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8화. 본캐 가져와 2.
게이트 내부에서 스산한 바람이 불어왔다. 바람이라기보다는 시커먼 어둠이 얕게 빠져나오고 있었다.
“이건….”
어디선가 한번 느꼈던 소름 끼치는 기운에 궁수가 표정을 구겼다.
어둠을 넘어 심연 속에서나 느낄법한 칠흑의 기운이 게이트로부터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가시는 흘러나오는 어둠에 몸을 맡기며 작게 속삭였다. 눈을 감고 겸허히 어둠을 받아들였다.
“아버지….”
“아버지라고!?”
이전 마계에서 검은 쇠사슬에게 느꼈던 다시는 느끼고 싶지 않던 그것이었다.
“젠장!”
심상치 않은 기운에 궁수가 냅다 가시를 향해 달려들었다. 혹시나 무슨 일이 터지기 전 먼저 제압해둘 생각이었다.
화아아아악!
“흐으읍!”
콰앙!
있는 힘껏 내지른 궁수의 주먹이 어둠에 막혔다. 게이트에서 터져 나온 어둠은 나비의 고치처럼 첫 가시를 집어삼켰다.
쾅! 콰콰콰쾅!
“젠장! 또 뭘 만들려고!”
마력을 실은 궁수의 주먹질이 점차 험악해지기 시작했다.
- 일단 피해라! 지금 네가 상대할 수 있는 적이 아니야!
“뭘 어디로 도망가는데!”
궁수의 주먹에서 피가 흘렀다.
혈흔이 낭자하며 주먹이 모두 불어터지고 나서야 어둠의 고치가 풀리며 그 안에서 가시가 모습을 드러내었다.
여유롭게 궁수의 주먹을 막아내며 그는 섬뜩한 웃음을 지었다.
“이렇게 대면하는 것은 처음이로군.”
외관은 다른 점이 없었으나 궁수는 알 수 있었다. 저 안에 들어있는 것은 빌어먹을 ‘그’라는 놈이란 걸.
“딱히 보고 싶진 않았는데 말이야.”
백 스탭을 밟고 거리를 벌린 궁수가 천궁을 손에 들고 호시탐탐 기회를 노렸다.
그러나 그는 가소롭다는 듯 너스레를 떨며 말했다.
“잔챙이 하나에 뭘 이런 것 까지.”
그가 손가락 소리를 내자 순식간에 결계가 풀렸다. 마치 비눗방울이 터지듯 사르르 녹아 사라졌다.
“아빠!”
“궁수!”
“가까이 오지 마!”
결계 바깥에 있던 셈과 광팔이가 당장에라도 달려오려 했으나 궁수는 이를 제지했다.
‘한 발자국이라도 섣불리 움직이면 죽는다.’
그에게서 느껴지는 힘은 고작 가시나 마왕이 아닌 그 이상이었다. 그렇기에 궁수도 천궁의 모습을 변화시켰다.
“생각보다 감이 좋군?”
재밌다는 듯 ‘크큭’ 웃는 그를 뒤로하고 궁수는 화살을 날려 광팔이의 등 위로 순간이동 했다.
“아빠 저거…. 저거 괴물….”
“알아.”
섬뜩함을 넘어 죽음의 혈기가 느껴지는 놈은 가만히 서 있는 것만으로 충분히 압도적이었다.
거대한 성벽 앞에 선 병사의 기분이 들었다.
대단한 장군도 마법사도 아닌 일게 잡졸, 그것이 지금 궁수가 느끼는 감정이었다.
- 미쳤군.
“씨발 진짜 개좆같네….”
공포를 떨쳐내기 위해 쌍욕을 내뱉은 궁수는 먼저 방송을 켰다.
방송을 시청한 헌터들이 지원을 해주길 바라며 카메라를 키고 광팔이와 함께 놈을 노려보았다.
[와 미친 이건 또 뭐야.]
[서울 개박살났네….]
[하…. 진짜 대피소인데도 불안해 죽겠음ㅠㅠ]
[힘내라, 할 수 있다.]
[뭐 임 왜 초상집 분위기임.]
ㄴ 초상집 분위기를 어찌 아누? 혹시?
ㄴ 씨팔련아.
“나는 노려본다고 쓰러지지 않는다만.”
“…….”
명백히 자신을 조롱하는 말투였으나 궁수도 어쩔 수 없었다.
빈틈도 없고 덤빈다 한들 승산도 없는 놈에게 뭘 어쩐단 말인가.
그렇다고 자신이 포기할 수도 없는 노릇.
일부로 겁을 떨쳐내기 위해 화살 한 개를 만들었다. 근접전은 승산이 없다. 이럴 때일수록 궁수의 진면모를 살려야 한다.
‘한 번으로 끝낸다.’
궁수의 의도를 눈치챈 듯 광팔이 또한 궁수의 화살 앞에 수많은 마법진을 만들어 주었다.
하늘 위에 만들어진 수십, 이제는 수백 미터의 거대한 화살 한 개가 빛나고 있었다.
화르륵!
신성력에 불꽃이 합쳐지니 아름다운 백염이 이글이글 타올랐다. 크기만 큰 것이 아니다.
화살 한발에 궁수가 담을 수 있는 모든 힘을 담았다.
장기전에서 승산이 없다면 단 한 합으로, 자신의 가장 날카로운 검으로 승부를 본다.
그 또한 궁수의 터프한 방식이 마음에 드는 듯 피식 웃으며 양손으로 검을 들어올렸다.
그 위로 어둠이 몸집을 키우기 시작했다. 어둠은 궁수와 같이 백 미터를 넘어서도 계속해서 크기를 키웠다.
땅에서는 어둠이 하늘에서는 빛이 울부짖었다.
한 치의 양보도 없다는 듯 서로를 향해 으르렁거리는 그 모습에 광팔이도 얼굴을 구겼다.
먼저 광팔이의 마법진 수십 개가 궁수의 화살을 훑었다.
그렇지 않아도 강렬하던 신성력이 배는 강력해졌다. 원래 농도가 1이라면 지금은 10은 돼 보였다.
으드득.
이를 악문 궁수가 자꾸만 혼미해지는 정신을 부여잡았다. 마계에서 당한 그 굴욕, 적어도 갚아줘야 하지 않겠는가.
“죽어, 개자식아.”
완전한 순백이 되어버린 화살이 마를 태우는 소리를 내며 지상에 낙하했다.
“훌륭하구나!”
그 또한 낙하하는 화살을 향해 힘껏 흑검을 그었다.
워낙에 강렬한 어둠을 견뎌내지 못하고 결국에는 마검이 가루가 되고 말았다.
그럼에도 쏘아진 어둠은 거대하여 결코 그 싸움에서 밀리지 않았다.
공간이 찢어질 정도로 강렬한 격돌이 일어났다. 궁수의 팔 위로 힘줄이 올라왔다.
마력 회로가 타들어 가는 통증을 느끼며 더욱 강하게 화살을 짓눌렀다.
“아빠!”
“본캐는 못 이겨도!”
쥐어짜듯 나온 광팔이의 마법진 두 개가 궁수의 화살에 날개를 달아 주었다.
귀가 아플 정도로 격렬한 격돌에 종지부를 찍기 위해 궁수가 더욱 이를 악물었다.
“부캐는 이겨야지!”
“크하하하하! 그래! 이래야 대적자답지!”
몰려오는 어둠을 가르며 나아간 궁수의 화살이 결국에 가시를 집어삼켰다. 철웅성같은 어둠을 뚫고 결국에는 놈에게 죽음을 선사했다.
화아악!
얼마나 빛이 강렬했는지 화살이 가시에게 박히자 거대한 빛기둥이 생성되었다.
가시는 빛에 타들어가듯 결국에는 가루가 되어 다리부터 사라지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고작 빙의한 것이기에 별 상관없는 듯 광소하며 궁수에게 외쳤다.
“크하하하하! 흥미롭구나! 좋다 좋아! 참을 수 없구나!”
뭐 저런 정신병자가 다 있지 하며 궁수는 중지를 들어 올렸다. 놈은 아무렇지도 않은 듯 계속해서 소리쳤다.
“나! 지고의 마제가 네놈을 호적수로 인정하마!”
“…….”
남은 것은 머리뿐임에도 그의 시끄러운 외침은 끊이지 않았다. 뭐라뭐라 소리를 지르기에 궁수 또한 짧게 대답했다.
“다음에는 본캐로 와라.”
“오만해! 그것마저도 마음에 드는구나!”
사라지기 직전, 그는 외쳤다.
‘지옥에서 보자.’라고.
***
며칠간 잠도 제대로 못 자고 몸을 혹사시킨 탓에 궁수는 병실에 누워 체력을 회복시키고 있었다.
“어휴 그러니까 누가 막 들어가래?”
“남자로서 구멍을 봤는데 참을 수…죄송합니다.”
“쯧, 나이를 뻘로 처먹었나.”
허가연은 병상에 누워있는 궁수를 노려보며 엉망으로 깎은 사과를 내려놓았다.
법사는 아삭아삭 사과 껍질을 먹으며 방긋 웃었다.
‘무슨 알보다 껍질에 살이 더 많냐….’
사과를 씹으며 궁수는 인터넷을 확인했다. 다행히도 지하에 넣은 마선줄은 파괴되지 않아 인터넷은 멀쩡히 작동됐다.
그 일 이후로 지구에 나타는 게이트의 수가 현저하게 줄었다.
첫 날에는 50프로가 그 다음 날에는 80프로가 지금에 달해서는 게이트를 보는 것이 힘들어졌다.
나오는 것도 고작 E급이나 D급 같은 하급 게이트가 전부다.
갑작스러운 기현상에 전문가들 또한 난리가 났다. 조사로 얻은 궁수의 협조를 토대로 데이터를 분석하며 매일을 철야로 지새웠다.
당장에 나온 결과는 마계가 벌크업을 하고 있다는 설이 가장 크다.
본격적인 침공을 위해 잠시 힘을 비축하고 있다는 것이다.
마계를 직접 다녀온 궁수도 그럴 것이라 생각했다.
궁수가 보아온 것들은 세발의 피에 불과하지만 분명 이 정도로 끝낼 놈이 아니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
“짜증나.”
“왜?”
옆에서 곯아떨어진 광팔이에게 이불을 덮어주며 궁수는 그녀의 말에 경청했다.
허가연은 불공평하다는 듯 혀를 차며 대답했다.
“우리는 맨날 침공만 당하고 들어가질 못하잖아.”
“흐음, 그렇긴 하다만.”
확실히, 그녀의 말이 틀린 것도 아니다. 그러나 마계에 다녀온 궁수는 눈을 내리며 대답했다.
그닥 좋은 기억도 아니기에 목소리는 기어들어가고 있었다.
“그닥 좋진 않을걸.”
“왜?”
“놈들 홈그라운드잖아. 절대 못 이겨.”
그걸 받아치기 위해 지구의 헌터들도 미친 듯이 매일을 단련에 쏟아붓고 있었다.
당장에 세계가 멸망할 지경이기에 국가도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혹시나 횡령같은 것을 걱정했지만 당장 다 죽을 위험에 처해있는데, 돈을 탐하는 미친놈은 다행이도 존재하지 않았다.
일부 상위 헌터들에게만 허용되던 무기나 스킬북들이 적성검사를 통해 적합 헌터들에게 풀리며, 전체적인 전력 수준이 크게 상승했다.
공방이나 마탑도 모든 장비나 교육들을 밤새서 가르쳤다.
유례없을 정도로 헌터계가 빠르게 발전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궁수는 승리를 단언할 수 없다는 것이 안타까울 지경이었다.
70억이 이를 악물고 노력해도 승리를 장담할 수 없다니.
‘뭐 그런 괴물이 다 있지.’
말도 안되는 불합리함에 궁수는 얼굴을 구기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뭐해?”
“오늘 퇴원하는 날이잖아.”
“벌써?”
“애초에 이틀차부터 다 회복됐어, 혹시 모르니까 더 있었던 거지.”
대전투를 치르고도 나흘 만에 회복을 마친 궁수의 회복력에 허가연이 피식 웃었다. 랭킹 1위가 괜히 랭킹 1위 겠는가.
마침 티아라에게서 온 연락도 잔뜩 쌓여있기에 궁수는 아랑곳하지 않고 그녀에게 전화를 걸었다.
띠리리리링!
일이 바쁜 탓인지 그녀는 한참을 걸려서야 궁수의 전화를 받았다. 피곤이 묻어나오는 목소리였다.
“여보세요?”
“어, 난데, 지금 바빠?”
“바쁘긴 한데, 너 몸은 괜찮아?”
“그럭저럭, 당장에 다 죽게 생겼는데 농땡이 피우긴 좀 그래서.”
“그래서 왜 전화했는데?”
그녀는 주변을 정리하며 의자에 앉아 전화를 이어나갔다. 허가연도 귀를 쫑긋 세우고 전화에 집중했다.
“뭐긴, 일해야지, 설마 세이비어가 놀고 있는 건 아니지?”
“지금도 힘들어 죽겠어, 끝나면 휴가라도 원없이 가던지 해야지 원.”
그녀는 자료를 정리하며 당장 처리해야 할 큼지막한 일들을 살폈다. 게이트의 수가 크게 줄었기 때문에 급한 일은 없었다.
굳이 하자면 헌터들의 양성 정도, 그러나 궁수에게 헌터 육성을 맡겼다간 일어날 참사가 걱정되어 말하지 않았다.
‘힐러가 지팡이 들고 팰 거 같아.’
그녀는 당장에 처리할 일보다는 가장 중요한 일을 말하고자 제일 안쪽의 붉은 서류를 꺼냈다.
“흐음, 야 너 마계 가본적 있다고 했지?”
“응, 가본적 있지?”
“어땠어?”
“음… 대단한 환영 인사를 받았지.”
다시 떠오르는 끔찍한 쇠사슬을 떠오르며 파르르 몸을 떨었다. 그런 궁수에게 티아라는 빙긋 웃으며 말했다.
“한번 더 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