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근접병기 활-153화 (153/172)

◈ 153화. 대충 궁금해 보이는 제목.

“무슨 억지도 그런 개억지가!”

호전적인 마왕답게 곧바로 반응이 튀어나왔다.

날카로운 어금니를 드러내며 사납게 으르렁거리는 놈들의 모습은 광견병에 걸린 개가 따로 없었다.

아무렇지 않게 웃으며 놈들의 도발을 웃어넘긴 궁수는 손을 휘둘러 정확히 놈들의 눈앞에서 화살을 멈추었다.

“왜, 약육강식 좋잖아? 너네들 방식 아니야?”

‘미친….’

‘내가 반응조차 못 했다고?’

‘이게 대적자의 힘인가….’

인정하긴 싫지만 그들도 알고 있었다. 1대 1로는 절대 놈을 이길 수 없다는 것을. 몸소 뼈저리게 느끼고 있었다.

“대화가 길었네.”

고작 인간의 말이 이리도 소름 돋을 수 있다는 것을, 그들은 처음 알았다.

그러나 그렇다고 포기할 마왕들도 아니었다.

적이 아무리 강력하다 한들 이곳은 최소 중위권급의 마왕이 스무 명이다.

잘하면 상위급 마왕과도 비벼볼 수 있는 전력이란 말이다.

물론 저 남자의 기운이 몹시 강대하긴 하였다.

그러나 마왕들이 보기에 남자는 상위급 마왕처럼 강력해 보이진 않았다.

“죽어라 인간!”

“닥쳐, 난 헬스 기구에 쌓여 행복하게 죽을 거다!”

그런 궁수의 강함을 꿰뚫어 보지 못하기에 중위권에 머무는 것이다.

화살로 빚어진 왕좌에 앉아 궁수는 차분하게 손을 놀렸다.

손가락질 몇 번으로 마왕들의 목숨을 가지고 노는 그 모습은 마치 역사 속 폭군을 보는 듯했다.

“니들이랑 놀기에 내가 너무 짬이 찼다.”

수없이 마족을 학살하며 레벨이 수 없이 올랐다.

거기다 광팔이가 죽인 놈들도 일정 경험치가 흘러 들어오니, 지금 이 순간도 궁수는 강해지고 있었다.

[LV - 197]

[직업 - 궁수]

[스테이터스]

[잔여 스테이터스 - 135]

힘 : 382

민첩 : 30

마력 : 80

체력 : 30

“흐음, 곧 200이네.”

정신을 판 것처럼 보이지만 궁수의 시선은 온전히 마왕들에게 쏠려있었다.

멍청하게 화살만 날려 놈들을 쫓는 것이 아닌 사살을 목적으로 정교하게 날려대고 있었다.

다리와 머리에 동시에 날아오는 화살, 심지어 앞뒤로 정교하게 날아와 피하기 힘들었다.

이런 심리를 앞세운 궁수가 화살 수십 발을 일제히 통제하고 있었다.

일반인이라면 뇌가 녹아버릴 수준의 정교한 조종을 궁수는 아무렇지 않다는 듯 코를 파며 이리저리 조종하고 있었다.

오케스트라의 지휘자같은 우아함은 없지만, 대신에 사람들을 ‘우와….’하게 만들 순 있었다.

모두 같은 움직임을 보이는 것이 아닌 한 개 한 개가 각자 지성을 띄고 움직이는 것처럼 말이다.

그렇지 않아도 화살의 위력 자체가 묵직하여 쳐내는 것도 힘든데 이런 변칙적인 공격까지 해오니 마왕들은 미칠 지경이었다.

“재밌네.”

- 흐음 확실히, 이건 절경이군.

그간 얼마나 이를 악물고 전투에 임했단 말인가.

약자로서 강자를 무너트리기 위해 궁수는 생사를 넘어가며 온갖 역경을 뛰어넘었다.

지고의 대장장이가 담금질한 궁수라는 검은 고작 마왕 따위가 부러트리기엔 너무나도 견고했다.

오만하지만 압도적인 힘을 지닌 인간의 왕이 마왕들의 목숨을 쥐고 흔들고 있었다.

빌어먹을 쇠사슬이 있는 것도 아니고 고작해야 자신들의 고유 능력이 전부인 마왕들은 궁수의 손아귀로부터 벗어나지 못했다.

압도적인 승리를 점친 궁수는 화살에 바람을 입혀 더욱 속도를 높였다.

하지만, 마계는 한치 앞도 예측할 수 없는 곳, 그것이 설사 궁수라도 말이다.

푹!

“크허억!?”

전신이 붉은 마왕의 검이 마법사 마왕의 심장을 관통했다. 명백한 배신이었으나 놈의 움직임엔 거리낌이 없었다.

“내부 분열인가?”

궁수 입장에서는 할 일을 덜어주어 오히려 좋았다. 놈은 제법 강한 개체인지 순식간에 다른 마왕들을 기습하여 죽였다.

“뭐, 뭐냐 게르갈! 이건 협정에 어긋나는….”

“하? 협정?”

검을 거칠게 밀어 놈의 상반신을 썰어버린 그는 비릿하게 웃었다.

“언제부터 마계가 그딴 얄팍한 수에 기대어 움직이는 곳이 됐지?”

마왕다운, 마왕이기에 할 수 있는 지극히 단순한 발상, 궁수는 놈이 더 활개 칠 수 있도록 잠시 화살을 멈추고 다른 놈들을 더욱 공격했다.

궁수의 압도적인 견제와 놈의 검술이 합쳐지니 다른 마왕들을 모두 썰어버리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다른 마왕을 모두 죽였을 때, 피칠갑을 한 마왕이 눈을 감았다.

곤충이 허물을 벗듯 그의 피부가 벗겨지며 그 안에서 더욱 강력한 새 살이 돋아났다.

뿔도 기존과 비교하여 몇 배는 거대해져 그야 말로 마왕에 어울리는 모습이었다.

마왕은 다른 개체를 죽여 힘을 흡수한다.

분명 이대로 가다간 개죽음을 피할 수 없기에 그가 내지른 마지막 수였다.

어떻게든 다른 마왕들의 힘을 흡수하여 놈에게 대적하는 것.

급조된 힘이긴 하지만 마왕 스무 명이라면 대적자라 한들 어떻게든 막아낼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마왕은 조용히 한쪽 무릎을 꿇고 궁수를 향해 머리를 조아렸다.

‘괴물같은 놈.’

그렇게 많은 마왕을 죽였음에도 불구하고 그에게서 느껴지는 힘은 더욱 강력했다.

분산된 힘이 온전히 자신에게 모여지니, 그간 궁수가 얼마나 봐주고 있었는지 알았다.

이건, 이길 수 없다.

그렇기에 그가 선택한 마지막 수는 복종이다. 물론 완전한 복종이 아닌 암살과 기습을 상정한 복종이다.

“흐음?”

흥미롭다는 듯 궁수가 놈을 내려다보며 피식 웃었다. 궁수는 친히 왕좌에 앉아 놈을 내려다보았다.

“강대한 존재이시여….”

그는 머리를 납작하게 조아리며 궁수의 신발에 입을 맞췄다.

빠악!

“크허억!”

“어딜 더러운 사내새끼가 입술을 들이밀어.”

놈의 이빨에 궁수의 발길질이 이어졌다. 앞니가 터져 나오며 피를 질질 흘렸다.

“어, 어째서!”

“어째서는 뭘 어째서야.”

의자에서 내려온 궁수는 마왕의 머리를 잡고 들어 올렸다.

연신 피를 흘려대며 자신을 노려보는 그 모습에 궁수는 뺨을 후려치며 말했다.

“먼저 공격해놓고 뭐? 처 발리니까 들어와?”

뻐억!

“크허억!”

“에라이 새끼야, 너는 자존심도 없냐? 동료도 다 죽인 판에 뭐?”

물론 궁수는 놈이 동료를 죽였단 것에 화나지 않았다. 처음부터 놈을 발밑에 들일 생각도 없었다. 이것은 괴롭힘.

압도적인 강자이기에 할 수 있는 괴롭힘이다.

“이 개자식이….”

“여물어.”

콰앙!

놈의 머리를 부여잡은 궁수는 곧바로 놈을 땅에 처박았다. 흙먼지가 일어나며 비명 소리가 들렸다.

“이렇게 된 거 어떻게 해서라도 널 죽여주마!”

“이빨 빠진 개가 무슨 수로?”

붉은 마왕이 마검을 들고 날아올랐다.

자신의 피인지 다른 마왕들의 피인지 알 수 없었으나 그에게 느껴지는 기세는 사뭇 달랐다.

“어차피 죽을 목숨, 화려하게 태우리라.”

“까고 있네, 그냥 뒤져.”

허공을 박차고 뛰어오른 마왕은 시작부터 거대한 붉은 검기를 쏘았다.

몹시 얇고 예리한 검기에 궁수가 가볍게 날아올라 공격을 피했다.

적은 말 그대로 목숨을 걸고 장렬한 최후의 불꽃을 피워 올리고 있었다. 이를 악물고 들어오는 놈의 검과 궁수의 분쇄자가 격돌했다.

콰앙!

날붙이와 몽둥이의 격돌은 시시하게도 맨살의 승리로 돌아갔다.

궁수의 힘을 받아내지 못한 놈이 결국 나가떨어지며 땅에 처박혔다.

놈은 마왕 스무 명의 힘을 흡수한 놈이다. 혹시 모르니 마지막까지 놈의 죽음을 확인할 필요가 있다.

쓰러진 놈 위로 섬뜩한 화살이 빗발쳤다.

엉성하게 타격하는 것이 아닌 정확히 심장과 머리만을 노리고 날아들었다.

투다다다다!

정확히 다섯 발의 화살이 놈의 심장에 처박혔다.

화살을 밟고 계단처럼 내려온 궁수가 놈의 머리를 즈려 밟으며 내려다보았다.

“쿨럭! 이 개새….”

“우왕 아직 안 죽었네.”

친히 한번 더 머리통을 밟아 터트린 궁수는 손을 털고 광팔이를 바라보았다.

이번에도 역시나 압도적인 화력을 내뿜으며 적들을 쓸어 담고 있었다.

조금 버겁긴 하지만 아직까지는 별 문제가 없어 보였다.

“매번 같은 레파토리구만.”

이대로 별 탈 없이 성장한다면 ‘그’에게도 비견할만할 것이다.

어떻게든 마계 놈들을 모두 죽이고 마지막으론 놈의 목을 부러트릴 것이다.

편안하게 앉아 전투를 관전하길 잠시 광팔이가 하늘 높게 날아올라 피어를 질렀다.

‘음?’

의미 없이 아무렇게나 피어를 날릴 광팔이가 아니었기에 궁수는 다급히 전장을 파악했다.

“저거다.”

마법사 부대 전원이 이를 악물고 광팔이에게 속박 마법을 시전하고 있었다.

광팔이를 쥐는 것이 아닌 그 주변의 보호막 자체를 둘러싸고 질질 끌었다.

그 와중에도 수많은 마법사들이 광팔이에게 질질 끌려 다니고 있었다.

거기까지 확인한 궁수는 마법사들을 향해 화살 한발을 발사했다.

자칫 억지로 마법을 풀어버렸다간 마력이 역류되어 폭발이 일어날 수 있다.

물론 광팔이의 보호막은 겨우겨우 견뎌내겠지만 광팔이 본인에게도 조금은 피해가 갈 것이다.

그렇기에 궁수는 한번에 모두 죽여 버리는 것이 아닌 직접 찾아갔다.

날아간 화살이 궁수의 모습으로 바뀌었다.

“분쇄자? 흡수?”

- 굳이 분쇄자로 하나하나 죽일 필요 있겠느냐?

“역시 그렇지?”

낭만을 따지는 궁수지만 상황이 상황이니 만큼 지금은 효율을 따질 때다.

천궁을 흡수한 궁수가 눈을 빛내었다. 수만의 병력이 궁수를 노려보았다. 그러나 감히 궁수에게 먼저 달려들 만한 간 큰 놈은 없었다.

지성은 부족하지만 그만큼 본능이 예민하다.

그들의 본능이 미친 듯이 경고하고 있다. 절대로 저것을 건들면 안된다고 말이다.

하지만 나궁수.

한국, 이제는 법사와 함께 전 세계 자타공인 또라이 헌터인 그는 화살 단 두발을 꺼낸 것이 전부였다.

다만 그 크기가 이십 미터를 가뿐히 넘었을 뿐. 두께도 몹시 두꺼워 손오공의 여의를 보는 듯했다.

“흐으으읍!”

궁수가 손을 들어 올리자 두 거대한 몽둥이가 번쩍 들어 올려졌다.

그리고는 궁수가 회전하기 시작했다. 팽이보다 더 빠른 속도로 궁수는 적들을 후려쳤다.

화르륵!

“크흐! 좀 더 화끈하게 놀아보자!”

신성 화살에 더해진 불꽃은 적들의 목숨을 앗아가는 암살자처럼 보였다.

갑작스레 등장한 거대한 화염 팽이에 순식간에 적군 수백이 죽어나갔다.

한번 옮겨 붙은 신성 불꽃은 적들의 전신을 갉아먹을 때까지 꺼지지 않았다. 그야 말로 스치기만 해도 치명타!

폭풍의 눈은 고요하다고 했던가. 궁수는 그 안에서 각종 쌩쇼를 하며 난잡한 몸사위를 선보이고 있었다.

개판으로 휘두르고 있었으나 워낙에 적이 많았기에 큰 상관이 없었다.

애초에 저걸 누가 봉 술로 본단 말인가.

손쉽게 적들의 본진을 털어버린 궁수는 흥이 났는지 더욱 본격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아빠!”

“그쪽은 네가 다 먹어!”

혹시나 궁수에게 맛 좋은 경험치들을 빼앗길까 후다닥 광팔이도 다시 전투에 합류했다.

티아라는 평온하게 검을 손질하고 셈은 치유 도구들을 확인했다.

법사와 광팔이만이 신나서 미친 듯이 마법을 난사하고 있었다.

“느헤헤헤헿!”

“우하하하하!”

섬뜩한 두 천재의 광기 섞인 광소를 들으며 궁수는 한숨을 푹 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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