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근접병기 활-149화 (149/172)

◈ 149화. 이 성은 이제 제겁니다.

“끊을게.”

“아 왜! 너만한 적임자가 없다고!”

“그냥 나보고 죽으라고 하지 그러냐!”

어떻게 가는지는 둘째치고 다짜고짜 자신을 사지로 몰아넣으려 하다니, 악녀도 이런 악녀가 없다.

두 번 다시 그 끔찍한 지옥을 떠올리기 싫은 궁수는 절레절레 고개를 저었다.

“안돼! 못가! 안가!”

“그럼 다 같이 죽던가.”

“야이씨.”

궁수도 알고는 있었다. 말은 이렇게 하지만 사실 자신만한 사람이 없다는 것을.

무력은 기본에 한번 다녀왔고 안에서 타고 다닐 드래곤까지 있다.

이거 완전 ‘저 보내줍쇼~’하는 상황 아닌가? 그렇기에 궁수는 어쩔 수 없이 한숨을 푹 내쉬며 말했다.

“들어나 보자, 어떻게 갈 건데?”

게이트가 ‘열려라 참깨!’하면 열리는 것도 아니고 더군다나 마계 행 게이트가 그리 쉬운 줄 아나.

콧방귀를 끼며 퉁명스럽게 대답한 궁수는 그녀의 대답을 기다렸다.

그러나 들려온 것은 설명이 아닌 ‘후후후’라는 의미심장한 웃음소리였다. 순간 짜증이 확 일어나 하마터면 전화를 끊어버릴 뻔했다.

“끊을까?”

“끊지마!”

그녀는 잠시 서류를 뒤적이더니 종이를 펄럭이며 이내 찾은 듯 설명을 이었다.

“네가 잡은 거 마지막으로 우리가 가시 다 잡은 거 알지?”

“우리? ‘우리’? 우리이이?”

“… 네가 다 잡은 거 알지?”

“응, 알지알지.”

간접적으로 ‘너네 일 조또 안 했잖아.’라는 궁수의 압박을 넘기며 티아라가 말을 이었다.

이제는 궁수를 다루는 법을 알아버린 그녀였다.

“크흠크흠! 무튼 우리의 유!능!한! 연구원들이! 가시들의 연구 자료를 토대로 우리도 마계로 향하는 게이트를 여는 법을 알아냈다 이거야!”

“음, 그러니까 걔네들이 미리 해둔 거 다 배꼈다~ 이거지?”

“재해석 했다고 말해줄래?”

“재해석은 개뿔이 재해석.”

이렇게 된 이상 궁수는 빼도 박도 못하게 마계로 끌려갈 것이다. 아무리 부정하더라도 그는 알고 있다.

결국 동료들은 지구를 지키기 위해 마계로 갈 것이고 자신이 없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앞길이 훤했다.

“어휴….”

“같이 갈 거지?”

“닥쳐….”

“오케이 확정!”

반쯤 강제로 궁수를 참가시킨 티아라는 만족스럽게 웃으며 빠른 시일 내로 작전 설명을 위해 들리겠다는 말과 함께 전화를 끊었다.

***

마제의 금서고 안 그는 얼마 전 궁수와의 격돌이 떠올라 입가에 나오는 미소를 참을 수 없었다.

목숨에 위협을 느껴본 것이 도대체 얼마만이란 말인가.

심지어는 아무리 빌린 몸이라 하더라도 싸움에서 패배까지 하다니.

완전한 패배는 아니었으나 어찌됐든 자신이 밀렸다는 사실에 그는 입꼬리를 들썩였다.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그는 수정구를 쓰다듬었다. 그 안에서는 궁수의 모습이 시시각각 흘러나오고 있었다.

“더 강해져라, 마왕 따위는 순식간에 죽일 정도로 강해져서 빨리 내게 오거라.”

***

헌터계가 나날이 발전하는 요즈음, 궁수는 한층 더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게이트는 그닥 신경을 쓸 것이 없었지만 중요한 것은 세이비어와의 합동 작전이었다.

“기껏 나왔는데 거길 또 들어가라니…”

“너만한 사람이 없다니까?”

“‘너만한’이 아니라 ‘만만한’이겠지.”

“에이, 너무 심각하게 생각하지 마.”

게이트에 돌입하는 인원은 그리 많지 않았다. 광팔이와 궁수, 티아라, 법사를 기본으로 하고 힐과 성녀까지.

“탱커라인 너무 적지 않아?”

“지구도 지켜야지, 마냥 다 데려갈 순 없잖아.”

“그건 그렇다만…. 그래도 난 궁수인데.”

“네가?”

비아냥이 가득한 그 표정에 하마터면 꿀밤을 쥐어박아 줄뻔했다. 일반인이라면 두개골에 금이 갈지도 모르는 꿀밤을 말이다.

“탱커 한명만 더 데려가자, 셈 어때?”

“안돼.”

“왜, 능력 확실하잖아.”

“팔 한쪽이 없잖아, 정상적인 상태에서도 승리를 장담할 수 없어, 미안하지만 짐이 될 확률이 높아.”

“흐으음 그러냐.”

그녀도 내심 안타까운 듯 보였지만 이해는 되었다. 팔 한쪽이 없다는 제약은 훨씬 더 컸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광팔이가 있다는 것이다.

드래곤의 압도적인 힘이라면 쓰러트리진 못할망정 도망은 칠 수 있을 것이다.

설명을 듣던 궁수는 문제가 있는 듯 고개를 갸웃하며 그녀에게 물었다.

“그런데 게이트, 우리 없이 막을 수 있어?”

“응? 무슨 게이트?”

“걔네 또 게이트 열고 침공할거 아니야, 이번에는 대대적으로 올 것 같은데, 우리 없이 막을 수 있냐고.”

정확히는 ‘우리’가 아니고 ‘나’ 지만.

오만하기 짝이 없는 발언이지만 티아라는 조금도 그것을 문제 삼지 않았다.

오히려 정말로 문제라는 듯 입술을 두드리며 고민에 빠졌다.

전투에서 궁수가 담당하는 부분은 결코 적지 않다.

헌터들의 정신적 지주가 되는 동시에 인류 최강이라는 타이틀까지 가지고 있으니 말이다.

다른 헌터들을 의심하는 것은 아니지만 워낙에 모든 일들을 자신이 도맡아 처리해오다 보니 다소 신뢰감이 떨어지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그녀는 타블렛 화면을 터치하며 고민하더니 결심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어쩔 수 없지, 따지면 가장 위험한 곳에 들어가는 거잖아.”

“그런가….”

“응, 각국의 정부한테도 미리 전달해놨으니 어떻게든 할 수 있을 거야, 게다가.”

“응? 게다가 뭐?”

타블렛으로는 설명이 어려웠는지 그녀는 회의실에 배치된 홀로그램을 켰다.

“오오.”

“잘 봐.”

홀로그램에는 둥근 지구의 모습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붉은 점들은 게이트인 듯 여러 각국에 조금씩 찍혀 있었다.

- 게이트가 많이 줄긴 줄었군.

“중요한건 여기야.”

지구의 유독 한 지점에서 시커먼 기운들이 마치 폭풍처럼 몰려있었다.

당장에라도 폭파할 것처럼 불안하게 흔들리는 것이 썩 마음에 들지 않았다.

게다가 위치는.

“단군 할아버지가 터를 잘못 잡으셨네….”

“글쎄, 네가 있어서 그런 거 아닐까.”

하필 한국이었다. 바로 옆에 중국 같은 거대한 땅이 뭐가 좋다고 콩알만 한 반도를 못 집어삼켜서 안달이란 말인가.

아무리 한탄을 해도 상황은 바뀌지 않는다. 과거에 안주하지 않고 미래를 대비해야 하는 헌터로서 이럴 시간이 없었다.

“그래도 이번에는 한 곳에서만 게이트가 열리니까 랭커는 물론이고 모든 최상위 헌터들이 모일거야.”

“다행인건지 불행인건지….”

다른 이들도 아니고 최상위 랭커들로 떡칠을 한다면 어떻게든 버틸 수 있을 것이다.

마탑이나 마탑주같은 규격 외의 인물들이 무더기로 쏟아진다고 하니 잘하면 격퇴도 노려볼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들어가서 어떻게 할 건데?”

마계 내부에 대해서는 궁수에게 들어 티아라도 알고 있는 상황, 그렇기에 그녀도 더욱 신중하게 작전을 고려한 것이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궁수가 치를 떨 정도면 얼마나 지옥인지 체감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일단 주변의 마왕성을 전부 먹을 거야.”

“전부? 왜? 바로 치러 가는 게 낫지 않아?”

“생각해 봐, 지금 상황이라면 마계 대부분의 병력이 한 곳에 집중돼있겠지?”

“흐음, 침공을 하려면 그렇겠지.”

“그러니까 우리는 빈집털이를 하자는 거야.”

빈집털이라 한 들 마왕성을 얻어서 뭐가 좋단 말인가. 뭐 대단한 능력이 있는 것도 아닌….

“아!”

“왜? 왜 그래?!”

궁수는 잠시 그녀를 뒤로하고 천궁에게 말을 걸었다.

“야, 내가 마계에서 먹은 마왕성 있잖아.”

- 응? 아 그거?

“그거 사용할 수 있냐?”

지구로 넘어온 마왕성은 이미 차원을 넘는 와중 대부분의 마력을 사용해 일반 성이나 다름없는 수준이었다.

그러나 힘으로 모든 걸 정하는 마계에서 궁수라는 도전자가 마왕을 물리쳤으니 그 성은 이제 궁수의 것이 되는 것이다.

- 호오, 그 생각을 못했군.

“그렇지? 역시 사용할 수 있겠지?”

사실을 확인한 궁수의 입가에 호선이 그어졌다. 분명 밝은 미소였지만 섬뜩함이 잔뜩 묻어나오고 있었다.

***

“침공 시작이다.”

건물 몇 개는 합친 듯한 거대한 게이트가 쩌억 열리며 흉흉한 기세를 내뿜고 있었다.

서울 한복판, 이 좁디좁은 땅덩이에 수많은 헌터들이 모였다. 각자 자신의 무기를 가지고 전투 준비를 마쳤다.

“옵니다!”

딱히 뭘 하기도 전 게이트가 열리며 마군단의 진정한 모습이 세상에 드러나기 시작했다.

이번에도 대방패를 앞세우고 사이사이로 창을 들이민 로마식 진군 방법이었다.

“허?”

“어이가 없군.”

일반, A급이나 될 수준의 헌터들이라면 그 압도적인 위용에 치를 떨었겠지만 그들은 달랐다.

전 세계적인 헌터들은 수많은 고난을 딛고 수많은 기현상들을 해결해온 자들이다.

그들의 눈앞에는 마물들이 저렇게 오와 열을 맞춰 전진한다고 한들 귀여울 뿐이었다.

“그래도 방심은 금물이지.”

“그래, 이번에는 그놈들도 없으니까.”

“쯧, 애 좀 먹겠군.”

인류 최강병기 둘이 사라졌으니 아무리 적이 약해 보인다고 한들 방심 따윈 없다.

“내가 먼저 시작하지.”

마탑의 거대한 마법진을 시작으로 본격적인 전투가 이어졌다.

적들이 쏟아져 나오길 잠시, 하늘 위에서 거대한 드래곤의 그림자가 드리웠다.

“음? 저 남자가 왜 저기에?”

다름 아닌 궁수였다. 마계로 들어가기 전 저 빌어먹을 침략자들에게 마지막 선물을 해주기 위해서 친히 행차하셨다.

- 할 수 있겠느냐?

“그럼, 얼마나 연습했는데.”

그간 자신이 점령한 마왕성의 게이트를 다루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

사실 그래봐야 원하는 위치에 게이트를 소환하고 제거하고 소환하고 제거하기를 반복한 것이 전부지만 말이다.

“반품이다 이 새끼들아!”

적들이 나오기 힘들도록 궁수는 저 게이트 앞에 마왕성의 게이트를 최대한 넓게 깔아버렸다.

마물들의 진군이 중간에 뚝 끊어지자 선두가 당황한 듯 뒤를 돌아보았다.

화르륵.

마침 기다렸다는 듯 마법진에서 터져 나온 진홍의 불꽃은 적들을 빨아들이기 시작했다.

***

“기분 죽이네!”

전장을 뒤로하고 티아라, 멤버들과 함께 마계에 들어온 궁수는 히죽히죽 웃으며 발을 들였다.

혹시 전과 같은 불상사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에 다른 마왕성에 들어가기 전까진 힘의 사용을 최소화해야 했다.

혹시나 냄새를 맡은 놈이 궁수를 찾아내기라도 한다면 그건 그것대로 대참사인 것이다.

“마왕성이 그런 역할을 할 줄은 몰랐는데.”

“세이브 포인트인 셈이지.”

“셈은 세이브 포인트가 아닌데.”

“…너는 이번 일 끝나면 좀 쉬어라.”

그녀가 생각한 방법은 다름 아닌 마왕성을 점령하여 게이트를 가진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위험한 상황에서라도 게이트를 이용하여 가까운 마왕성으로 도망칠 수 있기 때문이다.

인간도 마왕성을 지배할 수 있다는 것은 궁수를 통해 증명된 사실, 그렇기에 각자 최소 한 개씩 마왕성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 결론이었다.

“그런데 이렇게 야금야금 먹으면 놈도 눈치채지 않을까?”

“눈치채겠지, 그래도 상관없어.”

궁수는 마지막으로 놈과 격돌했던 때를 기억하며 천궁에 손을 올렸다.

- 지금이라면….

고요한 마계 속에서 천궁이 작게 속삭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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