원패턴의 공략이었다. 마왕성을 발견하면 모두 죽인다. 적이 몰려오면 모두 죽인다.
그것이 강적이라 할지라도.
또 다시 나타난 마왕성.
궁수는 익숙하게 화살을 띄웠다. 이제는 너무나도 간단한 일이 되어버린 마왕성 함락.
“자~”
쩌억 입을 벌린 광팔이는 이제는 브래스도 쏘기 귀찮았는지 법사와 함께 거대한 마법진을 만들었다.
단순히 신성이 아닌 붉은색과 갈색, 그리고 흰색, 총 3개의 마법진이 층을 이루었다.
먼저 법사의 갈색 마법진에서 거대한 메테오가 등장했다.
그리고는 붉은 마법진을 지나 불이 붙었고 마지막으로 흰색 마법진을 지나 신성력을 얻었다.
“드가자~”
거대한 신성 운석이 마왕성이 장렬했다.
콰아앙!
중심부의 마왕답게 과연 보호막의 수준 또한 남달랐다.
좀처럼 쉽게 마왕성을 뚫지 못하자 이번에는 티아라가 앞으로 나섰다.
“먼저 해, 바로 도와줄게.”
마왕성 내부는 난리가 났지만 침략자들은 너무나 평온했다.
“성검!”
마왕성의 결계 위로 날카로운 성검이 강림했다.
둔탁한 메테오와는 달리 일점을 노리는 그녀의 검은 보호막과 격렬하게 격돌했다.
이 때를 놓칠세라 궁수 또한 큼지막한 화살을 그 성검에 빗겨 같은 점을 지독하게 찔러대었다.
그렇지 않아도 메테오의 힘을 받아내느라 마력을 미친 듯이 쓰던 배리어는 얼마 지나지 않아 쨍그랑! 하고 깨지고 말았다.
“이제 다 죽이면 돼.”
“그래.”
경험치 농장이 아닐까 할 정도로 전투는 순조로웠다.
푸욱!
“어?”
놈들이 등장하기 전까진 말이다.
***
“과연 정신 나간 위력이군.”
심혈을 기울여 만든 보호막을 이리도 쉽게 찢어버리다니. 서열 11위 마왕인 그는 기암을 토해내었다.
결계술 하나만큼은 마계에서 두 손가락 안에 드는 자신이다.
그런 결계를 결국에는 뚫었다. 그것도 다소 손쉽게 말이다.
“하마터면 큰일 날뻔했습니다.”
믿고 있던 게이트가 찢겨져 나감에도 그는 일말의 표정 변화조차 없었다.
그 뒤로 기다리는 존재가 얼마나 거대한 것인지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먼저 간다.”
성벽을 밟고 뛰어오른 그가 눈 깜빡할 사이에 궁수의 뒤를 잡았다. 오죽했으면 성벽에 거대한 금이 갔다.
푸욱!
검은색 무언가가 움직였는데 자신의 어깨에 검이 박혔다. 궁수가 본 것은 그것이 전부였다.
- 피해라!
“아니?”
궁수는 오히려 검을 부여잡고 어깨에서 검을 뽑아내었다. 손에 마력을 둘렀음에도 깊이 베여 피가 흘렀다.
그러나 이런 고통은 궁수에게 있어 손가락을 베인 것만도 못했다.
“이 새끼가 기습을 해?”
콰앙!
그대로 검을 으스러져라 잡은 궁수는 있는 힘껏 놈을 성벽에 던졌다.
놈이 처박히며 성벽에 거대한 균열이 생겼다.
곧바로 힐이 궁수를 치료하기 위해 치유 마법을 걸었으나 어째서인지 그 힘이 몹시 더뎠다.
으드득
“이 개자식이.”
화살 수십 발이 놈이 처박힌 성벽에 쏟아졌다. 복수에 미친 알량한 공격이 아닌 모든 화살에 살기를 실은 살벌한 공격이었다.
커허어엉!
“어어!?”
- 수문장? 분명 죽었을 텐데!?
케로베로스라고 하던가. 성벽을 깨부수고 나온 머리 셋의 수문장이 궁수의 화살을 대신 맞았다.
화살이 박힌 곳에서 검은 피가 흘렀으나 놈은 피할 생각이 없어 보였다.
“광팔아.”
“응, 아빠.”
궁수 앞에 마법진 수십 개가 모습을 드러내었다. 이제는 눈치만 보고도 보좌를 하는 든든한 파트너였다.
거대한 화살은 예고조차 없이 죽음을 몰고 날아들었다.
카드드드득!
자욱한 먼지 속에서 쏘아진 칠흑의 검기 또한 궁수의 화살을 막기 위해 격돌했으나 모두 부질없는 일이었다.
고작 홀로 궁수와 드래곤의 합작을 막겠다는 것은 너무나도 오만했다.
그리고 그는 오만한 벌을 받았다.
커허어엉!
“광팔아 죽여.”
삼두의 수문장이 광팔이를 향해 날카로운 이를 드러내었다. 사나운 광견을 바라보며 광팔이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오랜만에 자신과 동등한 수준의 적을 만난 줄 알았건만 저건 수준 이하다.
지성도 없고 마법도 없고 전투 능력도 별로다.
다시 말해서 자신의 적수가 되지 못한다는 말이다.
생태계의 정점에 서서 군림하는 드래곤에게 고작 광견 한 마리 따위 바람 앞의 등불이나 다름없었다.
‘찢어 죽여주마.’
다른 이도 아니고 자신의 가족에게 이를 드러낸 놈이다.
가족을 유별나게 생각하는 드래곤에게 있어 이보다 더한 천적은 없었다.
손끝에서 피어난 마법이 적들의 사지를 찢어버리기 직전, 케로베로스의 모습이 서서히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사라진다. 라기 보다는 무언가에 먹히는 모습이었다.
케로베로스를 먹어치운 것은 다름 아닌 방금 전 궁수에게 달려든 마족이었다.
그는 입가에 묻은 피를 닦아내며 검을 털어내었다.
그런 공격을 맞고도 아무렇지 않은 듯 먼지를 툭툭 털어내는 그 모습에 궁수의 눈초리가 기울였다.
“쯧, 아라야, 가자.”
“그래.”
티아라와 함께 떨어진 궁수가 리커브 보우를 들었다. 기본적인 활이 손에 잡히자 흥분된 궁수의 심신이 안정되었다.
‘아직 통증이 남아있다.’
상처는 어떻게든 매웠지만 내상이 존재하여 어깨가 욱씬욱씬거렸다.
“둘이나 오다니.”
새까만 누더기를 입은 그는 피식 웃으며 둘을 바라보았다.
눈을 붕대로 가리고 검은 머리칼이 허리까지 내려오는 남자였다.
‘존나 세겠다.’
대머리 실눈캐마냥 누가 보아도 강자의 기운이 흘러 넘쳤다. 그는 검을 치켜들고 궁수를 노려보며 말했다.
“나는 그분의 검, 마계를 어지럽히는 네놈들을 베겠다.”
“아하, 그러셔요?”
화살을 날린 궁수의 인영이 흐려지며 놈의 뒤에서 모습을 드러내었다.
“좆까.”
그새 모습을 바꾼 궁수가 놈을 향해 분쇄자를 휘둘렀다. 섬뜩한 못은 적의 목을 물어뜯기 위해 가감 없이 휘둘러졌다.
콰앙!
“듣던 대로 호전적이고.”
놈은 보지도 않고 검을 등에 대어 궁수의 공격을 막았다.
“어리석군.”
품에 검 한 자루가 더 있었는지 남은 검으로 궁수를 베려했다.
카앙!
“내가 정말 못살아.”
“땡큐!”
그러나 두 번째 검은 섬광처럼 등장한 티아라의 검에 막혔다.
앞뒤로 최강의 헌터들을 대립한 그는 피식 웃더니 어둠을 터트려 둘을 날려버렸다.
“검이 이 정도면 그놈도 별 것 없네.”
콰앙!
궁수의 말에 화가 났는지 놈이 쌍검을 휘두르며 궁수에게 달려들었다.
분노에 미친 검이지만 그 실력은 결코 감정이 실리지 않았다.
적의 목을 빼앗기 위한 날카로운 일격이었다.
“닥쳐라, 어딜 미천한 인간이 그분을 입에 올리느냐.”
“허?”
검이 궁수의 가슴팍을 아슬아슬하게 빗겨나갔다. 궁수는 오히려 더욱 속도를 높여 칼날이 닿을 수 없는 곳으로 파고들었다.
놈의 폼 안에서는 검을 휘두를 수 없을 것이다.
빠악!
“인간이 왜 미천해?”
신성력을 가득 머금은 궁수의 주먹이 놈의 신체를 후려쳤다. 작은 신성 폭발이 일어나며 놈의 몸이 뒤로 날아갔다.
“광팔아!”
“응!”
날아가던 놈의 위치에 정확히 빛의 감옥이 생성되었다.
이때를 기다린 그녀는 금빛 검을 휘둘러 정확히 놈에게 성검을 떨어트렸다.
말하지 않았지만 그들의 천부적인 전투센스가 만들어낸 화려한 합공이었다.
날아가며 자세를 잡으려던 놈은 오히려 감옥에 갇혀 폼이 무너지고 말았다.
카아아아앙!
자신을 짓이기기 위해 내려오는 성검을 그는 이를 악물고 검을 교차하여 막아내고 있었다.
눈에 핏발을 세우고 견디는 그 모습은 필사적이었다.
“쌍검을 다 거기다 써?”
가소롭게 웃은 궁수가 장궁에 시위를 걸었다.
휘이잉!
먼저 석화의 돌이 궁수의 화살촉을 덮었다. 그 위는 얼음이 차지했다.
그리고는 바람이 몰아치며 막을 만들고 그 위로 화염이 더해졌다.
화살이 날아갔다.
필사이자 결사의 화살은 정신 팔린 놈이 막아내기엔 무리가 있었다.
푸욱!
놈의 가슴 정중앙에 화살이 박혔다. 먼저 기승을 부린 것은 대지의 기운이었다.
놈의 가슴 속 깊은 곳을 완전히 석화시켜 버렸다.
이어진 얼음은 상반신을 완전히 얼려버렸으며 남은 바람은 화염과 합심하여 불기둥을 만들었다.
완벽한 죽음.
그것을 지지하듯 검을 쥐고 있던 놈의 힘이 풀리며 털썩 무릎을 꿇었다.
오랜만에 상대하는 강적이었으나 그 상대가 나빴다.
팀워크도, 개개인의 실력도 지구의 정점을 달리는 이들만을 모아두었으니 그 혼자서는 당연히 무리였다.
놈의 죽음을 확인한 궁수는 마저 마왕성을 공략하기 위해 발길을 옮겼다.
그러나 마왕은 궁수를 막기는커녕 성벽에 서서 눈을 부릅뜨고 있었다.
궁수가 아닌 궁수 뒤의 시체를 바라보고 있었다. 믿고 있던 강자가 죽었다는 것에 당황한 걸까.
아니다. 그도 나름 10대 마왕이다. 고작 쓸 만한 칼 한 자루가 부러진 것에 이렇게까지 민감하게 반응하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뭐가 문제인가.
무언가 섬뜩한 기운을 감지한 궁수가 뒤를 돌아보았다.
“…씨발.”
그 기운이었다. 전에 처음 마계에 들어왔을 때 느꼈던 칠흑의 기운.
여타 어둠과는 계를 달리하는 심연의 기운에 궁수가 소리쳤다.
“도망쳐!”
[허]
하지만 갑작스럽게 나타난 절대자는 순순히 궁수를 보내줄 마음이 없었다.
찰흙을 빗듯 서서히 만들어진 칠흑이 궁수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