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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접병기 활-141화 (141/172)

◈ 141화. 마왕성이 있었는데요? 사라졌어요.

격이 다른 상위종의 등장에 일순간 헌터들이 주춤, 전진을 멈췄다.

이전 스켈레톤이 B급이라면 지금 데스나이트는 하나하나가 최소 A급에 해당하는 마물이다.

분위기가 심각해지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얼어붙은 분위기를 먼저 깬 것은 당연히 궁수였다.

“뭐해요? 안 싸워?”

화살을 띄워 공중에 걸터앉은 궁수는 헌터들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그러면서 준비한 다섯 발의 화살을 각각 적들 사이에 배치했다.

따악!

궁수가 손가락을 튕기자 박혀있던 화살은 화려한 신성 폭발로 대체되었다. 농축된 신성력이 터져 나오며 복도를 가득 채웠다.

인간에게는 한없이 무해하나, 마물에게는 한도 없이 유해한 신성력이 퍼졌다.

과연 A급 마물인지라 곧바로 쓰러지진 않았다.

놈들이 탄 유령마는 다리가 꺾였고 그들의 뼈에는 쩌억 금이 가 휘청거리고 있었다.

거기까지 바라본 헌터들은 직감하고 있었다.

‘공짜 경험치다.’

언데드들을 호령하던 데스나이트들은 헌터들에 의해 깔끔하게 쓸려나갔다.

성 내부로 깊숙하게 진입할수록 여러 마물들이 튀어나왔다.

칠흑의 거성답게 스켈레톤에 오크, 언데드 마물들이 주를 이루었다. 그러나 이쪽에는 언데드 카운터격 인원이 무려 셋이나 있었다.

궁수의 신성력, 광팔이의 신성 마법, 법사의 대단위 마법까지.

처음에야 전투를 했지, 나중에는 궁수 삼인방의 압도적인 신성력 테러에 일방적으로 쓸려나가고 있었다.

고된 전투를 상상하며 공략대에 들어왔던 헌터들은 산책을 온 건지 공략을 온 건지 아이러니했다.

“호, 혹시 모르니 긴장하고 있어!”

“그래 무슨 변수가 일어날지 모르니까 말이야!”

“음음! 맞군!”

어떻게든 긴장하며 전투에 임하려 했으나, 당장에 코앞에서 벌어지는 신성력 테러는 마왕이 오더라도 뚫을 수 있을지 의문이었다.

“이렇게 하고 돈 받아도 되는 건지.”

“보스룸 가면 뭐라도 하겠지, 기다려 봐.”

“그래, 피 터지게 싸우고 위험한 것보다는 낫잖아?”

외관부터 마왕성에 걸맞은 흉흉한 모습이었기에 궁수도 기대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아직까지의 전투는 너무나도 식상했다.

“이 정도면 그냥 우리끼리 와도 다 잡겠는데.”

“긴장해, 괜히 마왕이겠어?”

“괜히 마왕일수도….”

“쓰흡, 정신 똑바로 차려!”

사실 마왕성은 절대로 약하지 않다. A급 마물만 수백 마리에 최심부에는 최소 S급 마물인 마왕이 잠들어 있다.

다만 궁수 일행이 너무 강한 탓이다.

역사를 뒤집어도 손에 꼽는 대마법사에 일인 군단급 화력을 자랑하는 궁수, 그리고 그 뒤의 드래곤은 말할 것도 없었다.

파죽지세로 이어진 공략에 공략대는 눈 깜짝할 사이에 보스룸 앞에 도착했다.

공략인지 산책인지 모를 저

“이렇게까지 긴장감 없는 공략은 또 처음인걸.”

“이제 보스니까, 정신 똑바로 차려.”

보스룸, 즉 성의 알현실은 거대한 철문으로 닫혀있었다. 문에는 두개골과 그 아래에는 두 개의 뼈가 X자로 교차했다.

끼이이이익!

“돌입합니다!”

바닥을 긁는 문은 소름끼치는 비명을 지르며 서서히 열렸다. 처음 눈에 들어온 것은 새까만 카펫이었다.

붉은 레드카펫이 아닌 말 그대로 새까만 카펫이었다.

- 마왕치고는 화려하군.

“저게 화려한 거라니.”

실로 절망적인 센스가 아닐 수 없다. 알현실 내부에 관한 이야기는 이쯤 각설하고 시선을 끄는 것은 왕좌에 앉아있는 마왕이었다.

검 손잡이에 손을 걸친 놈은 오만한 시선으로 헌터들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패자의 기운이 흐르는 그에게선 강자의 여유가 흘러넘쳤다.

덜그럭.

외관이 해골이라는 점을 제외하고는 말이다. 덜그럭거리는 뼈소리와 함께 마왕께서 친히 왕좌에서 일어났다.

해골이기에 표정을 읽을 수가 없다. 해골은 살점이 없다.

“옵니다!”

그렇기에 공기 저항이 적다. 뼈 사이로 바람이 통하며 쉬이익 소리가 전장을 울렸다.

그 크기만 4미터에 달하는 해골이 탱커들을 향해 대검을 휘둘렀다.

별다른 갑주도 입지 않고 그는 검은 망토 한 개를 걸친 것이 전부였다.

강골이라고 하던가, 강철은 비교도 안될 정도의 단단한 뼈가 계속해서 헌터들을 몰아쳤다.

후방 딜러들도 가만히 있지는 않았다. 신성력을 가득 머금은 스킬들을 난사하며 놈을 물렸다.

“광팔아!”

내부가 워낙에 거대했기에 광팔이도 드래곤의 모습으로 변했다.

본체를 꺼낸 광팔이가 격렬한 전투를 벌이는 마왕을 향해 포효했다.

덜그럭?

해골도 갑자기 나타난 드래곤, 그것도 자신의 천적인 순백색 드래곤에 당황한 듯 턱뼈를 움직였다.

사람으로 해석하자면 ‘뭣!?’ 정도가 되리라.

광팔이의 위에는 궁수와 법사, 그리고 티아라가 올라타 있었다. 브레스를 남발하기에는 다른 헌터들이 휘말릴 위험이 있었다.

“아빠가 할 거야?”

“어.”

“알겠어!”

드래곤 위로 만들어진 다섯 개의 마법진이 궁수 앞에 겹쳐졌다.

궁수는 천궁을 흡수하여 거대한 화살 한 자루를 마법진에 대었다.

활의 형태는 존재하지 않았지만 궁수는 실제로 활을 쥐고 시위를 당기는 자세를 하고 있었다.

성녀도 한수, 아니 두수 접어주는 신성력이 화살에 모였다.

다른 신성력과는 질적으로 다른 궁수의 신성력은 티하나 없이 하얗게 빛나고 있었다.

덜그럭….

해골도 궁수의 공격을 직감했는지 검은 마력을 뿌리며 자세를 바꿨다.

비록 스켈레톤이지만, 검을 쥐고 궁수에게 저항하는 그 모습은 고결함 마저 느껴졌다.

스켈레톤 주제에, 혹은 스켈레톤이기에 놈의 기백은 가히 감탄할 정도였다.

“오냐 이것도 받아봐라.”

신성력이 불꽃처럼 피어올랐다. 뜨겁지 않았다.

자신에게는 따스하고 한없이 자상한 불꽃이 적에게는 목숨을 끊는 싸늘한 힘이 된다고 생각하니 기분이 묘했다.

화살이 궁수의 손아귀를 떠나갔다.

첫 번째 마법진은 신성력의 증폭을.

두 번째 마법진은 화살의 속도를.

세 번째 마법진은 화살의 크기를.

네 번째 마법진은 관통하는 힘을.

다섯 번째 마법진은 화살의 예기를 살렸다.

해골도 피할 마음은 없는지 왼발을 한걸음 정도 내딛었다. 검을 들어 올리자 칠흑의 불꽃이 붙었다.

저쪽도 나름대로 결전기라는 느낌이었다.

당장에 시야를 가득 채운 궁수의 화살을 스켈레톤은 한 치의 오차도 없이 검을 휘둘렀다. 궁수의 신성력과 놈의 어둠이 격돌했다.

과연 마왕, 궁수의 신성력에도 굴하기는커녕 오히려 대등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자신의 부하들이 모두 죽어나갔음에도 그는 변함없이 검을 휘둘렀다.

스켈레톤에게는 감정이 없다. 두려움이 없다는 것은 무엇보다 강력한 장점이었다.

비록 궁수의 신성력에 검을 쥔 놈의 양팔에는 수많은 금이 생겨나갔다.

그렇지만 상관없었다.

“이걸 살아…?”

간이 대장전은 궁수의 승리였다. 자신은 상처 하나도 입지 않고 적에게 치명적인 부상을 입혔으니 말이다.

그러나 궁수는 표정을 구기며 혀를 찼다.

“군단장보다는 강하다 이거냐.”

단숨에 죽일 생각이었던 궁수는 조금 치욕스러웠다.

마왕을 끔살 시킬 생각을 했다는 것부터가 오만했으나 궁수는 그런 것 따위 생각지 않았다.

된다면 하고 안되도 한다. 그것이 궁수의 모토였다.

스켈레톤은 말이 없었다. 덜그럭거리며 착검을하고 전투를 이어나갈 뿐.

우스꽝스러운 덜그럭 소리와 고고한 그 기세는 궁수조차도 한수 접어줄 정도였다.

덜그럭!

땅을 박차고 오른 스켈레톤이 정면으로 궁수를 향해 달려들었다.

“느헿!”

기다렸다는 듯 그 주변에서 나타난 마법진이 놈을 향해 쇠사슬을 발사했다.

등 뒤로 검은 날개를 만든 놈은 가볍게 법사의 쇠사슬을 쳐내며 더욱 속도를 높였다. 목표는 광팔이 위의 궁수, 물러섬은 없다.

궁수도 이를 알았는지 천궁을 흡수했다. 팔에 문신이 생기며 가슴이 뛰었다.

수십 개의 쇠사슬을 모두 쳐낸 놈은 끝끝내 궁수가 있는 곳에 도달했다.

날개를 펼친 놈은 아래에서 날아오는 공격은 가볍게 썰어버리며 궁수에게 달려들었다.

달그락.

숨이 닿을 듯한 거리, 놈의 텅 빈 해골에 붉은 눈동자가 보였다. 선제공격은 깊숙하게 파고든 궁수의 주먹이었다.

팔꿈치로 검을 든 손목을 내려찍은 궁수는 다른 손으로 놈의 턱을 후려쳤다.

과연, 자신이 지금 바위를 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할 정도로 단단했다.

궁수의 공격에 한방 먹은 마왕은 덜그럭거리며 기세를 더했다. 펄럭이던 날개가 몇 배는 더 거대해졌다.

달그락!

분노한 마왕이 궁수의 멱살을 잡으려 했으나 뼈만 앙상한 그의 손은 허공을 맴돌 뿐이었다.

그의 망토에는 어느새 궁수의 화살이 박혀있었다.

뒤에서 등장한 궁수가 망토를 부여잡고 있는 힘껏 놈을 땅으로 던졌다.

고작 이 정도로 마왕이 죽을 리는 없어 궁수도 공중에 화살을 발로 차 떨어지는 마왕 앞에 나타났다.

정신을 차릴 틈 따위는 사치라는 듯 소나기처럼 주먹이 쏟아졌다. 상대는 인간이 아닌 뼈다귀, 급소가 없는 뼈다귀였다.

뼈째로 부숴버리겠다는 집념으로 궁수는 오직 놈의 갈비뼈에만 주먹을 집중했다.

덜그럭!

마왕이나 되어서 맞고만 있을 수도 없는 노릇, 붉은 안광을 빛낸 놈이 궁수를 향해 입을 쩌억 벌렸다.

그와 동시에 궁수의 가장 강력한 일격이 놈의 복부에 꽂혔다.

콰앙!

돌바닥에 놈이 처박히며 흙먼지가 일어났다.

인간이라면 벌써 온몸의 뼈가 박살나 죽었을 것이나 스켈레톤은 그렇지 않았다.

곧바로 땅을 짚고 뛰어올라 자세를 갖추었다. 이미 온몸에는 균열이 가득해 다치지 않은 곳을 찾는 것이 더 어려울 지경이었다.

허공에서 내려온 궁수는 손을 털며 스켈레톤에게 말했다.

“그러게 칼슘 좀 잘 섭취하지 그랬냐.”

농담 섞인 조롱이었지만 궁수 본인은 긴장을 풀지 않고 오히려 더욱 놈을 압박했다.

궁수와 스켈레톤이 동시에 서로를 향해 돌진했다. 놈의 검이 궁수에게 닿기 직전 또 다시 궁수가 사라졌다.

촤악

“크흑!”

화살을 날려 뒤로 이동하려는 생각이었으나 두 번은 없다는 듯 스켈레톤은 자신의 갈비뼈 사이에 검을 틀어박아 뒤의 궁수를 노렸다.

살점이 없는 스켈레톤이기에 할 수 있는 일이었다.

궁수의 옷 앞깃이 베였다. 칼날이 보이자마자 몸을 빼서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제법 큰 상처가 났을 것이다.

조금 승기를 잡았다고 생각했는지 기세등등한 놈이 궁수에게 검을 들이밀었다.

하지만 그때는 이미 헌터들이 놈을 포위한지 오래였다.

신성력을 쓰는 힐러들은 궁수가 아닌 스켈레톤에게 힐을 걸었다.

신성력을 가득 머금은 치유의 힘은 스켈레톤에게는 저주나 다름없었다.

스켈레톤은 마음에 들지 않는 듯 자꾸만 턱뼈를 덜그럭거렸다. 그러던 말던 궁수는 셈에게 조용히 눈치를 주었다.

손짓 한 번에 궁수의 의도를 알아먹은 셈은 정확히 3초 후에 마력을 일으켜 소리쳤다.

“요새화!”

궁수와 놈을 감싸는 요새가 솟아나기 시작했다.

궁수는 최대한 주변에 화살을 많이 뿌리며 천장이 닫히기 직전 요새에서 빠져나왔다.

덜그럭!

“넌 빠져!”

놈도 궁수를 따라 빠져나오려 했으나 우악스러운 주먹질에 곧 잠잠해졌다.

“성불해라!”

궁수가 마력을 일으키자 요새의 틈 사이로 새하얀 빛이 뿜어져 나왔다.

콰콰콰콰쾅!

“어?”

빛이 사그라듬과 동시에 이번에는 마왕성이 붕괴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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