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3화. 파지지지지직
칠흑의 성이 사그라들며 마물들의 잔해만이 남았다.
물리적인 폭발이 아닌 신성력 그 자체의 폭발이었기 때문에 성을 멀쩡했다.
그 안의 악한 기운만이 씻겨져 나갔을 뿐이었다.
“안으로 들어가 보죠.”
“저 안에 드래곤 하트가 있다는 거지?”
“글쎄요.”
적은 모두 사라졌으나 궁수는 조심스럽게 성에 접근했다.
- 부숴졌군.
“역시 그렇지?”
- 아무렴, 아무리 드래곤 하트라도 그런 걸 직격에 맞았는데.
성 안에는 붉은 보석들이 산산조각이 나 있었다.
부셔졌음에도 소름끼치는 이질적인 기운들은 그것이 평범한 물건은 아님을 뜻했다.
“드래곤 하트만 챙겨서 바로 갑시다.”
“알겠습니다.”
하트를 챙긴 궁수는 다시 위쪽을 향해 나아갔다.
이곳이 놈의 복부인 저장고라면 심장은 더 위쪽에 있을 거란 생각 때문이었다.
- 생명의 파동이 느껴지는구나.
“벌써?”
이제 겨우 30분 이동했는데 민감한 천궁은 드래곤 하트의 마력을 알아차렸다.
- 아직 강하게 느껴지는 것은 아니다만. 흐음…. 그것 말고도 뭔가 이질적인 것이….
“뭔데?”
- 용? 아니야 용은 아니지만 흐음…. 일단 가보자꾸나.
위험하다면 위험하다 경고를 해줄 텐데 천궁은 애매한 듯 말끝을 흐렸다. 정말로 위험해도 멈출 수는 없었다.
위험을 무릅쓰고 괴물을 죽이는 것이 자신들의 할 일이었기 때문이다.
“저게 뭐지?”
확실히 거대한 드래곤의 심장이 눈에 띄긴 하였다.
그러나 그 주변에는 탄탄한 성벽도, 위협적인 괴물들도 존재하지 않았다.
그저 단 한명만이 심장 앞에 서 있었다. 전체적인 외관은 인간의 모습이었다.
그러나 그에게 달린 뿔과 날개는 평범한 인간으로 보기에는 어려웠다.
[오우야.]
[ABLE.]
[아 날개 보니 못참겠네.]
[오빠 절 가져요.]
ㄴ 덜렁.
ㄴ ㄴㄴ 덜렁웡.
“사람은 아닌 거 같은데.”
- 드래고니카로군.
“드래고니카?”
- 순혈 용이 아닌 혼혈 용족이다. 압도적인 신체 능력을 가지고 있으니 조심해라.
궁수가 놈을 다 확인하기도 전에 먼저 적이 궁수를 향해 달려들었다.
콰아아아아앙!
강력한 충격에 흙먼지가 일어나며 순간 궁수의 시야가 가려졌다.
먼지가 서서히 가라앉으며 궁수와 드래고니카의 모습이 드러났다.
궁수의 분쇄자는 놈의 왼 주먹을 막았다.
그와 동시에 궁수의 왼팔에는 화살 한발이 쥐어져 있었는데 그 화살은 적의 머리를 노리고 있었다.
당연하게도 적의 오른 팔이 궁수의 화살을 막고 있었다.
“허 성격도 더럽네.”
콰아앙!
궁수의 왼발이 적의 복부에 꽂혔다. 마치 돌덩이를 차는 듯한 소리와 함께 적이 멀리 날아갔다.
“너 뭐냐?”
붉은색 머리칼에 진홍색의 눈빛은 몹시 매력적이었으나 그의 머리에 달린 뿔은 결단코 인간의 것이 아니었다.
“궁수씨!”
“지원하겠습니다!”
곧바로 뒤에서 달려온 헌터들이 궁수를 지키기 위해 준비하고 있었다.
“쯧.”
드래고니카.
용인은 혀를 낮게 차며 마력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어딜 개수작을!”
곧바로 마법을 저지하기 위해 궁수가 적에게 달려들었다.
뭔진 몰라도 적의 손위에서 넘실거리는 마력이 좋게 보일 리는 없었다.
고작 1초도 안되는 시간이었다.
“단순.”
그러나 궁수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드래곤은 손에 뭉쳐둔 마력을 확 쥐었다.
지이이이잉!
“뭐야!”
그와 동시에 궁수와 적 주변에 붉은 막이 깔리며 반 구 형태의 결계가 형성되었다.
“궁수씨!”
“빨리 파괴해!”
“파괴가 안돼요! 칼도 안들어가!”
바깥의 동료들은 어떻게든 쉴드를 찢어보려 했으나 아무래도 쉽게 뜯기지 않는 듯했다.
“허, 네가 노린 게 이거냐?”
“….”
대답은 들려오지 않았다. 놈은 조용히 입꼬리를 올리며 섬뜩한 미소를 지었다.
“어이가 없어서 원.”
궁수는 분쇄자를 붕 붕 휘두르며 적을 노려보았다.
못이 잔뜩 박힌 분쇄자가 무시무시한 소리를 내며 울부짖었다.
원거리 딜러가 근접 딜러와 결계에 갇혔다.
다른 원거리 딜러라면 목숨이 위험할 일이었으나 궁수는 달랐다.
그는 어깨에 척 분쇄자를 얹고는 말했다.
“일대 일이면 이길 것 같았냐?”
그 말이 끝나기도 전 궁수는 어느새 놈의 눈앞에 도착한 상태였다.
순간적으로 궁수의 인영이 흐려질 정도였다.
콰아아앙!
빠르게 사정거리 안으로 들어온 궁수는 곧바로 분쇄자를 휘둘렀다.
적도 곧바로 돌진할 줄은 몰랐는지 당황하며 궁수의 공격을 팔로 막았다.
“하? 팔로 막아?”
궁수는 분쇄자를 더욱 깊게 짓눌렀다.
카가가가가각!
“뭐가 이리 단단해?!”
분쇄자의 못으로 적의 팔을 뜯어버릴 작정이었던 궁수는 상처 몇 개만을 남긴 채 돌아왔다.
못에 긁히며 놈의 팔에서 피가 질질 흘렀다.
“쯧.”
또 다시 낮게 혀를 찬 놈은 분노했는지 다시 궁수에게 돌진했다.
그러나 궁수 또한 놈이 올 것을 알았기에 조금도 당황하지 않았다.
“이번에는 팔을 뜯어주마.”
날카로운 손톱을 앞세운 놈이 궁수의 가슴팍을 노리며 팔을 휘둘렀다.
가볍게 백스탭을 밟아 공격을 피한 궁수는 자세가 무너진 놈의 머리에 분쇄자를 휘둘렀다.
펄럭!
“뭐?”
그러나 놈은 우습다는 듯 날개를 이용하여 간단히 궁수의 공격을 피했다.
사람의 신체로는 할 수 없는 움직임이었기에 궁수 또한 표정이 일그러졌다.
‘공중 타입은 귀찮은데….’
적이 날아다니는 놈이라면 궁수는 전후에서 적의 급소를 노리는 것이 보통이다.
그러나 지금은 전후는 고사하고 최전선에 서 있었다.
쾅! 콰콰콰콰콰쾅!
“크흐으윽!”
자신이 위라고 생각했는지 놈은 손톱을 앞세워 계속해서 궁수를 몰아붙였다.
계속해서 후퇴한 궁수는 결국 결계에 뒤가 막히고 말았다.
결계는 탄탄한 벽처럼 궁수를 막아서고 있었다.
앞에는 미친 용인과 뒤에는 결계, 당장 목숨이 위험한 진퇴양난이었으나 궁수는 오히려 더욱 날카롭게 전투를 이어나갔다.
“차라리 벽이 낫다!”
파지지지직!
궁수의 분쇄자에 전에 새로 배운 전류가 흐르기 시작했다.
악을 멸하는 황금빛 전류를 얻은 궁수는 그대로 적을 향해 분쇄자를 휘둘렀다.
콰아아앙!
“쿠헤에에엑!”
그러나 벽에 얼굴을 처박은 것은 다름 아닌 궁수였다.
“이거 왜 이렇게 빨라!”
- 원래 화살에 사용하여 최고속의 공격을 만드는 스킬이다. 분쇄자에 사용했으니 그 속도가 나오지.
“쓰흡….”
너무나도 빨라서 순간 궁수조차도 제어가 되지 않았다. 당장에 백 프로를 조종하는 것은 무리다.
궁수는 서서히 십 프로부터 출력을 올리며 다시 전투에 들어갔다.
쾅! 콰콰콰콰콰쾅!
둔탁하고 느린 분쇄자는 언제 그랬냐는 듯 고속으로 적을 몰아치기 시작했다.
십 프로까지는 무난하게 버틸 수 있었다.
궁수는 이제 시작이었으나 적은 갑자기 달라진 공격에 안색이 변했다.
궁수의 분쇄자가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미친 듯이 휘둘러졌다.
콰콰콰콰콰콰!
“죽어라!”
분쇄자를 휘두르면 휘두를수록 궁수의 전류는 더욱 찬란하게 빛나고 있었다.
갈수록 속도에 적응하는 궁수는 어느새 50프로까지 그 출력을 높였다.
붉은 반 구 안에서 계속해서 찬란한 전류가 터져 나왔다.
60프로.
적도 궁수의 타격에 정신을 차리지 못한 듯 땀을 뻘뻘 흘리며 방어만을 하고 있었다.
궁수또한 스킬을 제어하느라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다. 그러나 궁수는 계속해서 속도에 적응하며 속도를 높였다.
70에서 80이 80에서 90이.
파지지지지직!
“끄으으으윽!”
적도 이 정도로 궁수가 사납게 저항할 줄은 몰랐는지 고통에 찬 신음을 내뱉기 시작했다.
저 신음이 비명이 될 때까지 궁수의 공격은 멈출 줄을 몰랐다.
끊임없이 적을 조여 가던 궁수는 주변의 구를 보며 씨익 미소 지었다.
“결계가 반구라 다행이군.”
그리고 마지막 100프로.
그때부터는 더 이상 궁수의 인영도 찾기가 힘들었다.
먼저 땅을 박차고 놈에게 돌격한 궁수는 곧바로 적의 팔뚝에 매콤한 분쇄자 한방을 먹여주었다.
뻐어어어억!
적도 궁수의 공격에 방어하기만 급급할 뿐 별다른 공격을 하진 못했다.
그러나 곧바로 결계를 박차고 뛰어오른 궁수는 적이 숨을 돌리기도 전에 공격을 이어나갔다.
주변의 모든 결계가 궁수의 발판이었다.
다시 말해서 어디서든 적을 몰아칠 수 있다는 뜻이었다.
“머리가 멍청하면 몸이 고생한다더니.”
결계를 박차고 거세게 낙하한 궁수의 분쇄자가 결국에는 적의 왼 팔뚝을 완전히 부숴버렸다.
적이 아무리 강력하다 하더라도 그 뿐이었다.
한두 방도 아니고 분당 수백 번의 공격이 돌아오는 궁수를 상대로는 어쩔 수 없었다.
결계 안에서 궁수가 미친 듯이 몰아치며 적을 공격했다.
땅과 결계를 뛰어다니며 공격하는 그 모습은 어딜 보더라도 궁수로 보이지 않았다.
- 슬슬….
“알고 있어!”
이제는 이런 영양가 없는 공격이 아닌 적을 끝장내야 할 때다.
궁수는 다소 뻔하게 정면에서 적을 향해 돌진했다.
“죽…어라!”
방어에만 급급하던 놈이 처음으로 궁수에게 주먹을 뻗었다.
그러나 오히려 그것이 궁수가 기다리던 반응이었다.
부딪히기 직전 거세게 왼 발로 땅을 밟은 궁수는 놈의 팔을 향해 있는 힘껏 분쇄자를 휘둘렀다.
우드드득!
“와, 이걸 버텨?”
드래곤의 왼 팔이 모두 개박살 나는 소리가 궁수의 귓가를 울렸다.
그러나 원래는 팔을 흔적도 없이 터트릴 작정이었기에 조금 마음에 안 들기도 했다.
적의 한쪽 팔을 뭉개버린 궁수는 그대로 놈의 명치에 주먹을 꽂아 넣었다.
“크허어어억!”
마력을 듬뿍 담은 일격은 적이라 하더라도 구역질이 나올 정도였다.
“…셈 헌터님 저거 보여요?”
“안 보이는군.”
“헌터님 머리처럼 빛나긴 하네요.”
“흐음 죽고 싶다는 건가?”
“농담입니다.”
바깥에서 대기하던 헌터들이 무색해질 정도로 압도적인 전력차였다.
마치 전구가 빛나는 것처럼 결계는 궁수의 전류에 의해 환하게 빛나고 있었다.
용족 또한 알고 있었다.
‘이대로 가다간 죽는다.’
인정하기 싫었지만 저 궁수는 자신보다 강하다. 지금은 고집부리며 싸울 때가 아닌 훗날을 도모할 때였다.
쨍그랑!
자신의 결계를 풀어버린 놈은 날개를 펄럭이며 날아올랐다.
“허? 내 앞에서 날아?”
그러나 적은 알지 못했다.
아무리 정신 나간 수준의 전투를 보여줬다 하더라도 그는 ‘궁수’이다. 공중 유닛의 처리는 늘 궁수의 몫이었다.
칠흑의 컴파운드 보우에 화살 한 발이 끼워졌다.
파지지지직!
전기. 그것도 가볍게 파지직 거리는 전류가 아닌 닿는 것만으로 적을 절멸시키는 압도적인 고압전류였다.
[찌릿찌릿!찌릿찌릿!찌릿찌릿!찌릿찌릿!]
[비까츄!비까츄!비까츄!비까츄!비까츄!비까츄!]
[궁수 앞에서 공중 유닛이 등을 돌린다고 ㅋㅋㅋㅋㅋㅋㅋㅋ?]
ㄴ 신종 자살법인가 보지 뭐ㅋㅋㅋㅋㅋㅋㅋ
ㄴ 그만큼 죽고싶으신 거지~
궁수의 활솜씨를 익히 하는 시청자들은 벌써부터 적의 명복을 빌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일반적인 화살로도 공중 유닛을을 모두 개박살 냈던 궁수다.
거기에 전광석화의 힘이 담긴 전류 화살까지.
“크흐윽…. 도망을!”
놈은 어떻게든 살아남기 위해 쏜살같이 도망쳤다.
그 속도가 얼마나 빨랐는지 이제는 궁수와 일행들의 모습이 시야에 들어오지 않을 정도였다.
“휴…. 살았ㄷ….”
콰지지지직!
“어…?”
후방에서 날아온 전기 화살이 황금빛 직선을 그리며 적의 심장을 관통했다.
“어…째서….”
털썩!
그것이 그가 할 수 있는 마지막 말이었다.
용은 어두워서 잘 보이지도 않을 거라 생각했다.
그런 마음에 속도를 줄였으나 오히려 이것이 해가 되고 말았다.
트루 스나이핑을 활성화시킨 궁수는 놈의 위치를 빤히 꿰뚫고 있었다.
파지지직!
남은 전기가 파지직 거리며 드래곤의 숨을 완전히 찢어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