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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접병기 활-143화 (143/172)

◈ 143화. 파도 참 쉽쥬?

리치킹이 쓰러진 이후 아프리카에 퍼진 마계화는 급속도로 정화되었다.

다만 아프리카를 뒤덮은 녹음까지 복구된 것은 아니어서 마계화가 사라진 곳에는 텅 빈 토지만이 덩그러니 남았다.

“후유증도 더럽게 심하네.”

기껏 적을 죽였더니 이번에는 땅이 개판이다.

죽이고 나서도 이 정도의 피해라니 마왕성의 힘이 얼마나 막강한지 다시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다른 쪽은 어때요?”

“그래도 어떻게 잘 막아내고 있어, 아프리카는 워낙에 헌터가 빈약하잖아.”

“그런가.”

한국의 높은 수준에 감사하며 다시 광팔이를 타고 날아올랐다.

***

“그래, 고작 이 정도로 시들시들해서는 곤란하지.”

마왕성 종합 선물세트를 보낸 그는 비릿한 미소를 지으며 수정구를 눈에 담았다.

헌터들이 목숨을 걸고 고군분투하며 적들을 막아내는 그 모습은 실로 가소로웠다.

어른의 관점에서 아이들의 놀이란 귀엽기 짝이 없으니까.

마계 전체를 지배하는 전능한 마제(魔帝)에게 있어 산하 마왕들이란 단순한 소모품에 지나지 않았다.

마왕을 바라는 자는 수없이 많고 그들은 하나같이 그만큼 강한 능력을 가지고 있다.

권능적이자 관음적인 그는 매마른 미소를 지으며 수정구를 조작했다.

“그래도 방심은 금물이지.”

수정구에는 궁수의 모습이 비추어지고 있었다.

단일 무력도 무력이지만 드래곤과 그 동료들이 함께하는 그 모습은 거룩한 마제의 흥미를 끌었다.

정확히는 마제의 흥미를 ‘사고 말았다.’

물론 그래봐야 귀찮은 날파리 정도에 지나지만 말이다.

“용사가 마왕을 죽이는 이야기는, 이제 너무 낡았지.”

그렇게 말하면서도 그는 자그마한 기대감을 품고 있었다.

마계를 평정한 이후 지고의 시간을 무료한 왕좌에 기대어 지내왔다.

종종 우매한 도전자들이 도전장을 던져왔으나 벌레는 밟아줄 뿐 자신과 대등한 수준의 강자는 찾을 수 없었다.

그도 조금은 기대하는 것이다.

저 인간이 자신에게 화살 끝을 들이밀 그 날을.

“설마 고작 이주 계획에서 이런 거물을 찾을 줄은.”

손끝에서 흘러나온 어둠이 조용히 수정구로 스며들었다.

***

가까스로 마왕성을 처리하는데 성공한 궁수 일행은 혹여나 다른 일이 터질까 서둘러 한국으로 돌아왔다.

적의 침공이 본격적으로 시작한 지금 한가하게 놀고 있을 시간은 없었다.

어떻게든 더 완벽하게 준비를 해 적들의 공격을 대비해야만 했다.

평소에는 게으른 궁수도 오늘은 10시간이 넘도록 시위를 당기고 있었다.

미터가 아닌 키로미터 단위에서도 간단히 표적의 중앙을 꿰뚫으며 궁수는 또다시 거리를 벌렸다.

“차라리 총을 배울걸.”

- 총은 낭만이 없잖느냐.

“낭만이 밥 먹여주냐.”

- 낭만 있는 풍운아는 늘 배부른 법이지.

“물만 죽어라 먹어서 배부르겠지.”

투덜거리면서도 궁수는 계속해서 표적을 꿰뚫었다.

거리가 멀어지면 멀어질수록 더욱 날카로워지는 궁수의 활은 역사에 나올법한 명궁을 넘어 신궁의 경지에 일렀다.

“아빠! 언제까지 할 거야?”

“글쎄다.”

딱히 훈련할 것도 없고 활 솜씨는 지구 최고를 넘어 역사상 최고의 경지에 올랐다.

신궁으로 추앙받던 이성계나 로빈후드는 더 이상 궁수의 상대가 되지 않았다.

어느덧 궁수 하면 나궁수가 떠오르는 시대가 온 것이다.

계속해서 화살을 날리며 궁수는 고민했다. 이게 다 저 빌어먹을 게이트가 문제다.

누구는 마음대로 나가고 누구는 들어가지도 못하고 이런 불합리한 문이 어디 있단 말인가.

“하다못해 게이트에 직접 들어갈 수라도 있으면 좋을 텐데.”

“응? 들어갈 수 있는데?”

“뭐?”

불가능하리라 생각해 반쯤 포기하며 말했던 것을 광팔이는 아무렇지 않다는 듯 대답했다.

화들짝 놀란 궁수가 그게 정말이냐는 듯 눈을 부라렸다.

“진짜 가능해?”

“응, 나는 인간이 아니니까 가능하지.”

“아, 드래곤이라 그런 건가.”

확실히, 드래곤인 광팔이라면 충분히 게이트 안으로 들어갈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이 던전형이 아닌 방출형 게이트라고 해도 말이다.

과연 섭리를 비틀어 마법의 정점을 달리는 드래곤에게 불가능이란 불가능한 말이었다.

“그런데 동료들도 들어갈 수 있나?”

“으으으음, 아빠면 몰라도 다른 사람은 안될 것 같은데.”

“왜?”

“아빠는 내 계약자니까, 마력이 연동되어 있거든, 그런데 다른 사람들은 그냥 인간이잖아.”

“그렇게 되는건가….”

파도형 게이트도 혼자서 막아내었던 자신이다. 심지어 그 뒤로는 더 강력한 놈을 거의 혼자서 막아내기도 했다.

하지만 그런 궁수라도 게이트 안으로 들어가는 것은 진지하게 고려할 사안이었다.

익숙한 지구라는 본진이 아닌 적진 한가운데로 쳐들어간다는 것 아닌가.

그것도 단신으로 말이다.

헌터들이 많아 타겟팅이 갈리는 것도 아니고 적진 한가운데에서 모든 관심이 쏠리는 상태라니.

“쉽지는 않겠네.”

그렇다고 불가능하다는 생각이 들지도 않았다. 단지 어떻게 해야 할지 막연할 뿐.

“방어 준비를 잘하면 어떻게든 되지 않을까.”

“방어?”

“응, 네가 배리어를 펼치든 반격을 하든 하는 동안 내가 공격을 하는 거야.”

“흐응, 뭐 상대에 따라서 다르겠지만! 난 자신 있어 아빠!”

“뭐 그런 일이 없는 게 베스트지만.”

간단한 잡담을 나누며 훈련을 이어나가기도 잠시.

삐이이이이이이!

“뭐야? 또?!”

귀를 찌르는 사이렌 소리에 궁수는 곧바로 프로틴프로 본부로 달려 나갔다.

현재 대한민국을 포함한 전 세계는 갑작스럽게 발생한 마왕성 출현으로 몹시 예민해진 상태다.

그런 상황에서 울리는 최고등급 위험 사이렌은 범상치 않은 일이 터졌음을 뜻했다.

광팔이를 타고 날아가니 1분도 걸리지 않아 본부에 도착했다.

“뭔데! 또 무슨 일이야!”

건물 앞에는 다른 동료들이 벌써 출격할 준비를 마치고 있었다.

“몰라, 일단 바로 나갈 수 있게 대기해봐야지.”

적당한 긴장감을 유지하며 멤버들은 당장에 발생 위치를 전달받길 기다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도시에 달린 스피커에서 커다란 알림이 터져 나왔다.

[파도형 게이트 발생! 파도형 게이트 발생!]

“아니 나온 지 얼마나 됐다고 또 파도야!”

“뉘 집 개 이름도 아니고 무슨 파도가 이렇게 기습적으로 나와!?”

마왕성에 파도에 밥 먹듯이 튀어나오는 지구 멸망급 이벤트에 표정을 일그러트린 궁수는 천궁을 꽈악 쥐었다.

“당장에 지원도 힘든데!”

“느헿? 마라! 걱정! 난 쾅쾅!”

“어휴, 내가 말을 말자.”

당장에 다른 국가들도 얼어붙은 상태라 지원을 바랄 수 없었다.

더군다나 파도형 게이트는 몇 달 혹은 최소 몇 주 전부터 미리 반응이 걸리는 것이 보통이다.

그러나 이번에는 그런 낌새도 없이 곧바로 게이트가 터져버리니 궁수 입장에서는 기가 찰 수밖에 없었다.

멤버들은 전투 준비를 마치고 게이트 등장 장소보고를 기다렸다.

과연 파도형 게이트라 그런지 30초도 지나지 않아 곧바로 알림 방송이 나왔다.

[게이트 출몰 장소는…. 어?]

“뭐야 왜 말을 안 해!”

몹시 당황한 듯한 말투에 초조해하며 다음 말을 기다렸다. 안내원도 복잡한 심정으로 다음 말을 이었다.

[출몰 장소는 프로틴프로 본사입니다.]

“…네?”

[해당 지역 주민들은 신속하게 대피하길 바라며 헌터님들은 신속한 투입 바랍니다.]

말이 끝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각지에서 헌터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나궁수 몸담은 프로틴 프로, 단순히 프로틴프로가 아닌 나궁수를 위해서 직접 모인 헌터들이었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나궁수인데 가능하지 않을까? 라는 생각들이 모여 만들어진 집결 속도였다.

헌터들이 집합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차원이 찢기며 게이트가 열렸다.

“전위는 앞으로! 서포팅, 기타 헌터들은 뒤로! 진형 갖춰!”

“진지 구축해! 빨리 벽부터 쳐!”

수많은 헌터들의 목소리가 겹침에도 불구하고 대비는 순식간에 진행되었다.

몸으로 경험하고 목숨을 걸으며 전선을 넘어온 헌터들다운 결과였다.

게이트는 지면에 맞닿아 있었다.

다만 평소와 다른 점은 전에는 불규칙적으로 공간이 찢겼다면 이번에는 직사각형 모양으로 찢겨있었다.

수많은 헌터들이 긴장감을 가지고 적들이 나오길 기다렸다.

갖출 수 있는 최대한의 준비를 하고 이미 진지 구축까지 끝낸 상태였다.

간이로 지은 성벽이었으나 그 강도는 결코 약하지 않았다.

비록 베로니카와 같은 능력자들을 반 갈아 넣어 만든 것이지만 이중 불만을 가지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나와라….”

동료들을 성벽에 두고 광팔이의 등에 탄 궁수는 시위를 걸고 화살통 가득히 폭발 화살을 채워두었다.

이윽고

쿵! 쿵! 쿵!

적들이 게이트 바깥으로 모습을 드러내었다. 다만 그 모습이 기존의 파도와는 확연히 달랐다.

“어어?”

절도를 맞추며 게이트에 모습을 드러낸 것은 검은 갑주를 입은 칠흑의 군단이었다.

마치 예전 로마의 방패병들이 생각나는 대단한 위용을 보여주었다.

난잡하고 시끄러운 기존 괴물과는 확연히 다른 마물들의 행렬이었다.

당연히 적은 사람이 아닌 스켈레톤이나 구울, 마물들이 대부분이었다.

평소와는 다른 양상에 얼핏 당황하긴 하였지만 그게 뭐 어쨌단 말인가.

저들은 지구를 침공하러 온 적이고 자신들은 지구를 지키는 수호자다. 그렇다면 해야 할 행동은 정해져 있었다.

적들의 위로 붉은 육망성이 모습을 드러내었다. 경악할 정도의 대단위 마법, 당연히 법사의 능력이었다.

“메테오.”

거대한 유성이 감히 쳐들어온 적들의 위로 떨어졌다.

콰아아앙!

“허?”

방패를 위로 들어 올린 적들이 바들바들 떨며 법사의 메테오와 격돌하고 있었다.

그러나 상위 마물도 아닌 저급 마물들에게 최상위 마법이란 너무나도 거대한 것이라 곧 무릎을 꿇고 말았다.

걱정이 기우였는지 10초도 지나지 않아 적들의 몸이 갈려 나가 깔끔하게 죽어나갔다.

하지만 법사는 아직 끝나지 않았는지 한 번 더 마법을 일으켰다.

메테오 안에 넣어둔 화염, 고농도로 응축시켜둔 화염을 그대로 터트렸다.

그와 동시에 바깥에는 바람을 일으켜 헌터들의 피해는 전무했다.

투명한 구 안에서 일어난 거대한 폭발은 순식간에 적들을 압살하는 결과를 낳았다.

필사이자 즉사의 마법사다운 위용에 헌터들의 사기를 한껏 끌어 올랐다.

“죽어라!”

그 말과 함께 적들의 머리 위를 수놓는 포화가 쏟아졌다.

어떤 이는 마법을 어떤 이는 화살을 어떤 이는 총탄을 발사했다.

법사의 메테오도 잠시나마 견뎌냈던 놈들이라 그런지 공격이 쉬이 박히진 않았다.

그러나 이번에는 궁수와 광팔이가 날뛸 시간이었다.

하늘 위에서 궁수의 화살 수십 발이 일제히 쏟아졌다. 한발 한발이 붉은 빛을 띠는 섬뜩한 모습이었다.

적들 사이에 숨어든 붉은 빛은 얼마 지나지 않아 몬스터들을 집어삼킨 섬광으로 바뀌었다.

적들의 어둠을 확인한 궁수가 신성을 집약시켜 만든 폭발 화살이었다.

속성을 넣은 폭발은 어둠 속성에게는 가히 압도적인 위력을 발휘했다.

추가로 광팔이의 위로 만들어진 수십 개의 마법진은 신성탄을 미친 듯이 난사하고 있었다.

인간의 기준이 아닌 드래곤이 기준점이 된 섬뜩한 신성탄이었다.

화력의 기준점은 없다고 궁수는 무자비한 폭격을 부었다.

휘황찬란한, 그러나 위력은 가볍지 않은 공격들이 계속해서 적들을 쓸어버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적들을 둘러싼 어둠은 쉬이 벗겨낼 수 없었다.

이를 악문 헌터들이 고군분투하며 심지어는 다 마신 포션의 빈병까지 던져가며 전투를 이었다.

성벽 안의 전장은 아수라장이 되어갔다. 그것도 잠시.

콰아아앙!

게이트에서 큰 어둠의 기운이 터져 나오며 헌터들을 휘청 흔들었다.

파도는 어떤 일이 터질지 모르는 게이트, 아무리 유리해도 순식간에 상황이 뒤바뀔 수 있는 천재지변이다.

그렇기에 가능한 최대한의 준비를 해야 한다. 이전에 쌓은 파도의 경험이 만든 준비였다.

몇몇 헌터들이 무릎을 꿇긴 했으나 전과 같은 상황이 벌어지진 않았다.

“게이트 수치 급증! 대비하세요!”

말이 다 끝나기도 전 성격 급한 게이트에서는 거대한 마물 한 마리가 튀어나왔다.

상반신은 미노타우로스에 하반신은 말인, 그리고 손에는 거대한 전투도끼를 든 괴물이었다.

“크하하하! 과연! 이곳이 지구로군!”

귀가 따가울 정도로 거대한 함성을 내지른 괴물은 붕붕 배틀엑스를 휘두르며 소리쳤다.

“네 놈들은 오늘 여기서 모두 죽는다!”

괴물에게 느껴지는 압도적인 살기는 거리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숨이 턱 막혔다.

콰콰콰쾅!

그러나 뭘 해보기도 전 놈에게 하늘 위에서 거대한 다섯 발의 화살이 박혔다.

천궁을 흡수한 궁수가 황금빛으로 눈을 빛내며 말했다.

“닥쳐, 우린 아무도 안 죽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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