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2화. 용용 죽겠지!
“감히 내 앞에서 방패를 들어?”
궁수가 뭐하는 헌터인가?
성벽도, 수천, 수십만의 적들도 뚫어버렸던 궁수다.
전설급 장비도 아니고 고작 저런 두껍기만 한 방패가 궁수의 공격을 막을 수 있을 리 없었다.
“법사야! 큰 거 한발 준비해라!”
“알았다!”
갑주는 파괴하고 방패는 뚫는다.
그것이 철칙인 궁수에게 있어 지금 적들은 군침이 돌 정도였다.
휘이이이이잉!
화살촉에 머문 바람은 사납게 몰아치며 당장에라도 적을 물어뜯을 듯 용맹했다.
궁수는 그 위로 빙결의 기운을 꾹꾹 눌러 담았다.
마지막으로는 이제는 없어서는 아쉬울 폭발 까지. 다수를 상대로 효과적인 체인 익스플로전을 더했다.
“가라!”
쿠콰콰콰콰콰!
적들의 거대한 방패와 궁수의 화살이 격돌했다. 그러나 궁수는 한술 더 떠서 천궁을 흡수했다.
궁수의 팔에 문신이 생기며 화살의 통제권이 넘어왔다.
“흐읍!”
험악한 소리를 내며 격돌하던 화살이 순식간에 방향을 틀었다.
화살은 궁수의 명령에 따라 가뿐하게 방패를 넘어 적들의 머리 위로 떨어졌다.
화살이 방패를 뚫었(?)다면?
“뒤는 뻔하지 뭐.”
콰아아아아앙!
칼바람이 터져 나오며 주변의 마물들을 갈아버렸다.
그리고 안에 숨겨져 있던 날카로운 얼음 조각들이 터져 나오며 2차 피해를 낳았다.
쿠우우우웅!
방패를 지탱하던 괴물들이 쓰러지며 방패가 뒤로 넘어갔다. 다시 말해서 적들이 훤히 드러났다.
그리고 그것은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던 미치광이 마법사가 기다리던 타이밍이기도 했다.
“느! 헤! 헿!”
또 한 번 섬광이 동굴을 집어삼켰다.
궁수의 신성력은 적을 품는 따스한 느낌이지만 법사의 마법은 신성력이 아니었다.
모든 걸 태워버리고 지워버리는 광속성 계열 마법이었다.
언뜻 잘 먹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이 정도의 화력이라면 어떤 마법을 써도 웬만한 수준의 적들은 죽어나가리라.
이번에도 실패로 돌아가자 결국 그녀는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저 안에 있는 놈들은 하나같이 미친놈들뿐이라고.
그렇기에 더더욱 저 안의 여자를 데려가야만 했다.
“얼마나 능력이 대단하면 저렇게 지킬까!”
그녀는 입술을 핥으며 거울을 꺼냈다. 다름 아닌 첫 가시와 연결되는 마도구였다.
마력을 불어넣자 거울이 일렁이더니 잠시 후 가시와 연결되었다.
첫 가시의 인영이 일렁일 뿐이었으나 목소리 하나만큼은 확실히 들려왔다.
“드문 일이군, 네가 먼저 연락을 하다니.”
“반갑습니다. 위대한 첫 가시여.”
“쓸모없는 겉치레는 됐다. 용건부터 말해 보거라.”
그녀는 잠시 우물쭈물하더니 이내 결심한 듯 말했다.
“‘M’을 사용해도 될까요?”
“…뭐?”
“말 그대로입니다. 꼭 얻어야 하는 것이 생겨서 말이죠.”
M이라는 말에 그는 잠시 고민하더니 다시 그녀에게 물었다.
“없이는 못하겠느냐? 너무 일찍 보여주는 감이 있군.”
“아무래도 적들 중에는 그놈이 있는 것 같으니 쉽게는 못할 것 같습니다.”
“놈이라면?”
“정신나간 궁수요.”
“…그 놈이 거기 있단 말이냐?”
“예.”
거기까지 들은 첫 가시는 그녀에게 말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죽여라.”
***
“뭐야? 벌써 끝이야?”
잠잠해진 반응에 궁수는 아쉬운 나머지 입술을 툭 내밀었다.
“아직 못해준 게 많은데….”
“적다! 더 줘!”
그러나 아직 바깥의 마력은 건재했다.
궁수와 법사는 혹시나 또 다른 적들을 보내줄까 기대하며 경험치…가 아니라 적이 오길 기다렸다.
하지만 궁수를 맞이한 것은 수많은 적들이 아닌 압도적인 양의 마력이었다.
어디서 나타난지는 모르겠으나 적어도 밖에서 느껴지는 마력은 평범한 마물의 것은 아니었다.
“어?”
“궁수야 이거 이상하다?”
“어 이거 아닌 거 같….”
“튀어어어어어!”
쿠콰아아아아아!
“요새화!”
“솔라리아!”
“벽! 벽! 벽!”
순간적으로 터져 나온 엄청난 검은 불꽃에 동굴의 절반이 날아가고 말았다.
곧바로 셈이 요새화를 발동하였다.
그러나 그것으로도 부족하여 몇 번이고 보호 마법을 사용하고 나서야 일행들은 겨우 살아남을 수 있었다.
파스스스스스.
어떤 공격도 철옹성처럼 버텨내던 셈의 요새가 가루가 되어 사라졌다.
어둠이 겉이고 빛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궁수의 눈에 가장 먼저 들어온 것은 다름 아닌.
쿠와아아아아아!
“…네?”
거대한 드래곤이었다.
그것도 머리가 세 개나 달린 드래곤.
방금 전의 공격은 놈이 날린 듯 드래곤의 입에서는 검은 불꽃이 타오르고 있었다.
드래곤.
최강의 종족. 종족의 정점. 살아가는 것만으로 무한히 강해질 수 있는 능력.
장점만 나열하자면 가히 압도적이었다.
절망적인 능력차도 아닌 절망적인 종족차에 궁수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렇다고 이번에는 별다른 약점도 보이지 않았다.
궁수의 눈앞이 캄캄해졌다. 정말로 오랜만에 적을 어떻게 죽여야 할지 감도 잡히지 않았다.
레이드 때와 수많은 랭커들이 함께했다고 하지만 지금은 그 상황이 달랐다.
고작 궁수 단일 팀으로 드래곤을 상대해야 하는 것이다.
어떻게 상황을 해결해야 할지 막막하던 그때, 궁수의 눈앞에 구세주같은 알림이 떠올랐다.
[드래곤 에그가 곧 부화합니다.]
[태어나기 전 미리 마석을 투자하여 성장을 촉진시킬 수 있습니다.]
“아, 맞다!”
“뭐야 뭔데!”
적은 궁수 일행이 겁에 얼어붙었다 생각했는지 비열한 미소를 지으며 공포를 음미하고 있었다.
“다들 마석 좀 줘봐!”
“마석은 왜!”
“빨리!”
상황이 상황이니만큼 헌터들은 인벤토리를 탈탈 털어 마석을 궁수에게 건네주었다.
궁수 또한 그동안 모아온 마석의 양이 제법 되었다.
돈이 딱히 궁한 것도 아니기에 그간 인벤토리에 모아둔 마석을 한 대 모았다.
특히나 법사가 압권이었는데 법사는 그간 모아온 마석을 한 개도 팔지 않았는지 인벤토리 가득히 마석을 모아둔 상태였다.
“와 이게 얼마냐.”
궁수는 잠깐의 아쉬움을 뒤로하고 드래곤 에그를 그 가운데에 놓았다.
최소 B급은 자랑하는 마석들이 순식간에 드래곤 에그에 흡수되었다.
수백, 수천억 원이 순식간에 사라지는 순간이었다.
[마석의 질이 대단히 높습니다.]
[드래곤의 성장이 더욱 촉진됩니다.]
[기하급수적인 성장으로 해츨링을 건너뛰었습니다.]
[부화에 돌입합니다. 현재 0%]
“뭐야!? 바로 부활하는 거 아니었어!”
퍼센테이지는 느릿느릿 올라가고 있었다. 궁수의 마음은 급한데 부화는 속도가 올라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젠장.”
다시 말해서 드래곤이 부활하기 전까지 악착같이 버텨야 한다는 뜻이었다.
“저거…. 속박은 안되겠지?”
“헤에….”
“발을 거는 것 정도는 가능할지도 모르겠셈…”
아무리 앞이 보이지 않아도 지금 해야 할 일은 하나밖에 없었다.
어떻게든 적의 공격을 버틴다는 것.
이대로 동굴로 도망치고는 싶지만 그랬다간 또 동굴이 날아가 버려 예언자까지 위험할 수 있었다.
어떻게든 밖에서 놈을 막아야만 했다.
“다리! 최대한 다리를 잡아!”
이대로 놈이 가만히 있어 준다면 참 좋으련만 분위기를 보니 그럴 일은 없을 것 같았다.
결국, 선빵필승이라고 궁수는 이를 악물고 마력을 모으기 시작했다.
“알겠어!”
휘이이이잉!
궁수와 법사가 동시에 스킬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법사가 적들을 서서히 얼려가는 눈보라라면 궁수는 순식간에 적들을 얼음으로 만들어버리는 빙하기에 가까웠다.
뼛속까지 서늘할 정도로 차가운 냉기가 궁수와 법사 주변을 맴돌기 시작했다.
전신이 바들바들 떨렸으나 여기서 멈출 수는 없었다.
더욱 서늘하고 더욱 차갑게, 타오르는 진홍의 불꽃조차도 얼어붙을 정도로 강렬한 냉기가 필요했다.
쩌억!
오죽하면 궁수의 손끝이 얼어붙을 지경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법사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드래곤도 바보는 아니었다.
압도적인 강자의 시선에서 인간들을 내려다보고 있기에 아무 공격이나 다 맞아줄 마음은 추호도 없었다.
“놈이 날아간다!”
“막아! 어떻게든 막아!”
“요새화!”
먼저 셈이 다급하게 요새로 놈의 발목을 잡았다.
천장이 채워지진 않았지만 잠시 놈의 행동을 봉인하기에는 충분했다.
마침 옆에는 티아라가 심판의 검을 불러내기 위한 준비를 끝마친 상태였다.
그녀 특유의 황금빛 마력이 일렁이기 시작했다.
으드드득!
한 번에 너무 많은 마력을 사용하여 몸에 무리가 왔으나 오히려 더욱 그녀는 이를 악물고 버텼다.
“심판!”
하늘이 열리며 황금빛 성검이 그 모습을 드러내었다.
새하얀 도신에 손잡이는 황금빛이 부각되는 아름다운 검이었다.
“죽어라아아!”
티아라의 황금빛 성검이 드래곤의 목을 향해 떨어졌다. 그대로 목을 베어버리겠다는 의미였다.
쿠아아아아아!
완벽한 타이밍의 공격이었으나 드래곤은 순식간에 몸을 비틀어 치명상을 피했다.
그 대신 드래곤의 왼쪽 날개가 검에 의해 뜯겨져나가고 말았다.
“날개를 봉인했어요! 빨리!”
“블리자드!”
“죽어!”
마력을 한계까지 억누른 궁수의 화살은 드래곤의 발에 닿음과 동시에 숨겨왔던 냉기가 터져 나오며 순식간에 다리를 얼려버렸다.
얇은 얼음이 아닌 두께만 5미터가 가볍게 넘는 초대형 얼음이었다.
반대쪽에서는 법사가 소환한 거대한 얼음덩어리가 놈의 발목에 작렬하였다.
쿠워어어어어어어!
이 속박이 얼마나 갈지는 모르겠지만 놈은 분노하여 입을 쩌억 벌리고 피어를 날려대었다.
화르르륵!
“젠장! 법사야!”
놈도 이대로 가면 안된다는 것을 알았는지 입을 쩌억 벌리고 칠흑의 브레스를 모으기 시작했다.
검은 불꽃이 모여들며 서서히 그 자태를 갖춰나갔다.
처음과 같은 압도적인 수준의 브레스는 아니었으나 저것도 잘못 맞는다면 가루도 남기지 못하고 사라질 것이다.
더군다나 셈의 요새화는 적의 발목을 잡고 있으니 버틸 수도 없다.
궁수에게는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었다.
그러나 포기할 수도 없었기에 궁수는 장궁에 화살 한 자루를 걸었다.
이번에 모으는 속성은 신성력이었다.
법사의 마력이 화살에 주입되며 그 마력을 궁수가 신성력으로 바꾸고 있었다.
역시 법사의 압도적인 마력답게 전환은 순식간에 이루어졌다.
쿠어어어어어!
놈이 눈을 빛내며 브레스를 발사하기 직전 궁수는 가까스로 완성된 화살을 놈의 브레스를 향해 발사했다.
모인 불꽃에 비해 궁수가 날린 화살의 크기는 터무니없이 작았기에 드래곤은 피하려는 노력조차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 작은 화살 안에 모여 있는 신성력은 감히 무시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브레스를 향해 날아간 화살은 그대로 터지며 엄청난 신성폭발을 낳았다.
드래곤의 브레스 자체를 집어삼키는 것은 물론 폭발을 함께 일으켜 놈에게 대미지를 주었다.
쿠와아아아아아!
적잖게 분노했는지 놈은 이를 악물고 몸을 비틀며 속박에서 벗어나기 위해 노력했다.
물론 헌터들이 미쳤다고 놈을 풀어줄 리 없었다.
궁수와 법사는 계속 마력을 때려 박아 얼음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했다.
그러나 체급차이부터 성립이 되지 않았다.
결국 드래곤을 속박하던 얼음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아무리 금을 메워보려고 한들 한 개의 금을 메우면 다섯 개의 금이 늘어나니, 궁수는 난처하기 그지없었다.
그리고 결국, 놈은 거친 포효를 울리며 속박을 파괴하고 말았다.
분노한 놈은 다시 한번 브레스를 일으켜 궁수를 쓸어버리기 위해 준비했다.
그러나 그 때.
[드래곤이 부화합니다.]
기다리고 기다리던 알림이 궁수의 눈앞을 가렸다. 그와 동시에 궁수의 입가에 미소가 드리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