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2화. 가연씨…?
화아아아악!
악마가 사망함에 따라 궁수를 붙잡고 있던 어둠이 스르륵 풀렸다.
“괜찮아!?”
“아빠! 어디 다친 곳 없어?!”
“어 멀쩡해, 걱정 마.”
티아라와 광팔이가 궁수를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궁수가 괜찮은걸 확인한 티아라는 이번에는 그 안에 쓰러져있는 악마를 바라보았다.
“흐음, 강했어?”
“아, 걔?”
궁수의 머릿속에 악마와 싸웠을 당시의 상황이 오버랩 되었다.
동료의 목숨을 위해 처절하게 싸우는 그의 모습에 궁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응? 별 거 아니던데?”
***
한국으로 돌아온 궁수는 광팔이를 홀로 클로징을 보내고 길드 휴게실에서 잠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궁수여! 오늘도 좋았네!”
“크으 확실히 새 기구를 쓰니까 확실히 손에 더 착 달라붙는구만!”
정겨운 쇠질의 향기를 음미한 궁수는 위로 올라와 프로틴을 마시고 있었다.
이전 가시들의 암살에서 구해준 게른이 드디어 새로운 기구들을 보내주었다.
궁수에게 감사한 마음을 담아 그는 추가금도 일절 받지 않고 마강철 순도 90프로가 넘어가는 고급 기구들을 보내주었다.
이전 기본으로 주문한 기구들이 80퍼센트임을 생각하면 10퍼센트라는 수치는 결코 적지 않았다.
“야, 이거 봤어?”
“응? 뭔데?”
허가연은 소파에 앉아 휴식을 취하는 궁수에게 툭 태블릿을 던졌다.
“흐으으음…?”
[인공 헌터 개발 성공! 이제는 각성도 인간의 의지로!]
“뭐야, 개소리잖아.”
기사에는 말 그대로 인공적으로 배양한 헌터들에 대한 이야기가 나와 있었다.
그러나 그 출처는 어디에도 나와 있지 않고 그저 ‘인공 헌터 개발 성공!’이라는 말만이 되풀이되고 있었다.
“별 사기를 다 치네 어휴.”
것도 그럴 것이 헌터의 인공 배양이 가능했다면 이미 마탑에서 수천, 수만 명의 헌터들을 찍어냈을 것이다.
지구 최고의 기술력을 가진 마탑에서도 고개를 젓는 일이다.
출처도 모르는 요상한 곳에서 성공할 수 있을 거란 생각은 들지 않았다.
“설마 이런 거 믿는 거 아니지?”
“다, 다앙연하지이….”
‘믿었구만 저거.’
그녀는 프로틴 프로의 사장이면서도 비 각성자이다.
확실히 그간 궁수와 각성자들을 보며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을 것이다.
궁수는 넌지시 그녀를 바라보며 말했다.
“혹시나 이런 거에 속아서 이상한 짓 하지 마.”
“당연하지! 누굴 호구로 알아?”
“쩝…. 뭐 네가 그렇다면 그런 거겠지.”
궁수는 다시 프로틴을 마시면서도 등 뒤에서 느껴지는 1등급 흑우의 기운에 마음이 불편했다.
***
다른 직원들이 모두 퇴근한 시간 허가연은 홀로 연구실에 남아 노트북을 뒤적이고 있었다.
“누구나 각성자가 될 수 있다….”
그녀의 노트북에는 각성자가 될 기회를 제공하는 사이트가 올라와 있었다.
사이트에서는 임상 실험이라는 이유로 일체의 비용도 받지 않고 있었다.
“인공 각성이라….”
어쩌면 이 모든 것이 사실이 아닐까?
궁수는 웃어넘겼지만 그녀에게는 진중한 문제였다.
프로틴 프로 길드원들이 불철주야 평화를 위해 노력하는 동안 자신은 하는 것이 고작 프로틴 개발이라니.
물론 그녀가 하는 일은 넓게 보자면 헌터들의 능력 증진을 위한 약품 개발이었다.
그러나 진성 탐구자인 그녀에게 있어 인공 각성이란 너무나도 매력적인 소재였다.
덤으로 성공한다면 궁수가 마음 놓고 등을 맡길 수도 있는 것 아닌가?
엄청난 자기합리화와 함께 그녀는 이미 인적사항을 기입하고 테스트 신청을 한 상태였다.
“…하 모르겠다.”
각성자와 비 각성자의 시선은 사뭇 달랐다.
비 각성자, 즉 일반인들에게 헌터란 영웅인 동시에 인간을 벗어난 무언가처럼 보였다.
닿을 수 없는 이상이기에 더욱 탐나는 것이리라.
***
“응? 오늘은 가연이가 없네요?”
“어? 아 오늘은 따로 용무가 있다더군.”
“별일이네요. 잠도 회사에서 자던 애가.”
“뭐 중요한 일이 있겠지.”
대수롭지 않게 받아들인 궁수는 털썩 소파에 앉아 TV를 틀었다. 마침 아침 뉴스를 방송하고 있었다.
세상 돌아가는 이치를 알아야 한다고 궁수는 프로틴을 마시며 뉴스를 보았다.
사실 궁수도 뉴스의 단골손님일 정도로 스펙터클한 삶을 살아왔기에 어지간한 사건으로는 크게 흔들리지 않았다.
그런 궁수는 덤덤하게 화면을 바라보며.
“푸우우우우웁!?”
“뭐야!? 왜 그런가!”
“우에에에엑! 님 미쳤셈!?”
“궁수! 분수! 궁수! 분수남 궁수!”
“쿨럭 쿨럭 쿨럭!”
그것도 그럴 것이 지금 티비에서는 허가연이 나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셈! 저거! 저거!”
“응 어!? 어어어어?!”
“어어!? 저게 뭐셈?!”
“느헤헤헿! 사장! 사장이다!”
그냥 평범하게 인터뷰하는 것도 아닌 허가연이 다른 사람들과 게이트를 처리하고 인터뷰를 하고 있었다.
그녀는 어디서 얻었는지 모를 괴상망측한 슈트를 입고 싱긋 웃으며 말했다.
[정말 인공 각성자가 맞습니까!?]
“네, 맞습니다. 그리고 저희 동료들도 마찬가지죠.”
그 뒤로는 다른 네 명의 인원이 허가연의 옆에 섰다. 남자 셋에 여자 한명, 그리고 허가연까지.
“이게 뭐여…?”
네, 그렇습니다.
어제까지 사장이던 사람이 각성자가 되버렸습니다. 이렇게 멍하니 있을 시간이 없었다.
궁수는 다급히 그녀에게 전화를 걸었다.
뚜루루루루루
연결음이 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수화기 너머로 허가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 뉴스 봤어?”
“‘아, 뉴스 봤어?’는 무슨! 너 어디야! 몸은 괜찮아?! 이상한 실험 당한 거 아니지?”
“에이 내가 그런 거 당할 사람으로 보여?”
‘어, 지금은.’
궁수는 말을 삼키며 잠시 침묵을 지켰다. 허가연은 잠시 조소하며 궁수에게 말했다.
“금방 갈게, 기다려.”
정말로 얼마 지나지 않아 허가연은 프로틴 프로 건물에 도착했다.
부와아아아앙!
“궁수야! 나 왔어!”
“아니 또 그 거지발싸개 같은 오토바이는 또 뭐야.”
“거지발싸개라니! 내 애마라고!”
“애마는 무슨! 애미도 이런 거 안쓰겠다!”
“뭐!? 아앙!? 죽을래!”
궁수가 가슴을 탕탕 두드리며 허가연을 요리조리 살펴보았다.
혹여나 다친 곳은 없는지 딸을 챙기는 아버지의 마음으로 살폈다.
“휴, 다친 곳은 없네.”
“괜찮다니까? 나도 각성자야 이제!”
“하이고 각성자는 무슨 나는 널 그렇게 키운 적 없다!”
“키우긴 뭘 키워?!”
아무리 그녀를 살펴도 별다른 상처는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미비하던 그녀에게서 갑자기 마력까지 느껴지니 궁수로서는 놀랄 노자였다.
- 내가 보기에도 딱히 눈에 들어오는 수상한 점은 없구나.
“마력 순환은? 괜찮아?”
- 흐음…. 적어도 내가 보기에는 그렇군.
허가연의 안전을 확인한 궁수는 찝찝한 표정으로 뒤의 다른 각성자들을 바라보았다.
그들은 선망의 눈빛으로 궁수를 바라보고 있었다.
“지, 진짜 랭킹 1등이야!”
“와, 우리가 말 걸어도 될까?”
“우리도 각성자인데 인사정도는 받아주지 않을까?”
“와 저분 설마 나법사 아니야?”
“대박이다….”
궁수의 뒤로 나법사와 셈, 힐까지 그들의 입방아에 오르고 있었다.
궁수에게 들리지 않으려고 조곤조곤 말했지만 인간의 한계를 아득히 뛰어넘은 궁수에게 있어선 바로 옆에서 말하는 것과 다름없었다.
딱히 욕을 하는 것도 아니었기에 궁수는 적당히 넘기며 먼저 말을 걸었다.
“저기요.”
대화를 들어보건대 그들도 허가연처럼 이번에 새로 각성한 헌터들 같았다.
과연 저들을 헌터라고 부를 수 있을지 의문이었지만 궁수는 일단 먼저 그들에게 다가갔다.
“아, 어 어어 네!”
“…흐음.”
저들에게서 느껴지는 마력은 어지간한 C급 헌터와 비견될 수준이었다. 심지어 허가연은 B급에 가까울 정도였다.
“반갑습니다.”
“어…. 으으으 네….”
일부러 마력을 펼쳐 위압감을 내뿜는 궁수는 눈빛을 날카롭게 세워 그들을 관찰했다.
그러나 딱히 눈에 들어오는 것은 없었다.
오히려 그들에게 보이는 수많은 허점들은 정말로 그들이 얼마 전까지 일반인 이라는 것을 뒷받침 하였다.
“흐으음, 저희 애 잘 부탁드립니다.”
“뭐? 내가 왜 네 애야?”
“딸, 아빠 대화하잖아.”
“딸은 무슨 죽을래?”
“뭐! 각성 좀 했다고 아주 만만해!? 앙!?”
“때려보던가! 때려보던가!”
딱히 악의는 느껴지지 않았기에 궁수는 그대로 그들을 돌려보냈다.
그 뒤로 일주일간.
허가연은 필두로 한 인공 헌터들은 그 휘황찬란한 오토바이를 타고 다니며 게이트를 처리하고 있었다.
S나 A급 같은 고위 게이트는 아니었으나 C급, 혹은 방출형 B급 게이트를 처리하며 그 나름대로 도움이 되었다.
그러나 이를 바라보는 궁수는 마냥 표정이 밝지 못했다.
“비각성자를 강제로 각성시키는데 몸에 부담이 없다고?”
궁수도 어째서 헌터가 각성하는지 각성의 계기가 무엇인지는 모른다.
그러나 궁수가 각성할 때 느꼈던 그 기묘한 느낌은 감히 인간이 재현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각종 인터넷 게시판에서도 인공 각성에 대한 문제점이 제기되었으나 이에 대한 정확한 자료를 제시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렇기에 결국 그들은 ‘각성자의 입지가 흔들리는 것이 두려운 놈들’이 되어 욕먹기 일쑤였다.
여론이 이런 만큼 궁수도 섣불리 움직일 수는 없었다.
물론 궁수가 남 눈치나 보고 움직이는 헌터는 아니었지만 말이다.
‘각성’을 경험해본 사람들이 아무리 애타게 위험성을 외처도 소귀에 경 읽기였다.
새로운 힘에 미친 사람들을 잡기에는 그 파급력이 너무나도 거대했다.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는 그들에게 있어 평범함을 타파할 수 있는 힘은 너무나도 매력적이었다.
물론 그들도 반신반의한 상태였으나 이를 거절하기에는 성공했을 때의 매력이 너무나도 거대했다.
실제로 지금도 성공 사례들이 속속들이 나오고 있고 말이다.
“바보들, 그런 걸 어떻게 인간의 힘으로 만들어?”
독한 약물이나 약을 이용한다면 그런 ‘기분’은 만들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스테이터스나 스킬같은 부분에서 그들은 아무것도 얻은 것이 없었다.
그저 ‘헌터’처럼 신체 능력이 비약적으로 성장했을 뿐 스킬을 사용했다거나 스테이터스를 사용하는 각성자는 단 한명도 없었다.
- 흐음, 확실히 수상하긴 하구나.
“아무래도 조사를 해봐야겠어.”
그렇게 다짐한 궁수는 티아라에게 전화를 걸고 있었다.
“여보세요?”
“어 난데, 왜 전화했는지는 알지?”
“응? 모르는데?”
“인공 각성자, 알면서 뭘 그래.”
“아아….”
골치 아픈 주제에 그녀는 말끝을 흐리며 한숨을 내쉬었다.
세이비어도 당장에 그 일에 대해서 비상이 났기 때문에 당장에 뭐라고는 답을 줄 수 없었다.
“그럼 그거 각성하는 장소는 알아?”
“장소는 알지만, 그게 전부야.”
“응? 무슨 소리야?”
“각성에 들어간 사람들의 기억은 모두 동일해.”
“뭔데?”
그녀는 자료를 살펴보는 듯 종이를 펄럭이더니 이내 궁수에게 대답했다.
“모두 실험실의 들어갔을 때와 나왔을 때의 기억 뿐, 중간 과정의 기억이 조금도 남아있지 않아.”
“뭐? 그런 게 가능해?”
“불가능할 건 없지만, 척 봐도 수상하잖아?”
“그건 그렇다만.”
“일단 그건 우리도 알아보고 있으니까, 진적이 있으면 알려줄게.”
“그래, 최대한 빨리 부탁해.”
거기까지 말한 궁수는 전화를 끊었다. 어느새 바깥은 해가 지고 땅거미가 완전히 잦아들었다.
“벌써 이렇게 됐나.”
궁수는 터덜터덜 걸어 집으로 향했다.
택시를 탈 수도 있었으나 지금 궁수에게 필요한 것은 생각을 정리할 시간이었다.
위대한 생각은 걷기로부터 나온다고 궁수 또한 골똘히 생각에 잠겨 골목을 걷고 있었다.
전봇대에 달린 간이 등만 깜빡일 뿐 주변은 조용했다.
쐐애애애액!
고요한 침묵 속 날카로운 암기가 궁수의 앞을 스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