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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접병기 활-126화 (126/172)

◈ 126화. 딥 빡.

인상을 마구 구긴 궁수는 탄식과 함께 한국 측 클로징 방송을 틀었다.

궁수가 무엇을 위해서 300명이 넘는 S~A급 최상위 헌터들을 보냈는데, 눈앞이 컴컴해졌다.

전화가 먹힐 거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지만 그래도 궁수는 셈에게 전화를 걸었다.

당연하지만 받지 않았다.

그리고 그것은 힐도 베로니카도 별반 다를 바 없었다. 마지막으로 전화를 건 대상은 다름 아닌 이은우였다.

뚜루루루루루.

불안한 통화 연결음이 울리며 궁수의 가슴을 조였다.

“역시 안 받나.”

“으, 으어어!”

“어!? 법사냐?”

전화를 받은 대상은 다름 아닌 법사였다.

상황이 좋지 않은 듯 그는 특유의 바보 같은 웃음소리가 아닌 당황한 듯 으어어 같은 말을 되뇔 뿐이었다.

“진정하고 있는 거 말해! 괜찮아!”

“괴, 괴물! 큰 괴물! 엄청 큰 괴물! 소!”

“소? 큰 괴물? 알았어, 지금 바로 갈게!”

그 뒤로는 별다른 말이 들려오지 않았다. 아무리 궁수가 소리쳐도 전화기에서는 별다른 반응이 없었다.

‘뭔가 단단히 잘 못됐다.’

거기까지 확인한 궁수는 곧바로 광팔이에게 소리쳤다.

“아빠?”

“최대한 빨리 여수로 가야해!”

“응! 알겠어! 꽉 잡아!”

쏴아아아아아악!

광팔이의 날개가 공기를 가르며 전속력으로 비행을 시작했다.

궁수는 최대한 동료들이 무사하길 빌 뿐이었다.

***

“흐흐흐흐…. 죽기에는 최고의 날이군!”

“누구 맘대로 죽으려고!”

“닥치셈! 일단 버티는 거임!”

한국 헌터들은 물론 지원을 온 수많은 헌터들의 시체가 가득했다.

초반은 물론 중후반까지 클로징은 매우 안정적이었다.

호주의 참상과 비교해서 헌터들은 월등히 강해져있었고 만반의 준비까지 갖춘 상태였다.

아무리 적들이 몰려온다 하더라도 충분히 적들을 쓸어버릴 화력 또한 가지고 있었다.

더군다나 나법사의 나라가 위험해졌다는 소식에 한걸음에 달려온 마탑주와 여러 아카데미 마법사들 덕분에 화력은 충분하다 못해 흘러넘치는 수준이었다.

오색빛의 찬란한 불꽃과 여러 속성의 마법이 적들의 등장과 동시에 갈아버렸다.

거의 종막에 다다르자 게이트에서 나오는 몬스터가 급격히 줄어들기 시작했다.

원래의 파도형 게이트라면 마지막에 더욱 몰아치기 마련이기에 헌터들은 의아했으나 방심하지 않았다.

최후의 최후까지, 저 빌어먹을 게이트가 닫히기 전에는 아무도 무기에서 손을 놓지 않았다.

그러나 그것은 긴장을 풀지 않는다고 하여 상대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순간 게이트가 완전히 활동을 정지했다. 닫힌 것이 아닌 정지한 것이다.

게이트는 덤덤하게 일렁이기를 반복했다. 마법사들은 혹시 모를 돌발 상황에 대비하여 각자 비기를 준비하고 있었다.

그런데 게이트에서 갑자기 방대한 양의 어둠이 터져 나왔다.

이는 한국에서 열심히 준비한 성벽을 너무나도 간단히 무너트려 버렸다.

콰콰콰콰콰쾅!

“수습! 수습해!”

“불가능 합니다!”

“제길!”

새까만 어둠의 구가 모든 헌터들을 집어삼켰다. 질식될 정도로 압도적인 마기에 헌터들이 휘청거렸다.

S급 헌터들이야 어떻게든 마력으로 마기를 차단하며 버텼으나 그 아래의 헌터들에게는 무리였다.

최상위 헌터들도 버겁게 버티는 힘을 그 아랫급 헌터들이 버틸 수 있을 리 없었다.

순식간에 벌어진 결과였다. 대부분의 A급 혹은 B급 헌터들이 쓰러졌다.

혼절하거나 기절한, 심지어는 마력이 역류하여 피를 뿜으며 사망한 이도 있었다.

S급 헌터들도 이를 악물고 버티긴 하였으나 힘들기는 매한가지인 듯 비틀거리기 일쑤였다.

마탑주는 혹시 몰라 나법사의 어깨를 부여잡고 보호막을 일으켰다.

아카데미 마법사들은 물론 최대한 많은 헌터들을 지키기 위한 행동이었으나 조금의 태양도 허락하지 않은 어둠 안에서는 바람 앞의 등불이었다.

마탑주가 피를 토하며 그의 새하얀 수염이 붉게 물들었다.

그는 쓰러지기 직전 다급히 법사를 불렀다.

“제자야! 이것을!”

“아, 알았다!”

법사는 다급히 마탑주의 메인 지팡이를 집어 들었다.

방대하게 퍼져있던 어둠은 다시 주인을 찾아가듯 일점에 모이기 시작했다.

일점의 존재는 우락부락한 근육을 가진 미노타우로스였다.

소용돌이치듯 순식간에 흡수된 어둠은 끈적하게 움직였다.

“흐음, 여기가 인간계인가.”

왼손에는 5미터는 가볍게 넘을 법한 전투 도끼를 들고 있었다.

어깨에는 해골 견갑을 낀 그의 뒤로는 수많은 마족 정예 병사들이 오와 열을 맞춰 전진하고 있었다.

또한 그의 뒤로는 익숙한 모습의 여자가 빗자루를 타고 하늘을 날고 있었다.

전에 백두산에서 상대했던 가시였다.

전투는 격렬했다.

남은 S급 헌터들은 어떻게든 저 괴물을 저지하기위해 최선을 다했다.

그러나 모든 공격은 미노타우로스의 어둠에 먹히고 말았다.

“하아암…. 고작 이런 벌레가 전부라니, 실망이군.”

기껏 ‘그’의 힘까지 받고 온 마당에 상대해야 하는 것이 고작 이런 것들이라니. 진이 빠졌다. 놈은 몸을 움직일 필요조차 느끼지 못했다.

성벽이 무너짐과 동시에 날뛰기 시작한 그의 수하들이 헌터들의 목을 노리고 돌진했다.

수많은 탱커와 S급 헌터들이 이를 저지하기 위해 무기를 들고 대응했다.

여기서 밀리면 한국은 끝이라고 생각하며 이를 악물었다.

그러나 노력만으로 세상 모든 일을 해결할 수 있었다면 지구는 생각보다 더 평화로울 것이다.

아무리 근접전에 도가 튼 헌터들이라 하더라도 수십 수천 마리의 괴물들이 동시에 달려드니 밀리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하여 벌어진 참상이 이것이다.

주변에는 수많은 헌터들이 쓰러져 있었고 괴물들은 시체를 즈려밟고 어떤 놈들은 뜯어먹으며 희롱하고 있었다.

“힐! 법사랑 베로니카와 도망치게!”

“닥쳐! 난 여기서 죽기로 마음먹었으니까!”

“그럴 말 할 시간에 한 놈이라도 더 죽여요!”

“씨팔 죽긴 누가 죽어!”

법사는 조용히 마탑주의 지팡이를 받아들고는 마력을 일으켰다.

평소 감정변화가 거의 없다시피 한 법사였으나 지금은 달랐다.

모든 것을 집어삼킬 파도처럼, 거대한 쓰나미를 준비하는 바다처럼 잔잔하게 마법을 일으켰다.

법사도 마법을 난사하느라 체력은 너덜너덜해진 상태였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 마도구 없이 난사를 했을 때의 이야기였다.

여태까지는 딱히 마도구를 이용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기에 쓰지 않았을 뿐이다.

맨손으로도 재앙급 마법을 사용하는 마법사가 지구 최고의 지팡이를 들었다. 이가 뜻하는 것은 곧 한가지였다.

“아프다.”

몸은 아프지 않았다. 마탑주가 목숨을 걸고 지켜준 덕분에 작은 생채기를 제외하면 어떤 피해도 없었다.

그러나 이것은 처음 느껴보는 느낌이었다.

가슴 한곳이 찡하며 시큰거렸다. 코끝이 찡하며 미간이 저릿했다.

법사는 거친 숨을 내쉬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처참하게 무너진 성벽과 적들에게 희롱당하는 헌터들 그리고 전신에 상처를 입으며 고군분투하는 동료들.

“아프다, 왜?”

법사는 아직도 알지 못했다. 감정이라는 것과는 벽을 쌓고 지내는 그였기에 더더욱 이 감정을 이해할 수 없었다.

법사의 눈에서 한 방울 눈물이 흘렀다. 볼을 타고 흘러내리는 따뜻한 눈물이 법사의 마음을 적셨다.

어째서인지 온도와는 상관없이 지금 법사에게는 눈물이 너무나도 서늘했다.

“모르겠다.”

자신은 법사다. 마법을 사용하면 즐겁고 터트리면 두 배로 즐겁다.

그리고 그것이 적이라면 더더욱 즐겁다.

그렇다면 더 이상 울고 있을 시간은 없었다. 법사는 소매로 눈물을 닦고 앞으로 나아갔다.

법사의 마법진이 마력과 반응하여 아름다운 빛을 자아내기 시작했다.

“와라, 빨리 나궁수.”

마력 포션 열 병을 순식간에 동낸 법사는 지팡이를 높게 들었다. 적들의 위로 거대한 마법진이 모습을 드러내었다.

법사의 모든 마력을 쏟아 부어 만든 마법진은 과연 위대했다.

단 한 개의 마법에 모든 마력을 사용하자 아니나 다를까 법사의 몸에 무리가 왔다.

전신이 파들파들 떨리고 식은땀이 흘렀다.

그러나 그게 어쨌단 말인가.

자신은 사지가 멀쩡하다. 심장에 구멍이 뚫리지도 머리가 터지지도 자상도 입지 않았다.

그렇다면 법사가 해야 할 것은 고통에 후퇴하는 것이 아닌 고통을 극복하고 전진하는 것이었다.

“개새끼들.”

이를 악문 법사의 입에서 앳된 욕이 튀어나왔다.

그래봐야 궁수에게 배운 단편적인 욕이 전부였지만 그 말에 담긴 분노는 결코 가볍지 않았다.

콰아아아아앙!

수백 개의 천둥 벼락이 적들의 위에서 작렬했다. 한발 한발이 웬만한 몬스터들은 가볍게 지워버릴 강력한 힘을 담고 있었다.

“헤에….”

법사는 지팡이를 쥐고 버티며 자신이 만든 아름다운 광경을 감상했다.

여전히 바보같은 표정에 바보같은 말투였으나 아무도 법사를 손가락질하지 못했다.

“크흐흐흐흐흐! 인간 중에서도 이런 인재가 있었다니!”

화아아아악!

다시 한번 그에게서 뿜어져 나온 어둠이 번개를 받아내기 시작했다.

미노타우로스의 어둠이 아닌 ‘그’의 어둠이었기에 법사의 필살 마법이라 하더라도 쉬이 뚫을 수는 없었다.

황금빛 법사의 번개가 그의 어둠에 먹히고 있었다.

마치 먹구름이 벼락을 흡수하는 듯한 느낌이었다. 순간 법사에게서 희망을 보았던 헌터들은 다시 절망하고 말았다.

법사의 벼락을 모두 흡수한 어둠은 다시 미노타우로스에게 돌아갔다.

“크흐으으으! 저릿저릿하군!”

“뭐?”

“저걸 저렇게 쉽게?”

헌터들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적을 바라보았으나 상황은 바뀌지 않았다. 법사는 이를 바라보며 털썩 무릎을 꿇었다.

갈수록 희망이 사라지는 상황 속 이번에는 근거리 딜러들이 돌진했다.

“지금이다! 적들의 수가 줄었을 때 처리해!”

“으하하하하! 좋다! 더 덤벼라!”

“끄아아아아악!”

갑작스럽게 참전한 미노타우로스가 추풍낙엽 쓸 듯 헌터들을 날려버렸다.

놈의 거대한 전투 도끼 앞에서는 헌터들의 방어구가 너무나도 미약했다.

거대한 덩치와는 달리 속도 또한 빠르고 정확하였다.

“크하하하! 나를 더 즐겁게 만들어 보거라! 어둠 투사의 축복!”

흉측한 놈의 어둠이 더욱 그 크기를 키웠다.

셈은 어떻게든 놈의 공격을 막기 위해 방패를 들었다.

쾅! 콰아앙!

“그런 조잡한 방패로 내 공격을 막을 수 있을 것 같으냐!”

으드드득!

셈의 이가 갈리며 근육이 미친 듯이 부풀어 올랐다. 있는 마력을 죄다 방패와 신체에 때려 박았다.

사실 이미 전투의 결과는 난 듯했다. 이제는 서있는 헌터보다 쓰러진 헌터들의 수가 더 많았다.

“같잖구나, 인간이여!”

콰아아앙!

“끄흐으으윽!”

내려찍는 것으로는 무리라고 생각했는지 미노타우로스는 오히려 아래에서 도끼를 후려쳐 방패와 함께 셈을 하늘 위로 날려버렸다.

“말도 안되는…!”

콰아앙!

땅을 박차고 점프한 미노타우로스는 있는 힘껏 도끼에 힘을 실어 셈을 후려쳤다.

콰아아아앙!

셈의 방패가 산산조각나며 마치 운석이 낙하하듯 엄청난 속도로 땅에 처박혔다.

“쿨럭! 흐으으으으….”

어떻게든 몸을 일으켜보려 했으나 조금도 움직일 수 없었다. 전신에 힘이 빠져 손가락 하나도 꼼짝할 수 없었다.

“움직여! 움직이라고 이 빌어먹을 몸뚱아리야!”

“허, 아직도 살아있다니, 인간치고는 제법이군.”

놈은 흉흉한 도끼의 날을 빛내며 셈을 끝장내기 위해 무거운 굽을 옮겼다.

한 걸음 한 걸음 다가올 때마다 셈의 표정이 변해가기 시작했다.

“네가 나약한 것을 탓해라 인간이여!”

놈은 셈을 반으로 쪼개버리기 위해 있는 힘껏 도끼를 쳐올렸다.

쾅쾅쾅쾅쾅!

“어…?”

그러나 셈 앞에 하늘에서 떨어진 거대한 다섯 개의 화살이 박히며 이를 저지했다.

전장에 그림자가 드리웠다. 새하얀 드래곤은 미노타우로스를 노려보며 고고한 불꽃을 일으켰다.

그 위에서는 궁수가 천궁을 흡수하여 눈을 빛내고 있었다.

거대한 드래곤과 그 주변에 있는 수십 개의 마법진, 추가로 신성력을 가득 머금은 열 발의 화살까지.

땅에는 종말을 고하는 괴물이 날뛴다면 궁수의 모습은 그것을 저지하는 수호자의 모습이었다.

그리고 그 수호자는 지금 적잖게 분노한 상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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