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3화. 가족을 건들면 족되는 거야.
띠리리리리링!
모자를 꾹 눌러쓴 궁수는 곧바로 합정역으로 질주했다.
주머니 속의 스마트폰이 벨소리를 울렸다. 다름 아닌 은우의 전화였다.
“궁수님.”
“알아요, 합정역.”
“네? 벌써요?”
“빨리 브리핑이나 해요.”
궁수의 다급한 말투에 이은우는 별 말없이 서류를 펄럭이며 브리핑을 시작했다.
“단일 개체입니다. 등급은 A급. 전신에 가시가 돋은 근접 전투형 마물입니다.”
“게이트는 뭔데요.”
보통 마물이 등장한다면 곧바로 게이트 수치가 잡히기 마련이다.
그리고 게이트 수치가 증가하기 전 곧바로 헌터들을 배치하여 막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이번 게이트는 어떠한 전조도 없이 나타났다.
이에 궁수는 의구심이 든 것이다.
“흐음, 조사를 해봐야 알겠지만 처음 보는 게이트입니다.”
“처음 보는 게이트요?”
“예, 파장 자체가 기존의 게이트와는 판이하게 다릅니다.”
“…쯧.”
건물의 창문을 밟으며 길을 무시하고 직선으로 달린 궁수는 어느새 합정역에 도착해 있었다.
“다들 피하십시오!”
“통제 구역입니다!”
“부상자는 이쪽으로 와주십시오!”
한참 협회 직원들이 분주하게 시민들을 보호하고 있었다.
콰앙!
“어…. 저 사람?”
“나궁수 아니야?”
“맞는 거 같은데?”
땅에 내려옴과 동시에 궁수를 알아보는 이들이 한두 명씩 생겨났다.
궁수는 눈길 조금도 주지 않고 부상자들을 치료하는 곳에 발을 옮겼다.
‘어디야.’
- 계약자여 조금 진정하는 게….
“닥쳐.”
- ….
주변을 둘러보니 저 끝에서 궁수의 아버지가 누워있는 것이 보였다.
“아빠!”
곧바로 아버지에게 달려간 궁수는 헐레벌떡 안색을 살폈다.
다행히도 숨은 쉬고 있었다. 아버지를 끌어안는 궁수를 보며 치료사가 옆으로 다가와 말했다.
“뇌진탕과 갈비뼈 골절입니다. 생명에는 지장이 없지만 당분간은 안정을 취하셔야 합니다.”
“….”
궁수는 조심스럽게 아버지를 다시 병상에 눕힌 후 치료사에게 물었다.
“괴물은요?”
“네?”
“괴물요, 어떻게 됐냐고요.”
분노에 가득 찬 으르렁거림에 순간 그녀는 몸을 파르르 떨었다.
궁수가 적이 아닌걸 알면서도 그녀는 공포감에 떨 수밖에 없었다.
“저…. 전담 헌터님들이 처리를….”
그 말을 끝으로 궁수는 현장을 향해 뛰어갔다.
***
“버텨! 놈의 약점은 심장의 보석이다!”
“일단 저것만 부숴!”
“제기랄! 저런 게 어디서 나온 거야!”
적은 바위같이 단단한 신체에 가시를 잔뜩 박아둔 거인이었다.
외갑은 단단해서 공격이 먹히지도 않고 내부도 어지간히 단단하여 칼이 잘 들지 않았다.
그나마 약점을 알아내어서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그들은 진즉 적의 공격에 몸에 구멍이 송송 뚫렸을 것이다.
“온다!”
“수호의 방패!”
적 또한 끝을 내기로 마음을 먹은 듯 발을 구르며 헌터들에게 돌진했다.
그때였다.
“어?! 어! 야 저거 뭐야!”
누군가가 통제구역 안으로 들어왔다.
후드티에 모자, 슬렉스 바지에 사선 슬리퍼까지.
적어도 헌터로는 보이지 않는 차림이었다.
그는 대수롭지 않게 헌터들 사이를 지나며 우드득 우드득 몸을 풀었다.
“막아! 제길! 협회 직원들은 뭐하는 거야!”
모자로 궁수의 얼굴이 가려졌기 때문에 그들은 아직 그가 누구인지 알지 못했다.
“어…?”
“저거 일반인 맞아…?”
그러나 그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회색빛 마력은 가히 일반인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었다.
주변의 헌터를 가볍게 압도할만한 기백이었다.
“저기요!”
그래도 신원도 확인되지 않은 자를 함부로 들여보낼 수는 없었기에 그는 궁수의 어깨를 잡았다.
“누구신진 모르겠지만 여긴 저희가 처리할….”
“놔.”
“뭐요? 당신이 누구인…. 허억!?”
궁수의 표정은 자신을 방해하는 놈이라면 누구든 죽여 버릴 듯 잔혹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또한 모자 속의 얼굴을 확인한 그는 오히려 동료들에게 철수하자며 발을 돌렸다.
“나궁수씨가 왜 여깄는지 모르겠다만…. 거 표정 한번 살벌하네.”
한국 헌터 랭킹 1위 나궁수.
그는 안면을 와락 구기고 뚜벅 뚜벅 적을 향해 다가가고 있었다.
“거칠게 간다.”
- …쯧, 성격하고는.
궁수의 분쇄자가 붉게 빛나기 시작했다.
눈치 없는 괴물은 상대가 누군지도 모른 채 거대한 주먹을 내리쳤다.
콰아아아앙!
오히려 터져나간 것은 놈의 주먹이었다. 익스플로전을 분쇄자에 먹인 것이다.
쿠워어어어어어!?
흠집조차도 나지 않던 자신의 육체가 고작 공격 한 번에 터져버리니 괴물 또한 크게 당황했다.
쿠, 쿠워어어어어!
그러나 괴물의 팔은 순식간에 수복되었다. 놈은 간지럽지도 않다는 듯 궁수를 비웃었다.
놈의 비아냥에 궁수는 오히려 싱긋 웃으며 대답했다.
“질긴 놈이라 다행이네.”
탓!
순간 궁수의 인영이 흐려졌다. 잔상이 남을 정도로 빠르게 돌진한 궁수는 그대로 적의 왼 다리를 날려버렸다.
콰아아아아앙!
쿠, 쿠우어어어어!?
조금도 반응하지 못했다는 당혹감에 괴물이 혀를 내둘렀으나 궁수의 공격은 이제 막 시작되었다.
수복되기 전 궁수는 놈의 왼 다리에 화살 한발을 꽂아 두었다.
아니나 다를까 곧바로 부서진 돌들이 모이며 놈의 다리가 순식간에 수복되었다.
궁수의 화살은 놈의 몸에 비하면 워낙에 자그마했기에 적은 자신의 몸에 뭐가 들어왔는지 알아채지 못했다.
궁수는 적이 다리를 수복하든 말든 전혀 관심이 없는 듯 곧바로 놈의 다리를 밟고 반대쪽 다리를 향해 튕겨져 나갔다.
“흐으읍!”
콰아아아아앙!
이번에도 궁수의 분쇄자는 깔끔하게 적의 다리를 깨 부숴버렸다.
그리고는 수복되기 전 화살 한발을 다시 박아주었다.
쿠워어어어어!
그러나 괴물은 아직 상황을 파악하지 못한 듯 다시 한번 궁수를 향해 발을 내리찍었다.
오히려 궁수가 하는 짓이 귀엽다는 듯 잔뜩 오만한 표정을 지었다.
콰아아아아아앙.
그러나 놈의 느려터진 공격이 궁수를 맞추는 일은 없었다.
적의 다리를 타고 올라간 궁수는 왼쪽 어깨를 후려쳐 왼팔을 날려버렸다.
그리고는 수복되기 전 다시 화살 한발.
그리고 반대쪽 팔도 똑같이.
궁수는 그제서야 적의 배를 박차고 뒤로 뛰어올랐다.
어느새 궁수의 손에는 장궁이 들려있었다. 장궁의 화살촉 끝에 붉은 기운이 모습을 드러내었다.
쐐애애애애액!
조준하고 말 것도 없이 궁수의 화살은 적의 목을 향해 날아갔다.
콰득!
피할 필요가 없다 생각했는지 놈은 피하지 않고 궁수의 화살을 맞아주었다.
사실 피하려 해본들 궁수의 활 앞에서는 의미가 없었지만 말이다.
화살이 놈의 목에 정확히 박혔다.
쿠워어어어어! 쿠우어어어!
적은 간지럽다는 듯 궁수를 비웃었다. 자신의 앞에 닥쳐올 미래도 알지 못한 채 말이다.
궁수는 조용히 왼손을 들었다. 굳은살이 박힌 그의 손바닥이 보였다.
“사지를 분쇄시켜 주마.”
그리고는 주먹을 꽉 쥐었다.
퍼퍼퍼퍼퍼펑!
쿠, 쿠어어어어!? 쿠어! 쿠어어!?
적의 팔, 다리, 그리고 머리가 통째로 궁수가 심어둔 익스플로전 애로우에 의해 터져나갔다.
쿠워어어어어! 쿠워어어어어어!
그제서야 뭔가 잘못된 것을 눈치 챈 괴물은 외발로 궁수로부터 도망치려고 했으나 이미 때는 늦었다.
탓!
곧바로 놈의 몸이 수복되기 시작했으나 워낙에 입은 피해가 막심했기에 그 속도는 전과 비교해 한참 느렸다.
궁수는 겁에 질린 놈을 바라보며 걸음을 걸었다.
그의 슬리퍼가 돌바닥에 긁히며 사악 사악 소리를 내었다.
쿠어어어어! 쿠어 쿠어어어어!
사람이었다면 눈물이라도 뚝뚝 흘릴 표정으로 괴물이 소리쳤다.
진심으로 겁에 질린 듯 소리 지르는 표정이 참 꼴사나웠다.
궁수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기백은 괴물뿐만이 아니라 주변에서 지켜보는 헌터들까지 오금이 지릴 정도였다.
‘저 남자가 적이었다면…. 쯧, 생각하기도 싫군.’
다시 한번 궁수가 아군인 것에 감사하는 순간이었다.
쿠워! 쿠워어어어어어!
“시끄러워!”
콰아아앙!
궁수는 분쇄자를 후려쳐 놈의 턱을 날려버렸다.
턱이 날아가 버린 괴물은 입만 뻐끔거릴 뿐 뭐라고 외치지 못했다.
“이제야 조용하네.”
궁수는 그제야 상황이 마음에 드는 듯 뚜벅뚜벅 적의 심장을 향해 걸어갔다.
놈의 심장 부근에는 초록빛 보석이 빛나고 있었다.
“톱니바퀴…?”
그 안에서는 각종 톱니들이 부지런히 돌아가고 있었다.
그러나 궁수는 깊게 생각하지 않았다.
머리통이 날아간 적은 죽음에 대한 공포에 겁이 질려 연신 비명을 질렀다.
“그러게 가족은 건들지 말았어야지.”
궁수의 분쇄자가.
콰아아아앙!
적의 코어를 완전히 산산조각 내버렸다.
쿠워어어어어! 쿠워어어어….
괴물은 서서히 눈이 감기며 결국에는 완전히 행동을 멈추었다.
***
주변이 어느 정도 정리가 된 후 병원.
“아이 아무렇지도 않다니까!”
“어허! 의사 선생님 말 들어!”
“아빠 출근해야해!”
“회사 얼만데! 까짓 거 내가 사줄게!”
“아이고! 거참! 아들이 잘난 것도 죄네 죄!”
큰 대학 병원의 개인실을 차지한 나백수는 아내가 깎아준 사과를 집어먹으며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단순 외상이었기에 그는 별 탈 없이 일어날 수 있었다.
“그래도 아들 덕분에 휴가도 얻고 좋네!”
“휴가는 얼어 죽을 휴가.”
“거참! 내가 다치려고 다쳤냐 이놈아! 계속 꿍해 있을 거야?”
“거기서 가불기를 쓰면 아들이 뭐가 돼!”
“가불기? 뭐냐 그게? 불고기여?”
“있어 그런 게.”
궁수네 가족의 왁자지껄한 일상에 병실이 다소 훈훈해졌다.
“괜히 무리하지 말고 푹 쉬어 아빠.”
“아이고 알겠다, 이놈아. 어디 이번 기회에 아들 등골 좀 빼먹어 보자!”
“아들 등골 많아서 괜찮아!”
“하이고! 둘 다 말이나 못하면!”
소란도 잠시 궁수의 주머니에 들어있는 휴대폰이 조용히 진동을 울렸다.
“아, 전화 좀 받고 올게요.”
“오냐~”
병실 밖을 나오자마자 궁수의 표정이 확 가라앉았다.
“여보세요?”
“네 헌터님, 말씀하신 것 알아봤습니다.”
상대방은 이은우, 그는 괴물의 시체를 토대로 얻은 정보를 말했다.
“역시 평범한 괴물은 아닌 것 같습니다.”
“그러면요?”
“근육이나 외갑, 가시 전부 DNA가 달라요.”
“DNA가 다르다라….”
궁수가 앓는 소리를 내는 사이 이은우는 계속해서 정보를 읊었다.
“아직은 크게 알아낸 것은 없습니다만, 아마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괴물이 아닐까 추측하고 있습니다.”
“인공적으로요?”
“예, 자연적으로 발생하기는 어려운 개체니까요.”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괴물.
‘누가 그런 걸 만들었을까….’
고민도 잠시 궁수의 머릿속에서 어제 티아라와 했던 대화가 떠올랐다.
‘여섯 번째 가시. 매드 사이언티스트, 사트.’
“아.”
“응? 왜 그러세요? 뭐 알아낸 거라도 있어요?”
“나중에 말 해줄게요.”
뚝.
궁수는 은우와의 전화를 끊고 곧바로 티아라의 연락처에 전화를 걸었다.
띠리리리리링 띠리리리리링
오늘따라 길게만 느껴지는 대기음이 궁수의 귓가를 울렸다.
병원 복도에 등을 기댄 궁수는 차분히 그녀가 전화를 받길 기다렸다.
이윽고.
“여보세요?”
얼마 지나지 않아 티아라의 옥구슬 같은 목소리가 전화기에서 울려 퍼졌다.
궁수는 잔말 없이 곧바로 본론에 들어갔다.
“오늘 합정에서 등장한 괴물 봤어?”
“합정?”
“가시 잔뜩 난 바위 거인.”
“거인…? 아!”
그녀는 뭔가 눈치 챘는지 주변 사람들에게 뭐라뭐라 말하더니 대답을 들은 후 다시 궁수에게 말했다.
“전에 말했던 거 기억나지?”
“어.”
“아마 그 놈도 사트 작품일거야.”
거기까지면 충분했다.
궁수는 살기가 가득한 말을 남긴 후 전화를 끊었다.
“그 새끼는 내가 죽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