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근접병기 활-135화 (135/172)

◈ 135화. 가련하지 않은 허가연.

촤좌좌좌좍!

궁수가 가진 네발의 화살이 허가연의 주변에 꽂혔다. 맞추지 못했다고 생각했는지 그녀는 궁수를 비웃으며 말했다.

“다루지도 못하는 힘에 끌려 다니는 꼴이라니.”

“그 얼굴로 그 말 하지 마라.”

“흐음, 왜? 마음이라도 있었느냐?”

“아니, 지건 존나 마려우니까.”

촤악!

마지막으로 가지고 있던 궁수의 화살이 놈의 머리통을 향해 날아갔다.

화염이 이글거리며 살기가 진득하게 담긴 화살이었다.

“호오, 이건.”

“닥쳐.”

화살과 궁수의 위치가 바뀌었다. 그녀는 놀라운 듯 눈썹을 들썩였다. 다만 그뿐이었다.

“하, 이런 잔재주 따위!”

마력 손톱이 날카롭게 세워진 그녀가 왼손을 휘둘렀다.

그러나 그녀가 손을 휘둘렀을 때 이미 궁수는 그 자리에 없었다.

궁수는 이미 그녀의 뒤에 꽂힌 화살에 이동해 있었다.

“흐으으으읍!”

“호오오!”

콰아아앙!

순식간에 뒤를 돈 허가연이 진심으로 놀랐다는 듯 눈을 부릅뜨며 궁수의 공격을 막았다.

궁수의 주먹이 허가연의 가녀린 팔에 막혔다.

원래라면 그녀의 팔을 가볍게 부러트리고도 남을 힘이었으나 각성한 허가연의 신체는 더 이상 평범한 인간의 몸이 아니었다.

콰아아앙!

허가연은 왼발로 거세게 땅을 지르밟고는 오른손으로 궁수를 노렸다.

이번에는 궁수가 뒤로 후퇴하며 전투가 일단락되었다.

이 모든 것이 단 1초 안에 일어난 일이었다.

“전사여, 이름을 알려다오.”

실내임에도 불구하고 어째서인지 서늘한 바람이 불어왔다.

정확히는 그녀의 마력이 형상화되어 몰아치는 것이었다.

“나궁수.”

“나궁수라, 좋은 이름이군.”

그녀는 궁수의 이름을 곱씹으며 자세를 낮췄다.

마치 짐승처럼 사족보행을 위해 잔뜩 자세를 엎드리고 있었다.

“나, 마 귀족 패왕 칼투스가, 네놈을 기억하마.”

휘이이이이잉!

형상화된 그녀의 붉은 마력이 공간을 가득 채웠다.

몰아치는 마력은 너무나도 사나웠기에 궁수 또한 잔뜩 힘을 불어 넣었다.

궁수는 손 위로 수십 발의 화살을 만들어 내었다. 적에게 발사하기 직전 궁수가 외쳤다.

“덤빌 거면 직접 덤벼라, 이 쫄보 새끼야.”

촤좌좌좌좌좍!

전장을 수놓은 수십 발의 화살이 일제히 땅에 꽂혔다.

- 정신 단단히 잡아라.

“알고 있어.”

궁수가 땅을 박차고 돌진함과 동시에 그녀 또한 자리에서 사라졌다.

그 속도가 얼마나 빨랐는지 인영이 희미해지며 잔상이 남을 정도였다.

‘속도에서는 내가 이긴다.’

그럼에도 궁수는 의심하지 않았다.

속도가 빠른 것과 공간을 이동하는 것에는 감히 따라잡을 수 없는 큰 차이가 있었기 때문이다.

탓탓탓!

궁수는 그녀에게 달려들면서도 계속해서 텔레포테이션 애로우를 활용하며 위치를 바꿨다.

아무리 그녀가 속도가 빠르다고 하더라도 잔상조차 남기지 않는 궁수를 상대로는 다소 버거웠다.

콰아아앙!

“크흐흐흐흐! 뭐냐? 죽이기로 결심한 거냐?”

“어, 그냥 죽어라.”

물론 죽일 마음은 없었지만, 약하게 나가면 안됐다.

진심으로 죽일 듯이 살기를 담아 놈을 몰아넣어야만 했다.

그새 뒤에서 나타난 궁수가 그녀의 뒤통수를 노리고 발차기를 날렸으나 허가연은 가볍게 고개를 숙여 공격을 피했다.

“느리구나 전사여!”

“너보단 빨라.”

위치가 바뀜에 따라 궁수의 시야도 휙휙 바뀌었다. 어째서 어지럼증이 오는지 이해할 것 같았다.

그러나 고작 어지럼증으로 궁수를 막아서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그녀의 주변 360도 모든 곳에서 궁수가 나타났다.

한번으로 멈추는 것이 아닌 더욱 빠른 속도로, 더욱 예리한 스피드로 놈을 몰아쳤다.

파파팍!

버프를 키고 싸우려했지만 잔존 마력양을 생각하면 모두 끌 수밖에 없었다.

행동과 행동 간의 어색함은 조금도 존재하지 않았다.

궁수의 공격은 이어지면 이어질수록 더욱 빠르고 더욱 날카로워졌다.

그러나 모두 막히거나 스치기만 할 뿐 어느 하나 적중하는 공격이 없었다.

“아하하하하! 즐겁구나 즐거워! 나를 더 즐겁게 해다오!”

“이 빌어먹을 개새끼가.”

“좋아! 더 분노해라! 더! 더더욱 나를 몰아치란 말이다!”

이번에는 궁수의 주먹이 그녀의 정면을 노리고 날아왔다.

당연히 팔에 막히며 궁수의 주먹은 무효화되고 말았다.

그러나 오히려 그것은 궁수가 노리는 것이었다.

마력을 일으켜 그녀의 뒤로 이동한 궁수는 공격을 하는 척하며 다시 그녀의 앞으로 이동했다.

“하하하 그런 잔재주…!”

그러나 궁수의 손에는 화살 한 발이 쥐어져 있었다.

단 한 걸음, 그녀의 가드를 부수기 위한 열쇠가 지금 궁수의 손에 쥐어져 있었다.

콰득!

화살을 그녀의 아래에 꽂아 넣었다. 궁수의 모습이 사라지며 그녀의 발아래에서 모습을 드러내었다.

뻐어어억!

“크흐으윽!”

아쉽게도 그녀의 팔에 궁수의 주먹이 꽂혀 들어갔다.

“이걸 막네.”

마력에 둘러싸인 탓에 큰 피해는 입지 않았다. 충격파가 터지며 그녀의 몸이 붕 떠올랐다.

콰아아앙!

땅을 후려치며 날아오른 궁수가 그녀를 노리고 주먹을 휘둘렀다.

그러나 놈 또한 맞아 줄 생각은 없었다.

허공에서 마력을 비틀어 자세를 잡은 그는 공중을 박차고 궁수에게 돌격했다.

“진짜 더럽게 빡빡하네!”

궁수 또한 발 아래로 화살을 발판삼아 박차고 올라가며 더욱 속도를 높였다.

콰아아아앙!

궁수의 주먹과 그녀의 주먹이 부딪히며 소환실을 울릴 정도로 큰 굉음이 터져 나왔다.

쾅! 콰앙! 콰콰콰쾅!

허공에서 화살을 밟으며 주먹을 내지르는 궁수와 마력을 비틀어 공중에서 중심을 잡는 허가연이 치열하게 격돌했다.

‘더, 더 빠르게!’

비틀거리며 균형을 잡는 허가연과 화살을 발판삼아 끝없이 압박하는 궁수, 장소가 장소이니 만큼 궁수가 우위를 점했다.

“내 프로틴 셔틀 내놔!”

“크하하하하! 어림없다! 이런 유흥! 마계대전 이후로 처음이다!”

“본체로 오라고 이 개자식아!”

궁수에게 있어선 미쳐버릴 지경이었다.

허가연의 몸만 아니었어도 이미 몸에 구멍을 몇 개씩 뚫었을 텐데 말이다.

죽이고자 하는 자와 살리고자 하는 자의 전투는 조금씩 살리는 자가 밀릴 수밖에 없었다.

궁수가 이를 악물고 견뎠지만 그것도 잠시였다.

“싱겁구나! 나를 더 즐겁게 해보란 말이다!”

콰아아앙!

그녀의 마력이 더욱 진해지며 일렁이던 귀와 꼬리가 더욱 또렷해졌다.

그녀는 공중에서 한바퀴 돌아 꼬리로 먼저 궁수의 시야를 가렸다.

“크흑….”

“잘 버티는구나!”

콰아아앙!

“크흐으으윽!”

그녀의 발이 복부에 꽂히며 궁수는 그대로 바닥에 처박혔다.

내장이 으깨지는 통증이었다. 순간 시야가 휘청거리며 피를 토해내었다.

“흐으…크흐흐흐….”

천궁을 리커브 보우로 바꾼 궁수가 활에 기대며 겨우 일어섰다.

“퉤! 씨팔 더럽게 쎄네.”

“호오? 이걸 버틴다니!”

천궁이 궁수의 손에 잡혔다. 확실히 다른 활보다는 기본적인 활이 손에 착 감겼다.

“쓰흐으으읍 후우우우우.”

편안한 감각이었다.

다른 형태도 물론 편안했지만 튜닝의 끝은 순정이라고 원래의 모습이 가장 손에 착 감겼다.

“하, 궁수였다니!”

“응, 나 궁수야.”

과열된 궁수의 머리가 싸늘하게 식었다. 보다 더욱 직관적으로 상황을 직관적으로 보았다.

적은 여태껏 만난 어느 적보다 강력하다. 하필 허가연의 몸에 기생하여 함부로 죽일 수도 없다.

적의 마력은 끝을 모르고 뿜어져 나오는 반에 자신에게 주어진 것은 고작 활 한 개가 전부였다. 다시 말해서.

“최고네.”

- 최고로군.

활과 화살만 있다면 뭐든 할 수 있다. 그것이 궁수의 지론이었다.

“크흐흐흐흐! 아직도 포기하지 않는 꼴이라니! 이 얼마나 멋진 전사인가!”

“그래, 지금 웃어둬.”

화살 한 발이 궁수의 손에 쥐어졌다.

너무나도 부드럽게 궁수의 활대에 끼워진 화살, 궁수는 조용히 시위를 당겼다.

화르르륵!

새하얗게 타오르는 신성의 불꽃이 붙었다.

그녀도 궁수의 마지막 발악이라고 생각했는지 광소하며 외쳤다.

“얼마든지 와라! 까짓 공격 얼마든 막아주마!”

“….”

놈이 뭐라고 하던 궁수는 계속해서 화살을 빚었다. 눈이 멀어버릴 정도로 환한 빛이 궁수의 화살에 모였다.

“후우…”

숨을 고르는 궁수의 눈이 날카로워졌다.

촤좌좌좍!

“오냐! 받아주마!”

궁수의 화살이 시위를 떠났다. 찬란한 빛을 머금은 화살은 악을 멸하기 위해 사납게 울부짖었다.

화살과 놈의 어둠이 격돌하기 직전, 순식간에 나타난 궁수가 화살을 덥석 잡았다.

“뭣!?”

“까꿍 이 새끼야.”

빛으로 화살을 멈추고 은밀하게 화살을 한발 더 날린 것이다. 그 화살과 궁수의 위치가 바뀌었다.

얼마나 크게 당황했는지 순간 놈의 몸의 균형이 확 무너졌다.

이 기회를 놓칠세라 궁수는 있는 힘껏 화살을 허가연의 어깨에 박았다.

“끄흐으으윽!”

허가연이 고통에 찬 비명을 외쳤다. 동료를 공격한다는 사실에 마음이 불편했지만 지금은 어쩔 수 없었다.

화아악!

지속적으로 들어오는 신성력에 놈이 고통스러워하는 사이 궁수는 곧바로 허가연의 멱살을 쥐었다.

그리고는 있는 힘껏 땅을 향해 그녀를 내동댕이쳤다.

아무리 어깨에 화살을 맞았다고는 한들 이 정도로는 놈에게 상처 입히지 죽이지 못할 것이다.

콰아앙!

허가연이 땅에 박히며 피를 토해내었다.

궁수는 허공에 화살을 밟고 다시 한번 시위를 당겼다. 이번에도 신성력을 가득 담은 화살이었다.

“머, 멈춰라! 네 동료를 죽일 셈이냐!”

어깨에 박힌 화살을 붙잡은 놈이 궁수에게 외쳤다.

그러나 궁수는 표정 하나도 변하지 않고 말했다.

“다음에는 본캐로 와라.”

쐐애애애애액! 푸욱!

“끄아아아아악!”

궁수의 화살이 그녀의 반대쪽 어깨에 박혔다. 찬란하게 타오르는 신성이 놈의 어둠을 좀먹기 시작했다.

궁수는 한술 더 떠서 마력을 일으켰다. 미리 걸어둔 익스플로전 애로우였다.

“네, 네놈 잠ㄲ….”

퍼어어어어어엉!

거대한 신성 폭발이 일어났다. 인간에게는 무해하지만 악한 마물에게는 한없이 유해한 폭발이었다.

시야를 가득 채우는 빛이 잦아들자 궁수는 서둘러 쓰러진 허가연에게 다가갔다.

“가연아! 허가연! 눈 좀 떠봐!”

맥박은 뛰고 있었다. 끊어질 듯 얇았지만 숨도 작게 쉬고 있었다.

“제발, 제발 살아야 해.”

허가연 하나만 보고 여기까지 왔는데 이대로 보내줄 수 없었다.

궁수는 인벤토리 고이 모셔두었던 최상급 마력 포션을 꺼냈다.

조심스럽게 그녀의 작은 입을 벌리고 포션을 흘려 넣었다.

하지만 기절한 그녀가 포션을 받아먹기란 묘연한 일이었다.

“제발, 다 와서 이러면 어쩌자는 거야!”

궁수는 다급히 포션을 입에 머금었다.

허가연이 눈치 채면 어쩔까 살짝 걱정이 되긴 하였으나 까짓 거 뺨 좀 맞으면 될 것 아닌가.

“흐읍.”

궁수와 그녀의 입술이 닿았다. 철저히 그녀를 살리기 위한 행동이었다.

그녀의 턱을 잡고 궁수는 열심히 마력 포션을 주입했다.

꿀꺽.

“아…아아!”

열심히 숨을 불어넣자 아주 조금이지만 포션이 그녀의 목 너머로 넘어갔다.

나만힐이 있었더라면 어렵지 않게 살릴 수 있었을 거라며 궁수는 열심히 그녀에게 포션을 넣길 반복했다.

궁수의 부단한 노력 덕분에 그녀는 조금씩 의식을 차렸다.

희미한 의식이 점차 또렷해지며 애매하던 감촉이 서서히 살아나기 시작했다.

‘뭐지…. 따뜻해….’

그녀가 눈을 뜨고 가장 먼저 본 것은 자신에게 입을 맞추고 있는 궁수였다.

‘뭐, 뭐지 시발 뭐지 존나 뭐지 뭐죠?’

너무나도 갑작스럽게 일어난 일에 사고능력이 따라갈 수 없었다.

애석하게도 그녀는 손가락 하나도 움직일 힘이 없었다.

어쨌든 힘이 없었기에 그녀는 구태여 궁수를 밀어내지 않았다.

허가연은 숨 쉬는 것도 버거울 정도로 지쳐 있었기 때문이다.

콰드드득! 콰지지지직!

“어?!”

멀쩡하던 천장이 섬뜩한 소리와 함께 서서히 뜯어지기 시작했다.

“제길 하필 이 타이밍에!”

궁수는 허가연의 머리를 끌어안고 분쇄자를 들었다.

어떻게든 살아남고자 하는 의지가 있었기에 할 수 있는 일이었다.

콰아아아앙!

천장이 뜯어지며 바깥의 햇살이 안으로 들어왔다.

“어? 아빠다!”

“뭐야 여깄어?!”

“안에는 뭐가 이리 개판이야!”

“아! 궁수! 나 빼고 쾅쾅! 우씨 우씨!”

다름 아닌 궁수가 아끼는 동료들이었다.

긴장이 풀린 탓일까, 궁수는 그대로 허가연을 안은 채로 기절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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