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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접병기 활-128화 (128/172)

◈ 128화. 가시는 잘 발라 드세요.

“네가 그놈이구나.”

“니 새끼가 첫 가시구나.”

첫 가시와 궁수의 시선이 교차했다.

‘쉽지 않다.’

본능적으로 느낄 수 있는 강함, 방금 전 상대했던 녀석보다도 월등히 강했다.

그러나 궁수는 놈을 향해 화살을 겨누었다.

“그거 두고 가는 게 좋을 텐데?”

“흐음, 아직 쓸모가 있어서 말이야. 거절하지.”

“푸흐흐흡.”

수십 개의 화살과 수백 개의 마법진이 가시를 노렸다.

“거절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하는 거 아니지?”

“그렇다만?”

“아하.”

손을 뻗으니 모든 방향에서 화살이 가시의 숨통을 조였다.

“네가 아직 대가리가 덜 깨졌구나?”

콰직!

주먹을 쥠과 동시에 화살들이 그의 심장을 노리고 날아들었다. 가시는 코웃음 치며 마력을 모아 바닥을 즈려 밟았다.

콰아아아아앙!

검은 마력이 터져 나오며 궁수의 화살은 힘을 잃고 툭 떨어지고 말았다.

물리력에 막힌 것이 아닌 통제할 수 있는 힘 자체가 사라졌다.

“놓치지 않아!”

곧바로 이어진 광팔이의 속박 마법은 잠깐 가시를 막는 듯했으나 놈은 아무것도 없는 허공에서 칠흑의 검을 한 자루 꺼냈다.

쩅그랑!

가볍게 휘두르는 것만으로 광팔이의 마법진이 깨지며 마력을 잃었다.

원거리 공격은 거의 통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궁수가 해야 할 행동은 한가지 밖에 없었다.

“쯧, 이럴 줄 알았어.”

- 그냥 보내 주는 게 나을 것 같다만….

무리하게 이어진 전투로 궁수는 위태 그 자체였다.

그러나 궁수는 어떻게 얻은 이 천재일우의 기회를 놓칠 생각이 조금도 없었다.

놈이 직접 모습을 드러냈다는 것은 이번 클로징이 그만큼 놈들에게 치명적이었다는 것이니 말이다.

마력을 터트리며 돌진한 궁수는 분쇄자로 가시의 검을 후려쳤다.

도신이 몹시 얇았으나 검은 일말의 떨림도 없이 궁수의 공격을 막아내었다.

콰아아앙!

흙먼지가 일어나며 매우 가까운 거리에서 두 남자의 눈이 마주쳤다.

“정말 날 막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물론.”

카앙! 카가각!

분쇄자를 쳐낸 놈은 가볍게 땅을 박차고 궁수를 향해 검 끝을 들이밀었다.

왼쪽 눈을 노린 지극히 치명적인 일격이었다.

가볍게 고개를 비튼 것만으로 공격을 피한 궁수는 피식 가시를 비웃으며 말했다.

“정말 날 맞출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다분히 신경을 긁는 발언에 가시는 허를 찔렸는지 끌끌 웃으며 말했다.

“물론.”

찌르기를 피한 궁수는 그대로 놈의 손목을 잡고 팔꿈치로 놈의 인중을 가격했다.

“하, 이런 놈이 어째서 궁수인지 이해가 안되는군.”

반대 손으로 공격을 막아낸 가시는 아쉬운 듯 입맛을 다시며 궁수를 밀어내었다.

휘이이잉!

옅은 바람이 일어나며 궁수는 안전하게 착지했다.

옷을 툭툭 치며 먼지를 털어내는 여유를 보이는 궁수에게 가시가 말했다.

“제안하겠다.”

“싫은데?”

“뭔지는 아는가?”

“내 쪽으로 붙어라~ 그런 거겠지 뭐.”

“하하.”

가시의 인영이 흐려졌다. 눈을 깜빡하는 것보다도 빠른 속도로 궁수의 앞에 모습을 드러내었다.

“그렇다면 여기서 처리해야겠군.”

“내가 널?”

“푸흡, 재밌는 말을 하는구나!”

가시의 검은 놀랍도록 빠르고 놀랍도록 날카로웠다.

그러나 궁수 또한 밀리지 않았다.

마력을 실은 손 날로 검면을 처내고 분쇄자로 머리통을 노렸다.

빠아악!

아쉽게도 궁수의 공격은 놈의 왼팔에 막히며 더 이상 나아가지 못했다.

분쇄자를 흡수한 궁수는 바람을 일으켜 적을 날려버렸다.

휘이이잉!

허공에 떠오른 적은 궁수의 먹잇감이나 다름없었다. 곧바로 8개의 화살이 놈을 노리고 동시에 날아갔다.

촤악! 촤좌좌좌좍!

물론 모두 베이며 가시에게는 한발의 화살도 적중시키지 못했다. 그러나 여기까지는 예상한 수였다.

“여흥인가, 퍽 나쁘진 않구나!”

옅게 미소를 지은 그는 검은 날개를 만들고 궁수에게 날아들었다.

궁수 또한 거대한 두 개의 화살을 만들어 조종하며 그녀의 접근을 막고 있었다.

거대한 화살 두 발을 자유롭게 다루는 궁수는 놈이 접근할 수 없도록 활대로 후려치며 쉴 틈 없이 공격했다.

몰아치면 몰아칠수록 더욱 속도에 궁수는 이를 악물어야 할 지경이었다.

만반의 준비를 갖춘 것도 아니고 심지어 자신은 홀로 파도형 게이트를 클로징하고 왔다.

마력 회로는 과열되어 제어하는 것조차 버거웠다.

“끝내주마!”

“내가 끝내주긴 해!”

파가각!

궁수의 두 화살을 베어버린 가시는 날개를 활짝 피며 공중에서 거대한 힘을 모으기 시작했다.

“오냐 한번 해보자!”

궁수도 당장 날아가 놈의 공격을 막고 싶었으나 당장 지금은 그럴 여력이 없었다.

그저 자신의 공격이 통하길 바라면서 결전기를 준비할 뿐이었다.

궁수의 대가는 남은 마력 전부.

이걸 사용한다면 자신은 분명 기절할 것이다. 애초에 지금도 숨이 가쁘고 정신이 끊어질 듯 피곤했다.

그렇기에 궁수는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의 공격을 준비했다.

화르르륵!

천궁을 흡수한 상태였기에 실체는 없었으나 궁수는 화살을 걸고 시위를 당겼다. 불꽃이 일어나며 그 위로는 바람을 씌웠다.

거기에 더해지는 신성과 전류까지.

가지고 있는 것만으로도 손이 떨리며 버거운 한방이 완성되었다.

마치 화살 안에서 천둥 번개가 치는 태풍이 일어난 모습이었다.

마침 적도 준비가 끝난 듯 검을 들어 올리며 시커먼 기운들을 모았다.

“죽어라!”

“뒤져라!”

궁수의 태풍과 적의 어둠이 격돌했다. 가시가 쏘아낸 초승달 모양의 어두운 검기는 치열하게 궁수의 화살과 격돌하였다.

과연 이것이 인간이 벌일 수 있는 수준의 전투인지 의심이 들었다.

궁수의 입과 눈에서 피가 흘렀다. 앙 다문 입에서는 비릿한 혈향이 느껴졌다.

쿠와아아아아앙!

한치 앞도 예측할 수 없는 전투의 종막에서 서 있는 것은 가시였다.

궁수는 더 이상 몸이 견딜 수 없었는지 다량의 피를 토하며 쓰러졌다.

그러나 가시도 한쪽 팔이 넝마가 되어 숨을 헐떡였다. 설사 자신과 비등할 것이라고는 생각지도 못했기 때문이다.

“치잇….”

그도 결국에는 혀를 차며 게이트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

“낯선 천장이다.”

“그럼 병원이 낯설지 익숙하냐?”

“그러게요, 저 왜 살아있죠?”

“그럼 이참에 그냥 죽여주랴?”

“농담도 못하냐!?”

궁수의 옆에서는 티아라가 한심한 표정을 지으며 사과를 먹고 있었다.

반대쪽에서는 광팔이가 코까지 골며 곯아떨어져 있었다.

“…그걸 왜 니가 드세요?”

“응? 맛있으니까.”

“…어휴.”

그녀의 뻔뻔한 태도에 궁수는 한숨을 푹 내쉬며 침대에 몸을 맡겼다.

다행히도 몸에는 크게 이상이 없는 듯 약간의 상처를 제외하고는 별 다를 바는 없었다.

“의사가 뭐래?”

“별건 아니고 회로가 한계까지 혹사됐다고, 좀 쉬래.”

“좀? 얼마나?”

“한 달은 걸린다는데 넌 일주일이면 가능하지?”

“개소리야.”

궁수는 그녀를 나무라며 마력을 일으켜 보았다.

조금 마력의 연결이 불완전한 느낌이 들긴 하였으나 마력은 문제없이 발현되었다.

그러나 본래 궁수의 수준을 생각하면 한참 불완전한 수준이었다.

세세한 궁수에게 있어 불편할 정도의 이질감은 편히 넘길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흐음, 애매하네.”

“5일 가지고는 무리지.”

“5일이라고?”

“응, 너 5일간 기절해있었어.”

“그런가…. 이곳이 미래인가.”

궁수의 헛소리를 가볍게 씹은 그녀는 깍은 사과들을 접시에 모아 궁수 앞에 놓아주었다.

“그래서, 가시는?”

“추적 불가, 마력 잔향 없음, 게이트 닫힘.”

“쯧, 최악이네.”

“이 정도면 차악이지, 최악은 아니야.”

아삭!

사과를 집어먹으며 궁수는 골치 아픈 듯 한숨을 푹 내쉬었다.

“프랑스 쪽은 어땠는데.”

“별거 없었어, 워낙에 신성력을 사용할 수 있는 헌터들이 많아서.”

“그렇다면 다행이고.”

티아라는 한숨을 푹 쉬며 궁수를 바라보았다. 그녀의 시선에는 미안함과 애틋함이 담겨 있었다.

“뭘 꼬라봐?”

“어휴 무드 없는 새끼.”

그녀는 궁수 앞으로 파일을 툭 던지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뭔데 이게.”

“다음 공략 지역.”

“뭐, 오라고?”

“그럼 맞고만 있을 거야?”

병실을 나가기 직전 그녀는 피식 웃으며 궁수에게 말했다.

“나중에 봐, 랭킹 1위.”

“응? 뭐? 랭킹 1위?”

탁!

그녀는 거기까지 말을 남기고 문을 닫고 나가버렸다. 궁수는 후다닥 휴대폰을 켜 세계 헌터 랭킹을 검색했다.

[WORLD]

[랭킹 1위 - 나궁수]

[ASIA]

[랭킹 1위 - 나궁수]

[KOREA]

[랭킹 1위 - 나궁수]

그렇다.

국내 1위도, 아시아 1위도 아닌 세계랭킹 1위!

[나궁수 - 지구를 먹었다, 다음은 태양계다.]

본문 - 긴장해라 안드로메다!

ㄴ 지랄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ㄴ 존나 주접 신박하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전 랭킹 1위 할아범 현 상황.]

본문 - 대충 판다가 책상에 있는 물건 다 던져버리는 짤.

ㄴ 아아 이것이 ‘세대교체’라는 것이다.

ㄴ 세대 처맞고 교체당했누 ㅋㅋㅋㅋㅋㅋㅋㅋ

ㄴ 좋은 틀니였다…

[나궁수 - 이 지랄 하면서 유난떠는 새끼들 특.]

본문 - 틀린 말이 하나 없다.

ㄴ 사격중지 아군이다!

ㄴ 어쩌라고 그냥 죽여.

ㄴ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ㄴ 언제부터 적아 판단하고 싸웠냐고 ㅋㅋㅋㅋㅋ

ㄴ 어서 투기장을 열어라!

아니나 다를까 커뮤니티는 한술 더 떠서 궁수를 거의 반쯤 신격화시키고 있었다.

추가로 여태껏 궁수가 해온 수많은 업적들이 공개되며 다시금 그를 압도적인 존재로 부각시켰다.

에티오피아 내전 진압, 호주 구출대의 활약, 중국 철갑산 파도의 활약, 여러 가지 수많은 업적들이 궁수를 수놓았다.

그러나 그중에서도 단연 압도적인 업적이 하나 있었다.

[파도형 게이트 단독 클로징.]

70억 지구인중 단 한명도 성공하지 못한, 그리고 앞으로도 성공하지 못할 어마어마한 업적이었다.

“하, 내가 다 부끄럽네.”

궁수는 1위라는 것에 위안을 얻으며 멍하니 천장을 바라보았다. 전형적인 새하얀 병원 천장이었다.

“하아….”

눈을 감고 휴식을 취하기도 잠시 문이 열리며 궁수의 지인들이 우르르 몰려왔다.

프로틴 프로의 동료들부터 부모님까지 순식간에 병실이 바글바글 가득 찼다.

“일어났어!”

“몸은 좀 어때?”

“아직도 아프니? 아들 괜찮아?”

“느헤헤헿! 궁수! 궁수!”

“아픈척 하지 말고 빨리 일어나셈!”

“크하하하! 천하의 나궁수도 이 정도는 무리인건가!”

주변 지인들의 시끄러운 외침에 궁수는 싫은 척 하면서도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부! 활!”

***

자신의 거처로 돌아온 첫 가시는 털썩 자리에 주저앉았다. 오래간만에 느껴보는 탈력감이었다.

똑똑똑

“들어와.”

중후한 노크 소리와 함께 성직자 복장을 한 남성이 안으로 들어왔다.

“‘갱생’ 시키도록.”

“알겠습니다.”

어둠에 쌓여있던 군단장을 받아든 그는 꾸벅 고개를 숙이며 조심스럽게 밖으로 나갔다.

“쯧, 너무 가볍게 생각했군.”

그는 의자에 등을 기대며 잠시 눈을 붙였다. 아주 평온하고도 부드러운 어둠이 가시를 감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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