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6화. 가시는 발라 드세요~
어두운 세계에서 태양이 떴다. 광팔이가 신나게 브레스를 쏘아대며 마왕성을 냅다 갈겨버렸다.
이제는 성은 둘째치고 폐허가 되어버린 곳에서 왕이 살 수 있을지조차 의문이었다.
“아들 이쯤이면 충분하지 않을까?”
“아이아! 조으아 더!”
광팔이는 브레스를 쏘느라 입을 벌리고 있어 제대로 발음하지 못하고 있었다.
이제 마왕은커녕 마왕성 자체의 명복을 빌어주길 잠시.
“어떤 정신 나간 놈이냐!”
화아아아아악!
응축된 어둠이 터져 나오며 궁수와 광팔이를 집어삼켰다. 이제는 어둠이 익숙해져 크게 당황하지도 않았다.
이럴 때일수록 적의 기척을 느껴야 하기에 궁수는 조용히 눈을 감았다.
‘어디냐.’
왼손에는 활을 오른손엔 화살을, 그거면 충분했다.
본진에서의 전투라 그런지 마왕들의 기운이 지구에서 상대했던 녀석보다 배는 거대했다.
‘12시.’
그와 동시에 빛을 머금은 화살이 어둠을 찢어발기며 날아갔다.
카앙!
“호오?”
분명 아무것도 보이지 않을텐데, 어렴풋이 느껴지는 기운만으로 위치를 특정해 정확히 급소를 노리고 화살을 발사했다.
멈춰있는 것도 아니고 움직이는 마왕을 상대로 말이다.
강대하다는 것은 그만큼 기운까지 거대하다는 것이다.
하다못해 마력이라도 갈무리하면 모르겠다만 놈은 그런 것도 하지 않았다.
‘그만큼 실력에 자신이 있다는 거지.’
그 오만함이 자신의 목을 조일지도 모른체 마왕은 계속해서 광팔이 주변을 날아다니며 호시탐탐 기회를 노렸다.
그러나 그는 한 가지를 간과하고 있었다.
먼저 이곳이 마계인 점.
언뜻 보면 마왕에게만 좋아 보이지만 다른 의미로는.
“아빠, 나 짜증나….”
“그래?”
성난 드래곤과 랭킹 1위가 마음 놓고 날뛸 수 있는 환경임을 뜻했다.
시야를 가린 건물도, 혹여나 있더라도 부숴버리면 그만이다.
파괴에 거리낌이 없고 죽음에는 가차 없다. 날카로운 손톱과 가공할 마력이 미처 날뛰기 시작했다.
화아아악!
신성력을 한껏 머금은 광팔이가 힘찬 드래곤 피어를 날렸다.
주변을 가리던 아지랑이같은 어둠이 일제히 날아가며 마왕의 모습이 훤히 드러났다.
“찾았다.”
고작 세글자의 말이 마왕에게는 너무나도 섬뜩하게 느껴졌다.
마왕의 모습은 파리의 날개를 가지고 주먹에는 날카로운 가시를 가진 근접 전투형 마왕이었다.
“이런 말도 안되는…!”
천궁을 흡수한 궁수는 마왕이 말을 다 끝내기도 전 화살을 밟고 순식간에 놈에게 돌진했다.
“왜 안돼?”
콰앙!
양손을 모은 궁수의 주먹이 놈의 머리통을 후려쳤다.
궁수라고 하기엔 너무나도 강렬한 근육이 가감없이 발휘되며 마왕이 지상으로 낙하했다.
그러나 궁수는 한번 더 화살을 밟고 떨어지는 마왕을 향해 돌격했다.
“치잇!”
“어딜!”
뒤늦게 마왕이 날개를 퍼덕이며 도망가려 하였으나 궁수의 화살이 놈의 날개에 꽂혔다.
순식간에 뒤를 잡은 궁수는 양쪽 날개를 잡고는 놈의 등을 짓밟았다.
“자, 잠깐!”
“여물어.”
우드득!
“끄아아아아악!”
인간으로 치자면 강제로 양 팔을 뽑아버리는 기분이려나.
한 치의 표정 변화도 없이 마왕의 양 날개를 찢어버린 궁수는 떨어지는 마왕을 바라보며 화살 한 발을 꺼냈다.
20 미터가 넘어가는 거대한 화살이 신성력을 머금어 새하얀 힘을 발하고 있었다.
마왕의 얼굴에 절망이 떠오르고 궁수의 입가에는 환호가 떠올랐다.
“죽음은 편히 보내주마.”
“응? 이미 반 죽여놓고?”
“시끄러 아들.”
날개는 물론 온몸이 만신창이가 된 마왕이 궁수의 화살을 피하기란 불가능했다.
기다란 화살은 그대로 마왕을 관통하여 땅에 처박았다.
거대한 꼬챙이에 마왕이 꿰어져 있었다.
장기가 모두 파열되어 초록빛 피가 뚝뚝 흐르고 있었으나 궁수는 개의치 않았다.
오히려 성큼 다가가 놈의 머리통을 부여잡았다.
“눈 떠 아직 살아있는 거 알고 있어.”
“크흐흐흐…. 마지막까지 용서 없군.”
“닥치고, 묻는 말에만 대답해.”
마왕은 단도직입적인 궁수의 태도에 너털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내가 왜?”
거의 죽은 것이나 다름없음에도 오만하기 짝이 없는 말투에 궁수는 싱긋 웃으며 말했다.
“대답하지 않으면 머리통을 터트릴 거거든.”
“하, 어차피 곧 죽은 목숨!”
빠악!
“크허어억!”
굳은 살이 박힌 손이 마왕의 뺨을 후려갈겼다.
“묻는.”
퍽!
“말에만.”
퍼억!
“대답.”
상대가 마인이기에 궁수의 폭력은 거침없었다.
불쌍할 법도 하지만 당장에 지구를 침범하는 개자식에게 배풀 아량 따위 이만큼도 없었다.
결국, 구타를 버티다 못한 마왕은,
뿌드득!
“어?”
“내 스리….”
혀를 깨물었다. 다량의 피가 줄줄 흘러나오며 그의 몸이 축 늘어졌다.
“쯧, 죽었네.”
변방의 마왕따위 가볍게 접어버린 궁수는 서둘러 마왕성 내부로 들어갔다.
“아들! 게이트 안 느껴져?”
“느껴져! 아래!”
“어디?”
“여기!”
“오케이!”
콰아아앙! 쩌억!
궁수의 주먹이 마왕성 바닥을 후려쳤다.
신성력 폭격에 약해질 대로 약해진 마왕성 바닥에 쩌억 금이 가며 지하로 향하는 길이 모습을 드러내었다.
“바로 가자! 시간 없어!”
과연 지하 감옥을 지나 그 끝에 다가가니 검은빛 게이트가 일렁이고 있었다.
확인할 시간따위 조금도 없다. 촌각을 다투는 지금 그저 지구로 향하는 게이트이길 빌며 궁수는 몸을 던졌다.
바깥으로 느껴지는 매쾌한 매연 향, 고향인 서울의 매연이 틀림없었다.
광팔이와 함께 게이트 밖을 빠져나와 궁수가 눈을 떴을때는.
“어?”
높게 솟은 건물들은 사라지고 피와 시체만이 낭자하는 끔찍한 전쟁터가 되어버린 서울 뿐이었다.
“과, 광팔아!”
“…응 아빠.”
광팔이도 뭔가 심상치 않은 상황임을 눈치채고 서둘러 드래곤으로 변했다.
그 위에 탄 궁수는 곧바로 휴대폰으로 멤버들에게 전화했다.
[통화가 연결되지 않아 음성 사서함으로….]
“왜 안받아!”
[통화가 연결되지 않아….]
[통화가 연결….]
[통화가….]
셈도, 힐도 은우도 아무도 전화를 받지 않았다. 궁수의 안색이 급속도로 굳기 시작했다.
이전 파도형 게이트에서의 참사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
처음에는 파도형 게이트라고 생각했다. 그렇기에 제법 많은 헌터들이 모여 전투 준비를 하였다.
600이 넘는 헌터들은 전투 시작과 동시에 최선을 다했다.
그리고 그 결과 단 100명의 헌터만이 살아남았다. 끝없는 어둠의 군세가 서울을 밀고 들어오고 있었다.
이전 파도와는 차원이 다른 강함, 칠흑의 갑주를 입고 절도를 맞춰 전진하는 그 모습은 정말 기사단스러웠다.
다만 놈들은 민간인과 헌터를 구분하지 않고 학살할 뿐이지만.
셈은 그 중에서도 가장 앞에 서서 전선을 지키고 있었다.
다행히도 멤버들은 모두 후퇴시킬 수 있었다. 고삐 풀린 법사가 미친 듯이 광역기를 난사했으나 효과는 미비했다.
그야말로 차원이 다른 어둠.
메테오가 떨어지면 적의 대장이 운석을 갈라버렸다.
번개나 바람같은 속성 마법류 공격은 어둠에 가려 제대로 먹히지도 않았다.
지금 남은 것은 근접 전투원 10명이 고작이었다.
아군을 살리기 위해 남은 이들이었지만, 정작 자신들은 살아갈 마음이 없었다.
정확히는 살아갈 수가 없었다.
탕탕!
“마지막까지 버텨! 조금이라도 시간을 버는 거다!”
셈의 손에는 더 이상 대방패가 아닌 얇고 긴 태도가 들려있었다. 길이만 2미터가 넘는 검이었다.
하늘은 추적추적 어둠이 깔고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날씨마저 적들의 편이란 말인가. 한 손으로 착검을 마친 셈은 소리를 지르며 적에게 돌진했다.
“칼 맞고 뒤지기 딱 좋은 날이군!”
헌터다운 우악스러운 말투였다. 그의 몸 위로 흘러나오는 마력이 울부짖었다.
헌터들의 수가 형편없이 적었으나 겁먹은 헌터는 한명도 없었다.
셈이 먼저 적들을 향해 도약했다.
카앙!
거대한 태도를 휘둘러 주변의 적들을 밀어내었다.
“칫, 더럽게 단단하군.”
가볍게 주변의 적들을 베어버리려 했던 셈의 계획과는 조금 달랐지만 별 상관없었다.
인류의 희망인 궁수가 자리를 비운 이상, 쉽게 갈 수 있을 거라 생각하지 않았다.
그렇기에 셈은 더욱 생명을 태워 검을 휘둘렀다.
푸욱!
“끄아아아악!”
서걱!
“크허억!”
주변의 동료들이 하나 둘 쓰러져나가는 것이 보였다.
이쯤되면 도망칠 만도 하지만 헌터들은 오히려 더욱 악바리로 버텨가며 적들의 진군을 막았다.
쿠콰콰콰!
마력을 둘러 적들을 밀어낸 셈이 검을 땅에 꽂으며 소리쳤다.
“이 너머로는 아무도 못 지나간다!”
마치 장판파의 장비처럼 호기로운 외침이었으나, 얇디얇은 한 줄기 빛으로는 어둠을 막아낼 수 없었다.
셈이 죽음을 각오한 그 때.
“저거 저거 또 신파 찍고 있네.”
어디선가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익숙하고도 어째서인지 마음이 편안해지는 목소리였다.
“크흐흐 내가 죽을때가 됐나보군, 환청이 들리는걸 보니.”
분명 궁수의 목소리였으나 게이트 안으로 들어간 놈이 이렇게 빨리 나올리 없다.
본진에 처들어가 멀쩡하게 살아나오는 게 말이나 되는…
“비켜 대머리!”
“응!? 진짜 궁수냐?!”
“그럼 가짜냐?”
거대한 드래곤의 등장에 적들의 진군이 멈췄다.
광팔이와 함께 땅으로 내려온 궁수가 머리 위로 다섯 발의 거대한 화살을 띄우며 소리쳤다.
“이 뒤는 통행 금지다.”
“멋진 건 자기가 하고 싶었군.”
“그럼 죽던가.”
“싸가지 하고는.”
싹수라고는 프로틴 말아 먹은 태도를 보니 정말로 궁수인 모양이다.
몇 남은 근거리 헌터들도 놈들이 드래곤과 궁수에 시선을 집중한 사이 무사히 도망쳐 나왔다.
교착상태가 이어지길 잠시, 적들의 사이로 대장으로 보이는 녀석이 걸어 나왔다.
다른 쩌리들과는 차원이 다른 짙은 어둠에, 갑주를 입은 심지어 손에는 마검을 들고 있었다.
“오랜 만이군.”
다름 아닌 첫 가시였다. 그는 궁수에게 아는 척하며 앞으로 걸어 나왔다.
그것도 보란 듯이 살기를 질질 흘리며 말이다.
가소로운 도발에 궁수는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니 동료 쩔드라?”
“흐음, 도구를 동료라 생각하진 않아서 말이다.”
궁수를 향해 검을 치켜든 첫 가시가 소리쳤다.
“대장전을 제안한다.”
“허? 내가 왜?”
이 정도의 전력 차이임에도 불구하고 적은 궁수에게 대장전을 제안했다. 괜시리 아군의 피해가 날까 내건 도전이었다.
“내가 이기면 나궁수, 네놈은 내 아래로 들어와라.”
“….”
궁수의 침묵에 자신의 말을 듣고 있다 생각했는지 그는 마저 말을 이었다.
“대신 내가 진다면, 깔끔하게 자결하고 부하들 또한 물리겠다.”
“흐음….”
지금 상황만 보자면 대장전으로 피해를 최소화 할 수 있다.
그러나 지금 궁수는 마계를 탈출하는 과정에서 상당히 힘을 썼다.
게다가 저 놈이 부하를 물린다 한들 또 다시 지휘관만 바뀌어 몰려올 가능성이 컸다.
거기까지 생각한 궁수는 땅을 밟고 튀어 올라 광팔이의 머리에 걸터앉았다. 다리를 꼬고 적들을 내려다보며 외쳤다.
“싫은데?”
그런 궁수의 손에는 중지가 우뚝 올라와 있었다.
광팔이 또한 호쾌한 아버지가 마음에 드는 듯 피어를 날리며 펄럭 날아올랐다.
크와앙. 하얀 드래곤이 울부짖었다.
크하하하하! 미친 궁수가 짖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