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근접병기 활-144화 (144/172)

◈ 144화. 여기가…어디요?

순간 전장에 정적이 흘렀다.

적이 숨통을 조여 온다면 이쪽도 적의 목을 조일 뿐이다.

바보같이 당하기만 하기에는 죽어나간 아군의 수가 너무나도 많았다.

“아빠.”

“그래.”

궁수의 앞에 광팔이가 준비한 마법진이 나타났다. 세 겹으로 이루어진 마법진은 궁수의 위력을 끌어올리기 위한 도구였다.

활은 존재치 않으나, 자신의 앞에 화살을 올리고 보이지 않는 시위를 당겼다.

진지함과 거리가 먼 궁수였지만 미증유의 사태에서도 장난스럽게 대처할 수는 없었다.

자신의 실수로 수백, 수천의 아군이 죽어 나간다고 생각하니 날카로워질 수밖에 없었다.

전이면 몰라도 지금은 너무나도 사건의 스케일이 커지다보니 당연한 일이었다.

자신이 살아남기 위해서, 가족이나 다른 동료들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말이다.

금빛으로 빛나는 화살에서 악을 멸하는 창대한 기운이 흘러나왔다.

그 모습이 오죽 신성하면 양손을 모으고 기도하는 헌터까지 나올 정도였다.

어느새 켜진 궁수의 방송에서도 하나같이 탄성이 터지고 있었다.

전투의 기록이 아닌 ‘헌터들이 지키니 걱정하지 마라’라는 의미 또한 담겨있었다.

[궁렐루야….]

[궁멘!]

[궁세음보살.]

[궁라후 궁크바르.]

ㄴ 어허 그거 아니야.

ㄴ 얘도 반 테러범인데 맞지 않냐?

ㄴ 그런가?

ㄴ 그런가? 같은 소리하네 ㅋㅋㅋㅋㅋ

“트루 스나이핑.”

마력을 일으켜 적의 위치를 확인했다. 곧바로 약점이 포착되었다.

아직 살아있다는 증거였다. 궁수 역시 고작 한 발로 죽일 거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손끝에서 만들어진 빛이 마법진을 통과하여 더욱 크기를 키웠다.

고결하고 고귀한 화살은 아군에겐 성스럽게 적에겐 죽음의 공포를 선사했다.

날아간 화살은 선명한 광선을 그리며 적에게 적중했다.

결과는 당연히 적중, 미리 놈의 다리에 화살을 맞췄기 때문에 당연한 결과였다.

“움직여도 맞췄겠지만.”

표적이 완전히 사라졌다. 이는 곧 적의 사망을 뜻했다.

한숨 돌렸다는 뜻이리라. 게이트는 불안하게 일렁일 뿐 다른 괴물들을 뱉어내진 않았다.

궁수는 본능적으로 깨달았다. 때는 지금이라는 걸.

적들이 게이트 안에서 준비하기 전 먼저 쳐들어가 개 박살을 낸다. 그것도 단신으로 말이다.

오만하고 무식한 방법이었지만 그렇기에 적이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적이 결코 읽을 수 없는 공격은 허를 찔러 큰 틈을 만들 수 있으리라.

게이트에 돌입하기 직전 궁수는 헌터들에게 소리쳤다.

“전 게이트로 들어갑니다! 혹시나 튀어나온 놈들이 있다면 처리 부탁해요!”

“뭐? 게이트로 들어간다니 그게 무슨 소리야?”

한가롭게 구구절절 설명할 시간은 없었다. 궁수는 한쪽 무릎을 꿇고 광팔이의 머리에 손을 대었다.

“가는 거야 아빠?”

“그래, 저 새끼들 부모가 누군지 가정방문 좀 해야겠다.”

“흐음, 그렇구나.”

궁수와 광팔이의 몸이 새하얀 마력으로 둘러싸였다. 게이트로 돌입하기 직전 광팔이가 작게 속삭였다.

“재밌겠다.”

전투광인 궁수를 닮아서일까, 적진 한 가운데로 들어가는 그 얼굴에서는 일말의 두려움도 느껴지지 않았다.

“파도형 게이트는 못 들어가는 거 알잖아!”

“미쳤어!? 말이 되는 소리를 해!”

“야! 개소리 말고 뒤로 빼! 이대로도 충분하잖아!”

동료들이 이를 막았으나 이미 궁수는 절반쯤 게이트 안으로 들어온 후였다.

***

눈을 감았다 뜨니 과연 주변이 완전히 바뀌었다.

푸른 하늘과 선선한 바람은 사라지고 칠흑의 세계가 펼쳐졌다.

땅은 있으나 하나같이 메말라 갈라지고 난리도 아니었다. 높게 떠있는 두 개의 달이 지상을 비추고 있었다.

한 개는 피처럼 붉은 다른 한 개는 거대한 눈이 달린 달이었다.

- 쯧, 다시 봐도 거지 같은 곳이군.

“와본 적 있어?”

- …실언이었다.

“쯧, 나중에 말해.”

신성력이 많다 못해 흘러넘치는 궁수와 광팔이는 게이트에 들어오고 1초도 안되어 수많은 적들의 표적이 되었다.

지상에서는 마물들이 섬뜩한 비명 소리를 내며 하늘을 바라보며 포효하고 있었다.

“광팔아.”

“응 아빠.”

말도 필요 없다는 듯 이미 광팔이 주변에는 적을 막아내는 배리어가 펼쳐져 있었다.

보기에는 투명했지만 느껴지는 기운은 어떤 마물이 이걸 뚫을 수 있을까? 라는 의구심이 들 정도였다.

성룡 그 위에 탄 인간 한명.

드래곤이 거슬리긴 하지만 이 정도의 군세라면 불가능할 것도 없다.

장로급 드래곤이 아닌, 궁수가 키운 드래곤이 아니라면 말이다.

궁수 위로 다섯 발의 기다란 화살이 슬그머니 나타났다.

칠흑의 세계에서 빛을 발한다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 궁수는 잘 모른다.

그렇기에 더더욱 대범하게 적들을 배척하는 것이다. 적들의 수는 눈으로만 봐도 주변을 가득 채웠다.

심지어 아무렇게나 구성된 적들도 아니고 고도의 훈련을 받은 적들이다.

어둠으로 빚어진 적들에게 빛이란 몹시 위협적이어서 곧바로 응징이 날아왔다.

하지만 워낙에 고도가 높기도 했고 고작 저 정도의 얄팍한 공격은 광팔이의 방어막을 뚫지 못했다.

이중 삼중을 넘어 스무 겹이 넘어가는 고도의 배리어에 광팔이는 가소롭다는 듯 코웃음을 쳤다.

콰앙!

찬란한 5발의 화살이 오발 없이 적들 사이에 박혔다.

“아침 해가 떴습니다. 이 새끼야.”

신성력이 폭주한다.

선한 자에게는 한없이 따뜻한 기운이 적에게는 한없이 서늘한 기운으로 돌변했다.

이 지독한 이중성에 적 스켈레톤은 쩌억 입을 벌렸다.

덜그럭 툭!

턱뼈가 떨어졌다.

다시 주울 필요는 없었다. 땅에 떨어진 뼈를 포함하여 신성이 이를 집어삼켰으니까.

어둠에 빛을 칠하며 부정을 지워가는 신성은 압도적이어서 정말로 해가 뜬 게 아닐까 순간 착각할 정도였다.

어둠에 살아가는 이들에게 있어 보는 것만으로 눈이 멀어버릴 공격이었다.

바로 옆에서 핵폭탄이 터진 기분일까. 신성력이 사그라지며 적들 사이에 빈 공간이 나타났다.

뚫린 공간에도 남은 신성력이 타오르며 계속해서 적들의 목숨을 깎아내렸다.

망자의 목숨을 깎아 궁수에게 경험치로 바뀌어 들어왔다.

차오르는 경험치를 바라보며 궁수는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적은 많고 경험치는 더 많다.

그렇다면 할 일은 간단하지 않은가?

“아빠! 나도 할래!”

“방어막 유지할 수 있겠어?”

“응!”

“그럼 해봐.”

막을 이유가 없다. 어떻게든 적들의 수만 줄이면 되기에 대단위 마법은 오히려 환영이다.

‘좀 큰데?’

법사를 웃도는 크기의 순백색 마법진이 적들의 아래에 깔렸다.

캐스팅할 필요도 없이 광팔이는 유동적으로 마력을 움직여가며 스킬을 피워내었다.

- 허어?

마법진이 수축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주변에 마물들 또한 마법진에 끌려 한 대 모이기 시작했다.

공중에 떠올라 일 점에 모인 적들은 온몸이 구겨지며 거대한 원을 이루었다.

그리고 그 원 안에 있는 아주 자그마한 흰색 점이 존재감을 드러내었다.

화아아악!

폭발이 아닌 서서히 몸을 키워나가며 조용히 마물들을 집어삼켰다.

괴물들은 노성을 지르며 어떻게든 벗어나려 했으나 드래곤의 권능이 이를 허락지 않았다.

태양이 적색 초거성을 하면 이렇게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일순간 들었다.

마물들은 어떻게든 신성으로부터 도망치기 위해 발을 돌렸으나 자신을 지키기 위해 만들어진 무거운 중갑이 이를 허락하지 않았다.

주변의 모든 마물들이 신성력에 삼켜졌다.

박수가 나올 정도로 통쾌한 장면에 궁수는 만족스러운 듯 웃었다.

“끝이야?”

“이제 시작이야!”

한계까지 크기를 키운 신성력은 이번에는 다시 그 크기를 줄였다.

다시 일 점으로 돌아가려는 듯 마물들의 시체를 녹여버리며 크기를 줄였다.

한계까지 줄인 걸까, 이번에는 야구공만한 크기의 점이 만들어졌다.

괴물들은 호시탐탐 이를 노려보며 거리를 벌렸다. 모두 쓸모없는 행동이었다.

“빅뱅!”

태초의 대폭발이라고 하던가.

우주를 구성할 정도의 위대한 폭발의 이름을 언급하다니, 오만하기 그지없었으나 그 위력은 오만이 아닌 5만의 적을 쓸어버렸다.

삐이이이이-

정말로 그 폭발은 궁수조차도 숨을 죽일 정도였으니까.

‘인간’인 궁수가 보기에는 숨이 멎을 정도로 압도적인 공격이었으니까.

“후!”

주변이 깨끗하게 정리가 됐다. 적들에게 적지 않은 피해를 줬다는 만족감에 궁수의 입꼬리가 슬며시 올라갔다.

그것도 잠시.

“아빠!”

“이런!?”

저 멀리서.

거리를 체감하자면 궁수조차 알 수 없을 정도로 먼 곳에서 족히 수백 킬로미터는 떨어진 곳에서, 어둠을 잉태한 쇠사슬이 날아왔다.

콰앙!

광팔이가 간신히 몸을 비틀어 공격을 피했다. 둘을 지키던 수십 겹의 방어막이 너무나도 손쉽게 파괴되었다.

‘이런 미친.’

- 숨어라! 무조건 숨어라! 돌아가던지! 기척을 지우던지 해!

천궁 또한 뭔가 기척을 눈치 챘는지 다급하게 외쳤다. 평소의 중후한 목소리가 아닌 몹시 흥분한 목소리였다.

그러나 쇠사슬은 도망 따위 조금도 허락하지 않겠다는 듯 방향을 꺾어 광팔이를 따라왔다.

광팔이의 속도는 결코 느리지 않다. 오히려 마음만 먹으면 제트기보다 배는 빠르게 비행할 수 있다.

그런 광팔이가 상하좌우 기교를 펼침에도 쇠사슬은 끈질기게 꽁무니를 쫓아왔다.

“치이이잇!”

궁수의 눈이 빛나기 시작했다. 그 주변으로 열 발의 기다란 화살이 만들어졌다. 먼저 한 발을 발사했다.

콰앙!

혹시나 피하나 노심초사했으나 쇠사슬은 이를 피하지 않았다.

그러나 궁수의 화살을 맞았음에도 추격하는 속도는 조금도 느려지지 않았다.

궁수도 한발로 막을 수 있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그렇기에 더욱 많은 화살을 만들었다.

“아빠 어떡해!”

“지금처럼 최대한 빠르게 날아!”

“알았어!”

명백히 인간을 벗어난 수준의 신체 능력으로 균형을 잡으며 궁수는 쇠사슬에 화살을 난사했다.

A급은 고사하고 S급 마물조차 살아남기 힘든 힘이었다.

처음에는 얼려버리고자 빙결의 기운을 담았지만 조금도 먹히지 않았다.

먹히는 힘은 오직 신성력 뿐이라 단세포적인 선택지에 궁수는 탄식했다.

그 말은 곧 다른 속성이 제약이 있다는 것이니 말이다. 이를 악문 궁수는 팔뚝에 핏줄을 세워가며 화살을 발사했다.

‘일 점, 오직 한 점만 노린다.’

콰콰콰콰쾅!

상 하 좌 우 심지어는 한 바퀴 회전까지 하는 광팔이 위에서 궁수는 이를 악물고 버티며 화살을 난사했다.

과연, 이 정도로 공격을 쏟아 부으니 이제는 속도가 느려진 것이 눈에 보였다.

동시에 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동시에 이런 미친 공격을 한 놈이 누군지 소름이 돋았다.

‘첫 가시인가?’

아무것도 모르는 상황에서 궁수의 뒷목에 식은땀이 흘렀다.

휘익!

광팔이가 궤도를 바꾸어 하늘 위로 날아올랐다. 쇠사슬도 느릿하게 궤도를 바꾸어 추격해왔다.

마침 궁수의 손에도 화살이 한 발 들려있었다.

마력 포션을 비우며 궁수는 마지막 한 발에 신성력을 무식하게 때려 넣었다.

화살을 들고 있는 입장에서도 몹시 눈이 부셨으나 상관없다. 눈이 부시니 적의 쇠사슬도 부순다.

“그만 좀 따라와 스토커 새끼야!”

휘익!

“어어!?”

여태껏 회피하지 않던 쇠사슬이 처음으로 방향을 바꾸어 궁수의 화살을 피했다.

당황한 궁수를 비웃듯 쇠사슬은 갑작스레 속도를 높여 광팔이의 날개를 강탈했다.

“아아아악!”

“괜찮으니까 빨리 인간으로 폴리모프 해!”

광팔이의 날개에서 용혈이 흘렀다. 인간으로 모습을 바꾼 광팔이를 안아 든 궁수는 화살을 밟고 땅으로 내려왔다.

한 번 상처를 입힌 것으로 만족했는지 쇠사슬은 더 이상 궁수를 추격하지 않고 유유히 되돌아갔다.

“도대체 저게 뭐야?”

어떻게든 지구로 되돌아가야만 한다. 게이트 안에 정신 나간 괴물이 있다고 알려야 한다.

알려야만 하는데.

“이런 개같은….”

열려있던 게이트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져 검은 허공만이 남았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