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9화. - 사이비 소탕.
어느새 병실에서 지내고 2주가 흘렀다. 몸은 완전히 회복되어 당장에 퇴원을 해도 좋다는 말까지 들었다.
궁수는 그저 이참에 확실히 쉬라는 부모님의 말에 며칠 더 병원에 머물렀다.
“그럼 엄마는 가볼게~”
“네, 들어가세요.”
가족과 다른 멤버들이 모두 나가고 궁수는 병실에 홀로 남아 티아라가 건네준 서류를 확인했다.
“흐음, 소탕이라….”
종이에 적힌 내용은 다름 아닌 사교도 소탕이었다.
최근 아프리카 가나에서 발생하는 실종사건과 사교도 창궐 시기가 너무나도 절묘하게 맞아 떨어졌다는 모양이다.
산 제물, 혹은 사교도로의 영입 가능성이 걱정된다며 신속한 처리를 바라고 있었다.
“빼박이구만 뭐.”
서류를 확인한 궁수는 티아라에게 전화를 걸었다.
조금 시간이 늦긴 하였으나 그녀는 5초도 지나지 않아 궁수의 전화를 받았다.
“지금 한국이야?”
“응, 너만 오면 돼.”
“헛소리 말고.”
“진짜인데?”
영상통화로 전환한 그녀는 공항에 대기하고 있는 세이비어 멤버들과 함께 있었다.
정말로 궁수를 기다리고 있었는지 어쨌는지는 몰라도 다들 장비를 점검하고 있었다.
“안가 니들끼리 가.”
그러면서도 궁수는 부모님이 새로 가져온 옷을 입고 있었다. 이를 확인한 티아라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빨리와.”
“알겠어, 바로 갈게.”
***
“으으으 진짜 지 맘대로 착륙하네.”
“잘 했으면 됐지 뭐.”
궁수는 공항도 거치지 않고 곧바로 마을에 착륙한 비행기 파일럿을 쏘아붙이며 비행기에서 내렸다.
마을은 다른 마을과 별반 다를 것이 없었다.
빼곡하게 위치한 판자집들과 그 사이로 종종 보이는 벽돌과 진흙 집들이었다.
딱히 마을에서 어두운 분위기가 감돈다거나 하진 않았다.
다만 확실히 사람 수가 적어 인간들이 거주한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그래서 사교도 놈들은 어디 있는데.”
“정보에 따르면 마을 중앙의 성당에 있다고 했어.”
확실히 마을 중앙에 성당이 보이긴 하였다. 낙후된 다른 건물들에 비하여 훨씬 세련되고 현대적이었다.
“뭐 저리 튀어?”
마치 조선 시대에 나타난 마돈나같은 느낌이라고 해야 하나. 궁수는 어깨에 천궁을 걸고 그녀의 명령을 기다렸다.
“바로 돌입할 수 없어, 일단은 평범한 기독교 교회라고 알려져 있거든.”
“그거 신성모독 아니야?”
“글쎄.”
“십자가에 못 박힐 놈들이 많네.”
궁수 일행은 적당히 마을에 있는 상점가에 들어갔다.
그나마 사람들의 모습이 드문드문 보이긴 하였으나 이마저도 극히 적었다.
“일단은 정보 수집부터 하자.”
“정보 수집이라면?”
“마을을 돌면서 주민들에게 직접 물어봐야지.”
“둘로 나누면 되겠네.”
장난기가 돈 그녀는 고개를 틀어 궁수를 바라보았다. 눈이 가늘게 뜨이며 그녀의 입가에 호선이 그어졌다.
“그렇게 나랑 있고 싶…”
“뭐.”
“뒤질래? 표정 안 풀어?”
“사람이 개소리를 하니까, 신기해서 그랬지.”
우드득 우드득 몸을 푼 그녀는 살인 미소를 지으며 궁수에게 검을 들이밀었다.
“아하, 궁수가 한 번 더 병원에 가고 싶나 보구나?”
“너 나한테 졌잖아.”
“…어휴.”
궁수는 적당히 시선을 돌리며 은근슬쩍 상황을 돌렸다. 멤버는 둘씩 나누어 마을의 관찰을 하는 것부터 시작했다.
정확히는 광팔이를 끼워 셋이었지만 말이다.
시장, 광장, 심지어는 아이들의 놀이터까지. 교회에 대한 말을 들은 사람들의 반응은 두 가지였다.
쉬쉬하며 노골적으로 대화를 무시하거나 교회를 극찬하며 함께 가보자는 사람.
어느 쪽도 수상했기 때문에 궁수와 티아라는 섣불리 판단할 수 없었다.
하루 반나절을 돌아다녔음에도 상황에 진적이 없자 쫄랑쫄랑 따라다니던 광팔이가 입을 열었다.
“아빠.”
“응.”
“그냥 마을 통째로 날려버리면 안돼?”
“오호, 그거 좋은데?”
“어휴 좋긴 개뿔이, 정신 차려.”
지금까지 얻은 정보는 이러했다.
먼저 교회의 기도는 매주 수요일과 일요일, 그리고 특별 기도가 토요일에 있다는 것이다.
그 외에도 내부에 관한 내용이나 이것저것 있었으나 딱히 영양가 있는 정보는 아니었다.
그렇게 쓸 만한 정보는 얻지도 못하고 한숨을 푹 내쉬길 잠시 누군가 궁수의 어깨를 잡았다.
“교회에 대한 것이 궁금한가?”
워낙에 갑작스럽게 들어온 접촉에 하마터면 궁수가 그대로 놈을 패버릴 뻔했다.
마력이 느껴지지 않는 일반인이라 다행이지 헌터였다면 반갑다며 주먹부터 꽂았을 것이다.
“정보를 원한다면 따라와라.”
“우리가 뭘 믿고?”
“흐음, 적어도 나는 랭킹 1위를 상대로 사기를 치는 모자란 녀석은 아니라서.”
“호오?”
이곳은 스마트폰은커녕 옛날 브라운관 TV조차도 찾기 힘든 곳이다.
그런 곳에서 궁수의 존재를 알고 있었다니, 흥미가 돌았다.
“일단 가 보죠.”
“진짜 가게?”
“맘에 안들면 다 날려버리지 뭐.”
“하하하, 그럴 일은 없을 거니 걱정하지 마십쇼.”
놈을 따라 들어간 곳은 으슥한 뒷골목이었다. 궁수는 조심스럽게 그를 따라 들어가며 어느 가게에 들어갔다.
마치 점집이 생각나는 비주얼이었으나 정보를 얻을 수만 있다면 뭐든 좋았다.
‘브로커인가.’
궁수는 가나 화폐는 없었기 때문에 적당히 인벤토리에서 놀던 금덩이 한 개를 턱 놓았다.
“허어어억!”
“충분하지?”
그는 금을 확인하지도 않고 창고에 넣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다름 아닌 세계 랭킹 1위인 궁수가 준 거이니 확인할 필요도 없는 듯했다.
“뭐가 궁금하십니까?”
입금되자마자 말투가 완전히 바뀐 그는 서글서글 세상 온화한 표정을 지었다.
“교회에 대한 정보 전부.”
“흐음, 알겠습니다, 제가 알고 있는 모든 정보를 알려드리죠.”
그는 서적을 뒤지더니 빛이 바랜 책 한권을 집어 들었다.
“저 교회는 사교도가 맞습니까?”
너무나도 직관적으로 들어온 질문에 브로커는 조심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원래는 저렇게 큰 성당이 아니었습니다. 그저 사람들이 조용히 기도할 수 있는 작은 성당이었습니다.”
“흐음, 그래서?”
그는 책을 펼쳐 한 페이지를 보여주며 말했다.
“여기 이 남자 보이십니까?”
“예, 보이긴 하는데요. 누구죠?”
“그가 사도교의 수장입니다.”
“수장이요? 그거 맞아요?”
“네, 확실합니다.”
궁수는 사진 속 남자를 유심히 바라보았다. 평범한 체구에 선한 인상을 가진 남성이었다.
어디서나 보일법한 아저씨같은 사람이었다.
“이 사람이 사교도의 수장이라는 증거는?”
“그는 원래 외부인이었습니다.”
“외부인이었다고? 들어온 지는 얼마나 됐지?”
“5년쯤 됐겠군요.”
5년이라.
궁수는 턱을 쓰다듬으며 그의 이야기를 마저 들었다.
“먼저 기본적으로 성당을 관리하던 성직자들이 남자가 온 날을 기점으로 하나 둘 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사라져? 어떻게?”
“그야말로 사라진다는 것입니다.”
“구체적으로 어떤?”
“머리카락 하나도 남김없이! 마치 처음부터 그곳에 없던 것처럼 사라지죠.”
거기까지 이야기를 들은 궁수는 안면을 구기고 티아라를 바라보았다.
그녀 역시도 눈치챘는지 썩 좋은 표정은 아니었다.
‘제물로 올렸군.’
짐작을 완료한 궁수는 이번에는 다른 질문을 던졌다.
“그럼 저 놈은 도대체 뭘 섬긴다는 거지?”
“흐음, 글쎄요, 저 놈들 말로는 ‘그분’을 섬긴다고 하더군요.”
“하아, 또 그 새끼인가.”
더 이상 들을 필요가 없었다.
비워있던 도화지가 채워지며 서서히 그림이 잡히기 시작했다.
제물을 위해 일부러 가나의 적당한 크기의 마을을 찾고 계속해서 제물을 바쳐왔던 거다.
그것이 어린아이건 성인이건 상관없었다.
그들은 그저 제물이 되어 무언가를 소환하기 위한 매개체가 될 뿐이었다.
“생각보다 복잡한데.”
“마을 전체가 사교도에 물들어 있다니…. 쯧.”
심각한 표정의 둘을 바라보며 브로커는 스윽 손을 들며 제안했다.
“이렇게 된 거 직접 예배 시간에 가보는 게 어떻겠습니까?”
“흐음, 그게 낫겠군.”
“마침 오늘은 수요일이라 오후 예배가 있는 날입니다. 바로 가시죠.”
그것도 잠시, 궁수는 예리한 눈초리로 그를 노려보며 물었다.
브로커라는 놈이 예배를 간다니 궁수는 썩 이해가 되지 않았다.
“잠깐, 너도 사교도냐? 어떻게 그런 걸 다 알고 있지?”
“쯧, 그건 당신이 사교도를 믿지 않은 자들이 어떻게 됐는지 몰라서 그럽니다.”
“믿지 않으면 어떻게 되는데?”
그는 유쾌한 추억은 아닌 듯 슬그머니 고개를 깔았다.
“마을 중앙 광장에서 화형 당했습니다.”
“…뭐?”
“말 그대롭니다. 예배에 참석하지 않으면 이단으로 간주하여 각종 형벌을 받게 됩니다.”
현대 사회에서 사람을 태운다니 찌른다느니 하는 형벌이라니, 가면 갈수록 사교도라기보다는 무슨 야만인 집단에 가까울 수준이었다.
***
원활한 정보 취득을 위해 다른 헌터들은 바깥에서 대기하고 있었다.
것도 그럴 것이 처음 보는 얼굴이 몰려 들어온다면 그건 그것대로 의심이 갈 것이다.
‘뭐 이렇게 화려해?’
수수한 바깥과는 달리 성당 내부는 감탄사가 나올 정도로 화려했다.
바닥에 쫙 깔린 대리석과 고급스러운 샹들리에는 마치 중세시대의 성에 온 것만 같았다.
확실한건 적어도 이 모든 것들이 평범한 성당에서 보일법한 것들은 아니라는 소리다.
궁수와 티아라는 혹여 눈에 띌라 고개를 숙이고 양 손을 모았다.
철컥!
평범하게 기도를 하는 것처럼 말이다. 사람들이 모두 들어오고 문이 잠겼다.
‘문을 잠궈?’
그와 동시에 뚜벅뚜벅 목사가 내부에서 걸어 나왔다.
한손에는 성경을 다른 한 손에는 누가 봐도 이상해 보이는 책이 한권 들려있었다.
초반 예배는 평범했다. 기도하고 성경 읽고 노래도 하고 그저 노말 그 자체였다.
궁수는 무교지만 적당히 대답해주며 눈치를 살피고 있었다.
목사는 열성적으로 예배를 하며 어느새 마지막 구절에 다 달았다.
모든 구절을 읽은 그는 짤막한 뜻풀이와 함께 한 번 박수를 쳤다.
환호성이 아닌 관심을 끌기 위한 박수였다.
그리고 잠시 정적이 맴돌았다.
“오늘 기도는 여기까지 하도록 하겠습니다.”
“예? 너무 이른 것이 아닐지….”
평소보다 곱절은 빨리 끝난 시간이었으나 그가 노린 것은 따로 있었다.
“오늘 환영할 일이 있습니다.”
그는 세상 포근한 미소를 지으며 궁수와 티아라에게 다가왔다.
“오늘 처음 오신 것 같은데, 아닌가요?”
“예, 맞습니다.”
능청스럽게 대답한 궁수는 아무렇지 않다는 듯 서글서글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광팔이는 지루하다는 듯이 하품을 하며 멍하니 궁수에게 기대고 있었다.
“호오…. 이렇게 귀한 분이 오시다니.”
그의 찐득한 보라색 마력이 일어나더니 이내 성당 전체를 감돌았다.
‘쯧, 나가리군.’
평범하게 앉아있던 신도들이 마치 신이라도 들린 것마냥 비틀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눈에는 광기를 머금은 것이 보통 상태는 아니었다.
“광팔아! 본체 꺼내!”
“응! 알았어, 아빠!”
“야 잠깐…. 꺄아아아아악!”
쿠콰아아아아앙!
광팔이가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오자 가볍게 성당의 천장을 뚫어버렸다.
궁수는 티아라를 옆구리에 들고 곧바로 광팔이의 등 위에 타고 날았다.
“아빠! 어떻게 할까!”
“일단은 민간인이야, 못 죽여.”
티아라는 골치 아픈 듯 인상을 구기며 말했다. 다급히 다른 대원들에게 연락하기 위해 전용 무전기를 조작했다.
“전 대원 접선 장소로 복귀하라.”
[….]
그러나 무전기에서는 어떠한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잠시 무전기가 치지직 거리더니 이내 연결이 된 듯 어떤 목소리가 들려왔다.
“흐음, 이렇게 다루는 게 맞나 모르겠군요.”
“어…?”
다름 아닌 방금 전 목사의 목소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