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0화. 제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겁니다.
마계에 들어오고 가장 먼저 발견한 것은 당연히 마왕성이었다.
가시들이 연구한 게이트는 마계로 향하는 길을 열 수는 있지만 정확한 위치를 특정할 수 없다는 것이 단점이었다.
그러나 마계는 넓고 그곳을 지키는 마왕성 또한 차고 널렸다.
마계에 들어가 1시간도 안되어 마왕성을 찾아낸 궁수는 천궁을 들고 전투의 시작을 알렸다.
“최대한 신속하게 처리해야 해.”
“알아, 힐 버프 좀 걸어줘요, 법사랑 광팔이는 바로 대단위 마법 준비하고.”
“알았다!”
“바로 준비하지.”
놈이 눈치채기도 전에 마왕성을 암살한다. 티아라와 궁수는 마왕을 상대하기 위해 서슬퍼런 장비를 차고 대기하고 있었다.
“아빠 간다!”
“그래!”
이제는 참을 필요가 없었다. 곧바로 드래곤으로 변신한 광팔이의 등에 모든 멤버들이 탑승했다.
시작하자마자 법사의 마법진이 열렸다. 언제 보아도 거대하고 믿음직한 마법진에 궁수가 피식 웃었다.
“어?”
다만 그 속성이 달랐을 뿐.
“나도! 했다! 수련!”
다만 그 마법진은 여타 불이나 바람 같은 기초 속성이 아닌 그 위의 신성력이었다.
광팔이와 같은 새하얀 마법진이 마왕성 위를 점거했다.
“느헤헤헤헿! 반짝이!”
“푸핳! 신성력은 반짝이냐!”
마왕성 위로 거대한 빛의 기둥이 낙하했다. 제네시스라고 하던가.
잡졸은커녕 마왕조차 살아남을 수 있을지 걱정이 되는 위력의 마법이 쏟아졌다.
게이트만 멀쩡하다면야 아무런 상관없었기에 궁수는 오랜만의 마법 폭죽을 느긋이 관람했다.
그러나 하필 여기에는 마법이라면 환장할 족속이 한명, 아니 한 마리 더 있었다.
광팔이도 법사의 대단위 마법에 감동한 듯 자신 또한 거대한 결계를 형성했다.
“아빠! 나도 나도!”
흥이 났는지 마왕성 위로 새하얀 결계가 모습을 드러내었다.
외관은 아름다운 신성 결계였으나, 적들의 입장에서는 초 단위로 디버프 마법을 꽂아 넣는 늪이었다.
언데드, 마족에게 있어서는 고작 안에 갇힌 것만으로 죽어가는 저주의 늪이었다.
“크어 마왕성 함락 직관 좋구만.”
“방심하지마, 아직 마왕 안 죽었어.”
“그럼 뭐해, 내 손으로 죽일 건데.”
분명 어둠이 깔린 마계였으나 마왕성 함락은 너무나도 간단했다.
“끄아아아아악!”
궁수와 티아라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지만 마왕성에서 들려오는 단말마로 알 수 있었다.
성의 주인인 마왕이 죽었다는 것을, 실제로 내부에서 느껴지던 가장 강대한 기운 하나가 물로 씻겨진 것처럼 사르르 녹아내렸다.
- 죽었군.
“어?”
마계 함락, 생각보다 더 할만한 거 아니야?
티아라도 당장에 성검을 소환할 준비를 하고 있었으나 5분도 안되어 끝나버린 마왕성 레이드에 혀를 내둘렀다.
“무슨 말도 안되는….”
실제로 마왕성의 권한은 법사에게 돌아갔다. 아무 힘도 들이지 않고 세이브포인트를 손에 넣은 궁수 일행이었다.
마계 공략은 파죽지세로 진행되었다. 애초에 이곳은 마계 외곽부, 중앙 권력 전쟁에서 밀려난 쩌리들이 자리 잡은 곳이다.
그에 반해 파티 멤버는 지구 최강들이 모였으니 상대가 될 턱이 없었다.
“쯧, 이 정도 했으면 됐어.”
손가락 하나도 움직이지 않고 마왕성 8개를 탈취한 티아라는 나서지 못했다는 것이 분한 듯 볼을 부풀렸다.
“이제 더 깊숙한 곳으로 들어갈 거야, 알겠어?”
“빨리 가기나 하자, 이럴 시간 없어.”
“을긌습느드….”
노골적으로 궁수가 비웃으며 자신을 무시했으나 그녀는 실제로 마계에서 한 것이 아무것도 없기에 뭐라고 이의를 제기할 수도 없었다.
광팔이와 법사만이 미친 듯이 들어오는 경험치에 싱글벙글 웃고 있었다.
“궁수! 여기 너무 달다!”
“뭐?”
“달콤하다! 여긴 천국?”
“허, 천국 같은 소리하네.”
마계를 천국이라고 말하는 걸 보니 아직 정신은 멀쩡한, 아닌가? 오히려 멀쩡하지 않은 건가.
원래부터 반쯤 정신이 나가 있던 녀석이니 별 상관은 없을 것이다.
더군다나 이번에는 전에 받은 마탑주의 지팡이에 각종 최상급 마도구를 주렁주렁 달고 온 터라서 마력의 출력 자체는 광팔이에게 뒤지지 않았다.
드래곤과 인간의 마법 수준이 결코, 밀리지 않음에 어이없어하며 궁수는 진입을 계속했다.
“쉿, 거의 다 왔어.”
“흐음…. 확실히 다르네.”
과연 심층부로 들어가면 들어갈수록 마왕성의 크기부터가 남달랐다.
외곽의 성도 작지 않았으나 이곳에 비교하면 그 위용이 초라해질 정도였다.
“크하하하! 드디어 여기까지 쳐들어왔구나!”
이번에는 대놓고 마왕이 성벽에 서서 궁수를 노려보았다. 그 나름대로 강한 어둠이 느껴지긴 하였으나 ‘그’에 비교하면 한참 부족했다.
“내가 상대하….”
콰아아아앙!
궁수의 말이 다 끝나기도 전 티아라의 성검이 정확히 마왕의 머리통을 노리고 떨어졌다.
마왕성의 결계에 막혀 마왕을 죽이지는 못했으나 결계에 커다란 구멍을 뚫었다.
그 순간 마왕은 생각했다.
‘좆됐다.’
처음 느낀 것은 새하얀 빛이었다. 눈이 멀어버릴 따가운 빛이 마왕을 집어삼켰다. ‘느헤헿’이라는 웃음소리만이 추가로 들려올 뿐이었다.
다그닥 다그닥!
“저건 또 뭐야?”
마왕이 바보같이 나와있던 덕분에 마왕성을 손쉽게 함락시킨 궁수는 잠시 정비를 위해 마왕성 내부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마물들은 깡그리 신성력에 녹아내려 언데드의 ㅇ자도 찾아볼 수 없었다.
그러나 이런 궁수의 횡포를 더 이상 지켜볼 수 없다고 판단했는지 주변 마왕들이 먼저 군대를 이끌고 처들어왔다.
각자의 깃발을 펄럭이며 마왕성 주변을 완전히 점거한 그들은 승리를 의심치 않는지 입가의 미소가 떠나지 않았다.
저 놈들만 모두 죽이면 산하의 마왕성이 배로 늘어나는 것이니 말이다.
성벽에 올라 마왕들을 한심하게 바라본 궁수가 딱! 손가락을 튕겼다.
천궁이 흡수되자마자 그들 위로 신성력을 머금은 화살 수백발이 모습을 드러내었다.
한 발 한발이 강력한 신성 폭탄이었다. 그리고는 궁수는 뒤를 돌아 마왕성으로 들어갔다.
뚫린 창문에서 폭발음과 함께 적들의 비명 소리가 들려왔다. 왕좌에 걸터앉은 궁수는 티아라와 법사를 양쪽에 두고 하품을 했다.
힐은 턱을 괴고 창밖을 바라보며 궁수에게 물었다.
“일처리 하나는 깔끔하군.”
“그럼, 나머지는 다 광팔이가 처리 할 거야.”
“남을지 모르겠다만…”
본의 아니게 마계에서 휴가를 즐기던 와중 천궁이 다급하게 소리쳤다.
- 피해라!
“응? 피할게 뭐가 있…. 젠장!”
이미 피하긴 늦었다. 다가오는 어둠을 눈치챈 궁수와 법사는 마력을 끌어모아 곧바로 빛을 쏘았다.
궁수의 마력이 뭉텅이로 깎여나가며 거대한 화살이 한 개 생성되었다.
다급히 모든 속성을 더하고 법사의 마력까지 더해지자 그 빛이 한층 더 밝아졌다.
기다릴 시간 따윈 없었다. 벽은 막혀있었지만 궁수는 아랑곳하지 않고 화살을 날렸다.
콰아앙!
벽이 뚫리며 순백의 선을 그리며 날아간 화살이 살의를 가지고 달려드는 쇠사슬과 격돌했다.
밀리지 않기 위해 궁수가 마력을 더욱 추가하여 주먹을 내질렀다.
이를 악물고 밀어내야 겨우 쇠사슬의 폭주를 막아낼 수 있었다.
“허, 그분의 권능을 막아내다니.”
뚫린 성 밖으로 고혹한 여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전투적이고 흥분된 목소리였기에 모든 멤버들이 순식간에 전투 준비를 마쳤다.
“광팔아!”
“아빠!”
눈 깜빡할 사이에 날아든 광팔이를 타고 마왕성의 천장을 뚫고 공중에 올라가니, 지팡이를 타고 등 뒤로 세 개의 쇠사슬을 가진 마녀가 궁수를 바라보고 있었다.
호의 보다는 호기심에 가까운, 마치 실험 재료를 보는듯한 그 눈빛에 궁수는 와락 표정을 구겼다.
“젠장 또라이가 더 늘었어.”
그녀 뒤로 넘실거리는 쇠사슬은 언뜻 보아도 그 때 상대했던 것과 매우 흡사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사용자가 ‘그’가 아니라 저 마녀라는 점이다.
만약 그 놈이 진심으로 궁수를 죽일 생각으로 저 사슬을 던졌다면 고작 급조한 화살만으로 저걸 막아낼 수 있을 리 없다.
언뜻 보아도 다른 마왕과는 비교하는 것이 미안할 정도의 차원이 다른 강자다.
“안 덤비면 내가 먼저 간다?”
“크흑!”
말이 채 끝나기도 전 그녀의 뒤에 있던 쇠사슬이 광팔이를 노리고 날아왔다. 다행인 점은 그에 비교하면 그나마 느리다는 것이다.
한 개는 티아라가 검격을 날려 공격을 빗겨내었다.
다른 한 개는 법사가 끊어버릴 작정으로 바람을 응축시켜 베었으나 튕겨져 나갈 뿐 끊어지지 않았다.
남은 한 개. 궁수는 광팔이에게 피하라고 명령하며 뛰어올랐다. 쇠사슬을 밟고 미끄러지며 끝의 마녀에게 달려들었다.
“방어는 탄탄하냐!”
콰아앙!
궁수의 주먹처럼 준비된 화살이 쭉 뻗어 나갔다. 휘황찬란한 빛이 시야를 가림과 동시에 궁수는 다른 화살을 그녀의 뒤로 날렸다.
시야를 가림과 동시에 그녀의 뒤로 이동하여 승부를 보려는 심산이었다.
마법사가 궁수의 카운터 격이라는 소문은 헛소문이라는 것을 증명하듯 압도적인 신체 능력으로 궁수가 놈의 뒤통수에 주먹을 날렸다.
화악!
“뭣?!”
분명 주먹을 꽂았다고 생각했는데 놈의 모습이 신기루처럼 사라지며 그 모습이 흐려졌다.
“환상도 꿰뚫지 못하다니, 너 정말 대적자 맞아?”
조소하며 비웃는 그 모습은 다시 궁수의 불같은 성격에 기름을 부었다.
그녀는 오만한 눈빛으로 궁수를 내려다보며 주변에 수백 개의 환영을 만들어 내었다.
수백의 분신이 일제히 마법진을 만들어 궁수에게 화염구를 쏘아내었다.
기초적인 마법인 파이어볼이었으나 상대가 상대인 만큼 그 위력은 결코 약하지 않았다.
퍼어엉!
“궁수야!”
“아빠!”
“젠장 빨리 힐을…!”
아무리 궁수라도 이 정도의 대단위 공격이라면 분명 큰 데미지를 입었을 것이라 생각한 동료들이 후다닥 달려 나갔다.
그러나 갑작스레 나타난 다섯 발의 화살이 그들 앞을 막아섰다.
“궁수…?”
“아래 잔당을 부탁해.”
마녀가 도착한 직후 추가로 주변에서는 마군단들이 마왕성을 향해 몰려들고 있었다.
본격적으로 궁수를 뿌리뽑기 위해 성을 지키는 인원들까지 징집했기 때문에 그 수가 제법 컸다.
“…흐음.”
하긴 궁수가 그렇게 쉽게 죽을 놈도 아니었기에 다른 멤버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달려드는 적들을 향해 날아갔다.
수백의 화살로 공격을 막아낸 궁수가 찢어진 웃옷을 벗으며 입을 열었다.
아름다운 근육이 완벽한 대칭을 이루며 땀에 젖어 빛나고 있었다.
“환상이라고 했던가?”
“어차피 넌 못 뚫어, 그냥 죽어.”
화살을 밟고 공중에 떠 있는 궁수가 자신의 주변 수십 발의 화살을 만들어내었다.
“아니 난 존나 환상적인 헌터라서.”
수많은 화살 폭풍이 토네이도처럼 몰아치며 주변의 모든 환상들을 꿰뚫었다.
10초도 안되는 시간에 수백을 처리한 궁수가 마지막으로 남은 마녀를 바라보며 목을 스윽 그었다.
“사냥감을 놓친 적이 없어.”
- 존나 많으면서….
“넌 좀 닥치고.”
천궁의 비아냥을 뒤로한 궁수가 화살을 밟고 마녀에게 돌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