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7화. 도축.
“호오? 네놈이 그분이 말한….”
콰콰콰콰콰쾅!
말을 다 잇기도 전에 궁수의 폭격이 쏟아져 내렸다.
조금의 오차도 없이 적의 심장을 향해 쏟아져 내린 화살이 어둠과 격돌했다.
하지만 단 한 개의 화살만은 거대한 광팔이의 몸 뒤에 숨어 정체를 드러내지 않고 있었다.
적들의 시선이 모두 미노타우로스에게 팔린 사이 궁수는 재빨리 남은 한발의 화살을 발사했다.
쐐애애애애액!
알고 있다고 해도 피하기 어려운 초신속의 화살이 가시를 향해 날아갔다.
그녀는 애석하게도 미노타우로스를 위한 버프를 캐스팅 중이었다.
푸욱!
“어…?”
화살이 10미터 내로 접근하자 그녀는 그제서야 눈치를 채고 고개를 돌렸으나 이미 때는 늦었다.
궁수의 화살이 그녀의 심장에 박혔다.
“죽어.”
제대로 화살이 적중된 것을 확인한 궁수는 주먹을 불끈 쥐었다.
회색빛 마력이 일어나며 그녀의 심장에 박힌 화살이 폭발했다.
그간 몬스터들에게 버프를 쥐어 주며 헌터들의 눈살을 찡그리게 만들었던 가시가 단 1초도 되지 않는 시간에 사망한 것이다.
“다음.”
이제 시작이라는 듯 광팔이 또한 힘을 더했다.
광팔이 위로 만들어진 여섯 개의 크고 작은 마법진이 모두 궁수의 앞으로 모였다.
“아빠 써.”
“…그래.”
광팔이의 강렬한 신성력에 마법진은 눈이 부실 정도였다.
궁수는 신성력을 뽑아내며 화살 한 자루에 위력을 더했다.
궁수의 손 위에서 길이만 10미터가 넘어가는 거대한 화살이 신성력으로 일렁이기 시작했다.
마치 불꽃처럼 타올랐으나 뜨겁진 않았다.
오히려 더욱 따뜻하고 아늑한 느낌만이 궁수의 손 위에 일렁였다.
해가 저물어가며 땅거미가 내려앉은 전장에서 오직 궁수의 화살만이 밝게 빛나고 있었다.
궁수는 그 거대한 화살을 마법진 위에 겨누었다.
천궁은 흡수되어 실체는 없었지만 궁수는 마치 활을 겨누듯 시위를 당겼다.
“미친….”
“아아 구원자가…. 구원자가 왔어.”
“랭킹이 격변하겠군.”
남아있던 헌터들은 모두 궁수를 경외하며 바라보았다.
어떤 이는 대놓고 무릎을 꿇고 궁수에게 기도를 올리는 사람도 있었다.
한계까지 투명한 시위를 당긴 궁수는 광팔이의 마법과 동시에 자신의 화살을 발사했다.
화살보다는 악을 멸하는 성창에 가까운 모습이었다.
화아아아악!
광팔이의 마법진을 거치자 더욱 강렬해진 궁수의 성창은 일직선으로 미노타우로스를 향해 날아갔다.
방금 전까지 몰아치던 궁수의 화살을 막아낸 놈은 이어진 공격에 광소하며 손을 뻗었다.
“들은 것보다 훨씬 괴물이군!”
그의 전신에 둘러진 어둠이 흘러나오며 궁수의 화살과 격돌했다.
단 0.1 미리의 신성력도 침입을 허락하지 않겠다는 듯 어둠은 자꾸만 궁수의 화살을 집어삼켰다.
궁수는 인상을 구기고 더욱 강렬하게 마력을 일으켰다.
궁수의 노력 덕분에 헌터들은 무사히 대피를 마친 상황이었다.
궁수는 저 어둠을 관통하기 위해 이를 악물고 버티며 더욱 힘을 길렀다.
아직 모자라다 생각했는지 궁수는 한발의 화살을 더 만들어냈다.
마력이 부족했기 때문에 방금 전과 같은 위력을 가진 화살은 아니었다. 다만 적을 견제하기에는 충분했다.
“아빠!”
“그래, 잡몹은 다 쓸어버려!”
“응, 다녀와 아빠!”
궁수는 그 말과 함께 광팔이의 등 위에서 뛰어내렸다. 마법진을 밟고 마치 포탄처럼 땅으로 쏘아졌다.
왼손으로는 화살의 압박을 계속하며 오른손으로는 새로운 화살을 준비했다.
“흐으으으읍!”
“크하하하! 네놈이 아무리 노력해도 그분의 어둠은 뚫을 수 없다!”
미리 쏘았던 화살을 밟고 한 번 더 뛰어오른 궁수는 공중에서 한 바퀴 회전하여 적의 후방을 잡았다.
원래는 화살을 조종하는 이 능력을 사용하는 도중에는 움직일 수 없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흘러나가는 마력이 너무나도 많았기에 움직이지 않았던 것이다.
실제로 지금 궁수의 마력은 밑 빠진 항아리처럼 쏟아지고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아껴야 할 때가 아닌 미친 듯이 쏟아 부어야 할 때다.
“뒤져라!”
“인간 주제에 나를 쓰러트릴 수 있을 것 같으냐!”
앞에 박혀있는 화살을 끌어당김과 동시에 왼손에 쥔 화살을 발사했다.
놈은 곧바로 어둠을 쪼개 후방에서 발사된 궁수의 화살을 막았다.
그러나 그것이야 말로 진정 궁수가 기다리던 것이었다.
- 멍청한 놈, 저 정도의 어둠으로 막을 수 있는 것이 아니거늘.
두 번째 화살이야 급조하였기 때문에 어느 정도의 어둠으로도 막을 수 있다.
그러나 광팔이와 함께 만들어낸 첫발은 고작 저 정도의 어둠으로 막기는 턱없이 부족했다.
궁수는 적을 바라보며 버겁게 양 손을 모았다.
푸욱!
“크하아아아악!”
어둠을 맹신했는지 신성 화살이 놈의 옆구리에 박혔다.
주춤하며 자세가 무너졌다. 남은 한발의 화살 또한 놈의 반대쪽 옆구리에 박혔다.
“뒤져라!”
궁수는 곧바로 마력을 일으켜 신성 폭발을 일으켰다. 인간인 자신은 별 영향이 없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삐이이이이이
일대를 집어삼키는 엄청난 신성 폭발이 일어났다.
미노타우로스는 몰라도 주변의 잡몹들은 궁수의 폭발에 흔적도 남지 않고 사라지고 말았다.
“크흐…흐흐흐흐!”
폭발의 후폭풍이 잦아들며 미노타우로스, 마 군단장의 모습이 드러났다.
찔린 옆구리에서는 검은 피가 줄줄 흘렀고 놈의 갑주는 모두 파괴되어 넝마 신세를 면치 못했다.
그럼에도 놈은 즐거운 듯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내며 웃고 있었다.
전쟁광인 그에게 있어서 강자가 나타났다는 것은 환호할 일이었다.
“얼마 만에 나와 대적하는 이인가!”
누더기가 된 갑주를 잡아 뜯어버린 놈은 가슴을 탕탕 두드리며 포효했다.
왼손에 든 거대한 배틀액스로 궁수를 향해 치켜들었다.
“덤벼라, 자격 있는 이계의 전사여!”
“뭐래?”
궁수는 어이없다는 듯 중지를 올렸다. 그와 동시에 궁수에게 날아든 광팔이가 궁수의 옷깃을 물고 등에 태웠다.
“뭣!? 도망가는 거냐!”
“이래서 짐승들은 안돼.”
놈이 닿을 수 없는 거리까지 올라간 궁수는 얼마 남지 않은 마력 포션을 들이키며 눈을 빛냈다.
“아들, 죽여 버려.”
“응!”
더 이상 놈을 지켜주는 어둠도 없다. 훤히 드러난 놈이 당황하여 궁수를 노려볼 뿐이었다.
먼저 순백의 마법진이 놈을 둘러쌓았다.
드래곤은 마법의 정점에 선 종족, 그리고 그것은 광팔이도 다르지 않았다.
태어났을 때부터 가지는 천부적인 전투 센스와 마력 운용 능력은 월등하다 못해 압도적이었다.
“크아아아! 나를 우롱할 셈이냐!”
“아니, 도축.”
쾅 콰아앙! 쨍그랑!
분노에 차올라 날뛰는 놈은 압도적인 무력으로 드래곤의 마법진을 깨부수고 있었다.
그러나 마법진은 부수면 다시 만들면 되는 것.
인간에게는 버겁지만 드래곤에게는 숨 쉬듯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수십 개의 마법진이 깨지면 수백 개의 마법진이 생겨났다.
“가만히 좀 있어! 귀찮게!”
마치 서서히 거리를 좁혀오는 사냥꾼처럼 미노타우로스도 결국에는 광팔이의 마법진에 둘러싸일 수밖에 없었다.
상하전후좌우
수백 개의 마법진이 놈의 시야를 가렸다. 마법진은 단순한 차단용이 아닌 마법을 사용하기 위한 매개체이다.
다시 말해서 저 수많은 마법진 한 개 한 개가 모두 마법을 머금고 있다는 뜻이었다.
“드래곤은 다 이런 건가.”
- 그럴 리가, 네 아들이 특별한 거다.
“허어….”
콰드드드득!
“끄아아아아아악!”
마법진에서 빗어진 순백의 쇠사슬들이 놈의 전신에 처박히며 움직이지 못하도록 단단히 고정했다.
추가로 주변에 10개가 넘는 궁수의 신성 화살들이 박혔다.
당장에 신성 폭발을 일으킬 수 있는 화살이었다.
서서히 땅으로 내려온 궁수는 한술 더 떠서 광팔이에게 명령했다.
“저 새끼 왼팔 잘라버려.”
“응 아빠!”
마음 같아서는 머리통을 날려버리고 싶었으나 정보를 캐내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었다.
“움직이면 다쳐!”
“끄으으으윽! 이러고도! 이러고도 네놈들이 살 수 있을 것 같으냐.”
“곧 죽을 놈한테 들을 말은 아니군.”
마음 같아선 놈 앞에서 스테이크 조리 영상을 틀어주고 싶었으나 궁수는 애써 참았다.
“자른다~”
“안돼! 안된다!”
서걱!
단단히 고정된 놈의 팔 앞뒤로 마법진이 생겨났다.
그리고는 순식간에 마력이 스치며 놈의 왼 팔이 잘려나갔다.
“끄아아아아아악!”
“어허 아가리 닫아.”
궁수는 화살 한 발을 놈의 발등에 쑤시며 강제로 입을 닫게 만들었다.
쇠사슬이 마력으로 놈을 막는다면 궁수는 물리력으로 놈의 입을 닫게 만들었다.
“숙여.”
억지로 쇠사슬이 움직이며 놈의 무릎을 꿇렸다.
“쯧, 개자식.”
푸욱!
“끄아아아아악!”
궁수는 성질이 풀리지 않았는지 놈의 양 어깨에 화살을 한발씩 처박았다.
방금 전까지 헌터들이 당한 수모에 비하면 이것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지금부터 잘 대답하는 게 좋을 거야.”
궁수는 오른손에 기다란 화살을 들고 놈의 눈알을 벌렸다.
“흐으으윽, 알겠다, 협조하도록….”
푸욱!
“끄아아아아악! 왜! 왜냐! 협조하겠다고 하지 않았느냐!”
궁수는 놈의 왼쪽 눈알에 화살을 쑤셔버렸다.
눈알이 터지며 몹시 그로테스크한 상황이 연출되었으나 궁수는 눈 하나도 깜짝하지 않았다.
오히려 주먹으로 놈의 머리통을 후려치며 말했다.
“그냥 말본새가 마음에 안들어서.”
“그런 억지가…!”
푸우욱!
미노타우로스의 새끼손가락에 궁수의 화살이 꽂혔다.
“끄아아아아악! 미, 미안하다!”
“아직 정신을 못 차렸네.”
푸우욱!
미노타우로스의 중지에 궁수의 화살이 꽂혔다.
“흐그으으으윽, 죄, 죄송합니다. 뭐든지 말할 테니, 끄으으윽.”
푸우욱!
“아아악! 어째서!”
“흠? 그럼 너는 왜 헌터들 죽였어?”
“그, 그건….”
“내가 묻잖아.”
푸욱!
“끄아아아아악! 나, 나는 명령에 따라서 움직였을 뿐이다!”
“응, 그럼 나도 하느님이 시켰어~”
푸우욱!
놈의 왼손은 모든 손가락에 궁수의 화살이 꽂혔다.
궁수는 차분하게 걸으며 미노타우로스의 오른 손으로 이동했다.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제발 오른손만은!”
“흐음, 그럴까?”
궁수는 먼저 놈의 엄지 위로 화살을 둥실 띄우며 말했다.
소름끼치도록 잔혹했으나 헌터들이 당한 것을 알기에 조금도 불쌍하다고 느껴지지 않았다.
“이 화살이 떨어지기 전에 대답 못하면 손가락 잃는 거야.”
“알겠습니다! 뭐든 대답하겠습니다!”
“옳지, 이제야 말이 좀 통하네, 이래야 내가 널 살려둘지 말지 고민하겠지?”
“네! 맞습니다!”
어차피 살려둘 생각은 조금도 없었다. 당장에 궁수는 놈에게 소재를 생각할 뿐이었다.
“자, 너네가 말하는 ‘그분’이라는 놈은 누구냐?”
“그, 그분은 만물의 주인이시며 마계의 모든 것을 다스리는 분입니다!”
“흐음, 그쪽 세계의 왕이다~ 이거야?”
“예! 그렇습니다!”
놈에게 약점을 물어본다고 한들 알고 있을 것 같지 않았다. 그렇기에 궁수는 이번에 질문을 바꿨다.
“가시는 뭐하는 놈들이지?”
“가, 가시…. 말입니까?”
푸욱!
“끄아아아아악!”
“너네들이 만든 거 있잖아, 왜 자꾸 일을 복잡하게 만들까.”
“네! 맞습니다! 맞아요!”
“그래서 걔네들은 뭐하는 놈들이냐고.”
미노타우로스는 고통에 몸을 벌벌 떨며 입을 열었다.
“제, 제가 아는 가시는 그분이 보낸 선지자를 중심으로 만들어진….”
화아아아아악!
“뭐야!”
놈이 말을 다 끝내기 직전 게이트에서 뿜어져 나온 어둠이 놈을 휘감았다.
그 안에서는 검은 로브를 입은 사내가 걸어 나왔다.
“하아, 비밀은 비밀일 때 가치가 있는 것이거늘.”
“아.”
궁수는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바로 저 남자가 그들이 말하는 첫 번째 가시라는 것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