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3화. 크와앙 하얀 드래곤이 울부짖었다.
“죽여버려!”
“버텨! 조금만 버티면 돼!”
드래곤 에그에 간 금이 쩌억 벌어지며 찬란한 빛이 쏟아져 나왔다.
빛은 그대로 하늘로 승천하여 한줄기 빛기둥을 만들어내었다.
마치 빛으로 생명체를 조각하듯 아름다운 모습에 궁수는 물론 적조차도 일순간 말을 잃었다.
- 고작 부화에서 이런 마력이라니! 계약자여 도대체 뭘 주운 거냐!
“네가 부수지 마라며!”
- 허어! 이건…. 뭐라 말이 안 나오는군!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절로 신성해지는 모습이었다.
빛이 깎이면 깎일수록 완성되어가는 드래곤은 얼마 지나지 않아 완전한 모습을 드러내었다.
헤츨링도, 드래곤 베이비도 아닌 어엿한 성룡의 모습이었다.
“크와아아아앙!”
드래곤이 울부짖었다. 귀가 따가울 정도로 엄청난 포효에 궁수도 흠칫하며 떠억 입을 벌렸다.
“미친….”
웬만한 고층 건물을 압도하는 그 크기에 궁수는 순간 당황하여 드래곤을 올려다보았다.
햇빛을 받으며 빛나는 드래곤의 모습은 소름 돋을 정도로 아름다웠다.
단지 일어서 있는 것만으로 전장의 흐름을 빼앗는 존재, 그것은 바로 전신이 새하얀 백룡이었다.
눈을 감고 하늘을 음미하던 놈은 낮게 숨을 뱉으며 서서히 눈을 떴다.
그리고는 요리조리 고개를 돌렸다.
한참을 주변을 탐색하던 놈은 그제서야 궁수를 발견하고 고개를 숙였다.
외관은 찬란한 드래곤이었으나 하는 행동은 아이와 같았다.
“아버지!”
“어…. 응…. 그래.”
실제로 이제 막 태어나기도 했으니 말이다. 놈은 바닥에 착 달라붙어 궁수에게 머리를 대었다.
쓰다듬어 달라는 듯 그르릉 소리를 내며 궁수에게 애교를 부렸다.
수십 배 차이 나는 덩치에 궁수는 순간적으로 압도당했으나 이내 자연스럽게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쓰다듬지 않으면 큰일이 날…이 아닌 사랑스러워서 그런 거다.
궁수의 손길을 느끼며 행복한 시간을 보내던 와중 적 드래곤이 포효를 내뱉으며 이를 방해했다.
“아버지 저건 또 뭐야?”
“저거? 적.”
“적? 그럼 저게 아버지를 공격하는 거야?”
“음, 그렇지.”
아빠 맞았다! 아들 복수해줘!
그런 말이 목구멍까지 차올랐으나 체면이 있었기에 궁수는 곧바로 말하지 못했다.
오히려 머릿속이 혼란하여 뭐라고 말을 해야 할지 갈피조차 잡히지 않았다.
“한창 좋을 때였는데!”
“응? 뭐하게?”
“아버지는 뒤로 가봐.”
드래곤은 조심스럽게 궁수를 뒤로 보내며 적을 노려보았다. 덩치는 거의 비슷하여 별 차이가 없었다.
쿠워어어어어!
기선제압을 하려는 듯 놈은 피어를 남발하며 백룡을 압박해나갔다.
“시끄러워.”
콰아아아아앙!
“아이고 나 죽어!”
백룡은 빠르게 회전하여 꼬리로 놈을 날려버렸다. 워낙에 덩치가 큰 탓일까 뒤로 빠져있던 궁수도 자세를 낮춰야만 했다.
적을 날려버린 백룡은 곧바로 입을 쩌억 벌려 새하얀 빛을 모으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지름 2미터에 달하는 광원을 모은 백룡은
“어 잠ㄲ…”
쿠콰아아아아앙!
그대로 하늘에 날아가던 적을 격추시켰다. 새까만 드래곤이 빔을 맞아 새하얀 폭발이 일어났다.
“어….”
- …뭘 주운 거냐.
“그러게….”
궁수 일행에 누구보다도 강력한 아군이 생긴 날이었다.
가시는 백룡의 말도 안되는 힘을 보고선 소스라치게 놀라 곧바로 도망치고 있었다.
“저기 도망간다!”
“아빠! 내가 죽여?”
“아니! 저거 따라가야 해!”
“알았어!”
“아니 따라 끄아아아악!”
궁수를 머리에 올린 백룡은 큼지막한 날개를 뻗어 날아올랐다.
“아빠 꽉 잡아!”
“아니 이거 아닌 거 같….”
궁수의 말이 다 끝나기 전 백룡은 전속력으로 가시를 향해 돌진했다.
제법 거리가 있었지만 드래곤이 놈을 따라잡는 것은 10초도 걸리지 않았다.
다만 위험한 점은 궁수도 반쯤 정신이 나갔다는 것이다.
“아빠! 따라 잡았어!”
“어! 으어어으어! 그, 그래!”
뺨을 때려서야 겨우 정신을 차린 궁수가 눈을 부릅뜨고 정면을 주시했다.
“꺄아아아아악!”
드래곤의 강렬한 날갯짓에 밀린 그녀는 비명을 지르며 벗어나려고 했다.
그러나 아무리 노력한다고 한들 자전거로는 슈퍼카에게 도망칠 수 없는 법이다.
“어딜 도망가!”
궁수는 백룡의 머리 위에서 활을 들었다. 바람도 심하고 백룡의 속도도 너무 빨랐다.
적을 맞추기에는 최악의 조건이었으나 궁수는 조건을 무시하는 실력을 가진 궁수였다.
세계 최고의 궁수가 고작 이 정도도 극복하지 못해서야 세계 최고라는 명성이 울 것이다.
쐐애애애액!
침착하게 날아간 화살은 한 치의 오차도 없이 그녀의 등을 노리고 날아갔다.
“끄흐으윽!”
죽일 마음은 없었다. 사로잡아 정보를 불게 만들 생각이었다. 빙결을 머금은 화살이 그녀의 등을 얼어붙게 만들었다.
그러나 그녀는 이를 악물고 고통을 감내하며 도망쳤다.
“와 이걸 견뎌?”
“아빠 그냥 내가 잡을까?”
“고깃덩이 될 일 있나! 안돼!”
“알았어~”
해맑은 드래곤은 궁수와 있다는 것이 마냥 좋은지 순순히 말에 따라주었다.
다시 화살을 장전하려던 궁수는 한 손으로 백룡의 뿔을 단단히 잡았다.
천궁이 궁수의 팔에 흡수되었다. 그와 동시에 궁수의 화살통에서 어마어마한 길이의 화살이 만들어졌다.
사실 화살보다는 장대에 가까운 길이었으나 뭐든 좋았다.
7미터가 넘어가는 거대한 길이의 화살이 궁수의 명령에 따라 가감 없이 휘둘러졌다.
궁수가 직접 공격한 것도 아니고 마력을 사용하여 날린 일격이었기에 공격이 빗나갈 일은 없었다.
뻐어어어억!
“꺄아아아아악!”
날카로운 비명과 함께 그녀가 추락했다.
“저거 받아!”
“응 아빠!”
눈 깜빡할 사이에 강하한 드래곤은 의식을 잃고 떨어지는 마녀에게 다다랐다.
“잡았…. 어어!?”
그녀를 받아내기 직전 허공에서 나타난 검은 손길이 그녀를 잡아채었다.
“네가 한 거야?”
“아니?”
아무것도 없는 허공에서 게이트가 열리더니 두 개의 거대한 팔이 나타났다. 그것은 어렵지 않게 그녀를 받아내었다.
그리고는 검은 머리가 허공에 빚어졌다. 날카로운 이를 가지고 양 머리에 뿔이 달린 염소의 머리였다.
놈은 그대로 그녀를 꿀꺽 집어삼키고는 궁수를 노려보았다.
“야! 그거 안 뱉어?”
“줘! 아빠거야!”
무표정으로 궁수를 바라보던 놈은 이내 씨익 소름끼치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실제로 보는 건 처음인가.”
“내놓으라고!”
“놈은 아직 쓸모가 있어서 말이다.”
이가 다 드러나게 웃은 놈은 계속해서 킥킥대며 궁수를 농락했다.
“아빠! 저거 어떻게 할까?”
“날려버려!”
“아빠 꽉 잡아!”
“생각해보니 날리지 않아도 괜찮을 것 같…”
쿠콰아아아아!
“아이고! 나궁수 죽어요! 죽는다고요!”
방금 전과 같은 빔이 아닌 순수한 백염이 검은 머리를 집어삼켰다.
워낙에 그 파워가 강력했기 때문에 궁수도 안간힘을 써가며 날아가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
어지간한 S급 보스도 간단히 지워버릴 듯한 그 위력에 궁수는 오금이 저렸다.
“곧 다시 보게 될 거다.”
처음부터 허상이었는지 공격은 먹히지 않았다. 놈은 의미를 알 수 없는 말만을 내뱉고는 스르륵 사라졌다.
놈이 사라지고 남은 것은.
“어…. 이거 괜찮겠지?”
“헤헤! 아빠 나 잘했지!”
쑥대밭이 되어버린 백두산이었다.
***
아쉽게 놈을 놓친 궁수는 허탈함에 백룡을 타고 다시 예언자에게 돌아갔다.
이미 그곳은 그곳대로 난리가 난 상태였다. 하늘에서 백룡을 타고 내려온 궁수는 머쓱한 표정으로 멤버들 앞에 섰다.
“나 아들이 생겼어.”
언제나처럼 궁수의 헛소리를 웃어넘긴 멤버들은 자연스럽게 백룡에게 다가왔다.
궁수가 타고 있었기도 했으니 안전하다고 생각했던 것이리라.
그러나 백룡은 예민하게 반응하며 멤버들을 노려보았다.
“크르르르릉…. 어딜 미천한 인간 따위가.”
“어허 떽. 그러면 안돼.”
그 짧은 시간에 백룡을 길들이는 법을 터득한 궁수가 코를 툭 치며 말했다.
“아빠 직장 동료들이야.”
“직장 동료?”
“무튼 믿을만한 사람들이니까 그렇게 경계하진 마.”
“응! 아빠가 그렇다면 알겠어!”
방금 전의 사나운 드래곤은 어디가고 세상 순둥한 드래곤이 남았다.
멤버들은 요리조리 드래곤을 둘러보더니 이내 물었다.
“얘 이름은 정했어?”
“이름이요? 글쎄요, 아직.”
드래곤을 쓰다듬던 궁수는 잠시 고민하더니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투래곤 어때.”
“투래곤?”
“투명 드래곤이라고, 역사상 가장 강력했던 드래곤인데.”
“평생 갈 이름인데 제대로 정해줘야지!”
궁수는 진심으로 투래곤이 마음에 드는 듯했지만 멤버들의 만류에 결국 포기했다.
“그럼 이렇게 된 거 친숙한 이름은 어때.”
“친숙한 이름?”
“아침의 여덟 빛이라는 뜻으로.”
“오오오오! 뭔가!”
“조광팔(朝光八)이요”
순간 동료들 사이에 싸늘한 기운이 감돌았다. 셈은 한숨을 푹 내쉬며 고개를 휘저었다.
“쯧, 지 이름처럼 막나가는군.”
“뭐요?! 우리 할아버지가 지어준 거거든요!?”
“조부모님이 미안하다고 안하던가?”
“어휴 이래서 대머리들이랑은 공감이 안된다니까!”
쿵!
“아빠! 내 이름 정했어?”
“그래!”
자세를 낮춘 광팔이가 궁수에게 볼을 비비며 물었다.
“네 이름은 광팔이다! 조광팔!”
“조광팔? 그게 내 이름이야?”
“그래, 마음에 들어?”
“조광팔…. 조광팔….”
몇 번인가 이름을 되뇐 광팔이는 이내 씨익 미소를 지으며 궁수에게 말했다.
“응! 마음에 들어!”
“좋아 좋아! 앞으로 잘 부탁한다 광팔아!”
눈물 없이도 볼 수 있는 부자 상봉이 끝나고 가장 먼저 해야 할 것은 주변 정리였다.
반쯤 폐허가 되어버린 동굴은 더 이상 사용하려야 사용할 수가 없었다.
세이비어에서 나온 헌터들이 장소를 수습하는 동안 다마즘은 마지막으로 남은 술을 입에 머금었다.
이번 달에 할 수 있는 마지막 예언이었기에 그는 신중하게 생각했다.
게이트니 뭐니 이것저것 생각해보았으나 결국 그녀의 예언은 다른 헌터들을 위한 것이었다.
‘가시의 다음 행보는?’
촤아악!
책 위에 술을 뱉고 서서히 글자가 떠오르기 시작했다. 한 글자 한 글자 떠오름에 따라 그녀의 표정에는 경악이 떠올랐다.
“무슨…!”
가시에게 거처를 들킨 이상 그녀는 위치를 옮길 수밖에 없었다.
다행히도 세이비어 측에서 선뜻 그녀에게 손을 내밀어 주었다.
철통보안을 자랑하는 세이비어의 지하 시설에서 그녀를 머물게 하겠다는 결정이었다.
***
서울 시내 한복판에 거대한 드래곤의 그림자가 드리웠다.
난데없는 드래곤의 등장에 협회는 물론 한국 전체가 난리가 난 상태였다.
그리고 그것은 이은우도 마찬가지였다. 미친 듯이 울리는 비상벨과 함께 은우는 다급히 궁수에게 전화를 걸었다.
웬일로 궁수는 곧바로 은우의 전화를 받아주었다.
“헌터님 지금 어디에요!”
“저요? 하늘이요.”
“장난치지 말고! 지금 급하단 말입니다! 하늘에 드래곤이 날아다닌다고요!”
궁수는 피식 웃으며 이은우에게 대답했다.
“아, 그거 제 아들이에요.”
“개소리하지 말고 빨리 오세요!”
“거참, 지금 협회에요?”
“예! 빨리 오세요!”
“앞에 광장으로 나와봐요.”
“광장이라니 그게 무슨….”
광팔이를 시켜 낙하한 궁수는 조심스럽게 협회 앞 광장에 착지했다. 마침 은우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1층에 도착했다.
안전하게 착지한 궁수와 은우의 눈이 마주쳤다.
“하이?”
“…어.”
은우는 30분이 넘도록 말 한마디도 제대로 꺼내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