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7화. 에뷜 봐리 컴투 해운대.
“부산을 이런 식으로 올 줄은 몰랐는데.”
궁수는 부산 앞바다에 나타난 섬을 보며 한숨을 푹 내쉬었다.
마치 태평양에나 있을법한 무인도가 떡하니 부산 앞바다에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오케이, 지워버리자.”
“지운다? 펑펑?”
“그래 가자!”
“지우긴 뭘 지워 인간들아!”
진심으로 섬을 지워버릴 마음이었던 궁수는 은우의 저지에 아쉬운 듯 입맛을 다셨다.
다행이도 섬 주변은 철저하게 통제되어 민간인이 들어갔다거나 하는 불상사는 일어나지 않았다.
협회는 드론을 띄워 섬을 관찰하고 있었다.
하지만 애초에 수풀이 잔뜩 자라있어 제대로 섬 내부를 파악할 수 없었다.
그리고 그 말은 곧.
‘대충 보기에는 잘 모르겠으니 니들이 다녀와라.’
정도가 되리라.
섬의 크기가 제법 거대했기 때문에 그만큼 원정 멤버도 화려했다.
필수로 참여하는 궁수와 파티원들, 거기에 이번에 S급으로 승급한 이은우와 도적 이승윤까지.
모든 헌터가 S급으로 이루어진 초초화 파티 되시겠다.
“허구한 날 일만 시키고 말이야.”
“그래도 가야죠.”
어째서 최상위 랭커 헌터들이 은거를 하는지 알 것 같은 궁수였다.
배를 타고 들어가니 섬은 생각보다 더 평범했다.
딱히 이렇다 할 위협도 없이 편안히 섬에 착륙한 궁수는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방송을 켠 궁수는 카메라 렌즈를 닦으면서도 계속해서 주변을 탐지했다.
“딱히 걸리는 건 없는데.”
마력을 사용하여 기감을 펼쳐도 딱히 걸리는 것은 없었다.
그렇다고 궁수는 순순히 숲 속으로 들어갈 생각은 없었다.
“일단 길부터 터야겠지?”
“휘잉휘잉?”
“그래, 준비해줘.”
“살살하세요, 제발.”
이미 수많은 테러…가 아닌 작업을 해온 궁수와 법사다.
별다른 요청 없이도 법사는 척척 필요한 마법진을 만들어 주었다.
궁수의 앞에 3개의 청록색 마법진이 모습을 드러내었다. 각각 서풍 돌풍 태풍이 잠들어있는 마법진이었다.
휘이이이잉!
장궁에 걸린 화살에도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관통하는 바람은 화살촉을 중심으로 회전하며 점점 그 속도를 높였다.
서서히 머금은 바람의 크기가 증가하며 궁수의 천궁이 떨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궁수는 오히려 천궁을 꽈악 부여잡고 더욱 바람을 압축시켰다.
바람이 가득 모여 궁수의 앞에도 기류가 흐르기 시작했다.
“지금.”
휘이이이잉!
궁수의 손끝을 벗어난 화살은 무시무시한 풍압을 남기며 날아가기 시작했다.
게다가 궁수의 앞에는 법사가 준비해준 마법진이 준비되어 있었다.
그것도 1개도 아니고 3개나.
그렇지 않아도 강력한 궁수의 화살은 법사의 마법진을 만나 더욱 강력하게 바뀌었다.
우드드드드득!
궁수의 화살은 마치 거대한 토네이도가 가로로 날아가듯 숲을 통째로 뚫어버렸다.
나무를 쓸어버리며 날아간 화살은 끝에서 펑! 폭발하며 날카로운 칼바람들을 날려 보냈다.
“휴, 길은 잘 닦아둬야지.”
[길을 닦는게 아니라 조저버렸는데요, 선생님?]
[폐허랑 길은 다른 건데요, 선생님?]
[식목일 극카운터형 헌터 ㅋㅋㅋㅋㅋ.]
[나무꾼보다 얘가 더 나무를 많이 부쉈을 듯.]
ㄴ 걔는 먹고 살려고 부순거고 ㅋㅋㅋㅋㅋㅋ
ㄴ 궁수는?
ㄴ 스트레스 해소ㅋㅋㅋㅋㅋㅋㅋ
ㄴ 개빡치면 숲 하나 사라지겠누 ㅋㅋㅋ
그런 말이 나올 정도로 궁수의 화살은 어마어마했다.
순식간에 나무 수십 그루를 부숴버린 궁수는 담담하게 섬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뭐해요, 안오고?”
“아니 좀 적당히 하라고 했잖아요!”
“적당히 했는데?”
“‘적당히’가 뭔지 모르시나요?!”
“섬 채로 부수려다 적당히 나무만 부쉈잖아.”
“캬! 제가 그걸 몰랐네요, 이 인간아!”
과연 사람이 한 게 맞는지 의심이 될 정도로 강력한 일격이었다.
심지어는 S급 도적인 이승윤조차도 궁수의 말도 안되는 위력에 기함을 토해낼 정도였으니 말이다.
“아 몰라, 내 맘대로 할 거야.”
“아오 정말!”
속사포 잔소리를 시전하는 은우를 뒤로하고 궁수와 멤버들은 천천히 숲 안으로 발을 들였다.
궁수가 날려버린 곳을 제외하고 숲은 멀쩡했다.
섬은 제법 거대했기에 헌터들은 주변을 탐지하면서 조심스럽게 내부로 들어갔다.
“흐음, 아직까지 잡히는 건 없군요.”
혹시나 함정을 대비하여 도적까지 데려왔는데, 숲은 너무나도 평온했다.
기껏해야 새들이 날아와 지저귀는 정도?
딱히 적이라고 부를만한 놈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혹시 모르니까요, 방심하지 말고 갑시다.”
“그래요.”
“승윤씨는 혹시 모르니 최대한 함정 같은 걸 탐지해주세요.”
“알겠습니다.”
숲은 생각보다 깊었으나 딱히 문제 될 것은 없었다.
오히려 30분이 지나도록 아무 것도 나타나지 않아 따분할 지경이었다.
“평범한 섬일 리는 없겠죠?”
“적어도 평범한 섬이 갑자기 불쑥 나타나지는 않죠.”
말은 그렇게 했지만 정말로 주변은 고요하기 짝이 없었다.
그렇게 30분이 지났다.
“뭔가 있군요.”
“저건 또 뭐야?”
숲의 끝에서는 익숙한 모습의 게이트가 일렁이고 있었다.
다만 다른 점이라고는 보통 검 보랏빛으로 일렁이는 게이트와 달리 이 게이트는 청록빛으로 빛나고 있었다.
“게이트…겠죠?”
“아마도요.”
게이트에서 흘러나오는 기운은 꺼림직하고 역겨운 것이 여타 게이트와 비슷한 느낌이었다.
“방출형? 아니면 던전형?”
우우우우웅
주변에 헌터들이 다가오자 게이트는 불완전하게 일렁이기 시작했다.
“헌터님! 뒤로 빼요!”
막상 은우가 외치긴 하였으나 이미 궁수는 후방 포지션을 잡고 적을 기다리고 있었다.
샤아아아아아!
게이트에서 모습을 드러낸 것은 평범한 괴물이 아니었다.
“요정…?”
찬란하게 빛나는 날개를 가진 요정이었다.
그들은 게이트 밖으로 나와 자애로운 미소를 지으며 궁수 일행을 바라보았다.
콰콰콰콰콰쾅!
“아니야! 요정 아니야!”
“아니 이럴 거면 왜 웃었는데!”
체계적으로 훈련된 듯 근거리 딜러, 원거리 딜러, 그리고 힐러가 대열을 맞춰 공격하고 있었다.
적의 크기가 작았기에 망정이지 혹시라도 컸다면 제법 곤혹을 겪었을 것이다.
수는 이백 마리 쯤.
놈들은 근거리 딜러들마저 마법을 일으키며 헌터들에게 공격을 쏟아 부었다.
“제가 놈들을 붙잡겠습니다!”
그렇게 말한 도적 이승윤은 손을 땅에 대고 주변의 그림자들을 끌어오기 시작했다.
숲인 만큼 나무의 커다란 그림자들이 잔뜩 있었기에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제법 많은 양의 그림자를 모은 그는 곧바로 마력을 일으켜 적들을 속박했다.
“쉐도우 바인드!”
“오오! 그렇지!”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던 요정들은 갑자기 튀어나온 그림자에 발을 묶이자 당황한 듯 소리를 질렀다.
그러나 놈들이 아무리 몸을 비틀고 아우성쳐도 이미 얽힐 대로 얽힌 그림자는 풀릴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워낙에 옹기종기 모여 있었기 때문에 궁수는 씨익 입꼬리를 끌어올렸다.
“셈.”
“알겠네.”
적들이 저렇게 모여 있다면 다른 준비는 필요 없었다.
촤좌좍!
궁수의 타임 익스플로전 애로우 두 발이 적들 사이에 떨어졌다.
“하하하하하!”
“처참한 활 솜씨야~!”
놈들은 궁수가 화살을 맞추지 못한 거라고 생각했는지 묶여있는 와중에서도 궁수를 비웃었다.
그러나 궁수는 웃고 있었다.
“셈!”
“흐아아아아압!”
콰아아앙!
셈의 대방패가 바닥을 찍음과 동시에 땅에서 솟아난 돌들이 적들을 휘감았다.
[안돼 피터팬!!!!!!!]
ㄴ 피터팬이 왜 나옴ㅋㅋㅋㅋㅋㅋㅋㅋ
ㄴ 팅커벨이겠지 ㅋㅋㅋㅋㅋㅋㅋ
ㄴ 아아 피터팬좌 도대체 어떤 싸움을 해오신 겁니까.
[ㅇㅏㅋㅋㅋㅋㅋ 그러니까 왜 선빵치냐고 ㅋㅋ]
[평화롭게 NPC인 척했으면 살았다.]
ㄴ ㅇㅈ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ㄴ 지능 수듄ㅋㅋㅋㅋㅋㅋ
ㄴ 글쎄 죽일수도ㅋㅋㅋㅋㅋ
ㄴ ?왜?
ㄴ 궁수니까ㅋㅋㅋㅋㅋㅋㅋㅋ
ㄴ 어엌 ㅋㅋㅋㅋㅋㅋㅋㅋ
[레벨업! - LV 143]
“크흐~ 달다 달아.”
모든 경험치를 혼자 독식한 궁수는 만족스러운 듯 입맛을 다셨다.
“더 나오진 않겠죠?”
“글쎄요? 아직 게이트는 그대로인…어?”
다시 한번 게이트가 일렁이기 시작했다.
마치 수면에 돌을 던져 파문을 일으키듯 일렁이는 게이트는 서서히 그 색이 바뀌기 시작했다.
숲처럼 푸르던 청록색은 어디 가고 평소와 같이 새까만 게이트가 등장했다.
“게이트가 바뀐다고…?”
처음 보는 현상에 궁수는 물론 은우나 셈도 당황하였다.
“혹시 모르니 저는 바깥에서 대기하고 있겠습니다.”
“그게 낫겠네요.”
처음 일어난 기현상인 만큼 신중히 처리할 필요가 있었다.
적어도 그간 합을 맞춰온 파티원들 보다는 새로 합류한 이승윤이 대기하는 것이 맞았다.
게이트에 다가간 셈은 손을 대보더니 이내 말했다.
“던전으로 바뀌었군.”
“게이트 종류가 바뀐다니, 처음 보는 기현상이군요.”
“일단은 들어가야겠지?”
“아마도요.”
게이트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마주한 것은 다름 아닌 요정 대군이었다.
“어…?”
청록이 우거진 들판에 수십, 수백도 아닌 수천에 달하는 요정들이 서슬 퍼런 눈빛으로 궁수를 노려보고 있었다.
“저 다시 나갈게요.”
[들어올땐 마음대로지만.]
[나갈땐 아니란다.]
“발사아아아아아!”
적의 외침과 동시에 수많은 화살과 마법들이 일행을 덮쳤다.
모두 간단한 속성 마법이었으나 그 수가 너무나도 압도적이었다.
“오호?”
워낙에 갑작스럽게 일어난 현상에 헌터들이 당황한 사이, 법사만큼은 눈을 빛내기 시작했다.
“꽝꽝!”
법사가 손을 뻗음과 동시에 공중에 거대한 얼음 방패가 모습을 드러내었다.
쿠콰콰콰콰콰쾅!
급조한 방패였으나 그 성능은 확실했다.
“헤헤헿! 막았다! 다!”
“잘했어!”
찰나였으나 헌터들은 모두 전투 준비를 마쳤다.
“기습을 해?”
“무겁다!”
전투의 시작을 알리듯 법사의 거대한 방패가 적들을 향해 떨어졌다.
쿠콰아아아아앙!
“가자아아아앗!”
여섯 대 수천의 대결.
그러나 여섯 명중 패배를 생각하는 사람은 단 한명도 없었다.
활쟁이 임에도 불구하고 분쇄자를 쥐고 적진으로 뛰어든 궁수는 들어감과 동시에 요정의 머리통을 날려버렸다.
크허어어어억!
바람을 잔뜩 머금은 궁수의 분쇄자는 끊임없이 몰아치며 적들을 날려버렸다.
궁수의 몽둥이질 한 번에 최소 다섯 마리의 적들이 날아갔다.
쾅! 콰아아앙!
유난히 궁수의 주변에서만 요정들이 날아가고 있었다.
“도대체 어떻게 싸우고 있는 거야.”
“뭘 하고 있는 거지….”
최전방에서 싸우던 은우와 승윤조차도 궁수의 저돌적인 공격에는 한 수 접어줄 정도였다.
“더! 더욱 몰아쳐라! 적은 고작 여섯 명이다!”
“캬 그걸 말해?”
[ㅋㅋㅋㅋㅋ해치웠나 급 발언ㅋㅋㅋㅋ]
[저런 말하는 특 - 고작이 무조건 이김ㅋㅋㅋ]
[일대 다수 특 - 일이 유리함.]
ㄴ 왜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ㄴ 몰라 ㅋㅋㅋㅋ 암튼 일이 이김ㅋㅋㅋㅋㅋㅋ
일대 다수에서 절대 하면 안되는 말을 해버린 적장은 궁수의 분쇄자에 의해 목숨을 잃었다.
“크하하하하!”
셈은 묵묵히 방패를 들고 법사와 힐에게 다가오는 모든 공격들을 가뿐히 막아내었다.
그렇기에 궁수는 더욱 마음 편히 날뛸 수 있었다.
적들도 궁수를 가장 위험한 적으로 판단했는지 수많은 근거리 딜러들이 궁수를 포위했다.
“오? 포위를 해?”
[와~ 포위당했다~]
[너.무.무.섭.다.]
[궁수인데 적팀 근거리 딜러한테 포위당했어~]
[꺄악~ 도와줘~]
[어떻게 걱정하는 새끼가 한명도 없냐ㅋㅋㅋㅋ]
ㄴ 너는 걱정함?
ㄴ 연예인이랑 나궁수 걱정만큼 쓸모없는 게 없음.
ㄴ ㄹㅇㅋㅋ
날카로운 창을 앞세운 적들은 일제히 궁수를 향해 돌격했다.
“어림없지!”
콰아아아앙!
궁수는 곧바로 분쇄자로 땅을 후려쳤다.
터져 나온 엄청난 충격에 궁수를 향해 달려들던 놈들이 순간 휘청거렸다.
곧바로 듀얼 보우건으로 무기를 스위칭한 궁수는 빠르게 회전하며 주변의 모든 적들을 쓸어버렸다.
“후우!”
아무리 수가 많더라고 하더라도 개미 때로는 인간을 이길 수 없다.
거기에 인간들이 무기까지 들고 있다면 더더욱 말이다.
너무나도 일방적인 몰살에 적들이 불쌍해지던 와중.
“멈춰라!”
근엄한 목소리와 함께 적들 사이에서 ‘왕’이 등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