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5화. 마이 스위트 헬스기구.
“알…?”
검붉은 색이 짙게 깔린 알은 궁수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다.
“무슨 알이지…?”
[계란후라이 딱 대 ㅋㅋㅋㅋㅋㅋ]
[군침이 싹도누 ㅋㅋㅋㅋ]
[계란에 치킨은 못 참지 ㅋㅋㅋㅋㅋㅋ]
ㄴ 부모 자식의 콜라보레이션 ㅋㅋㅋㅋ
ㄴ ㅋㅋㅋ 부모와 자식을 한번에 ㅋㅋㅋㅋㅋ
ㄴ 미친 새끼들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조심스럽게 알을 들어 올린 궁수는 깨질까 두려워 부드럽게 요모조모 살펴보았다.
- 드래곤이군.
“이게?”
- 무슨 종인지는 모르겠다만, 아무튼 드래곤의 알이군, 상태를 보아하니 부화도 얼마 남지 않았어.
실제로 알에서 느껴지는 부드러운 진동이 궁수의 손목을 타고 올라왔다.
“드래곤이라….”
궁수의 머릿속에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서양의 드래곤이었다.
붉은 두 쌍의 날개와 불을 내뿜는 그야말로 교과서적인 드래곤의 모습이었다.
“부술까?”
- 응? 그걸 왜 부수느냐?
“드래곤이라며? 괴물이니까 죽여야지.”
- 드래곤 알이 얼마나 얻기 힘든지 아느냐!
“그건 내 알바 아니고.”
궁수는 천궁의 말을 무시하며 알을 높이 들어올렸다.
당장에 깨부술 듯한 궁수의 기세에 깜짝 놀란 천궁이 다급히 소리쳤다.
- 드래곤 나이트도 모르냐! 그 놈들이 얼마나 강력한 집단인데!
“그놈들은 용이라도 잡아서 고문하나보지.”
- 드래곤은 알에서 나오고 가장 먼저 본 놈들을 부모로 생각한다.
“음?”
- 해츨링때부터 꾸준히 마력을 넣어주면 널 부모로 생각할거다.
“오오….”
드래곤을 타고 날아다니며 공중에서 저격을 하는 궁수.
“나쁘지 않은데….”
거기까지 생각한 궁수는 자연스럽게 드래곤의 알에 마력을 불어 넣었다.
“이렇게 하면 되는 거야?”
- 부화가 임박하긴 했다만 당장은 아닐 거다.
“그래.”
인벤토리에 알을 넣은 궁수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어떻게 나가지?”
“궁수씨 여기요!”
“네?”
드래곤 하트가 부서진 곳에서 바깥으로 향하는 포탈이 넘실거리고 있었다.
“뭐야?”
“일단 나가죠. 바깥이 어떻게 됐는지도 확인해야겠습니다.”
“알겠습니다.”
궁수는 서둘러 포탈을 타고 바깥으로 나왔다. 부산의 어두운 달빛이 일행을 비추고 있었다.
“섬은 멀쩡하네?”
“흐음, 드래곤이 사망했지만 섬은 그대로군요.”
드래곤은 확실히 죽었는지 혀를 축 내밀며 쓰러져있었다.
그러나 그 위의 숲은 부러지거나 말라비틀어지지 않고 멀쩡했다.
“이런 경우에는 어떻게 되는 거죠?”
“글쎄요, 처음 겪어보는 일이라….”
“하긴…. 그건 그렇네요.”
난생 겪어본 적 없는 전대미문의 사건이었기에 은우라 하더라도 별다른 대처를 하지 못했다.
“일단 내일부터 안정화 작업에 들어가야 할 것 같습니다.”
“안정화요?”
“혹시 모르는 잔당들을 처리하고 섬을 뒤져봐야죠.”
“하긴 그래야 하겠네요.”
부산 앞바다인 만큼 섬이 순식간에 사라지지 않는 한 안정화는 필수적인 작업이었다.
“안 할 겁니다.”
“그 정도야 다른 헌터님들이 하실 거니까 걱정 마세요.”
“일도 끝난 것 같으니 이만 가볼게요.”
“네? 배가 올 때까지는 기다리시는 게….”
“아뇨, 법사야 가자.”
딱히 거리가 먼 곳도 아니고 엎어지면 코 닿을 거리였기에 법사는 바다를 얼리며 육지를 향해 돌아갔다.
***
부산 앞바다 사건을 해결하고 나서 이틀이 지났다.
언론에서는 아직도 섬에 대해서 떠들며 헌터계를 달구고 있었다.
“암만 봐도 그냥 섬인데, 어그로 한번 기똥차게 끄는구만.”
“그러게요, 별것도 없는데.”
수백 키로의 덤벨을 한손으로 들어 올리며 궁수는 행복한 듯 웃었다.
“쓰흡, 달다 달아!”
“오늘 컨디션 좋은데?”
세 시간이 넘는 시간동안 쇠질을 당기고 있었지만 궁수는 조금도 지칠 기색이 보이지 않았다.
헌터가 되고 가장 좋다고 느끼는 것은 전에 비해 비약적으로 체력이 증가했다는 것이다.
근육의 불끈거림을 느끼며 어깨를 파르르 떠는 궁수는 끈적거리며 근육을 자극했다.
“어휴, 더러워서 원.”
“길드 하우스에서 쇠질하면서 양질의 프로틴…. 캬 이게 낭만이지.”
“헛소리 말고 심부름이나 해.”
허가연은 궁수의 등을 팡팡 때리며 종이 한 장을 건네주었다.
쇠질 할 때는 개도 안 건든다고 궁수는 불편한 기색을 비치며 종이를 받았다.
이마저도 허가연이기에 받은 것이지 다른 사람이었다면 아는 채도 하지 않았을 것이다.
“쯧, 뭔데.”
종이를 받은 궁수는 인상을 팍 구기며 내용을 살펴보았다.
“…어?”
불만에 가득 차있던 궁수의 표정이 순식간에 변하기 시작했다. 불만이 놀람으로, 놀람이 기쁨으로.
“이, 이거 진짜야!?”
“그걸로 장난치겠어?”
“끄흐으으읍! 크흐으윽! 내가 원래 눈물이 많은 사람이 아닌데!”
“아닌데?”
“그래서 딱히 눈물이 나오진 않네.”
그럼에도 궁수는 터져 나오는 기쁨을 참을 수 없었다.
그것도 그럴 것이 종이에는 ‘마강철 헬스 용품 보충.’이라고 적혀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무슨 심부름?”
“파도 때문에 마강철 철광이 개 박살 났었잖아?”
“그렇지?”
“그래서 마강철을 구해야 해.”
“뭐…?”
마강철을 구해오라니. 암살에 근거리 딜링에 이제는 광부까지 시킬 생각인가.
그런 궁수의 마음을 알아챘는지 그녀는 계획서를 툭툭 두드리며 말했다.
“제대로 봐야지, ‘광부 호위’가 주 업무야.”
“그거면 돼?”
“응, 보수로 마강철 헬스 기구를 받기로 했으니까.”
“수지 타산 맞아?”
“응, 오히려 꽤 후한 편이지.”
거기까지 들은 궁수는 이미 장비를 닦으며 출발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멤버는 늘 같은 궁, 법, 힐, 셈, 혁에 오늘은 베로니카까지.
사실상 올스타나 다름없는 멤버였다.
“그래서 위치가 어디야?”
출발하기 직전 위치도 확인하지 않은 궁수가 가연에게 물었다.
“스위스, 알프스 산맥.”
“…네?”
“대장장이가 성격이 괴팍한 모양이니까 조심히 다녀와~”
“님 미쳤음?! 고작 헬스 기구 하나에 알프스를 감?! 돌았음?!”
***
“무능하기 짝이 없군.”
열두 개의 가시 중 벌써 넷이 사라졌다. 평소에는 꽉 차던 원탁이 오늘따라 유난히 비어 보였다.
“고작 인간 하나를 처리하지 못해서….”
첫 가시는 굴욕스러운 듯 이를 악물었다. 진득한 혈기가 방을 채워갔다.
그가 얼마나 분노한지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진정하구랴, 그렇게 화내면 스트레스만 쌓이는겨.”
이를 잠자코 지켜보던 열 한 번째 가시가 측은하게 첫 번째 가시를 위로했다.
“쯧, 말이나 못하면.”
“이번에는 나 포함 셋이나 가니까 걱정 말어.”
“말이 길군, 결과로 증명해라.”
“에잉 귀염성 없기는.”
주름이 자글한 노파는 굽은 허리를 짚으며 다른 두 가시와 함께 원탁 밖으로 나갔다.
“이번에는 기필코 죽여주마.”
그들의 임무는 궁수를 암살하는 것.
오직 궁수를 암살하기 위해 짜여진 최정예 암살자들이었다.
***
“흐드드드드드 추워어어어!”
기구 하나에 눈이 돌아 오지에 오는 미친놈이 요기있네.
“후딱후딱 처리하자고!”
“빨리 들어가죠!”
이번에 새로 파인 마강철 굴은 제법 넓었다.
터널이 아닌가 할 정도로 거대한 동굴에 광부들과 헌터들이 투입되었다.
광부들은 처음에는 불안해하였으나 호위하는 헌터가 나궁수라는 것을 듣고는 곧바로 작업에 착수했다.
전 세계 최고의 궁수가 해주는 호위, 게다가 같이 온 전투원들도 모두 S급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이보다 더 든든한 호위는 없을 것이다.
“작업 들어간다!”
쾅! 콰아아앙!
마석과 여러 괴물들의 부산물로 만든 드릴이 마강철을 깎아내기 시작했다.
강도만 하더라도 강철을 우습게 웃도는 마강철이기에 특수한 드릴을 사용하지 않고서는 캘 수 없었다.
“별 일 없겠죠?”
“그러길 바래야지.”
궁수는 혹시나 SCV…가 아니라 광부들이 다칠까 시위에 화살을 걸고 상시 주변을 통제하고 있었다.
[아 일꾼으로 시야 안 밝히냐?]
[아니 궁수야 앞마당 안 먹고 뭐하냐고.]
[일꾼을 영웅 유닛들이 보호하네 ㅋㅋㅋㅋ]
[적이 이미 멀티 다 먹었잖아, 뭐하냐?]
ㄴ 선생님들 현생을 사세요 제발.
ㄴ 우리한텐 이게 유흥이야!
동굴은 조명이 쫙 깔려 그리 어둡지는 않았다. 옛날도 아니고 횃불에 의존하던 시대는 지나갔다.
드넓은 동굴에서는 귀가 따가울 정도로 큰 드릴 소리만이 울렸다.
그리고 그것은 동굴에 잠들어있던 괴물들을 깨우기에 충분했다.
쿵! 쿵! 쿵!
“괴물이다!”
양손에 거대한 곡괭이를 단 사마귀였다. 특이하게도 놈의 몸은 초록색이 아닌 회색이었다.
순간 광부들이 흠칫하며 괴물을 바라보았다.
“걱정 마시고 하던 일 하세요.”
적의 등급은 기껏해야 A급이다.
물론 A급이라는 수치가 낮은 것은 아니지만 지금의 궁수에게는 헛웃음이 나올 정도로 쉬운 적이었다.
“빠르게 처리합니다.”
광부들의 안심을 위해서라도 적을 빠르게 제압할 필요가 있었다.
촤좍!
궁수의 손에 기다리던 두발의 화살이 적의 양쪽 눈을 관통했다.
그와 동시에 분쇄자를 든 궁수가 적을 향해 돌진했다.
“에어 커터!”
추가로 뒤에서 날아온 법사의 마법이 적의 양 팔을 날려버렸다. 시야를 차단하고 위협적인 무기도 잘랐다.
A급 몬스터가 걸어 다니는 보너스가 되어버린 순간이었다.
땅을 박차고 뛰어오른 궁수는 거세게 분쇄자를 휘둘러 적의 머리통을 날려버렸다.
콰직!
3초.
그것이 궁수 일행이 A급 마물 한 마리를 정리하는데 필요한 시간이었다.
장소가 동굴이라서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다가오기도 전에 궁수의 화살에 폭사했을 것이다.
[휭->서걱->콰직 끝.]
[나궁수 - 덤벨에 진심인 편]
[헬스 기구 때문에 알프스에 가는 사람이 있다?]
ㄴ 사람 아닌 듯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ㄴ 맞네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ㄴ 알프스가 언제부터 동네 뒷산이었냐 ㅋㅋㅋㅋ
“오…역시!”
“음! 믿음직스럽군! 마음 편히 일할 수 있겠어!”
광부들은 순식간에 마물을 정리해버린 헌터들의 실력에 안도하며 작업에 박차를 가했다.
그 뒤로도 여러 몬스터들이 헌터들을 위협하며 등장했으나 그들의 최후는 별반 다르지 않았다.
“뭐가 이렇게 많아?”
“제법 수가 되긴 하다만.”
수가 조금 되긴 하였지만 다만 그뿐이었다. 모두 궁수의 분쇄자 앞에 운명을 함께했다.
차라리 때로 몰려오기라도 했다면 경험치라도 짭짤했을 텐데.
‘아쉽네.’
마물의 수가 애매한 것에 아쉬워하는 헌터라니. 어느새 평범함과는 한층 더 거리가 멀어진 궁수였다.
작업은 순조롭게 이루어졌다. 드릴은 열심히 돌아가며 마강석을 적출해내었다.
다만 그 수가 워낙에 많다 보니 아직 시간이 필요한 듯하였다.
“안전해서 다행이긴 하다만.”
오히려 적들보다 알프스의 추위가 더욱 위협적일 정도였으니 말이다.
궁수는 한가롭게 마강철을 바라보며 자리를 지켰다.
슬슬 귀를 때리는 소음에도 익숙해져 갈 무렵 천궁이 다급하게 소리쳤다.
- 계약자여! 뒤!
“크흑!”
의구심은 품지 않았다. 곧바로 뒤를 돈 궁수는 분쇄자로 날아온 암수를 쳐내었다.
“단검?”
“적이다!”
적이 등장하고 공격을 할 때까지도 눈치채지 못했다니. 궁수의 표정이 굳었다.
‘보통 놈은 아니다.’
사납게 마력을 피워 올린 궁수는 자세를 낮추고 암수가 날아온 방향을 주시했다.
파직! 파지지직!
“뭐야! 조명이!?”
엎친대 덮친 격으로 조명까지 갑자기 문제가 생겼다.
정말로 문제가 생긴 것인지 혹은 적들의 계략인지는 몰라도 상황이 썩 좋진 못했다.
“드릴 꺼요!”
시야가 어두운 지금 귀와 마력으로 적들의 위치를 예측해야했다. 시끄럽게 동굴을 울리던 드릴의 소리가 멎었다.
“어디냐….”
암살자들과 궁수의 첫 대면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