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0화. 소는 역시 한우.
“아아, 반갑습니다. 세이비어 여러분?”
“쯧, 동료들은 어떻게 됐지?”
“동료분이라면, 준비를 하고 계십니다.”
“뭐? 무슨 준비?”
“오늘 밤 식을 거행할 예정이니 말이죠.”
식이라는 말을 들은 티아라의 얼굴이 시뻘겋게 변했다. 아마도 식이라 함은 산 제물을 뜻하는 것이리라.
“다들 마력이 풍부하신 게 참 좋은 제물이 될 거 같아 기대가 되는군요.”
으드득.
적잖게 분노한 듯 그녀는 이를 악물었다. 당장에라도 무전기가 부서질 듯 바들바들 떨렸다.
“털끝 하나라도 건드려봐, 묵사발을 내주마.”
“입이 험한 어린양이라니…. 이건 교화가 필요할 것 같군요.”
“이 개새끼야! 다 죽여 버릴 거야!”
“허, 그렇게 동료를 살리고 싶으시면 한 가지 제안하죠.”
마치 교묘한 뱀이 먹잇감을 조여 오듯 놈은 서서히 그녀를 휘감기 시작했다.
“지금, 바로 모든 무기를 버리고 오신다면, 동료들은 모두 풀어드리겠습니다.”
“…뭐?”
“왜 그러시죠? 동료들이 죽어나갈 때는 열불 내시더니, 정작 자신이 죽기는 겁나시나보죠?”
“…쓰레기 새끼.”
“그럼 성립된 걸로 알고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뚝.
그 말을 마지막으로 무선이 끊어졌다. 지금 그녀 주변은 초상집 분위기나 다름없었다.
궁수는 당연하게도 놈의 말을 순순히 들어줄 생각이 조금도 없었다. 그것은 티아라 또한 마찬가지였다.
“인벤토리에 무기를 넣어가면 안되나?”
“눈치 챌 거야. 보통 놈들이 아냐.”
마음 같아선 이 일대를 쑥대밭으로 만들어 버리고 싶었지만 그럴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인간을 지키기 위한 사람이 인간을 학살하다니, 억지도 정도가 있는 거다.
“아빠!”
“왜?”
“그러니까 저 인간만 혼자 들어가야 하는 거야?”
“흐음, 저 새끼들이 요구하는 건 그렇지.”
“으응…. 아빠가 들어가면 해결할 수 있어?”
“당연하지, 근데 그게 안되니까 이런 거잖아.”
“아냐! 할 수 있어!”
광팔이는 무언가 준비해둔 수가 있는 듯 자신만만하게 설명을 시작했다.
***
티아라는 정말로 무기는 한 자루도 들지 않고 성당 안으로 들어갔다. 손에는 궁수가 빌려준 화살 한 자루가 전부였다.
심지어 어떤 속성도 씌워지지 않은 평범한 화살이었다.
성당에 들어가자마자 교주가 기분 나쁜 미소를 지으며 티아라를 맞이했다.
그 앞에는 다른 여덟 명의 세이비어 멤버들이 포박되어 무릎을 꿇고 있었다.
“흐음? 무기는 들고 오지 말라고 했을 텐데요?”
그에게 선사받은 ‘눈’으로 인벤토리는 이미 확인했다.
정말로 그녀가 들고 온 것은 30센티 가량의 화살 한 개가 전부였다.
“…견디기 힘들 때 쓰라고 했어.”
그녀는 마치 궁수에게 버려진 듯한 표정으로 눈을 죽이고 고개를 푹 숙였다.
“씨발 새끼…. 무기를 빼서? 그걸 또 팔아? 그러고도 동료야?”
속사포로 쌍욕을 뱉어내는 그녀에게서는 진한 증오가 느껴졌다. 진심으로 궁수에 대한 배신감에 몸부림쳤다.
그 연기가 얼마나 리얼했는지 그녀는 당장에 궁수를 죽여 버리는 게 아닐까 걱정될 정도였다.
“푸흐흡, 그래요. 고작 그런 연대감이기에 패배하는 것이겠지요.”
“동료들은 풀어줘.”
“물론이죠, 당신이 먼저 저 제단에 올라갈 때 풀어드리겠습니다!”
교주가 가리킨 곳에는 널찍한 돌판이 놓여 있었다.
마치 짐승의 거대한 아가리 같은 것이 당장에라도 제단을 집어삼킬 것처럼 쩌억 입을 벌리고 있었다.
“…응.”
그녀는 궁수가 준 화살을 꽈악 쥐고 제단에 누웠다.
“흐흐흐흐 움직이지 않는 게 좋을 겁니다.”
주변에서 기다리던 다른 사교도들이 후다닥 그녀에게 족쇄를 채웠다. 양팔과 허리, 그리고 발목까지.
마치 해부대 위에 올라온 것처럼 그녀는 꼼짝할 수 없었다.
“동료가 중요하긴 한가보군요? 이렇게 순순히 말을 듣다니!”
그는 비릿한 미소를 지으며 묶여있는 티아라에게 다가왔다.
찰랑거리는 금발을 들어 향을 맡은 그는 참을 수 없다는 듯 몸을 파르르 떨었다.
“흐으으으! 아름다워! 너무나도 아름답습니다! 제물로는 사용하기 아까울 정도!”
불쾌한 추행에도 그녀는 몸을 움직이지 않았다. 정말로 모든 걸 포기한 사람처럼 멍하니 천장을 바라보았다.
“흐흐흐흐, 과연 기대가 되는군요.”
티아라의 뺨을 가볍게 쓰다듬은 그는 천천히 옷깃을 열었다. 위가 아닌 아래부터 그의 투박한 손길이 시작했다.
가녀린 티아라의 단추가 하나 둘 열리기 시작했다.
“하아… 하아…! 아름다워! 너무나도 아름답습니다!”
거친 숨을 몰아쉰 그는 그대로 티아라의 배에 코를 처박았다.
정확히는 처박으려 했다.
“너 뭐하냐?”
“…어?”
분명 고개를 숙일 때까지만 해도 티아라의 달콤한 향기가 진동했는데, 지금은 어째서인지 텁텁한 프로틴 냄새밖에 나지 않았다.
“손 때, 기분 더러우니까.”
“어, 도대체 이게 무슨…?”
제단에는 어느새 티아라가 아닌 궁수가 묶여 있었다.
“네, 네놈이 어째서!”
“흐으으읍!”
우드드드득! 콰아앙!
궁수를 속박하고 있던 족쇄들이 순식간에 풀렸다.
제단을 간단히 깨부숴버린 궁수는 사악한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쯧, 더러운 변태 새끼가, 티아라한테 그 짓을 하려고 했던 거 아냐?”
인벤토리에서 천궁을 꺼낸 궁수는 분쇄자로 변환시켜 휘둘렀다. 공기를 찢는 듯한 섬뜩한 소리가 울렸다.
콰앙!
얼마나 세게 땅을 밟았는지 궁수가 밟은 대리석이 쩌억 갈라질 정도였다.
잔상이 흐릿할 정도로 빠르게 돌진한 궁수는 분쇄자를 어깨에 이고 타격 폼을 취했다.
“근데 그쪽은 내 취향이 아니라서.”
“무슨….”
콰아아아앙!
“크허어억!”
매콤한 분쇄자에 공중에 떠오른 그는 피를 토하며 궁수를 노려보았다.
그러나 궁수는 조금의 틈도 허용하지 않고 그에게 화살을 겨누었다.
촤좌좌좍!
물이 흐르듯 자연스럽게 발사된 네발의 화살이 그의 양 팔과 다리에 한발씩 박혔다.
콰드드드득!
“끄아아아아악!”
비명을 지른 그는 그대로 화살과 함께 벽에 처박히고 말았다.
“교주님!?”
“교주님을 지켜라!”
“에헤이, 안돼 안돼.”
콰직!
무기를 든 광신도들이 궁수를 노리고 달려드려 했으나 이는 곧 천장에서 들려온 ‘콰득’ 소리와 함께 무산되고 말았다.
“어…?”
“천장이 너무 답답하더라고?”
콰아아아앙!
성당의 천장은 광팔이의 압도적인 마법을 버티지 못하고 허물어졌다.
혹여나 동료들이 다칠까 광팔이는 시야가 확보되자마자 동료들에게 보호 마법을 걸었다.
어지간한 A급 보스의 공격도 막는 탄탄한 보호막이 그들을 수호했다.
순식간에 상황이 역전되었다.
비장의 수인 세이비어 멤버들은 모두 안전이 확보가 되었다.
피를 뚝뚝 흘리며 상황을 확인한 교주는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놈을…. 놈을 풀어라!”
그의 외침에 성당 내부가 술렁이기 시작했다.
“정말로 그걸 풀 생각인가?”
“그, 그래도 침입자를 배제하기 위해서는 맞지 않나?”
“교주님의 명령이니까, 들어야 해.”
그들은 교주의 명령에 따라 성당의 가장 안쪽에 굳게 닫혀있던 문을 열었다.
“크르르르르.”
“와, 저게 저기 있었네.”
다름 아닌 며칠 전 궁수에게 개 박살이 난 미노타우로스 군단장이었다.
지금은 뭔가 잘못됐는지 침을 뚝뚝 흘리며 붉은 안광을 비추고 있었다.
한쪽 뿔은 부러져 있었고 다른 한쪽은 붉게 칠해져 있었다.
직립보행이 아닌 사족보행을 하는 것이 정상적인 상태로 보이지는 않았다.
“쯧, 저래서는 얻을 것도 없겠네.”
- 광폭화 상태로군, 조심해야 할 거다.
“그러면 시간만 끌어도 혼자 죽는 거 아냐?”
궁수가 알고 있는 광폭화란 시간이 지나면 혈액이 역류하여 사망하는 것이다.
- 그럼, 저걸 데리고 마을을 박살 낼 생각이냐?
“아, 제길. 그건 그렇네.”
거기까지 생각을 마친 궁수는 뭐 할 것도 없이 광팔이에게 눈치를 주었다.
“알겠어. 아빠!”
광팔이의 입 앞에 크고 작은 여섯 개의 마법진이 모습을 드러내었다. 이용 가치도 없었기에 이번에는 살려둘 필요도 없었다.
쿠콰콰콰콰쾅!
“쯧, 저건 또 뭐야.”
광팔이의 섬광은 미노타우로스 앞에 생긴 붉은 막에 막히고 알았다.
혈액처럼 붉은 보호막은 미노타우로스의 의지에 따라 번뜩이고 있었다.
“쯧, 귀찮네.”
마법은 먹히지 않아 보였다. 기록을 위해 방송을 켠 궁수는 분쇄자를 들고 놈에게 달려들었다.
콰아아아앙!
다행히도 물리 공격은 유효한지 팔을 들어 궁수의 공격을 막았다.
“크하하하! 자그마치 군단장 급의 마물이다! 네놈의 얄팍한 수도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
교주는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소리쳤다. 궁수는 어이가 없는 나머지 헛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군단장? 최소 왕 정도는 데려왔어야지.”
세계 랭킹 1위.
궁수의 분쇄자에 불꽃이 깃들었다. 어둠은 아니었기에 신성을 사용하지 않았다.
준비를 마친 궁수가 다시 놈을 향해 돌격하기 직전 하늘 위에서 성검이 떨어졌다.
“이 개자식아아아!”
콰아아아아앙!
쿠오오오오오!
그 옆에서는 무장을 마친 티아라가 함께 떨어지고 있었다.
본래라면 적은 흔적도 없이 사라져야 맞지만 저 영문을 모를 붉은 보호막이 티아라의 성검조차 튕겨내고 있었다.
“또 뭐야!”
“괜찮아, 물리 공격은 먹혀.”
씨익 씨익 콧김을 내뿜는 놈은 뿔을 앞세워 궁수를 향해 돌격했다. 거대한 크기와 달리 엄청난 속도였다.
쿠워어어어어!
점프하여 놈의 공격을 피해낸 궁수와 티아라는 서로 눈치를 주고받았다.
마력을 일으킨 티아라가 궁수의 발밑에 자신의 검을 보냈다.
“간다!”
콰아아앙!
검을 박차고 뛰어내린 궁수가 마치 유성처럼 적의 팔뚝을 후려쳤다.
X자로 교차하여 궁수의 공격을 막아낸 놈은 뜨거운 증기를 뿜어내며 팔을 허우적대었다.
궁수를 잡기 위한 몸부림이었으나 저런 눈먼 공격에 맞아주기엔 궁수가 너무 날랬다.
날아드는 손들을 모두 후려치며 돌진한 궁수는 뒤가 아니라 오히려 놈의 앞에 착지했다.
쿠워어어어어어!
날카로운 이빨을 선보인 놈은 포효하며 궁수를 압박했으나 조금도 먹히지 않았다.
쾅! 콰아앙!
“치우시고~”
날아드는 손들은 궁수의 분쇄자에 모두 저지당하고 말았다. 놈의 몸이 훤히 드러났다.
그러나 궁수는 몸을 노리지 않고 뛰어올랐다.
궁수의 화살통에 2미터가 넘는 기다란 화살이 한 자루 만들어졌다. 화살촉에 붉은 빛을 머금고 있었다.
“어디 이것도 막나 보자!”
푸욱!
궁수는 그대로 놈의 입 깊숙이 화살을 처박았다. 미노타우로스의 속에 거대한 창이 꽂혔다.
[ㅗㅜㅑ.]
[머꼴인데.]
[햇반 가져와!]
[그렇게 큰건 무리라구우우!]
[TAG : DEEP…]
ㄴ 강제퇴장 되었습니다.
ㄴ 태그좌 갔누 ㅋㅋㅋㅋㅋㅋㅋ
ㄴ 나가도 TAG : LEAVE PLAY 이러고 있을 듯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ㄴ 방치플 씹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궁수는 놈의 턱을 발로 차 강제로 입을 닫아버렸다. 그리고는 분쇄자에 바람을 일으켜 놈의 코를 후려쳤다.
휘이이잉!
터져 나오는 바람에 궁수가 밀려나며 제법 거리가 생겼다.
“다음 생에는 한우로 태어나라!”
궁수가 마력을 일으키자 미노타우로스가 성대한 폭발을 일으켰다.
평범한 폭발이 아니라 뉴클리어를 사용했기 때문이었다.
아무리 놈이라 하더라도 몸속에서 터지는 뉴클리어를 막지는 못했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폭발이 놈의 붉은 보호막에 막히며 안에서 타들어가 버렸다는 것이다.
“제길! 역시 불완전한 건가! 빨리 저 놈을 막아라!”
“와 아직도 포기를 안해?”
교주의 명령에 따라 성당을 가득 채운 광신도들이 궁수 일행을 향해 달려왔다.
그러나 궁수는 피하기는커녕 씨익 입꼬리를 올렸다.
미친 게 아닌 궁수의 눈앞에 반가운 알림이 띄워져있었기 때문이다.
[레벨업 - LV 160.]
[새로운 스킬을 얻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