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1화. 대충 적당한 제목.
폭풍우 치는 화살이 울부짖으며 마녀의 미간을 노리고 날아들었다.
공기를 꿰뚫으며 나오는 파찰음은 그 속도가 얼마나 빠른지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
‘속도에선 내가 우위다.’
쇠사슬이 공중에 떠 있는 궁수를 노리고 날아왔으나 궁수 또한 거대한 화살로 이를 쳐냈다.
찰나의 숨을 쪼개며 마치 몽둥이 휘두르듯 화살을 휘둘렀다.
쾅! 콰아앙!
“드래곤도 없이 날 상대할 수 있겠어?”
“상대하는 거 안 보이냐?”
분명 적은 강력하다. 빈틈은커녕 거대한 철벽과도 같아 노릴 곳이 없다.
그러나 나궁수, 벽이 있으면 뛰어넘는 사내가 아닌 벽을 때려 부수는 사내다.
견고한 벽 따위는 그에게 단순히 표적에 지나지 않았다.
화살을 밟고 뛰어오른 궁수가 마녀에게 도약했다.
궁수가 하기에는 너무나도 위험한 행동이었으나 아무도 이를 욕하지 못했다.
주변에 다섯 개의 거대한 화살을 가지고 궁수는 도약했다.
“우매한 것.”
그녀는 궁수를 향해 손바닥을 뻗으며 붉은 마법진을 연성했다. 혈흔같은 새빨간 불꽃이 작렬하며 궁수를 덮쳤다.
“흐읍!”
거대한 화살 다섯 개를 겹치니 마치 방패처럼 견고한 모습이 만들어졌다.
화살촉을 겹쳐 만들어낸 것에 불과하지 않지만 그 강도는 생각보다 더 튼튼했다.
화살을 겹쳐 모든 공격을 받아낸 궁수는 이기어검을 다루듯 다시 화살을 펼쳤다.
자잘한 화살 수십 발이 먼저 그녀에게 날아갔다.
“흐으음?”
마녀는 피할 생각도 없는지 이번에는 왼손을 들어올려 불꽃 장막을 만들어 궁수의 화살을 씹었다.
그러나 지금이야 말로 궁수가 기다리던 시간이었다.
‘감히 시야를 가려?’
트루 스나이핑을 활성화시켜 불꽃 너머 마녀의 위치를 알아내었다.
장막이 꽤나 단단했으나 궁수는 화살을 비틀어 간단히 이를 뚫어버렸다.
작은 화살도 아니고 신성력을 듬뿍 머금은 거대한 화살은 고작 장막으로는 막아낼 수 없었다.
화아아아악!
불꽃이 걷히며 당황한 마녀의 모습이 드러났다.
혹시나 도망칠세라 화살 한발이 빛과 같은 속도로 그녀를 향해 날아갔다.
“끄으으으윽!”
“호오 이걸?”
심장을 노린 공격이었으나 그녀는 순간적으로 지팡이를 틀어 어깨로 공격을 빗겨내었다.
궁수의 능력을 알고 있는 그녀는 서둘러 화살을 뽑으려 했으나 애석하게도 스킬의 발동이 한발 빨랐다.
“그 새끼한테 전해라!”
궁수의 오른팔 근육에 힘이 들어가며 힘줄이 불끈 존재감을 드러내었다. 그러고는 망설임 없이 마녀의 심장을 후려쳤다.
콰아아앙!
“꺄아아아아악!”
궁수의 주먹을 맞은 그녀는 피를 토해내며 낙하했다.
- 아직 안 죽었다.
“알아!”
이번에는 절대 놓치지 않는다. 마녀가 땅에 닿기도 전 다시 기다란 화살을 그녀에게 투척했다.
“너에게 닿기를!”
상큼한 대사와는 달리 화살은 직선의 빛을 그리며 날아갔다.
화살이라기보다는 거대한 창에 가까운 궁극의 일격은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마녀의 심장을 꿰뚫었다.
마치 꼬챙이처럼 꽂힌 그녀를 노려보며 궁수는 주먹을 꽈악 쥐었다.
“오늘은 잔반 없는 날이다.”
화살에서 터져 나온 섬광이 그녀를 집어삼키며 강력한 신성 폭발을 일으켰다.
드높은 신성 기둥을 일으킬 정도로 강력한 폭발이 사라진 곳에는 어떤 흔적도 남지 않았다.
“후우, 여긴 대충 정리했고.”
툭툭 손을 털어낸 궁수는 고개를 돌려 주변 전장을 바라보았다. 역시나 광팔이가 엄청난 활약을 보이며 적들을 쓸어버리고 있었다.
- 아무리 봐도 성룡급은 아닌데.
“우리 아들이 야무지긴 해.”
- 흐음 저 정도면 카이저 드래곤 급이다만.
“카이저 드래곤?”
- 드래곤 중에서도 타고난 개체라는 거다.
도와줄 것도 없이 적들을 학살하는 광팔이를 보며 궁수는 만족스럽게 미소 지었다.
자신이 도와주는 것보다 홀로 경험치를 독식하는 것이 훨씬 성장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그렇게 생각한 궁수는 마력 포션을 들이마시며 무기를 점검했다.
동료들은 처음에는 전투에 관여했으나 워낙에 광팔이가 압도적인 화력을 보여주자 등에 누워 쉬고 있었다.
대놓고 잡담을 나누며 떠드는 그 모습은 정말 이곳이 마계인가 착각이 들 정도였다.
“마계가 뉘집 개 이름도 아니고….”
- 긴장하는 것보다는 낫지 않겠느냐?
“긴장이 아예 풀어지는 것도 좀.”
- 뭐, 생각이 전혀 없는 녀석들도 아니니 괜찮을 거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어둠의 독기가 흐르던 마계의 땅은 미친 듯이 쏟아지는 신성력에 조금은 옅어졌다.
“아빠! 나 레벨업 많이 했어!”
“그래, 잘했어, 얼마나 올랐는데?”
“98!”
“흐음…. 그래, 잘했어.”
이 정도의 적들을 죽이고도 98이라니. 워낙에 경험치 통이 거대한 드래곤이라 그런지 광팔이의 레벨업 속도는 상당히 더뎠다.
“드래곤도 100레벨 찍으면 뭐가 바뀌나?”
- 진화한다. 단순하게 말해서 지금 상태보다 몇 배 더 강해진다고 보면 된다.
“여기서 더 강해진다고?”
- 보통은 수면기에 들거나 한다만, 광팔이는 나도 잘 모르겠군.
“확실히 보통은 아니니까.”
규격 외의 존재와 함께한다는 것은 한치 앞도 예측할 수 없어 모험가 같았다. 그리고 궁수는 그런 모험을 즐길 줄 아는 헌터였다.
“뭐, 어떻게든 돼겠지.”
낙천적인 마음으로 궁수는 학살을 마치고 돌아온 드래곤 위에 올라탔다.
다른 동료들은 등 위에 옹기종기 모여 잡담을 나누고 있었다.
“왔어?”
“너무 날로 먹는 거 아니야?”
“괜찮아, 나 회 좋아해.”
“으휴.”
마왕성도 먹었고 몰려온 강적들도 모두 처리했다. 당장에 급한 일은 처리하였으나 아직 수많은 적들이 남아있다.
또 다른 강대한 마족들을 그리고 최종적으로는 ‘그’까지 처리를 해야 한다.
당장 실행할 필요는 없지만 그 시기는 빠르면 빠를수록 좋다.
거기까지 말한 궁수는 휴식을 마치고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텁텁한 먼지가 일어나며 다른 멤버들 또한 궁수를 따랐다.
“그래서 이제 어떻게 할 건데?”
“어쩌긴.”
마력 포션의 빈병을 집어 던지며 웃는 궁수의 표정은 같은 동료가 보기에도 섬뜩했다.
“우린 바로 중앙으로 달린다.”
여기까지는 가벼운 몸풀이다. 변방의 마왕들이 얼마나 강한지 알아보는 수순이었다.
동료들도 몸소 체험했고 심지어는 제법 강력한 녀석도 잡았다.
비록 쇠사슬은 놈이 죽음과 동시에 사라져버리고 말았지만 대략적인 적의 수준은 알았다.
“아아, 시시해서 죽고 싶어졌다.”
“개소리야 또.”
똥폼을 잡는 궁수의 옷을 잡고 질질 끌며 광팔이의 등에 타올랐다.
***
“좋아! 이대로 버티기만 하면 돼!”
궁수가 게이트 안에서 활약을 하고 있는지 나오는 몬스터들의 수는 다른 게이트에 비해 다소 적었다.
몬스터들의 격이 전과 비교해 높긴 했으나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다.
이곳에는 지금 전 세계 최고의 헌터들이 대거 포진해있다.
초단위로 대단위 광역 힐을 때려 박는다든지 궁극기를 쉬지 않고 전개하는 노인네라든지 말이다.
“이 정도면 널널하다.”
혹시나 강력한 괴물들이 튀어나올까 대량의 신성 폭탄 또한 상시 준비되어 있었다.
화아아악!
그러나 쉽게 가지 않겠다는 듯 게이트에 어둠이 응축되며 거대한 어둠이 터져 나왔다.
“온다! 준비해!”
“랭커들 바로 투입 준비시켜!”
“상황 보고 후퇴, 투입 결정한다! 일단 거리 벌리고 기다려!”
당황하기에는 이제는 죽음에 너무나 익숙해진 헌터들이 명령에 따라 착착 움직였다.
마탑의 신성 마법 난사에 어둠은 금방 걷혔다.
게이트에서는 다섯 명의 마인들이 걸어 나오고 있었다. 하나같이 강대한 기운을 띄고 있어 헌터들은 꼴깍 침을 삼켰다.
‘최소 S급이다.’
최소가 S급이니 현실적으로 SS나 SSS급은 된다는 것.
적들의 기운을 느끼자마자 그 위로 화려한 신성 융단 폭격이 쏟아져 내렸다.
“있는 대로 쏟아부어!”
“남은 헌터들은 대기해!”
“랭커들한테 버프 다 걸어!”
신성 폭격이 잦아들자 순백 아지랑이를 뚫고 적들의 모습이 드러났다.
“이게 인간의 환영인가.”
“흐음, 제법 거친걸.”
“그래도, 노예가 70억이다. 당분간 살만하겠군.”
다섯 명 위로 검은 막 수십 겹이 씌워졌다. 몇 개는 신성 폭격에 부숴진 듯 금이 가고 깨져있었다.
적들의 수준을 확인한 헌터들이 고래고래 소리쳤다.
“퇴각! 퇴각한다!”
퇴각한다. 그것은 강한 적들에 대한 대처임과 동시에.
“허허허.”
랭커들이 마음껏 날뛰기 위해 자리를 피해주는 것이기도 했다. 궁수를 제외한 랭커들이 한 자리에 모였다.
인원은 아홉이었으나 그들에게 느껴지는 힘은 수만, 수십만의 힘을 뛰어넘었다.
매번 일을 해결하는 궁수를 보며 그들은 마냥 평화를 누린 것이 아니다.
혹시 모를 상황을 대비해서, 인류 최강 병기가 사라질 경우를 대비해서 그들 또한 이를 악물고 수련에 임했다.
“흐음, 쟤네는 조금 강해보이는데.”
“좋은 먹잇감이다.”
마족들의 수는 궁수 한 명 마법사 한 명, 그리고 암살자 한명에 대검을 든 마족, 마지막으로 맨 뒤의 네크로맨서까지.
힐러 따윈 없는 매우 공격적인 조합이었다.
“크흐흐! 일어나라 병사들이여!”
네크로맨서의 외침과 동시에 마물들의 시체가 삐그덕 거리며 일어났다. 붉은 눈을 빛내며 지성따윈 없는 모습이었다.
“홀홀홀.”
이를 바라본 마탑주는 가소롭다는 듯 조소했다. 그의 지팡이가 한 바퀴 빙글 회전했다.
보주가 빛나며 적들의 위로 거대한 마법진이 모습을 드러내었다.
대단위 마법은 대단위 마법으로 받아친다. 지팡이를 내림과 동시에 적들의 머리 위로 수많은 신성 사슬들이 쏟아져 내렸다.
그것들은 마치 자아를 가진 소환수처럼 마물들만 속속들이 골라 꿰뚫고 있었다.
평범한 사슬이 아닌 신성력을 머금은 사슬이었기에 효과는 발군이었다.
“크하하하! 그래! 한번 해보자꾸나 인간이여!”
“시끄러워.”
마탑주를 제지하기 위해 곧바로 마족 암살자가 그림자에 숨어 도약했다. 서슬 퍼런 칠흑의 칼날이 마탑주의 목을 꿰뚫기 전.
파캉!
“설마 이딴 걸 암살이라고 한 거 아니지?”
“쯧.”
인간계 암살의 정점인 너주김의 단검에 막히고 말았다. 공격은 막았으나 그의 표정은 썩 좋지 않았다.
‘이 위력…. 한 명 한 명이 다 마왕급이다.’
마왕 다섯을 동시에 상대하라니. 본래라면 절대 불가능하다며 거절했을 일이다.
그러나 그 뒤로 있는 다른 헌터들을 바라보았다.
인간의 왕인 그에게 비교하긴 부족하지만 나름 자신들의 분야에서 정점을 달리는 이들이다.
그리고 그들의 눈빛에선 일말의 두려움도 찾을 수 없었다.
‘할 수 있다.’
파캉!
이번에는 자신을 노리고 날아온 단검을 가볍게 쳐내며 그는 두 개의 단검을 꺼냈다.
‘아니, 해야만 한다.’
***
“궁수야 이거 맞냐?”
“몰라 나도….”
궁수의 앞에는 전대미문의 대 전력이 길을 막고 있었다.
궁수도 처음 보는 수많은 거신병들과 고도의 훈련을 받은 병사들이 이를 막아서고 있었다.
수는 최소 10만.
떨거지들이 아니고 잘 훈련된 정규군이 10만이다. 떨거지들의 수로 생각하자면 가뿐히 100만은 된다고 보면 될 것이다.
“흐음 뭐.”
이 앞은 못 지나간다는 듯 필사적인 결의로 막은 그들을 향해.
“다 죽이죠?”
신성 화살이 떨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