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6화. 노 헤어 노 라이프.
“모두…. 모두 죽여주마!”
“쯧, 번거롭네.”
퍼더더덕!
날개를 펼치며 덩치를 과시하는 키메라는 당장에라도 궁수를 잡아먹을 듯 흉흉한 울음소리를 내었다.
구구구구구구구!
그래봐야 비둘기 울음소리에 지나지 않았지만 말이다. 궁수 일행과 키메라 사이의 치열한 기싸움이 펼쳐졌다.
구름이 걷히며 서서히 태양이 그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어?”
찰나였지만 궁수는 보았다.
셈의 매끈한 대머리가 태양을 받아 밝게 빛나는 것을 말이다.
얼마나 그 머리가 반질반질한지 거울처럼 반사되어 비춰질 지경이었다.
“셈! 고개 숙여요!”
“뭐?”
“빨리!”
“이, 이렇게 말인가?”
“조금만 더!”
셈은 도통 모르겠다는 듯 당황스러워 했지만 일단은 궁수의 말을 따랐다.
“끄응, 뭘 하자는 건지!”
“법사는 얼음 판 하나만 만들어줘!
셈의 작은 불만을 뒤로하고 구름이 완전히 걷혔다. 아마존의 따가운 태양이 셈의 머리를 향해 수직으로 떨어졌다.
궁수는 곧바로 셈의 머리 앞에 법사가 만들어준 얼음판을 대었다.
거울처럼 맨들맨들한 셈의 대머리는 햇빛을 반사하였다.
“크흐으윽!?”
그것도 적들의 눈을 향해서 말이다.
[태양권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개너무해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포브스 선정 올해 최고의 사탄 교과서 1위.]
[네가 그러고도 사람이냐?]
ㄴ 아직도 얘를 사람으로 보는 놈이 있네ㅋㅋ
ㄴ 아직 대가리가 덜 깨졌나 보지 ㅋㅋㅋㅋㅋ
ㄴ 발끈하는거 보니까 HOXY?
셈의 머리에서 나오는 찬란한 빛에 적들은 순간적으로 고개를 틀며 눈을 감았다.
그리고 그것이야 말로 궁수가 기다리던 타이밍이었다.
“티아라!”
“알겠어!”
티아라도 웃음을 참고 있는지 입꼬리를 씰룩거리며 검을 들고 돌격했다.
최대한 뒤를 돌아보지 않으며 적을 향해 돌격했다.
“으하하하하 태양권이다, 이 새끼들아아아!”
“….”
[나사탄!나사탄!나사탄!나사탄!나사탄!나사탄!]
[나사탄보다 나궁수가 한수 위인거 모르냐고 ㅋㅋㅋㅋㅋㅋㅋ]
[대적대! 대적대! 대적대! 대적대! 대적대!]
ㄴ ? 이게 뭔데?
ㄴ 대머리의 적은 대머리.
ㄴ ㄴㄴ 대머리의 ‘적은’ 머리
ㄴ 100점… 아니 1000점이요…
ㄴ ㅅㅂ 아 진짜 미쳤냐고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적의 눈이 가려진 사이 도약한 티아라는 그녀 특유의 황금빛 마력을 일으키며 압도적인 전투를 시작했다.
“하아아아압!”
대검이라고 하기에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대단한 절삭력과 공격 속도는 적으로 하여금 기함을 토해내었다.
“무슨…!”
대검을 사용하여 다소 느릴 거라 생각했으나 오히려 그녀는 일반 검사들보다 배는 빠른 속도를 자랑했다.
카가가가가각!
적의 낫과 그녀의 검이 격돌했다.
낫과 검이 격돌하며 화악 불똥이 튀었다. 그녀는 상관하지 않고 계속해서 전투를 이어나갔다.
검에 마력을 불어넣어 조종하며 그녀는 땅에 착지하지 않고 계속 적의 숨통을 조여 갔다.
“이이이이익! 귀찮게 하지 마라!”
화아아아악!
날개를 펼쳐 바람을 일으켜 티아라를 밀어내려 했으나 그녀의 공격은 생각보다 훨씬 집요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궁수와 법사까지 그녀의 후방 지원을 시작했다.
“간다.”
쐐애애애액!
기척도 없이 발사된 화살이 대머리의 눈을 노리고 날아갔다.
티아라가 미친 듯이 날뛰고 있었지만 그런 것 따위 궁수에게는 아무런 상관없었다.
최근 분쇄자를 애용해서 그렇지 궁수의 직업은 ‘궁수’다.
그것도 전 세계 최고의 궁수.
당장에 신궁이라고 평가받는 궁수에게 있어서 날뛰는 티아라 정도는 조금의 방해도 되지 못했다.
적의 이동 반경 예측, 티아라의 공격로 까지 고려한 궁수는 부지런히 손을 놀렸다.
“크흐으으으윽!”
결국 궁수의 위협적인 견제를 견디지 못한 놈은 날개를 펄럭이며 하늘 위로 도망치려고 했다.
펄럭!
그러나.
“히히히히히히히히히!”
저 안에서 가장 무서운 마법사가 섬뜩한 웃음을 짓고 있었다.
“뭣!?”
어느새 그의 날개 주변에는 10개가 넘는 마법진들이 놈을 둘러싸고 있었다.
푸욱!
“끄아아아아악! 나, 날개가!”
푸른 마법진에서 나온 섬뜩한 쇠사슬은 간단하게 적의 날개를 꿰뚫었다.
이번에는 쇠사슬이 돌아간다거나 하는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오히려 이번에는 법사의 쇠사슬은 얌전히 그 자리를 지켰다.
“단순한 속박인가?”
잠깐.
아주 잠깐 그의 얼굴에 희망이 비추어 보였다. 그러나 그것은 얼마 지나지 않아 절망으로 바뀌고 말았다.
쩌어어어억!
법사의 쇠사슬이 서서히 얼어붙기 시작한 것이다.
놈의 날개에 박힌 쇠사슬들은 서늘한 냉기를 내뿜으며 무자비하게 날개를 얼려버렸다.
놈에게 남은 것은 빈약한 다리가 전부. 그마저도 저 거대한 덩치를 이끌기에는 턱없이 모자랐다.
이런 절망적인 상황 속 어째서인지 궁수와 일행들은 별다른 행동을 보이지 않았다.
“으…응? 어째서 조용한 거지?”
그는 질끈 감았던 눈을 조심스럽게 떴다. 그 앞에서는 궁수가 보살처럼 인자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왜 웃고 있는 거지?”
그는 영문을 알 수 없는 상황에 혼란이 온 듯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러나 궁수는 부드럽게 고개를 끄덕이며 손가락으로 하늘 위를 가리켰다.
“으…응? 하늘?”
그는 조심스럽게 하늘 위를 올려다보았다.
“끄허어어어어어억!?”
마치 눈알이 튀어나올 정도로 파격적인 리액션이 이어졌다.
그도 그럴 것이 하늘에서는 티아라의 전매특허인 거대한 성검이 모습을 드러내었기 때문이다.
“크흐으으으윽! 이대로 죽을 수는 없다!”
키메라는 낫을 겹쳐 하늘에서 떨어지는 성검을 막고자 하였다.
쿠콰콰콰콰콰!
“오호? 이걸 막아?”
“끄오오오오오오!”
그는 필사적으로 떨어지는 성검을 버티며 이를 악물었다.
얼마나 열심히 막는지 그는 옆의 궁수는 신경조차 쓰지 않을 정도였다.
그러나 궁수는 이번에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궁수는 이번에도 인지한 미소를 지으며 그저 싱긋 웃어줄 뿐이었다.
“그건 애피타이전데.”
“뭣? 그게 무슨….”
키메라는 보았다. 저 성검 위에서 힘차게 떨어지고 있는 무언가를 말이다.
“헤헤헤헤헿! 쾅쾅쾅쾅!”
붉은색 마법진에서 모습을 드러낸 것은 다름 아닌 법사의 트레이드 마크인 메태오였다.
“젠자아아아아앙!”
“망치 나가신다!”
마치 대못을 박듯 법사의 메테오는 티아라의 성검을 향해 커다란 몸체를 부딪혔다.
“흐그으으으윽!”
쨍그랑!
처음에는 어느 정도 버티는 듯 보였으나 이내 그의 낫은 쩌억 금이 가며 완전히 깨지고 말았다.
“나, 낫이!?”
“잘 가라 대머리!”
쿠콰아아아아앙!
“끄아아아아아아악!”
마지막 억제력이던 낫이 사라졌으니 그의 최후는 이미 결정된 것이나 다름없었다.
티아라의 성검은 깔끔하게 적의 몸통을 끊어버렸다.
[대머리의 최후.MP4]
[풍성충이라 다행이다.]
[대머리, 어째서 울고 있는거야?]
ㄴ 소난다…
ㄴ ‘성검’ 넣을게~
ㄴ 미친놈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는 마지막으로 비명을 지르는 호사를 누리며 절명하고 말았다.
***
세이비어에게 뒤처리를 맡기고 집으로 돌아가는 비행기 안, 궁수는 당장에라도 웃음보가 터질 듯한 모습으로 티아라를 바라보았다.
결국 참다못한 궁수는 벌떡 자리에서 일어나 소리쳤다.
“생포해야 한다면서 바로 죽여 버린 사람 누구!”
“티아라! 티아라!”
“닥쳐! 실수라고!”
“5분 넘게 캐스팅 하면서 끝까지 성검을 박아버린 것도 실수로군요!”
“느헤헤헤헿! 실수! 실수!”
“꺄아아아악! 닥쳐! 다 뛰어내리고 싶어!?”
***
한국으로 돌아온 궁수는 길드 하우스에서 멍하니 늘어져 있었다.
최근 너무나도 인생을 스펙타클하게 살아왔기에 찰나의 평화가 무척이나 소중하게 느껴졌다.
최근 헌터 전용 프로틴을 발표하여 큰 이슈를 얻은 프로틴 프로는 그대로 주가가 수직 상승하였다.
“주식이라도 좀 사둘걸 그랬나.”
물론 돈에는 별 욕심이 없는 궁수였기에 그 이상 행동으로 이어지는 일은 없었다.
“운동 안 해?”
“방금 전까지 내가 한 건 운동 아니냐?”
방금 전까지만 해도 다섯 시간 동안 중량을 올린 궁수는 퉁명스럽게 허가은에게 대답했다.
그녀는 여유가 좀 생겼는지 전에 비해서 한층 얼굴빛이 밝았다.
마침 협회의 TV에서는 여름 바다에 대한 내용이 나오고 있었다.
“캬…. 역시 여름은 바다지.”
“응? 가게?”
“그냥 그렇다고.”
채널에서는 부산 해운대에서의 찬란한 모래사장과 함께 여러 관광객들을 내보내고 있었다.
어느새 올라온 힐과 셈, 그리고 법사도 TV를 바라보고 있었다.
“흐음, 저런 게 유행인가보네.”
“첨벙첨벙….”
그러나 그들의 감동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갑자기 방송이 중단되고 긴급 속보가 들어왔기 때문이다.
“뭐야?”
급하게 왔는지 기자는 양복의 옷매무새도 제대로 정리하지 못하고 가삐 숨을 고르며 속보를 전했다.
[속보입니다. 부산 앞바다에 정체불명의 섬이 등장하여 혼란을 빚고 있습니다. 당국은….]
이를 봄과 동시에 궁수는 휴대폰을 꺼버렸다.
“셈! 힐! 문 닫아요!”
“알았네!”
“휴대폰도 다 꺼!”
뭔지 몰라도 궁수는 저 빌어먹을 섬과 연관되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예상보다 더 집요했다.
20분쯤 지났을까.
당연히 이은우가 프로틴 프로의 문을 두드렸다.
하지만 프로틴 프로의 직원들은 궁수의 간곡한 부탁에 모든 문을 닫아버린 상태였다.
게다가 불까지 끄니 회사 자체가 임시 휴업인 느낌마저 들었다.
“제발 가라! 난 안가!”
“….”
그렇게 잠시 침묵이 이어졌다.
제발 이은우가 떠나갔길 바라며 직원들은 조심스럽게 다시 내부의 불을 켰다.
하지만 궁수는 한국의 공무원을 얕보아도 너무 얕보았다.
똑똑똑.
“응? 노크?”
어디선가 일정한 노크 소리가 들려왔다. 그러나 그것은 입구에서 들려오는 소리가 아니었다.
“뭐야? 어디서 들려오는 거야?”
궁수는 영문을 알 수 없는 소리에 주변을 둘러보았다.
“구, 궁수! 저거!”
“응? 저거라뇨? 허어어억?!”
다름 아닌 창틀에 매달린 이은우가 간곡하게 창문을 두드리고 있었다.
“여기 8층인데!?”
“으으으윽! 미친놈!”
힐도 깜짝 놀라 이은우를 바라보았다. 그러나 궁수만큼은 이를 악물고 천궁에 화살을 겨누었다.
“궁수! 뭐하는 건가!”
“저건 괴물이야! 괴물이라고!”
“그럴 리가 없잖는가! 저건 은우라고!”
셈도 적잖게 당황한 듯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궁수를 말렸다.
그러나 궁수는 이미 화살에 얼음까지 입힌 상태였다.
“거짓말 치지 마! 사람이 어떻게 8층 건물에 매달려서 노크를 해!”
“그…. 그건 그렇다만!”
“죽어어어어어어엇!”
“안되네!”
“야 저 새끼 잡아!”
“그러다 진짜 죽는다고요!”
“괜찮아! 괴물은 죽여도 돼!”
“안되애애애앳!”
***
한 바탕 소란이 있었다.
“거 헌터님! 왜 휴대폰을 끄고 그러세요! 문도 다 닫으시고?”
“닥쳐요, 콱 죽여 버리기 전에.”
“아이, 뭘 그리 화를 내고 그래요~ 뭐 제가 온 이유는 아시죠?”
“네.”
궁수는 그 말과 함께 주섬주섬 분쇄자를 꺼내 들었다.
화르르륵!
어느새 궁수의 분쇄자에는 푸른 불꽃마저 붙어 있었다.
“저랑 끝장을 보려는 거 맞죠?”
“끄아아아악! 저거 또 시작이다!”
“막아! 막으라고!”
“죽여버릴꺼야아아아아악!”
“진정재! 진정재 없어!?”
“그냥 기절시키자! 뚝배기를 날려버려!”
아직 ‘한바탕’은 끝나지 않았었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