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8화. 인간졸업 나궁수.
궁수의 양 팔에 마력이 깃들었다. 그와 동시에 궁수의 화살통에서 다섯 개의 화살이 모습을 드러내었다.
- 이 능력을 사용할 때는 움직이지 못한다.
“그래, 어차피 발가락 하나도 꼼짝하기 힘들어.”
파지지지직!
황금빛 전기를 머금은 다섯 개의 화살은 허공에 둥실 떠올랐다.
한 개 한 개가 1미터에 달하는 길이였지만 말이다.
화살보다는 창에 가까운 그것들은 조용히 주인인 궁수의 명령을 기다리고 있었다.
당장에라도 적들의 목을 물어뜯기 위해 지금은 고요히 그리고 잔잔히 말이다.
“후우….”
궁수가 뜨거운 숨을 뱉어내었다.
궁수에게 있어서는 다소 난이도 있는 마력 운용이었으나 불가능할 것은 없었다.
법사를 따라서 꾸준히 마력 운용 훈련을 해왔으니까.
희대의 천재인 법사만큼은 아니더라도 궁수도 어디 가서 마력 운용으로는 밀리지 않는 사람이다.
활 솜씨만 좋고 마력 운용이 별로였다면 애초에 국내 1위라는 칭호를 얻지 못했을 것이다.
“할 수 있다. 충분히 다룰 수 있어.”
확실히 번거롭고 다루기 어려운 힘이다.
그러나 그뿐이었다. 억센 힘이라면 더욱 강한 힘으로 부여잡고 강제로 복종시킨다.
그래, 그거면 된 거다.
궁수는 먼저 적들을 향해 왼팔을 휘둘렀다.
파지지지직!
“끄아아아악!”
“무, 무슨 크허어억!”
“저게 뭐야! 저런 정보는 없었잖아!”
다섯 발의 화살이 궁수의 명에 따라 움직이며 적들을 쓸어버렸다.
반응조차 할 수 없는 전력의 화살은 아무리 적을 관통하더라도 지치지 않았다.
오히려 더욱 빠르게 스파크를 튀기며 전장을 호령했다. 섬광이 번뜩이면 적들의 시체가 늘어난다.
어두운 동굴이 번쩍 할 때마다 적들의 비명소리가 울려 퍼졌다.
여기까지만 하더라도 대단한 수준이었으나 궁수는 아직 만족하지 않았다.
“아직, 더 할 수 있다.”
다섯 발은 충분히 운용할 수 있다. 궁수의 화살통에서 추가로 생성된 다섯 발의 화살이 둥실 떠올랐다.
이번에는 불꽃과 바람을 머금은 화살들이었다.
왼손으로는 라이트닝 애로우를 조종하면서 반대 손으로는 다른 두 속성의 화살을 다루고 있었다.
“와아…!”
법사조차도 감탄할 정도의 스킬 활용이었다.
다른 파티 멤버들도 순간 궁수의 능력에 경악할 정도였으니 말이다.
불과 바람으로 이루어진 화살이 적들을 에워싸기 시작했다.
빠른 속도로 회전하며 감히 적들을 빠져나가지 못하게 막은 화살은 궁수의 명령에 따라서 더욱 빠르게 회전하기 시작했다.
“자…. 잠깐!”
“살려….”
그 뒤로는 적들의 비명만이 낭자할 뿐이었다.
바람으로 빗어진 불기둥에 불꽃이 입혀지며 생성된 거대한 불기둥은 적들의 목숨을 빼앗기 충분했다.
“자연재해가 따로 없군.”
“글쎄 재해보다는 재앙이 맞지 않을까.”
“동료라서 다행이야.”
“궁신…. 아니 신궁인가.”
저것이 궁수라는 직업의 범주에 들어가는지는 알 수 없었다.
그러나 명백히 인간의 힘을 벗어나는 무언가라는 것은 알 수 있었다.
인간이 경지를 이루었을 때 보인다는 그 깨달음을 지금 궁수는 얻은 듯했다.
실상은 새로운 천궁의 형태를 얻었을 뿐이지만 말이다.
동굴을 가득 채운 암살자들은 궁수의 화살에 순식간에 정리당하고 말았다. 고작 남은 것은 가시 세 명.
칭찬할 만한 점은 아직 전투 의지를 잃지 않았다는 것일까.
“그걸 쓰는 동안은 움직이지 못하는 모양이군! 죽어라!”
총구를 들이밀고 궁수에게 달려든 밀덕은 다섯 걸음도 움직이지 못하고 궁수의 화살에 양쪽 다리가 관통당하고 말았다.
한 쪽당 다섯 발의 화살이 꽂혔다.
“끄아아아아악!”
촤아아악!
궁수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화살을 뽑아버렸다. 그의 다리가 치즈처럼 둥근 구멍이 송송 뚫렸다.
그러나 궁수는 만족하지 않았는지 추가로 그의 어깨에도 화살을 처박았다.
“크하아아악!”
- 한 놈은 살려둬라.
“알고 있어.”
다시 말해서 두 놈은 죽인다는 의미였다.
적의 팔 다리를 모두 박살 내버린 궁수는 메마른 표정으로 잠시 그를 바라보았다.
“흐으음.”
“사…. 살려줘!”
푸욱!
결과는 사형이었다. 궁수의 화살 세발이 그의 가슴을 관통하며 심장을 완전히 찢어버렸다.
남은 적은 둘.
그들은 슬슬 궁수의 눈치만 보며 먼저 접근하지 못하고 있었다.
“오지 않으면.”
궁수가 파오후를 향해 검지와 엄지로 만들어진 권총을 들이밀었다.
그리고는 실제 권총을 발사하듯 반동을 흉내 내었다.
“죽어.”
궁수의 화살 한 발이 전속력으로 발사되었다. 궁수는 물론 주변의 헌터들도 반응하지 못할 정도로 빠른 속도였다.
카가가가가가각!
“흐그으으으윽! 이, 이런 것쯤 막을 수, 막을…!”
콰드드드드득!
단검을 교체한 그는 안간힘을 쓰며 궁수의 공격을 막으려 했다.
화살에 실린 힘이 얼마나 강력했는지 그 거대한 덩치가 쭈욱 뒤로 밀렸다.
콰앙!
벽에 틀어박혀서도 그는 계속해서 궁수의 화살과 씨름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궁수는 이 시시한 싸움을 계속 지켜볼 생각이 없었다.
궁수는 손바닥으로 지그시 화살을 누르기 시작했다.
“어…어어!?”
카드드드드득!
단검과 화살의 대결은 화살이 단검을 깨부수며 시시하게 끝이 났다. 결국 화살은 적의 미간을 꿰뚫었다.
푸화악!
“쯧, 저건 버려야겠군.”
적의 뇌수가 튀며 궁수의 화살이 더러워졌다.
궁수는 곧바로 남은 아홉 개의 화살을 띄우며 남은 한명의 적을 감쌌다.
“에잉…. 이 노인네는 힘이 없….”
쐐애애애액!
기습적으로 그녀는 머리에 꽂혀있던 비녀를 궁수에게 날렸다.
콰득!
“안돼지.”
아쉽게도 비녀는 궁수에게 닿기 직전 셈에게 잡히며 간단히 부러지고 말았다.
“이…이런!”
노인, 아니 열한 번째 가시의 표정이 경악이 떠올랐다.
피식.
어처구니가 없었던 궁수는 손바닥을 벌렸다.
콰직!
“끄아아아아악!”
그리곤 주먹을 쥐었다. 가시의 팔과 다리에 화살이 박히며 완전히 그녀의 움직임을 통제했다.
추가로 궁수의 화살통에서 수십 발의 화살이 모습을 드러내었다.
전과 같이 속성이 실린다거나 길이가 긴 화살이 아닌 평범한 화살이었다.
박힌 아홉 개의 화살의 통제권을 포기했기에 할 수 있는 일이었다.
궁수는 서늘한 표정으로 그녀에게 물었다.
“내 말에 대답하면.”
“살려줄게냐?”
“아니, 고통 없이 죽여줄게.”
“홀홀홀…. 쿨럭! 거절한다면?”
푸욱!
“끄아아아악!”
가는 화살 한 발이 가시의 어깨에 박혔다.
“고슴도치가 되겠지.”
수십 발의 화살이 그녀를 둘러싸고 있었다. 남은 마력이 얼마 남지 않았다.
궁수는 식은땀을 흘리며 그녀에게 물었다.
“네놈들은 뭐하는 놈들이냐.”
“….”
푸욱!
“끄아아아악!”
“5”
“4”
“3”
“우, 우리는! 그분의 야망을 실현시켜 드리기 위해 모인 종이다!”
‘또 그 소린가.’
썩 만족스러운 대답은 아니었으나 궁수는 다음 질문으로 넘어갔다.
애초에 가시는 ‘그분’이라는 새끼의 앞잡이일 가능성이 높았다.
“네놈들이 말하는 그분의 목적은 뭐지?”
“그분의 목적?”
푸욱!
“큭흐그으윽! 어째서!”
“대가리 굴러가는 소리가 들리길래.”
가시는 궁수의 날카로운 태도에 이를 악물더니 이내 소리쳤다.
“그분은 고작 그곳에서 멈추실 분이 아니다!”
“뭔 개소리야, 알아듣게 말해.”
“그분은! 그분은….”
가시의 몸이 추욱 늘어졌다. 무언가 할 말이 있었던 것 같지만 더 이상 몸이 버티지 못했던 것이다.
“그래도 확인사살은 해야지.”
푸푸푸푸푹!
허공을 맴돌던 수십 발의 화살이 가시에게 박혀 들어갔다.
“이게 진짜 가시지….”
그 말을 마지막으로 궁수는 쓰러지고 말았다.
***
궁수가 다시 눈을 떴을 때 그곳은 병원…은 아니었다.
“어디야 여기.”
스위스도 그렇다고 한국의 협회도 아닌 난생 처음 보는 곳이었다.
“천궁!”
- 여기있다. 계약자여.
다행히도 천궁은 궁수의 옆에 잘 놓여 있었다.
“뭐야?”
적이라면 천궁을 가져갔을 텐데 오히려 천궁은 멀쩡히 궁수의 옆에 있었다.
주변을 둘러본 궁수는 그제야 긴장을 풀고 천궁에게 물었다.
“여기가 어디야?”
- 여기? 세이비어라고 하더군.
“세이비어? 걔네가 갑자기 왜?”
- 쓰러진 것 까지는 기억이 나느냐?
“음….”
마지막으로 가시를 죽인 것까지는 기억에 있었다.
그러나 당장 그 이상은 떠오르는 것이 딱히 없었다.
“모르겠는데.”
- 흠, 뭐 장소가 장소이다 보니 말이다. 딱히 치료할만한 곳도 마땅치 않았다.
“그래서?”
- 네 동료가 그 여자에게 전화를 했다.
“여자? 티아라?”
- 뭐 대충 그런 이름이었다.
“걔가?”
궁수는 애매한지 고개를 기울이며 대답했다.
적어도 그가 아는 티아라는 자신이 쓰러졌다고 한걸음에 달려올 것 같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 뭐, 아직 쓸모가 있으니 그랬겠지, 여튼 그 여자가 단숨에 달려와 너를 챙겼다.
“그리고 곧장 여기로 온 거야?”
- 그렇다.
“흐음…. 그런가.”
궁수는 뭉친 몸을 풀며 침상에서 일어났다.
헌터의 초인적인 회복력으로 상처는 모두 회복된 상태였다.
배가 몹시 고프긴 하였으나 병실 밖으로 나가면 뭐라도 있을 거라 생각하며 천궁을 어깨에 이고 바깥으로 향했다.
“이런 느낌인가.”
바깥은 새하얀 복도였다. 종종 벽면에 세이비어의 상징인 날개달린 검이 그려져 있었다.
“다른 동료들도 같이 왔어?”
- 응, 그렇다.
“그럼 다들 여기에 있다는 소린데.”
잠시 복도를 쏘다니다 보니 향긋한 음식 냄새가 풍겨오기 시작했다.
기절하다 깨어났으니 궁수의 배는 텅 비어있었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고, 배부터 채우자.”
궁수는 슬리퍼를 질질 끌며 식당으로 향했다. 마침 식당은 텅 비어있었다.
“음? 신입인가?”
“네, 뭐 그렇죠.”
대답할 기력도 없었기에 궁수는 영양사에게 설렁설렁 대답하며 음식을 펐다.
식판 가득히 음식을 담은 궁수는 대충 아무 자리에 앉아 밥을 먹기 시작했다.
메뉴는 제육 쌈밥이었다.
원래도 가리는 것 없이 잘 먹던 궁수지만 몇 끼를 굶고 먹다보니 평소보다 훨씬 맛있었다.
고봉밥을 오물오물 씹어 먹던 궁수의 앞에 누군가가 식판을 가지고 앉았다.
“실례.”
짤막한 말에 궁수는 알아서 하라는 의미로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대머리에 수염이 난 노인이었다.
어느 정도 배를 채우고 나니 눈앞의 노인이 궁수에게 말을 걸어왔다.
“신입인가?”
“아뇨, 손님이에요.”
“홀홀홀, 우리는 손님은 받지 않고 있네만.”
“그러면 식객이란 걸로.”
보통은 외딴 곳에서 생전 처음 보는 사람이 말을 걸어오면 위축될 법도 한데 궁수는 전혀 그렇지 않았다.
오히려 한 번 더 리필을 받아 제육볶음을 학살하고 있었다.
노인은 그런 궁수를 흐뭇하게 바라보며 말했다.
“신기한 활을 가지고 다니는군?”
“주인이 워낙에 신기한 사람이라서요.”
“허허허허! 언뜻 봐도 그래 보이는군!”
궁수는 노인의 말에 대답을 해주며 식사를 이어나갔다. 딱히 귀찮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니었기에 궁수 또한 별 거부감 없이 대화를 이어나갔다.
“자네.”
“우걱우걱…. 네?”
뜬구름 잡는 소리만 하던 노인이 갑자기 목소리를 낮추고 말했다.
“자네는 정의가 뭐라고 생각하나?”
정말로 중요한 질문인 듯 그는 양손에 깍지를 끼고 턱을 기대며 궁수를 바라보고 있었다.
이런 중요한 질문에 궁수는.
‘뭐야 중 2병이야?’
중 2치고는 나이가 많았지만 말이다. 고기를 씹으며 고민하던 궁수는 이렇게 대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