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1화. 리모델링 업자 나궁수.
쿠콰콰콰콰콰!
“아이고 나 죽네!”
“꺄르르륵! 모두 펑펑!”
법사의 마법이 잦아들자 셈은 요새화를 해제했다. 성벽은 완전히 파괴되어 개판이 되어 있었다.
“침입자다! 공격해!”
“오, 이제야 좀 오나보다.”
성벽이 붕괴됨을 확인했는지 곧바로 본진에서 대기하던 적들이 쏟아져 나왔다.
“히히히!”
“느헤헿!”
몰려오는 적들을 보며 궁수와 법사는 섬뜩한 미소를 지었다.
“가즈아아아아아아!”
“콰앙! 콰앙! 퍼엉! 퍼엉!”
병장기를 들고 몰려오는 적들의 머리 위로 포화가 쏟아져 내렸다.
“신났군.”
셈은 적들의 애도를 빌어주며 궁수와 법사의 스킬을 지켜보았다.
쿠콰콰콰콰쾅!
퍼어어어엉!
궁수와 일행은 마을에는 발도 들이지 않았다.
그저 바깥에서 내부의 적들을 향해 융단폭격을 퍼붓고 있었다.
“죽어! 죽어!”
“감히 우리 은우를 데려가아아아아!”
“크히히히히히!”
[사실 이 정도면 은우도 죽지 않았을까.]
[이 새끼들 그냥 신난거임.]
[1차 목표 - 파괴. 2차 목표 - 구출.]
ㄴ ㄴㄴ 그냥 다 때려 부수다 살아있으면 데려가는거임.
ㄴ 동료가 뭐가 중요한데 ㅋㅋㅋㅋㅋㅋㅋㅋ
ㄴ 저 먹음직스러운 성벽을 참으라고? 오우쒯ㅋ
ㄴ 은우 <<<<< 성벽.
ㄴ 위험해! (내가)
광기에 찬 궁수와 법사는 마력이 다 떨어질 때까지 적들을 터트리고 나서야 공격을 멈추었다.
“이 정도면 되겠지?”
“상쾌! 펑펑!”
둘은 인벤토리에서 각자 마력포션을 꺼내 마시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적들의 시체와 무너진 건물이 가득했다. 마을의 모습은 쓰러지기 전이 기억나지 않을 정도로 처참했다.
사실 이걸 마을로 볼 수 있을지도 의문이었지만 말이다.
“캬, 마을 풍경 좋네.”
[선생님 저희는 이걸 ‘폐허’라고 부르기로 약속했답니다.]
[선생님 ‘풍경’의 뜻이 뭔지 아시나요?]
[이게 나궁수식 리모델링이냐?]
ㄴ ★★★★★ 개방감 만족합니다^^
ㄴ ★★★★★ 성벽이 없어서 마물이 프리패스에요 ^^
ㄴ ★★★★★ 마물 친화적인 삶 지지합니다^^
포션을 마시고 마력 회복을 마친 궁수를 바라보며 이승윤은 당황하여 입만 뻐끔거렸다.
“궁수 맞…죠?”
“네? 당연하죠?”
“아…. 네….”
그도 궁수의 전투 영상을 숱하게 보아왔다.
그러나 영상으로 보는 전투와 눈앞에서 보는 전투는 그 급이 달랐다.
아무리 스크린이 개발되더라도 직관은 이길 수 없는 법이다.
어째서 궁수가 국내 1위의 헌터인지 다시금 깨달을 수 있는 기회였다.
“들어가죠.”
“음, 그러지.”
“허허, 은우가 살아있으려나.”
“설마 죽었겠어요.”
“느헤헤헤!”
셈을 앞세운 궁수는 차분히 마을을 둘러보았다. 개박살이 난 주변을 둘러보며 궁수는 작게 속삭였다.
“너무했나.”
“느헿!”
몹시 작게 말했음에도 법사가 들었는지 궁수를 향해 해맑은 미소를 지어주었다.
“죽어도 싼 놈들이었지?”
“느헿!”
테러범…이 아니라 헌터끼리는 통하는 게 있다고 순식간에 자기합리화를 하는 궁수였다.
“그래도 잔당이 조금은 남아있을 텐데.”
이상하게 생각하며 궁수는 계속해서 주변을 살폈다.
혹시나 은우가 쓰러져있을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바퀴벌레같은 사람이니까 살아있긴 할건데.”
파도와 호주에서도 살아남았던 그다. 적어도 이런 곳에서 죽을 사람은 아니었다.
그것도 적이 아닌 아군에 의해서는 더더욱 아니었다.
30분 넘게 마을을 수색했지만 은우의 모습은 찾을 수 없었다.
법사의 광활한 마력으로도 은우를 감지할 수 없자 결국 궁수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하, 이 인간 도대체 어디 있는 거야?”
투덜거리면서도 궁수는 계속해서 깊숙한 곳으로 더 들어갔다.
“죽어라 인간!”
“시끄러워.”
콰직!
종종 남아있는 잔당들이 궁수를 노리고 달려들었으나 궁수는 표정 하나 변하지 않고 적의 머리통에 화살을 박았다.
“인기인의 삶은 괴롭구만~”
“조금만 더 인기 있으면 죽겠군.”
“괜찮아요, 내가 다 죽일 거니까.”
어느새 궁수 일행은 마을의 끝에 다 달았으나 은우의 모습은 그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셈이나 이승윤이 은우의 흔적을 찾으려 했으나 워낙에 짐승들의 흔적이 많다 보니 이 또한 쉬운 일은 아니었다.
“흐음 잘은 모르겠네요.”
“쯧, 연락이라도 되면 좋으련만.”
은우의 휴대폰은 신호만 갈뿐 전화가 통하지는 않았다.
구구구구구….
“음? 무슨 소리 안 들려요?”
“들린다만…어!?”
“야 이거 뭐야!?”
“서…섬이!?”
[??????????????????]
[뭐임???????]
[엄마 섬이 일어나!]
[요즘 섬은 걸어다니는구나~]
[뭐하는 섬이길래 ㅋㅋㅋㅋㅋㅋㅋ]
ㄴ 나 섬.
ㄴ 뭐가 서 이 미친놈아ㅋㅋㅋㅋㅋㅋㅋ.
ㄴ 강제퇴장 되었습니다.
ㄴ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ㄴ 존나 빠꾸없네 ㅋㅋㅋㅋㅋㅋㅋㅋ
쿠콰콰콰콰쾅!
“꽉 잡아!”
“뭐야아아악!”
거대한 섬이 기울어지기 시작했다.
조금씩 기울어지는 것도 아닌 마치 절벽처럼 90도로 완전히 기울어졌다.
나무들과 바위 흙까지 수많은 섬의 구성물들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궁수 일행도 예외는 아니었다.
“어어어?!”
“갑자기 왜 이래!?”
“뭘 건든 거야!”
“그러게 적당히 터트렸어야죠!”
각자 나무를 잡고 대롱대롱 매달려 있었으나 섬이 원래대로 돌아올 기미가 보이지 않자 결국 헌터들은 바다를 향해 떨어졌다.
“제길! 내려가!”
“끄아아아악! 법사야! 얼려! 얼려!”
“알았다!”
“끄아아아아악!”
떨어지는 와중에서도 법사는 두 개의 마법진을 연성하였다.
한 개는 바다를 얼려버리기 위한 푸른 마법진을 다른 한 개는 안전한 착지를 위한 청록빛 마법진이었다.
“프리즈!”
화아아아악!
먼저 파란 마법진에서 뿜어져 나온 강력한 냉기가 바다를 얼려버렸다.
파도가 치는 그 모습 그대로 얼려졌다.
그리고 이번에는 바람 마법.
사실 마법이라 할 것도 없이 풍압을 일으켜 헌터들을 받아내는 것만으로 충분했다.
탓!
무사히 바다 위에 착지한 궁수는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며 위를 올려다보았다.
“…어어?”
“섬이 원래 팔 다리가 있나요…?”
“섬이 아니었어?”
완전히 ‘일어난’ 섬은 팔 다리를 움직이며 몸을 풀었다.
- 거룡족이군.
“뭔데 저게!”
- 대륙을 먹고 사는 놈들이다. 저 놈에 의해 멸망당한 나라가 한 둘이 아니야.
“뭐? 그렇게 강력해?”
- 아니, 그게 문제가 아니다.
천궁은 심각한 말투로 궁수에게 말했다.
- 저 놈은 나라 그 자체를 지워버린다.
“뭐? 어떻게?”
- 토지를 뜯어먹고 그 땅 자체를 지워버린단 말이다!
“뭐라고?!”
갑작스럽게 커져버린 스케일에 궁수는 당황하여 거룡을 바라보았다.
확실히 거대한 놈이긴 하였으나 과연 저 용이 나라 하나를 통째로 집어삼킬 수 있을지는 의문이 들었다.
“그게 가능해…?”
- 지금은 이제 막 각성한 참이다. 놈이 강해지기 전에 처리해야 해.
갑작스럽게 처리하라고 한들 딱히 뾰족한 수가 떠오르진 않았다.
애초에 크기부터가 말도 안되게 크다보니 뭘 어떻게 해야 할지 감조차 잡히지 않았다.
대뜸 헌터보고 작은 섬만한 크기의 적을 상대하라고 한들 무언가 가능할 리가 만무했다.
“…호주로 이사 갈까?”
“정신 차리게.”
“저걸 보고도요?”
“…비행기 자리 남나?”
순간 혹한 힐이 궁수에게 붙었으나 둘 모두 셈에게 저지당했다.
“그래서 저건 어떻게 상대하는데.”
- 저거? 흐음….
천궁은 썩 내키진 않는 듯 잠시 고민하더니 궁수에게 말했다.
- 놈의 안으로 들어가서 용석을 부숴야한다.
“용석?”
- 드래곤이 가지고 있는 3개의 심장이다.
“뭐? 세 개나 된다고?”
- 상황에 따라서 7개가 넘는 것도 있지, 아무튼 지금은 저 놈의 몸속으로 들어가는 게 급선무다.
“갑자기 들어가라고 한들….”
이성은 들어가기 싫다며 아우성치고 있었으나 궁수는 알고 있었다.
결국에 저 드래곤을 쓰러트리기 위해서는 놈의 몸속으로 들어가야 한다는 것을 말이다.
“흐음…. 뭐, 어쩔 수 없지.”
잠시 고민하던 궁수는 다시 피식 웃으며 화살을 겨누었다.
‘일단 공격하면 화나서 잡아먹지 않을까?’
거기까지 생각을 마친 궁수는 어느새 마력을 잔뜩 담은 뉴클리어 한 발을 완성시켰다.
화살을 겨눈 궁수는 먼저 동료들에게 말했다.
“저희 저 놈 몸속으로 들어갈 겁니다.”
“뭐?”
궁수의 말투는 마치 근처 피크닉이라도 가는지 알 정도로 가벼웠으나 그 종착지가 이상했다.
“저승으로 가자는 건가?”
“아직 나는 죽기 싫네!”
“아 저놈 몸속에 약점이 있다고!”
“뭣?!”
거기까지 말한 궁수는 부가적인 설명 없이 화살을 발사했다.
궁수의 마력을 뭉텅이로 잡아먹은 뉴클리어는 과연 압도적이었다.
“여기다아아아아앗!”
퍼어어어어엉!
적의 등을 향해 날아간 화살은 그대로 드래곤의 등을 적중시켰다.
엄청난 폭발이 일어나며 찰나였으나 드래곤의 몸이 잠시 휘청거렸다.
쿠와아아아아아아!
“어…?”
효과는 확실했다. 궁수의 공격에 잔뜩 화난 드래곤을 피어를 남발하며 다짜고짜 궁수를 향해 입을 쩌억 열었다.
마치 거북이가 생각나는 듯한 외관이었으나 그 공포감은 감히 거북이와 비교하기 미안해지는 수준이었다.
“이…. 이거 맞겠지!?”
- 아마 맞을 거다!
“끄아아아악! 놈이!”
“요새화!”
“흐거어어어억!”
동료들이 흩어지기 직전 셈이 가까스로 요새화를 활용하여 동료들을 한 곳으로 끌어 모았다.
대지가 아닌 법사의 얼음으로 만들어진 요새였다.
그래서 그런지 얼음 바깥의 풍경이 훤히 보이기 시작했다.
“끄아아아아악!”
“죽어! 죽는다고!”
마치 엘리베이터가 추락하는 느낌처럼 무중력 상태에 빠진 것만 같았다.
쿵! 콰아아아앙!
“내 뒤로 오게나!”
“흐어어어어억!”
콰아아아아앙!
다행히도 떨어지기 직전 셈이 방패를 들어 충격을 완화시켰다.
요새를 이루고 있던 얼음이 산산조각나며 부서졌다.
다행히도 일행들은 무사히 착지를….
“아이고오오!”
“내 팔! 나 죽어!”
“갈비뼈가! 나 살려!”
아마도 무사히 착지했다. 헌터의 튼튼한 신체로 버텨냈으니 아무튼 무사히 착지한 거다.
“으으…. 여기가 어디야.”
화살에 불꽃을 실어 주변을 확인했다. 확실히 놈의 몸속이긴 한지 섬뜩한 고깃덩이들이 가득했다.
“심장이 어딨는지는 몰라?”
지상도 아니고 드래곤의 몸속까지 궁수가 알고 있을 리는 없었다.
천궁은 잠시 고민하더니 이내 애매하게 대답했다.
- 여긴 아마도 놈의 저장고일 거다.
“저장고?”
- 그래, 먹은 것들을 저장하는 곳이지.
‘그래서 그렇게 뭐가 많았던 건가.’
실제로 주변에서는 출처를 알 수 없는 기괴한 덩어리들이 가득했다.
“그래서 심장은 어딨는데.”
- 저장고에 하나 남은 두 개는 각각 왼쪽 가슴과 오른쪽 가슴에 있을 거다.
“하아…. 제길.”
벌써부터 고생길이 눈에 훤했다.
당장에 저장고만 하더라도 이렇게 거대한데, 언제 가슴까지 올라가 심장을 처리한단 말인가.
“통째로 날려버릴 순 없나?”
- 통째로?
“그래, 어차피 몸속인데 어때.”
궁수는 당장에라도 적의 몸을 헤집어버릴 듯이 굴었으나, 천궁의 반응은 썩 미미했다.
- 으으음…. 뭐 상관은 없다만 죽이지는 못할 거다.
“엥? 왜?”
- 심장을 부수지 않는 한 놈은 영원히 재생할거다.
“뭐야? 그러면 공격해도 놈은 아무렇지 않은 거야?”
- 고통은 느낄 거다. 죽지 않을 뿐 고통을 느끼지 못하는 것은 아니니까.
‘잠깐 그 말은….’
궁수의 입가가 가늘게 휘었다.
- 설마….
천궁은 불안한 듯 말끝을 흐렸다.
다른 헌터들이 말릴 틈도 없이 궁수는 곧바로 놈의 몸 속 어딘가에 화살을 발사했다.
퍼어어어엉!
폭발이 일어나며 굉음이 궁수의 귓가를 때렸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어떤 미친놈이야!”
“어?”
어디선가 매우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