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9화. 티아라도 캍!
식사를 마친 궁수는 만족스럽게 배를 쓰다듬으며 식당 밖으로 나왔다.
마침 노인도 밥을 다 먹었는지 궁수를 따라 나왔다.
“그래서 이제 어디로 갈 텐가?”
“흐음, 글쎄요, 같이 온 동료들부터 만나야겠는데.”
“홀홀홀, 길은 알고?”
“까짓 거 때려 부수면 알아서 찾아오지 않을까요?”
궁수는 정말로 내부를 때려 부술 듯 섬뜩한 마력을 일으키고 있었다.
그러나 옆의 노인은 표정 하나도 변하지 않고 덤덤하게 말했다.
“껄껄 젊은 건 좋구만.”
“농담이에요, 농담.”
궁수도 어렴풋이 눈치채고 있었다. 옆의 노인이 평범한 사람은 아니라는 것은 말이다.
“그래서 어디로 가면 될까요.”
“홀홀홀 이 노인한테 물어본들 아무것도 모른다네.”
“아직 그 컨셉 안 버리셨네요.”
“방황하는 젊은이를 지켜보는 것도 나름의 유흥이지.”
“악취미네요.”
그러면서도 노인은 덤덤하게 발을 옮겼다. 궁수는 적당히 그의 말을 맞춰주며 뒤를 따라갔다.
“어디로 가는 겁니까?”
“홀홀 따라오는 건 자네 아닌가?”
‘조용히 따라오라 이건가.’
딱히 뾰족한 수도 없었기에 궁수는 투덜대면서도 그의 뒤를 따라갔다.
“으음?”
처음에는 개인 집무실이나 생각했던 궁수는 의외의 장소에 눈을 빛내었다.
도착한 장소는 다름 아닌 체육관이었기 때문이다.
“흡! 하아압!”
“이번에야 말로 이긴다!”
체육관에서는 세이비어의 여러 헌터들이 땀을 흘리며 훈련하고 있었다.
“어 저기.”
그리고 그곳에서는 익숙한 얼굴들도 제법 보였다. 다름 아닌 프로틴프로 길드원들이었다.
그들은 티아라와 격렬한 모의전을 펼치고 있었다.
“자네의 동료들인가? 다들 한가닥 하더군.”
“당근이죠, 누구 동료인데.”
실전이면 몰라도 모의전이다 보니 1대 1에서는 다들 티아라에게 밀리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애초에 외팔인 셈은 그녀의 검을 받아낼 뿐 별다른 반격을 자아내진 못했다.
그렇다고 법사나 다른 원거리 딜러들을 붙일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물론 법사는 다른 이유로 붙이지 않은 것이지만 말이다.
‘하긴 쟤가 나가면 건물이 남아나질 않겠네.’
그 와중에 티아라의 검이 셈의 도신을 후려쳤다.
콰직!
“흐읍!”
나름대로 선방하긴 하였으나 결국 셈의 목검이 날아가며 모의전은 끝나고 말았다.
셈과 다른 헌터들은 땀에 흠뻑 젖어있었으나 티아라의 호흡은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다.
“나 왔어요!”
“오? 오오오오! 드디어 일어났는가!”
“응? 뭐야? 어디갔다가 이제 온 거야!”
궁수를 발견하자마자 티아라가 눈을 부라리며 쏘아붙였다.
“밥 먹었지, 이 할아버지랑.”
“할아버지라니, 허어억?! 대장! 왜 여기 있어요?!”
“홀홀홀, 왜, 내가 여기 있으면 안되는 이유라도 있느냐?”
“그, 그건 없는데요…”
그녀는 마치 부끄러운 것을 들킨 아이처럼 슬금슬금 뒷걸음질 쳤다. 노인은 싱긋 웃더니 곧바로 지적에 들어갔다.
“아직도 착지할 때 검 끝이 흔들리는구나.”
“그, 그건!”
“실력차가 있으니 봐주는 건 상관없다만 기본기는 놓치지 말거라.”
마치 부모가 자식에게 일러주는 잔소리 같았다.
처음에는 투덜거리던 티아라도 결국에는 노인의 말에 꼬리를 내렸다.
궁수는 이를 바라보며 말했다.
“다~ 그게 피가 되고 살이 되는 말이다 이말이야~”
노골적으로 티아라를 놀려먹기 위한 말투였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한 성깔하는 그녀가 궁수의 도발을 순순히 넘어갈 리 만무했다.
“하! 다 죽어가는 걸 구해줬더니 뭐?”
“아니~ 검 끝이 흔들린다잖아~”
“왜 이참에 네 멱살도 잡고 흔들어주랴?”
땅을 꾹꾹 밟으며 다가온 그녀가 궁수를 쏘아붙였다.
그러나 궁수는 이미 놀려먹는 것에 맛이 들렸는지 더욱 그녀를 갈궜다.
“어허, 명경지수라는 말도 몰라? 그게 다~ 마음이 혼탁하니까 검 끝이 흔들리는 거야.”
“뭐라는 거야? 죽을래?”
“죽여보시등가~”
노인은 가만히 이를 바라보며 홀홀홀 웃었다. 그러고는 궁수에게 제안했다.
“이렇게 된 거 둘이서 모의전을 하면 되겠군.”
“네!? 제가요? 얘랑요?”
“어르신, 아무리 그래도 초등학생이랑 성인을 붙이는 건 좀….”
“하! 내가 성인이지?”
“초등학생한테 지는 성인이라니, 슬프잖아.”
이 와중에도 서로에게 훈훈한 덕담을 뱉는 그 모습에 노인은 뒤로 물러나 의자에 앉았다.
“홀홀홀, 오랜만에 좋은 구경 하겠구만.”
“하, 정말! 하면 되잖아요! 하면!”
“진짜 하게?”
“왜? 질까봐 쫄려?”
“허.”
궁수는 화살을 한 개 꺼내 당에 처박았다. 그러고는 그녀를 바라보며 말했다.
“난 여기서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않는다.”
“…뭐? 미친 거야?”
“알아서 생각해.”
궁수의 화살통 가득히 수십 발의 화살이 차올랐다. 살상용 화살이 아닌 끝이 뭉툭한 제압용 화살이었다.
“쯧, 입만 살아서는.”
티아라는 궁수의 오만함에 혀를 차며 뒤로 이동했다. 이를 바라보며 궁수는 어이없다는 듯 말했다.
“미쳤어?”
“왜 또 시비야.”
“이 거리에서 날 상대하겠다고?”
“흥, 병상에서 이제 막 일어난 환자한테는 부족한가?”
“후회할 텐데.”
그녀는 아직 궁수의 새로운 힘을 접하지 못한 듯 보였다.
만약 멤버들에게 조금이라도 들었다면 절대로 이런 선택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전투 준비!”
양측 모두 끝에서 무기를 장비하고 전투를 준비했다. 궁수의 천궁이 팔에 스며들었다.
“시작!”
타앗!
시작과 동시에 돌진한 그녀가 궁수의 목을 노리고 검을 치켜세웠다.
“진짜 안 움직이네?”
제법 거리가 가까워졌음에도 궁수는 정말로 단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않았다.
“흥, 역시 입만 산 남자라니까.”
한 합으로 승부를 보려던 그녀는 기세를 피워 올리며 더욱 속도를 높였다.
궁수는 그런 그녀를 바라보며 손을 들어올렸다.
“뭐…?”
궁수의 화살통 가득히 차 있던 뭉툭한 화살 수십 개가 공중에 둥실 몸을 띄웠다.
“이런…!”
궁수가 그녀를 향해 화살을 날린 것과 티아라가 몸을 비튼 것은 거의 동시였다.
‘이래서 그리 자신만만했던 건가!’
그러나 그녀는 아직 모르고 있었다.
티아라를 놓친 화살들은 곧바로 회전하며 순식간에 그녀를 감쌌다.
곧바로 그녀의 뒤를 노릴 수도 있었으나 장난기 가득한 궁수의 배려였다.
상하좌우에 전후까지 시야를 둘 수 있는 거의 모든 곳에 궁수의 화살이 가득했다.
사실상 실전이었다면 이미 결판이 난 상황이었다.
이쯤하면 보통 꼬리를 내리기 마련이었으나 그녀는 심통이 났다.
‘같잖은 수를 쓰다니!’
그것도 자신의 스승이 보는 앞에서 말이다.
그녀의 전신에 황금빛 마력이 일렁이기 시작했다.
궁수의 화살을 날려버리기 위한 마력이었으나 가만히 지켜보고만 있을 궁수가 아니었다.
따악!
궁수의 손가락 소리와 함께 주변 화살들에 속성이 입혀졌다. 불꽃, 바람, 얼음, 대지, 신성에 전류까지.
화살은 뭉툭했으나 그 화살에 담긴 힘은 실로 위협적이었다.
궁수는 무감정한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며 말했다.
“그만하지?”
항복 권고보다는 명령에 가까웠다. 비살상용 화살이 살상력을 지니게 되었다.
궁수도 이렇게까지 할 마음은 없었으나 그녀의 황금빛 마력을 보고서는 곧바로 마력을 일으켰다.
그녀가 진심을 다하면 얼마나 귀찮은지 잘 알고 있는 궁수에게 있어서는 당연한 일이었다.
이 정도로는 부족하다고 생각했는지 궁수의 화살은 끊임없이 그녀 주변을 맴돌았다.
“…하.”
툭.
아무리 주변을 둘러보아도 돌파할 구멍이 보이지 않자 그녀는 결국 검을 버리고 항복했다.
처음부터 궁수의 능력을 알았더라면 이렇게까지 시시하게 끝나지는 않았을 것이다.
“졌습니다.”
“수고했어.”
궁수는 화살을 거두며 마력을 갈무리했다. 고작 10분도 안되는 시간이었으나 궁수의 마력이 뭉텅이로 깎여나갔다.
- 이 힘은 영 가성비가 안 좋아.
“안 좋긴 이 정도면 연비 죽여주는 거지.”
궁수는 천궁을 다시 어깨에 걸고 그녀에게 다가갔다. 궁수가 그녀에게 다가가 가장 먼저 한 말은.
“응애 나 아기 궁수.”
“크흑….”
“쎈 척은 다하던 성인, 숨도 못 쉬게 해버리기~”
그녀는 이를 악물고 궁수의 도발을 참았다.
궁수도 이 이상 놀리면 뭔가 큰 일이 일어날 것만 같았기에 말을 아꼈다.
“다음에는 제대로 붙어보자고.”
“…다음에는 내가 이겨.”
“꼭 그런 말 한 놈이 지더라.”
궁수는 피식 웃어주고는 조용히 관람하고 있던 노인에게 다가갔다.
“어르신도 이제 힘숨찐 놀이 그만하시죠.”
“홀홀홀 들켰는가?”
“들키긴 등장부터 ‘저 개쌔요~’하고 나오는데 어떻게 눈치를 못 채요.”
“요즘 젊은이들은 눈치가 빠르구만.”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몸을 털더니 궁수와 일행에게 말했다.
“할 말이 있으니 다들 따라오게나.”
이 말을 들은 멤버들은 적당히 장비를 정리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티아라는 기척을 지우고 조심스럽게 도망가려 했다.
“어딜 가느냐? 너도 와야지.”
“아하하하 화장실이 급해서 말입니다….”
“….”
“…어휴 가요 가.”
노인의 뜨거운 질책을 버티지 못한 그녀는 결국 궁수 일행을 함께 따라나섰다.
새하얀 복도를 하염없이 걷다보니 어느새 그 끝에 도달했다.
끝에는 거대한 문이 있었는데 그 중앙에는 세이비어의 증표인 날개달린 문이 조각되어 있었다.
“으윽 여기는 올 때마다 거부감이 든단 말야.”
그녀는 썩 내키지 않는지 양팔을 끌어안고 몸을 파르르 떨었다.
띡!
그가 왼손을 뻗어 지문을 찍자 붉은 센서가 그의 전신을 훑었다.
[ GUEST - 단장 ]
새하얀 문에는 붉은 글자다 떠오르며 문이 열렸다.
“누추하지만 들어들 오게나.”
“어이쿠 누추해라!”
“누추! 누추!”
“둘 다 제발 눈치 좀 챙겨!”
“끌끌끌 괜찮네.”
누추하단 말과는 달리 내부는 무척이나 깔끔했다.
그의 개인 집무실인 듯 원목으로 이루어진 책상이 놓여 있었다.
그 앞에는 손님 접대용인지 두 개의 기다란 흰색 소파가 놓아져 있었다.
“앉게나, 흐음 이미 앉았군.”
“소파는 앉으라고 있는 거셈!”
“홀홀홀, 밝아서 좋구만.”
티아라를 마지막으로 모든 일행이 소파에 앉자 그는 헛기침을 하며 이목을 끌었다.
“왜 저래?”
“여기는 손님이 왔는데 차도 안 내오나?”
“쉿! 쉿! 다들 조용히!”
티아라의 만류에야 겨우 상황은 진정될 수 있었다. 그는 헛기침을 하며 대뜸 티아라에게 말했다.
“그래서 이제는 정의가 뭔지 대답할 수 있겠느냐?”
“아….”
이전 궁수에게도 물어본 질문이었다.
궁수는 너무나도 쉽게 대답했으나 그녀는 아직 답을 찾지 못한 듯 보였다.
“아직 찾지 못한 모양이구나.”
“…죄송합니다.”
“괜찮다, 이번에는 제법 재밌는 답변을 들었거든.”
그러면서 그는 슬며시 궁수를 바라보았다. 궁수는 별 관심 없는 듯 턱을 괴고 주변을 둘러보고 있었다.
“저 아이는 정의가 핑계라고 하더구나.”
“네? 핑계요?”
“그래, 요즘에는 무슨 일이던 정의를 운운하며 달려드니 말이다.”
궁수는 자신의 이야기가 나오자 피식 웃었다.
큰 생각 없이 대답한 것이지만 그는 이 답변이 제법 마음에 든 듯했다.
잠시 정적이 일어났다. 딱히 어색한 분위기는 아니었다.
딱히 할 말도 없었기에 궁수는 푹신한 소파를 온몸으로 느끼며 긴장을 풀었다.
편안한 정적을 깬 것은 다름 아닌 노인이었다.
“자네는 우리 세이비어가 무슨 집단인지 알고 있는가?”
다름 아닌 궁수를 향한 질문이었다. 이에 궁수는 슬쩍 티아라를 한번 바라보더니 말했다.
“모르겠습니다만.”
“흐음, 그러면 ‘가시’에 대해서는 알고 있는가?”
“…그걸 어떻게?”
여우처럼 능글맞은 표정을 지은 노인과 궁수의 눈이 마주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