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1화. 헤으응 마녀 누나.
“비켜요, 부담스러우니까.”
“이런 적은 없었는데….”
그녀는 신기한 듯 고개를 기울이며 궁수를 지켜보았다.
그러나 아무리 바라본다고 한들 보이지도 않는 운명이 보일 리 없었다.
“너 왜 안 죽어?”
“…뭐요?”
“왜 안 죽냐고.”
“아하.”
궁수는 그제야 알았다는 듯 손뼉을 치며 말했다.
“키야 예언가가 아니고 암살자를 소개시켜줄 줄은 몰랐는데.”
궁수는 어이가 없었던 나머지 헛웃음을 치며 그녀를 비웃었다. 대뜸 왜 죽지 않냐고 물어본들 기분이 좋을 리 없었다.
“다마즘님…?”
“아, 응 미안.”
티아라의 만류에야 그녀는 사과하며 다시 자리로 돌아갔다.
그녀는 마지막까지 여운이 남는 듯 궁수를 바라보더니 이내 말했다.
“어…. 그러니까 가시에 대한 걸 물어봤었지?”
“예, 기왕이면 아홉 번째 가시에 대한 걸로 부탁드립니다.”
1번 대에 근접한 녀석들의 힘은 예측할 수 없었기에 그나마 숫자가 가장 큰 아홉 번째 가시를 예측하고자 했다.
“당장은 안되는 거 알지?”
“알고 있습니다.”
“그래, 그럼 오늘 하루는 여기에 묵고 내일 보도록 해.”
“알겠습니다.”
거기까지 말한 궁수 일행은 사용인들의 대우를 받으며 바깥으로 나왔다.
다른 멤버들을 먼저 보내고 마지막으로 궁수가 나갔다.
밖을 나가는 그 순간까지도 그녀는 끝까지 궁수를 주시했다.
“왜 죽음이 안 보이지?”
***
“이거 진짜 예언에 필요한 거 맞아요?”
“몰라, 항상 이렇게 해왔으니까.”
5미터가 넘어가는 크기의 상에 각종 호화로운 음식들이 가득 채워졌다.
새벽 5시부터 12시까지 7시간을 꼬박 준비하고 나서야 예언의 준비가 끝났다.
“이제 예언을 시작합니다.”
“이거 아무리 봐도 사이비….”
“쉿.”
티아라가 궁수의 입을 막아버렸기에 궁수는 말을 다 뱉지 못했다.
의식인지 예언인지는 몰라도 다마즘은 엄숙한 분위기 속에서 술잔에 술을 따랐다.
그녀는 향 위에 술잔을 두 번인가 돌린 후 눈을 감았다.
그리고는 아주 공손하게 양손으로 술잔을 들어 올렸다.
고개를 숙인 그녀에게서 점차 심상치 않은 기운이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다마즘은 누군가에게 바친 술잔을 내려 이내 자신의 입에 머금었다.
“어어?”
그러자 놀랍게도 허공에서 책 한 권이 떨어졌다.
오래된 고서인 듯 너덜너덜한 책은 칠흑의 하드 커버가 씌워져 있었다.
책 위에 손을 얹자 자동으로 책이 펴지며 아무것도 없는 빈 페이지가 모습을 드러내었다.
낡은 외관에 비해 내부는 마치 도화지처럼 새하얬다.
‘오오오.’
난생 처음 보는 순간에 궁수는 흥미롭게 그녀를 관찰했다.
단순히 외관이 아닌 마력의 흐름 농도 운용까지 주도면밀한 관찰이었다.
‘막 글씨가 떠오르려나?’
- 흐음 글쎄다. 예언자마다 하는 방법은 가지각색이니.
그녀는 빤히 책을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푸화아아악!
“…네?”
입안에 머금고 있던 술을 그대로 책을 향해 뿜었다.
투명한 술 방울들이 책 위에 뿌려지며 서서히 글자가 채워지기 시작했다.
- 예…. 예언자마다 방법은 다르니까 크흠….
‘그…렇겠지?’
과정은 요상했으나 그 효과는 확실했다.
“아홉 번째 가시의 위치를 알려주소서.”
[지린성]
“뭣?!”
“지린성이라니!?”
“잠깐 설마!”
그녀는 불안한 듯 한 번 더 술을 뱉으며 책에게 물었다.
“아홉 번째 가시의 다음 행선지는?”
[백두산 천지 - 예언자의 굴.]
“하아….”
“오고 있잖아!”
“도대체 여길 어떻게 안거야!?”
“오는 동안 들킨 거 아니야?”
“아냐! 반경 100키로미터 이내에는 아무도 없었다고!”
주변은 난리가 났다. 다른 것도 아니고 가시가 온단다.
평화를 구가하던 그녀에게 있어서는 너무나도 큰 위험이었다.
마지막으로 술을 뱉은 그녀는 책에게 물었다.
“놈이 여기까지 오는데 걸리는 시간은?”
그녀는 물론 다른 헌터들도 침을 꼴깍 삼키고 책의 대답을 기다렸다.
[1시간.]
“지린성부터 여기까지 한 시간 이라니! 말이 안되잖아!”
“말이 되는 소릴 해야지! 거기서부터 여기까지 거리가 얼만데!”
아수라장 속에서 단 두 명은 일말의 표정 변화도 없이 덤덤하게 상황을 받아들였다. 다름 아닌 법사와 궁수였다.
궁수는 벌써부터 장비를 점검하며 전투 준비를 하고 있었다.
“적에 대해 뭐 아는 거라도 있어?”
“몰라! 알면 여기까지 왔겠어?”
“그건 그렇네.”
궁수의 화살통이 화살로 가득 찼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이곳이 동굴이라는 것이다.
주변이 온통 들판인 개활지라면 궁수도 골머리를 앓았겠지만 그러지도 않았다.
“뭐해? 빨리 안 나오고.”
“어휴 침착한 게 좋은 건지 나쁜 건지!”
“베로니카 너도 와. 진지구축 해야지.”
“알았셈!”
***
“흐흐흥~ 내 보석은 잘 있으려나~”
아홉 번째 가시, 칠흑의 마녀는 콧노래를 부르며 백두산 천지를 향해 날아가고 있었다.
워낙에 복잡한 진법이 길을 막고 있어 조금 애먹긴 하였지만, 압도적인 마력을 바탕으로 뿌리부터 부숴버리니 그리 어려운 것도 아니었다.
“나 참, 이런다고 내가 못 찾을 줄 알았어?”
그녀는 가볍게 동굴을 가리고 있던 허상을 찢어버리며 안으로 들어왔다.
그러나 동굴의 입구는 벽으로 꽉 막혀 있었다.
“흐음, 먼저 온 손님이 있나?”
그녀는 타고 온 빗자루를 한 바퀴 빙글 돌려 낫으로 바꿨다.
“너희들이 먼저 확인해보렴.”
그녀는 부드럽게 낫을 세로로 그었다.
쩌어억!
돌벽이 아닌 차원이 베이며 그 안에 잠들어있던 괴물들이 바깥으로 뛰쳐나왔다.
쾅! 콰아아앙!
어둠으로 빚어진 적들은 쉴 틈 없이 벽을 후려쳤다.
어떤 놈은 날카로운 손톱으로 어떤 놈은 손에 달린 망치로, 심지어 후방에 있는 놈들은 침을 뱉어 벽을 부식시켰다.
아무리 베로니카의 벽이 튼튼하다고 해도 저 수많은 괴물들의 공세를 천년만년 막아낼 수 있을리 없었다.
심지어 아직 갈라진 차원 안에서도 괴물들이 잔뜩 준비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콰드드득! 콰아앙!
제법 잘 버티긴 하였으나 결국 베로니카의 벽은 적들의 공세에 뚫리고 말았다.
뚫린 틈 사이로 성질 급한 괴물이 먼저 튀어나왔다.
콰직!
그러나 동굴 안에서 날아온 화살에 놈은 곧바로 머리가 터져나갔다.
콰아아아앙!
벽이 완전히 뚫리며 괴물들이 파도처럼 쏟아져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러나 안에서는 바람을 잔뜩 머금은 화살이 토네이도를 일으키며 침입한 적들을 찢어발겨 버렸다.
“흐으으으음?”
너무나도 거친 반항에 마녀는 심기가 불편한 듯 인상을 찡그렸다.
동굴 안에서 느껴지는 압도적인 마력은 그녀조차도 일순간 들어가는 걸 망설일 정도였다.
“괜찮아 아직 부릴 어둠은 많으니까.”
화살의 주인은 당연히 말할 필요도 없이 궁수였다.
궁수는 끝없이 몰려드는 괴물을 향해 외쳤다.
“내가 장판 위의 장비다!”
“장판 위가 아니라 장판파겠지.”
“뜨끈뜨끈하고 좋은데 왜!”
적들이 들어오는 족족 궁수의 화살에 목숨을 잃었다.
요리조리 꺾인 동굴도 아니고 일직선으로 뻗은 곳에서 궁수의 화살을 피할 수 있을 리 없었다.
보통은 이 정도라면 화력이 밀린 나머지 서서히 퇴각하기 마련이지만 되려 궁수의 화력은 적을 압도하고도 남았다.
“나도! 나도!”
“아직! 아직은 참아!”
법사도 당장에 적들을 날려버리고 싶어 안달이 난 상태였으나 처음부터 법사의 마법을 난발할 수는 없었다.
“흐으음, 이 정도로는 무리인가.”
마녀는 펑펑 터져나가는 부하들을 바라보며 마력을 일으켰다.
그녀의 검은 마력이 부하들의 몸에 스며들었다.
구욱! 구우우우우욱!
미적지근하게 움직이던 놈들이 갑자기 약을 한 것처럼 폭발적으로 속도를 높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다른 사람도 아니고 고작 속도가 늘어난 것만으로는 궁수의 화살로부터 도망치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어림없…어어!?”
쿠콰콰콰콰!
오히려 너무 잘 막은 것이 문제였다.
적들의 시체를 방패삼아 마치 파도처럼 괴물들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법사야!”
“드디어! 내 차례!”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법사가 적들을 향해 왼손을 뻗었다.
동굴을 가득 채우는 황금빛 마법진이 모습을 드러내었다.
뿜어져 나오는 빛마저도 성스러운 그 모습은 지성이 없는 적들조차도 주춤하게 만들기 충분했다.
“비이이이임!”
빛을 가득 머금은 법사의 마법진에서 시원하게 광선이 뿜어져 나오며 몰려들던 적들을 날려버렸다.
“뭐야!?”
그리고 그것은 바깥에서 상황을 지켜보던 마녀조차도 기겁하게 만들기 충분했다.
“겨, 결전기겠지?”
아무리 생각해도 저 출력은 말도 안되는 수준이었다.
마법사들 여럿이 모여 작정하고 만든 화력이라 해야 할 수준.
그렇다고 위안을 삼은 그녀는 계속해서 증원을 넣었다.
소환되는 마물들은 ‘저쪽’의 망령들이다. 수는 그 끝을 헤아릴 수 없는 정도였다.
게이트를 유지하는 그녀의 마력이 허락하는 한 무한히 소환할 수 있다는 소리였다.
그리고 그녀의 마력은 가시 내에서도 세 손가락 안에 들어가는 수준이었다.
물론 억지로 차원을 찢는 것이 절대 쉬운 일은 아니었다.
그렇기에 그녀의 방대한 마력 양으로도 5시간을 여는 것이 고작이었다.
아니, 정확히는 다섯 시간 ‘이나’ 열 수 있다는 것이 정확하리라.
시원하게 밀려버린 동굴을 바라보며 궁수는 그제야 알았다는 듯 화살을 장전했다.
“저거 어둠 속성 몬스터구나!”
“아아 저런….”
“쯧, 선글라스를 가져올걸 그랬군.”
“어후 전 안 보렵니다.”
신성 테러범(?) 나궁수가 전장에 강림한 순간이었다. 화살통에 들어있던 화살 전부가 신성력을 띄기 시작했다.
다른 속성도 그렇지만 특히나 신성력은 마력과의 전환율이 뛰어났다.
다시 말해 그것은.
“크하하하하하! 딱대!”
수십, 수백 발의 신성 화살을 발사할 수 있음을 뜻했다.
“죽여주마아앗!”
어느새 궁수의 옆에는 신기전이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그것도 화살 전부 신성력을 가득 머금은 상태로 말이다.
투다다다다다!
아무리 적들의 수가 많다고 하더라도 이 정도로 신성력을 뿌려대니 버티기 버거워지는 것이 사실이었다.
언제 그랬냐는 듯 궁수는 압도적인 화력을 바탕으로 마물들을 밀어내며 전투적 우위를 차지했다.
“여기 마력 포션이요!”
“오케이!”
마침 이곳에는 마력 포션이 차고 넘칠 지경이었다.
원래는 예언가인 다마즘을 위해 준비한 것이었으나 그녀가 매일 예언을 하는 것도 아니었기에 포션은 산더미처럼 쌓이고 말았다.
오죽하면 셈과 힐은 뒤에서 앉아서 궁수의 전투를 구경할 지경이었다.
“방송을 못 키는 게 아쉽네.”
장소가 장소이기 만큼 예언가의 안전을 위해서라도 함부로 방송을 킬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렇게 말을 하는 사이 궁수는 어느새 적들을 동굴 바깥까지 쓸어버렸다.
더 이상 적들이 들어오지 않자 궁수는 의기양양하게 소리쳤다.
“이제 직접 들어오지?”
정체는 알 수 없었으나 바깥에서 느껴지는 마력으로 봤을 때 결코 약한 녀석이 아니었다.
쿵! 쿠우우웅!
“온 건가?”
순간 정말로 들어왔나 기대했으나 당연히 아니었다.
이번에는 거대한 방패를 든 오크들을 앞세워 쳐들어오기 시작했다.
“흐음, 안먹히려나.”
- 아마 그렇겠지.
척보아도 궁수의 신성력이 두려워 방패를 들고 온 것처럼 보였다.
혹시 몰라서 신성력을 머금고 화살을 발사했으나 공격은 당연히 먹히지 않았다.
이를 바라본 궁수는 어이가 없었는지 피식 웃었다.
“어이가 없네.”
어느새 궁수의 옆에는 입구를 시원하게 뚫어버릴 뚫어뻥…이 아니라 거대한 발리스타가 놓여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