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근접병기 활-120화 (120/172)

◈ 120화. 두유 노우 가시?

궁수의 시선이 날카로워졌다.

그러나 상대가 상대였기에 평범하게 위압이 먹히지도 않았다.

궁수의 압박을 가볍게 웃어넘긴 그는 느릿하게 입을 열었다.

“원래는 우리들이 추적하던 놈들이었으니까.”

“흠, 그런가요.”

확실히 전에도 티아라가 그런 말을 했었다.

궁수는 기세를 누그러트리고 차분하게 그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가시는 도합 열두 개가 있는 건 알고 있겠지?”

“이제는 다섯 놈 남았네요.”

“그래, 어디 사는 누구의 활약 덕분에 말이야.”

그는 책상의 버튼을 눌러 빔프로젝터를 켰다. 새하얀 벽에 프로젝터가 빛을 쬐자 정보집이 모습을 드러내었다.

“티아라, 네가 하거라.”

“네? 제가요?”

“에잉 쯔쯧, 그러면 늙어빠진 나보고 자리에서 일어나라는 거냐? 요즘 것들은 스승에 대한….”

“하겠습니다! 할게요. 해요!”

“끌끌끌.”

한숨을 푹 쉬며 앞에 선 티아라는 막대로 탁탁 벽을 치며 이목을 끌었다.

“이미 다 보고 있는데.”

“시끄러.”

“어휴 또 성질이네.”

“끌끌끌 누가 데려가련지.”

“그러게 말이요, 불쌍해.”

“둘 드 조용흐 흐스으….”

먼저 첫 번째로 가시들의 가상적인 조직도가 그려져 있었다.

첫 번째 가시부터 열두 번째 가시까지. 그중 대부분은 궁수에게 최후를 맞이한 놈들이었다.

“먼저 놈들의 궁극적인 목적은 이거야.”

어느새 프로젝터에서는 ‘???’라고 적힌 행성과 지구가 띄워져 있었다.

그리고 그 사이에는 거대한 벽이 자리 잡고 있었다.

“저게 뭔데.”

“저 세계의 괴물이 이곳으로 오지 못하게 하는 차단기.”

그녀는 디지털 팬으로 이번에는 그림을 그렸다. ‘???’에 사는 괴물들이 흉악한 표정으로 벽을 뚫고 있었다.

“저게 지금 상황이라 이거냐?”

“응.”

“그러면 저 벽을 회복시키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데.”

“나도 몰라.”

너무나도 당연한 질문이었지만 그녀는 쉽사리 대답할 수 없었다.

애초에 저 질문에 답을 알았다면 지구가 이렇게 침공당할 일도 없었을 것이다.

“흐음, 그래서 남은 가시는 뭐하는데.”

간단명료하게 설명을 마친 그녀는 다시 가시에 대해서 설명을 이었다.

“지금까지 남은 가시는 다섯이야.”

“흐음, 그러니까 그 말은 내가 일곱 놈 잡을 동안 너네는 아무것도 안했다는 소리네?”

“크흠! 지금까지 남은 가시는 다섯 개야.”

“존나 무능하네.”

궁수의 무자비한 팩트 폭행에 그녀는 부끄러운 듯 고개를 숙였다.

“뭐, 마저 말해봐.”

“이번에는 한 번에 셋이나 잡았잖아?”

그녀는 차근차근 가시에 X 표를 치며 남은 가시들을 나열했다.

“적들도 이만큼 큰 출혈을 냈으면 함부로 접근하지 않을 거야.”

“괜찮아, 나는 배달 서비스도 하거든.”

“뭐?”

“이승에서 저승까지 보내드리는 하이패스 서비스.”

“풉. 자신감은 좋네.”

티아라는 궁수의 농담에 작게 조소하며 빔프로젝터를 새하얀 화면으로 바꿨다.

“이제 작전 브리핑 들어가겠습니다.”

“뭐? 작전?”

“응.”

“아하, 니들끼리 하는 작전?”

“에이~ 우리가 남이야?”

“그럼 남이지 북이냐?”

궁수를 다루는 데에 익숙해진 그녀는 싱긋 웃음 한번으로 말을 씹어버리며 브리핑을 시작했다.

궁수는 투덜거리면서도 그녀의 브리핑을 들었다.

“궁수 말대로 이제는 우리가 놈들을 소탕해야 합니다.”

“뭐 준비해둔 거라도 있어요?”

“준비해둔 거라면?”

“뭐 놈들의 은신처라던가 주거지라던가.”

“없는데?”

“…뭐?”

정말로 없는 듯 그녀는 당당하게 가슴을 폈다. 궁수는 순간 가출한 어이를 찾아오느라 잠시 대답이 늦었다.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전백승?”

“그걸 아는 사람이 그러냐!?”

“모르는데 어떡해, 알 수 있으면 우리가 먼저 쳤지.”

“전에 아마존은 찾았잖아!”

“그건 너무 대놓고 있었잖아!”

확실히 그 건물은 나무로 가리지도 않고 떡하니 아마존 한 가운데에 있었다.

하다 못해 숨는 정성이라도 보여주던가 떡하니 있는걸 어떻게 그냥 넘어갈 수 있단 말인가.

궁수는 당장에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으나 일단은 한번 참기로 했다.

이번에 도움을 받기도 했으니 말이다.

“그렇다고 아무것도 안하고 가만히 있는 건 아니거든? 우리한테는 그녀가 있으니까.”

“뭐? 설마 ‘나 자신~!’이러면 때릴 거다.”

“쯧, 아니거든.”

그녀는 허락을 받듯 잠시 영감을 바라보았다. 그는 괜찮다는 듯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우리는 예언자를 사용할거야.”

“예언자? 그런 게 있어?”

“공개되진 않았지만 있어. 워낙에 오지에 계시다보니 헌터들도 모르는 경우가 많지.”

“호오….”

그녀는 예언자에 대한 맹목적인 믿음이 있는지 자신 있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대뜸 예언자라고 한들 ‘아하! 그렇구나!’하고 믿을 수 있을 리 없었다.

“예언이야 두루뭉술하게 말해서 끼워 맞추는 거 아니야?”

아무리 용한 무당이라 하더라도 미래를 100프로 예측할 수는 없다. 그렇기에 궁수는 의심을 할 수 밖에 없었다.

“하! 두루뭉술이라니!”

그녀는 기가 찬 듯 궁수를 쏘아붙이며 대답했다.

“호주에서도! 중국 철갑산의 파도도 다 맞추신 분이라고!”

“뭐 섬에서 화가 있을 것이다~ 중국에서 위험이 있을 것이다~ 했겠지.”

“하, 지명까지 정확히 짚어내시면서 등장 시간까지 맞추신 분이거든?”

“오오오….”

거기까지 말하니 조금 신뢰가 올라갔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티아라가 저렇게까지 호언장담하는 사람이라면 틀림없을 것이다.

“그래도 틀린 적은 있을 거 아니야.”

“없는데?”

“그럼 여태까지 한 예언이 다 맞았다고?”

“물론이지! 괜히 맹신하는 게 아니라니까?”

물론 괴물과 싸우고 있지만 궁수는 점이나 예언을 믿지 않았다.

오히려 뭐가 그렇게 대단하기에 티아라가 저렇게까지 맹신하는지 궁금할 지경이었다.

‘그게 가능한가?’

- 흐으음, 미래를 읽는 자들은 늘 있었다.

‘그래?’

- 오래 못가서 다들 죽더군.

‘음? 미래를 보는 양반이 자기 미래는 못 봐?’

- 천기는 그리 쉽게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니 말이다.

거기까지 들은 궁수는 흥미로운 듯 턱을 괴고 그녀의 이야기를 마저 들었다.

“그래서 그 예언자는 어디 있는데.”

“응? 아 으응, 그 기라는 게 있잖아? 특정 장소에서….”

“어딨냐고.”

노골적으로 말을 돌리는 것이 뭔가 불안했다.

궁수는 제발 아니길 빌며 그녀의 대답을 기다렸다.

“백두산.”

“…하느님이 보우하사 우리나라 만세?”

“아니 진짜로 백두산.”

그녀의 이야기를 들은 궁수가 벌떡 자리에서 일어나며 소리쳤다. 헌터 이전에 궁수의 설움이 담긴 외침이었다.

“야이 씨 알프스 간지 얼마나 됐다고 그러냐!”

“알프스보다는 낫잖아!”

“낫긴 개뿔이! 거기도 오지라고!”

“그래도 알프스보다는 낮잖아!”

“아까 이걸 죽였어야 했는데!”

***

섬뜩한 흑마법들이 가득한 실험실에서 검은 가운을 입은 그녀는 수정구로 뭔가를 유심히 바라보고 있었다.

소위 마녀라고 불리는 족속이었다.

“드디어 찾았어.”

전 세계를 쥐잡듯이 뒤지고 나서야 겨우 찾은 보물이 수정구 안에서 모습을 비추고 있었다.

“여기 있었구나, 예언자.”

위치를 확인한 그녀는 지팡이를 쥐고 밖을 나섰다.

***

“이젠 놀랍지도 않다.”

“애초에 예언만 들으면 되는데 내가 굳이 올 필요 있어?”

“혼자 가면 심심하잖아.”

그녀는 대답 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엄지를 척 들어올렸다.

궁수는 난생 처음으로 동료를 죽이고 싶은 감정이 들었다.

“…넌 어디서 대장 같은 거 하지 마라.”

“나 이미 대장인데?”

“뭐?”

“몰랐어? 세이비어는 부서가 따로 있거든.”

백두산으로 향하는 수송용 헬기 안에서 그녀는 세이비어에 대해 설명했다.

궁수도 마침 세이비어에 대해 궁금했던 참이기에 조용히 그녀의 말에 경청했다.

“세이비어는 부서부터 여러 부서로 나뉘어져있어.”

“부서?”

“응, 대륙별로, 세부적으로 가면 국가별로, 그 안에서도 또 팀이 갈려.”

‘그렇게 나누어져 있었나.’

가만히 그녀의 설명을 듣던 궁수는 문뜩 궁금해졌다.

“그럼 너는 뭔데?”

“나? 후후.”

“아냐 안 알려줘도 돼.”

궁수는 귀찮을 것이 눈에 보여 그녀의 말을 무시했으나 이미 티아라는 입꼬리를 올리고 자랑하고 있었다.

“나는 무려 대장의 직속 팀이란 말씀!”

“아뇨, 안 물어봤습니다.”

“물어봐야 대답하는 건 포털 사이트고.”

“나중에 화살 날아오면 난 줄 알아라.”

그러는 사이 헬기는 무사히 백두산에 도착했다. 미리 연락을 취하고 왔기 때문에 딱히 문제되는 것은 없었다.

“아무것도 없는데?”

“겉으로는 그렇게 보이지.”

분명 나무가 무성한 산이었으나 헬기는 자연스럽게 그 안으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다른 사람이 본다면 자살행위나 다름없었으나 그 내막은 달랐다.

“오오오!”

- 호오, 환영술인가.

마치 신기루를 뚫는 것처럼 헬기는 부드럽게 착지했다.

후다닥 헬기에서 내린 궁수의 눈에 가장 먼저 들어온 것은 커다란 동굴이었다.

사람은 물론이고 웬만한 차량도 가볍게 들어갈 정도로 커다란 동굴이 뚫려있었다.

“이 안에 계셔, 들어가자.”

“박쥐야? 왜 이렇게 어둡게 살아.”

“그렇다고 예언자라는 고급인력을 아무렇게나 둘 수는 없잖아.”

칙칙한 외관에 비해 동굴 내부는 꽤나 화려했다. 각종 조명들이 빛을 내뿜으며 어두운 동굴을 환하게 밝혀주었다.

오색빛깔 등불이 은은하게 동굴을 비추는 그 모습은 궁수마저 감탄할 정도였다.

동굴 안은 잘 닦인 복도로 쭉 이어져 있었다.

“제법 길이가 있네.”

“거의 다 왔어.”

“벽인데?”

“당연히 환술이지.”

“참 꽁꽁도 숨겨놨다….”

환술을 뚫고 들어가니 그 끝에는 멋들어진 한옥이 그 모습을 드러내었다.

사람이 사는 집이라기보다는 마치 조선시대 궁에 가까운 느낌이었다.

천천히 입구에 다가간 티아라는 정중하게 문을 두드리며 외쳤다.

“내 - 마리 - 다마즘님! 세이비어입니다!”

“와 이름보소.”

거의 나만힐과 비견될 정도로 강렬한 이름이었다.

“다마즘님?”

“….”

대답은 들려오지 않았다. 티아라는 조용히 한 번 더 문을 두드렸다.

끼이이이익.

그제야 닫힌 문이 열리며 안으로 가는 길이 드러났다.

내부는 가구들이 자리를 차지하며 비워있는 집에 생기를 불어넣고 있었다.

꾸준히 관리를 해준 모양인 듯 가구는 먼지 하나 없이 깔끔했다.

“혼자 사는 사람인데 되게 깔끔하네.”

“응? 아 청소? 다마즘님이 하는 거 아닐걸?”

“응? 그럼 누가 하는데?”

“전담 가사도우미가 있으니까.”

고급스러운 카펫이 깔린 복도를 지나 깊숙이 들어가니 거대한 문이 모습을 드러내었다.

마치 국왕을 알현하기 전의 거대한 문과 같았다.

“이거 열면 돼?”

“응? 아니 문 여기 있어.”

“으잉? 진짜네?”

거대한 문에는 티 나지 않게 만들어진 문이 있었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그 안에서는 한 여성이 조용히 책상에 앉아 궁수와 일행을 바라보고 있었다.

차분한 검은 생머리에 안경을 쓴 그녀는 마냥 귀찮은 듯 대충 손을 휘저었다.

“나가라고?”

“아니, 아무 곳이나 편한 대로 앉으래.”

“넌 저런걸 알아 먹냐.”

“하하하….”

모든 멤버들이 소파에 앉고 잠시 시간이 흘렀다.

20분쯤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그녀는 귀찮은 듯 한숨을 푹 내쉬며 입을 열었다.

“안 나가네….”

“아무래도요.”

“너는 재미가 없어. 죽을 운도 보이지 않고.”

그녀는 보라색 눈을 빛내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조나셈과 나만힐, 나법사와 베로니카를 지나 마지막 나궁수.

“…어?”

그녀는 마지막으로 궁수를 유심히 바라보더니 이내 뚜벅뚜벅 궁수를 향해 다가왔다.

숨이 닿을 정도로 가까운 거리에서 그녀는 궁수를 계속해서 바라보았다.

“부담스러운데요.”

“…안 읽혀.”

“뭐요?”

읽히지 않는다는 말과 함께 계속해서 궁수를 바라볼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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