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근접병기 활-145화 (145/172)

◈ 145화. 마왕성(이었던 것).

“뭐야 갑자기 왜 닫혀!”

“궁수는! 궁수는 나왔어?!”

“미친 도대체 일이 어떻게 풀리는 거야!”

일이 풀리는 것인지 오히려 더욱 꼬이는 것인지조차 알 수 없었다. 게이트는 닫혔으나, 지구 최대의 전력이 사라졌다.

단기적으로는 이득이나, 장기적으로는 엄청난 불이익이었다.

궁수의 압도적인 무력 아래에서 비호받던 헌터들의 얼굴에 절망이 피어났다.

“야 나궁수! 장난치지 말고 빨리 나오라고!”

“놔! 내가 찾으러 갈 거야! 놓으라고!”

“안된다는 것 알면서 그래!”

특히나 프로틴 프로 동료들은 미쳐 돌아버릴 지경이었다.

길드의 중추는 물론이고 가족같이 지내던 동료가 사라졌으니 말이다.

이를 악물고 앞을 막아서는 헌터들을 비집어가며 궁수의 흔적을 찾으려 했으나 게이트가 닫힌 곳은 애석하리만큼 텅 비어있었다.

“궁수…어디?”

슬픔이 묻어나오는 법사의 애처로운 외침만이 남아있을 뿐이었다.

***

어지러운 세계 속. 하늘과 땅 모든 곳에 어둠이 도사리는 절망의 땅.

그곳에 갇힌 궁수는 혀를 차고 나무 아래로 들어가 몸을 숨겼다.

“빌어먹을….”

농담으로라도 상황은 좋지 않았다. 당장에 파도를 막은 것은 이득이지만 장기적으로 볼 때 손해가 너무나도 컸다.

지구 최대 전력인 자신이 빠졌으니 어떤 일이 벌어질지 벌써 눈앞이 컴컴했다.

‘최대한 빨리 이곳에서 나가야 한다.’

“아빠….”

“쉿, 마력 갈무리해.”

불안에 떠는 광팔이가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마력의 잔향을 뿌려대었다.

자칫 방금 전의 살벌한 쇠사슬이 날아올 수도 있기에 궁수는 마력을 꺾고 숨을 죽였다.

“후우….”

시간이 조금 지나고 심신이 안정되자 궁수는 천궁에게 물었다.

“도대체 저게 뭐야? 공격도 안 먹히고.”

속도에 관해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광팔이를 따라올 정도, 평범한 상태라면 도망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소리다.

- 저건…. 흐음.

“뭐길래 그렇게 뜸을 들여.”

- 내가 기억하기론 그의 여덟 사슬 중 한 개다.

“여덟 사슬? 그게 뭔데?”

- 드넓은 마계를 효율적으로 지배하기 위해 만들어낸 기구지.

“효율 적이라….”

하긴, 설사 다른 마왕이 반기를 든다 하더라도 저 정도로 압도적인 위력이라면 성에 오기도 전에 순살시킬 수 있을 것이다.

파괴도 저지도 불가능한 초광역 소환기라니.

“사기잖아.”

- 놈은 규격 외의 존재니 말이다. 네 얕은 상식선에 두지 마라.

“칫.”

궁수만큼 ‘규격’이라는 말이 어울리지 않는 사람도 없었지만 놈은 더더욱 그러했다.

규격이라는 울타리에 놈을 가두는 오만한 생각 따위 일찌감치 접어야 했다.

“저 정도면 그냥 침공해도 되는거 아닌가.”

설사 마계가 아니라고 하더라도 지구에 있는 놈들은 가뿐하게 쓸어버릴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천궁은 그럴 순 없다며 말했다.

- 세계선에 구멍을 뚫는다는 것이 쉬울 것 같으냐.

“존나 쉽게 뚫던데?”

- 다 저놈이 리스크를 감당하고 있기 때문에 쉽게 뚫는거다. 절대 쉬이 볼 것이 아니야.

“흐으음.”

그렇다면 저 정신나간 새끼는 그 리스크를 감당하면서 이런 미친 공격을 해댄다는 소리다.

궁수조차도 진저리가 날 수준의 강력함에 혀를 내둘렀다.

“당장은 무리겠네.”

이곳은 지구도 아니고 마계다. 지구에서도 상대하기 버거운 상대를 홈그라운드에서 상대할 미친 생각은 없었다.

“그러면 놈에게 들키지 않고 지구로 돌아가야 한다는 건데….”

궁수가 게이트를 열줄 아는것도 아닌지라 도통 감이 잡히지 않았다.

자신은 게이트를 열 수 없음에 침울해하며 궁수는 머리를 굴렸다.

그러나 아무리 머리를 굴린들 마법사도 아니고 궁수가 뾰족한 방법을 떠올릴 수 있을 리 없었다.

“어떡한담….”

답없는 문제에 궁수가 끙끙 앓고 있자 천궁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 이건 내 추측이다만.

“음? 뭔데.”

- 추측이다. 과신하지는 말고 들어.

“빨리 말이나 해, 한시가 급하니까.”

궁수의 압박에 천궁은 어쩔 수 없이 입을 열었다. 영 내키지 않아 하면서도 방법이 없으니 어쩔 수 없었다.

- 아마 마왕성마다 지구로 향하는 게이트가 있을거다.

“게이트? 걔네가 왜?”

- 마왕성이 지구에 소환된 것만봐도 모르겠느냐?

“그건 그놈이 통째로 이동시킨거 아니야?”

- 일게 마왕에게 그런 힘은 없다. 최상위 3위권 마왕이면 몰라도.

“흐으음, 그래서 네 추측은 마왕성마다 게이트가 있다?”

- 그렇다.

평소라면 이런 불확실한 정보에 움직이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비상사태이기 때문에 할 수 있는 것은 뭐든 해야만 했다.

- 아, 마계에서는 놈들의 힘이 배로 강해지니 주의하도록.

“흐음, 그러면 광팔이도 강해지나?”

- 흐음? 광팔이? 흐음, 마물이니 그럴 수도….

마계는 지구와 비교해서 마력의 농도가 배는 더 높다. 그렇기에 광팔이의 힘도 증가할 수 있을 것이다.

“어때 광팔아?”

“으으으음….”

광팔이는 미묘한 듯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이내 눈을 감았다. 그리고 한 10초쯤 지나자 고개를 끄덕였다.

“아빠!”

활기찬 그 표정에 궁수는 역시나!라고 외치며 광팔이의 손을 꽉 잡았다.

해맑게 웃는 광팔이는 그런 궁수를 바라보며 말했다.

“모르겠어!”

“…어?”

“강해진 것도 같고…. 아닌 것도 같고….”

“아, 으응, 그렇구나.”

하긴, 나이로만 따지면 성룡은 커녕 해츨링에도 한참 못 미치는 나이다.

힘 하나만큼은 성룡과 비견될 정도로 강력하지만 말이다.

여러 포션을 마시며 체력을 회복한 궁수는 뚜두둑 뚜두둑 몸을 풀며 다시 광팔이 옆에 섰다.

잠시 그루터기에 기대어 체력을 보충하니 어느 정도 다시 상태가 회복되었다.

‘확실히, 마력의 회복이 배는 빠르다.’

지구에서 마력 자연 회복의 속도와는 비교도 안될 정도로 궁수의 마력이 빠르게 차올랐다.

하지만 마냥 좋아할 수도 없는 것이 그것은 곧 적들도 별반 다르지 않음을 뜻했다.

그렇다고 이대로 손가락만 빨고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인지라 자리를 털고 일어섰다.

“광팔아, 뭐 느껴지는거 없어?”

“응?”

“뭐, 게이트라거나 그런거.”

“으으음, 으응….”

그 말과 동시에 광팔이가 눈을 감더니 조용히 마력을 퍼트렸다.

드래곤의 날카로운 마력 감지 범위는 인간인 궁수는 느낄수 없는 것들을 감지할 수 있을 것이다.

1분쯤 지나자 탐사를 완료한 광팔이가 눈을 번쩍 떴다.

“저쪽!”

“어디? 저기?”

“응! 저쪽에서 뭔가 게이트 같은게 느껴져!”

광팔이는 이번에야 말로 자신 있는 듯 세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혹시나 쇠사슬이 다시 기습을 할 수도 있으니 광팔이는 타고갈 수 없었다.

그렇기에 궁수도 광팔이에게 위치를 물어본 것이다. 위치도 알아냈겠다 궁수는 무기를 점검하며 설명을 시작했다.

사실 설명이라 할 것도 없었다. 순식간에 마왕성을 함락하고 게이트로 도망친다!

간단하지만 난이도 있는 미션에 천궁이 한숨을 푹 쉬었다.

- 그렇게 간단히 되면 좋으련만….

***

나무 사이에 은폐하며 숲을 쏘다니다 보니 어느새 궁수와 광팔이는 마왕성 코앞까지 도착했다.

이 앞으로는 나무가 자라나 있지 않아 나가면 순식간에 들킬 것이다.

더군다나 다른 동료도 없고 이곳은 놈들의 본진이다. 그렇기에 궁수는 더더욱 심혈을 기울여….

펄럭!

“어?”

그렇다.

새하얀 드래곤이 ‘크와아아’ 울었다.

또르륵

그리고 궁수도 울었다.

“야 이 정신 나간 놈아!”

“아빠 뭐해! 빨리 타!”

“야이씨 너 나중에 부모 데려와!”

“응? 아빤데?”

자신이 뭘 잘못했는지도 모른 체 광팔이는 재빨리 궁수를 등에 업었다.

졸지에 전면전을 펼치게 된 궁수는 침음을 삼키며 날아올랐다.

칠흑의 성 앞에 궁수와 광팔이가 모습을 드러내었다.

궁수는 욕지거리가 목 끝까지 차올랐지만 상대가 광팔이었기에 꾹 참았다.

아마 상대가 셈이나 힐이었다면 쌍욕 종합세트를 배불리 먹여줬을 것이다.

“내가 진짜 너 때문에 재 명에 못 산다!”

“아빠 간다!”

경쾌한 목소리와는 달리 광팔이의 입에 모아진 브레스는 평소의 배는 살벌했다.

- 강해졌군.

“그냥 강해진 수준이 아닌 것 같은데….”

매번 광팔이의 등에 타 있는 궁수는 알 수 있었다.

저 브레스가 평소와 같은 브레스인지 혹은 그 수준이 다른 브레스인지 말이다.

그리고 지금 궁수의 눈에 들어 와있는 브레스는.

쿠콰콰콰!

“게, 게이트는 부수지 마….”

명백히 평소의 힘을 웃도는 위력이었다. 마왕은커녕 성이 날아가지 않을까 걱정이 되었다.

광팔이의 입에서 터져나온 섬광이 서서히 잦아들고 나서야 겨우 성의 모습을 제대로 볼 수 있었다.

마물의 최고위 포식자 드래곤, 게중에서도 강력한 힘을 가진 광팔이가 만든 참상은 퍽 잔혹했다.

배리어는 찢어진지 오래고 성벽은 가루가 되어버렸다.

- 그렇지! 뭘 할 수 있는 시간 자체를 주면 안돼!

천궁의 말은 들리지 않지만 광팔이는 공격이 먹히자 더욱 신났다.

쇠사슬의 분풀이라도 하듯 이번에는 수십 개의 마법진들이 마왕성 주변을 감쌌다.

첫 브레스 만으로도 이미 성은 반파된 상태였으나, 거기에 추가로 신성 탄환을 무자비하게 쏘아내었다.

어둠으로 뒤덮여있던 성이 오죽하면 신성하게 보일 지경이었다.

신난 광팔이를 뒤로한 궁수는 이 진풍경을 바라보며 짧게 말했다.

“집에 갈 수 있을까….”

본의 아니게 마왕성을 걱정하는 궁수였다.

***

“자, 이제 네 차례다.”

수정구 너머로 압도적인 마력을 피워내고 있는 ‘그’가 첫 가시에게 말했다.

“그렇게 네놈이 눈엣가시처럼 생각하던 놈도 사라졌다. 이제 할 수 있겠지?”

“…예.”

가시 뒤로는 수십만의 마족 병사들이 오와 열을 맞춰 진격 명령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가시 본인도 자신의 검과 갑주를 착용하고 전쟁 준비를 마친 상태였다.

“이번에는, 실망시키지 말도록.”

“…예 아버지.”

짤막한 대화를 끝으로 더 이상 대답은 들려오지 않았다.

부자간의 대화라고는 퍽 메말랐으나 가시는 오히려 그것이 더 편했다.

둘의 사이는 아버지, 라기보다는 대하기 불편한 직장상사라는 느낌이 더 강했다.

수정구를 인벤토리에 넣은 가시는 어째서인지 내키지 않는 얼굴로 유령마를 탔다.

나약한 주인은 허락하지 않는 사나운 유령마가 온순하게 자신의 등을 내어주었다.

무구는 완벽하고 병사들의 수준도 제법 높다. 이번에야말로 저 빌어먹을 헌터들을 쓸어버릴 철호의 기회다.

최고 전력인 나궁수는 사라지고 나머지는 리더가 사라진 오합지졸들뿐.

더군다나 나궁수는 단순히 최고 전력일 뿐만 아니라 헌터들의 정신적 지주 그 자체였다.

헌터들에게 있어 궁수란 아무리 불가능하고 힘든 일이라도 ‘나궁수라면?’이라는 막연한 희망을 가지게 만드는 존재였다.

하지만 그런 궁수가 사라졌으니 지금 헌터계는 전대미문의 비상사태를 맞았다.

처음 발생했던 호주의 파도형 게이트와는 비교도 안될, 전 지구적 비상사태에 각국의 헌터협회장들이 분주하게 회의를 하였다.

하지만 아무리 노력해도 나궁수를 대체할만한 헌터는 나오지 않았다.

오죽하면 차라리 범죄자 헌터에게 마검을 주고 적들 사이에 끼워 일부로 폭주시키자는 의견까지 나올 지경이었다.

그런 사람들의 아비규환을 바라보며 가시는 나지막하게 말했다.

“이렇게 된 거 네놈의 고향부터 철저하게 짖밟아주마.”

“전군 출격.”

게이트 너머는 궁수의 고향인 대한민국, 그중에서도 서울의 모습이 펼쳐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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