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1화. 비둘기야 밥먹자~
“그분의 뜻을 거스르실 생각입니까.”
“흥, 결과만 완벽하다면 용서받을 일이구구!”
“흐음, 글쎄요, 한국에는 ‘그’가 있습니다.”
은신처의 입구에 선 그는 차분하게 장비를 수리하며 출정의 준비를 마쳤다.
근육질의 몸에 얼굴이 비둘기인 남자였다.
비둘기 가면이 아니라 얼굴 자체가 비둘기인 그는 부리를 파르르 떨며 입꼬리를 끌어올렸다.
“구후후! 그런 패션 근육에게 내가 질 것 같구구?”
“전 모릅니다! 모르는 일이에요.”
“흠, 재미없다 구구!”
구구맨이라고 불리는 그는 등에 비둘기 날개를 펼치고 위로 날아올랐다.
“사나이는 고민하지 않는 것이구구!”
“아휴!”
퍼드드득!
날개를 펼치고 날아든 그의 뒤로 수많은 비둘기 병사들이 함께 날아올랐다.
“지리산이라…. 다들 오금 지리게 해주는 구구.”
***
파티 멤버들과 함께 협회에서 대기하던 궁수는 먼저 지리산에서 대기하고 있었다.
“뭐 잡힌 거 없어요?”
[예, 아직은 그리 잡히는 것은 없군요.]
은우는 직원들과 함께 협회의 정보실 전체를 이용하여 대한민국 전체를 샅샅이 감시하는 중이었다.
[정보원에 따르면 오늘쯤 올 거라는데 흠….]
타닥 탁.
키보드를 두드리며 상황을 지켜보는 은우는 궁수를 전담마크 하고 있었다.
“애초에 왜 나랑 얘 둘만 보내는데.”
“너 혼자만 보내기에는 불안했나보지.”
“그렇다고 짐짝을 주면은 어떡해~”
[두 분 모두 그만하시죠, 유치합니다.]
티아라가 콧방귀를 뀌며 궁수에게 시비를 걸었다.
그러나 궁수 또한 이빨로는 져본 적이 없는 사람이었다.
다른 멤버들은 모두 다른 곳에 배치된 상태였다.
애초에 궁수의 능력을 아는 은우였기에 전력을 균등하게 배치할 수 있었다.
“하! 에티오피아에서 구해준 게 누군데.”
“응~ 없어도 개발랐죠~ 걍 킬딸한거죠~”
“뭐? 보자 보자 하니까 이 패션 근육이?!”
“뭐, 뭣!? 패션 근육? 너 삼대 몇 치냐!”
“하! 네놈 대가리는 후려쳐줄게!”
[어휴 진짜, 애새끼가 둘이네.]
시작부터 삐걱거리는 둘에 한숨을 푹 내쉰 은우였으나 그들의 실력에 대해서는 조금도 걱정하지 않았다.
투닥거리면서도 궁수는 계속해서 주변을 살폈다.
“쩝…. 태워버리지도 못하네.”
[절대! 절대로! 태우면 안됩니다!]
“거 나는 안 하려고 하는데 우리 활이 그러고 싶다네.”
[쓰흡! 안돼! 땍!]
“칫.”
기껏 준비한 최종병기가 궁수라는 것에 감사해야할지 절망해야할지 고민하는 은우였다.
새소리만이 울리는 고요한 숲속.
티아라는 언제 전투가 일어나도 싸울 수 있도록 준비하고 있었다.
“쉐킷쉐킷~”
그에 반해 궁수는 어디서 적이 와도 상관 없는지 느긋하게 쉐이크 통을 흔들고 있었다.
"하아…, 저게 궁수라고."
그러길 잠시.
[헌터님.]
“응 알아.”
은우가 진지한 목소리로 알려주기도 전에 이미 궁수는 적의 침입을 눈치 챘다.
“흠, 제법 많네.”
티아라 또한 적의 접근을 눈치 채고 검에 마력을 씌웠다.
“흐음, 사천 마리?”
“사천이라….”
시위를 겨눈 궁수가 목을 비틀며 가볍게 스트레칭을 하였다.
“왜? 무서워?”
“아니, 너무 적어서.”
“말은 잘해요.”
쐐애애애액!
그와 동시에 하늘에서 비둘기 병사들이 몰아치며 전투가 시작되었다.
“흩어지자.”
“그래.”
둘이서 사천 마리를 상대하는 것보다는 각각 이천 마리를 나눠 사냥하는 것이 좋아 보였다.
소수 대 다수의 전투에서 소수가 갈라진다는 것은 자살행위나 다름없다.
그러나 이 두 명은 소수지만 다수의 전투력을 압도적으로 찍어 누르는 수준의 헌터다.
쉽게 말해서 저굴링과 배툴쿠루저의 전력 차이랄까.
다시 말해서 서로에게 신경 쓰며 전투를 벌이기보다는 차라리 따로 날뛰는 것이 더 효율이 좋았다.
“난 저쪽으로 간다!”
“오케이~”
이대 사천의 싸움이었으나 둘에게서 긴장한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궁수는 하늘 위에서 내려오는 적들을 바라보며 덤덤하게 방송을 켰다.
[생] - [비둘기야 밥 맛있쩡?]
방송을 킴과 동시에 수많은 시청자들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방송 시작과 동시에 시청자 수 100만을 뚫어버린 궁수는 분쇄자를 손에 쥐고 외쳤다.
[마이쩡!]
[구구구구구!]
[비둘기야 밥 먹자!]
[gugugugugugu!]
국내는 물론 해외 시청자들도 잔뜩 몰렸던 터라 궁수의 시청자 수는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었다.
그런 수많은 사람들 앞에서 궁수는.
“마이쩡!”
그 소리와 함께 주변을 둘러싼 비둘기들이 궁수를 향해 돌진했다.
“숲은 태우지 말라고 했지?”
날카로운 부리를 앞세워 달려드는 적을 궁수는 분쇄자로 가볍게 머리를 터트려버렸다.
그리고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후면에서 달려든 적의 머리통을 잡고는 그대로 나무에 처박아버렸다.
우지끈!
나무가 부서지며 적의 머리통 또한 함께 터져버렸다.
“나무를 부수지 말란 말은 없었잖아?”
[캬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나름 배려했네 ㅋㅋㅋㅋㅋㅋ]
[우리 궁수 많이 컸네, 환경도 생각하고 ㅋㅋㅋ]
[착한건가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나궁수 : 저는 환경을 사망해요♥.]
ㄴ 오타났다. 사랑 아님?
ㄴ 아닌데, 사망 맞음.
ㄴ 엌ㅋㅋㅋㅋ 고건 몰랐네 ㅋㅋㅋㅋㅋㅋㅋ
계속해서 달려드는 적들을 궁수는 가볍게 피해내며 연신 홈런을 날려대었다.
“동시에 들어가!”
“구구구!”
쐐애애애액!
“오오, 새 대가리들도 학습을 하는구나.”
계속해서 하나 둘 궁수에게 죽어가길 반복하자 놈들은 결국 대형을 갖추기 시작했다.
궁수는 대형을 부수기는커녕 오히려 멀찍이 구경하며 놈들이 대형을 갖추기를 기다렸다.
“다 했냐?”
“쯧! 오만한 것도 끝이다!”
주변을 빽빽하게 채운 적들이 일제히 궁수를 향해 돌격했다.
그러나.
“새대가리라 그런지 하는 행동도 참 쉽네.”
일대 다수의 싸움에서는 너무나도 당연하게 일어난 일인 만큼 궁수 또한 나름대로 대비를 한 상태였다.
“흐으읍!”
휘이이이이잉!
분쇄자에 작은 폭풍이 휘몰아치기 시작했다. 궁수는 바람을 잔뜩 머금은 분쇄자로 땅을 후려쳤다.
콰아아아아앙!
“끄아아아아악!”
“흐어어어억!?”
콰직! 쿵!
날아들던 적들이 터져 나오는 바람을 버티지 못하고 모두 튕겨져 나가고 말았다.
나무에 처박힌 놈들은 전신의 뼈가 박살나 움직이지 못했다.
“제길…. 궁수라고 하지 않았나!”
“자료에는 그리 쓰여 있었다!”
“저건 광전사보다 더 야만적이잖아!”
“씨발 정보담당 누구야!”
자기들끼리 수군수군 남탓을 해대는 적들 앞에서 궁수는 피식 웃으며 천궁을 어깨에 걸었다.
- 음? 전투중에 무기를 풀다니 뭐하는 짓이냐!
“아니, 몸이 근질근질해서 말이야.”
궁수는 주변을 둘러보더니 마침 있던 거대한 나무에게 다가갔다.
툭툭
“이놈 괜찮네.”
[?]
[나무?]
[갑자기?]
[뭔진 모르지만 저 나무는 좆됐다.]
[풍수지리 ON.]
ㄴ 맞네ㅋㅋㅋ 적들 묫자리 찾아주는 거였네ㅋㅋㅋㅋㅋㅋ
[관 만들 나무 찾는거 아님?]
ㄴ 관은 이 나무가 좋겠구나 ㅋㅋㅋㅋㅋㅋㅋㅋㅋ
ㄴ 적 앞에서 관을 짜주는 헌터가 있다?
ㄴ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양팔 가득 벌려 나무를 껴안은 궁수는 자세를 낮췄다.
갑작스러운 궁수의 기행에 적들 또한 당황하여 멀뚱멀뚱 이를 바라보고 있었다.
애초에 가까이 갔다간 어떤 꼴이 날지 알기에 섣불리 접근하지 못하는 것이기도 했다.
“끄으으으으응!”
우드드드득!
[어?]
[우드드득이요?]
[아 설마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에이 아니겠지…]
[그래도 궁수인데…]
[애초에 궁수 이전에 이게 사람이 가능한 일인가.]
[인간 졸업한지가 오래인데 뭐…]
“우랴아아아아!”
우드드드드득!
궁수의 힘찬 함성과 함께 땅속 깊숙이 박혀있던 나무가 통째로 뽑히기 시작했다.
“캬! 이거지! 몽둥이가 이 정도는 돼야지!”
[이럴 줄 알았어ㅋㅋㅋㅋㅋㅋㅋㅋ.]]
[에이 씨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전사도 이렇게는 안 해 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만큼 신나신다는 거지~]
ㄴ 그건 무슨 거지임?
ㄴ 니 새끼 지식 수준이 거지란건 알겠음.
ㄴ ㅋㅋㅋㅋㅋㅋㅋㅋ존나 묵직한거 보솤ㅋㅋㅋㅋ
[화살이라… 그런걸 쏘던 시절도 있었지.]
ㄴ 그럼 뭐 쏘는데 ㅋㅋㅋㅋㅋㅋㅋㅋ
ㄴ 통나무 ㅋㅋㅋㅋㅋㅋㅋㅋㅋ
ㄴ 씨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ㄴ 세계최초 ECO - FRIENDLY 형 미사일 ㅋㅋㅋㅋㅋㅋㅋ
“오랴아아!”
쿠콰아아아앙!
겁을 잔뜩 집어먹은 적들은 궁수에게 도망 다니기 바빴다.
그러나 5미터를 가뿐히 넘어가는 통나무 앞에서는 거리가 의미가 없었다.
“캬! 운동도 되고 좋네!”
우드드드득!
주변의 나무들이 궁수의 공격을 맞고 기울어지며 심지어는 부러지기 까지 하였다.
그러나 궁수의 미친 만행은 멈추지 않았다.
콰득! 우드드득!
“크하! 손맛 죽이네!”
과연 궁수가 직접 고른 나무.
아무리 주변을 후려치더라도 부서지지 않았다.
- 크흑…! 통나무한테 밀리다니.
“어디가! 이리와! 딱 대!”
“끄아아아악! 살려줘어억!”
순식간에 1000명이 넘는 동료들이 죽어나갔다.
겁을 잔뜩 집어먹은 놈들은 날개를 펴 궁수로부터 달아나기 시작했다.
“젠장! 앞으로 정보부 말은 절대 안 믿을 거야!”
“저게 어딜 봐서 궁수냐고!”
“아니 애초에 인간이긴 한 거야!?”
욕을 내뱉으며 도망치는 그들을 본 궁수는 조금도 포기할 기색이 없었다.
- 드디어 내 차례인가!
궁수는 날아가는 적들을 저격….
- 응?
하지 않았다.
“으흐흐흐흐!”
오히려 더욱 통나무를 강하게 쥔 궁수가 마력을 끌어올리기 시작했다.
“한 번만 버텨라!”
휘이이이이잉!
바람이 나무를 휘감으며 그 존재감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분쇄자같은 얇은 바람이 아닌 주변이 움푹 패일 정도로 사나운 바람이었다.
“흐으으으읍!”
나무를 옆구리에 단단히 고정한 궁수는 서서히 회전하기 시작했다.
- 야 이 미친새끼야아악!
“크하하하하하핳!”
쿠콰콰콰콰콰!
궁수를 핵으로 만들어진 거대한 토네이도가 순식간에 몸집을 키웠다.
주변의 나무는 물론이고 날아가던 비둘기들 또한 바람을 버티지 못하고 모두 토네이도에 빨려 들어가고 말았다.
우지끈 쿵! 콰아앙!
“끄아아아아악!”
“이런 미친!”
“살려줘! 살려달라고!”
“이럴 거면 저 여자를 따라갈걸 그랬어!”
[…네? 궁수요?]
[궁수 이전에 얘가 나랑 같은 종족이 맞는지부터 의심된다.]
“어딜 도망가!”
궁수의 근육이 터질 듯이 부풀어 오르며 더욱 회전 속도가 증가했다.
날아든 나무들과 적들이 부딪히며 이미 비둘기들은 모두 빈사상태였다.
[원거리 딜러가 공중 유닛 상대하는 법.MP4.]
[사실 제 3의 종족 그런거 아닐까?]
[신체 능력이든 뇌든 일단 사람새끼는 아닌 듯.]
[ㅋㅋㅋㅋㅋㅋ 씨발 윗 놈들 벙 찐거 개웃기네 ㅋㅋㅋㅋㅋㅋㅋ]
ㄴ 닌 정상임?
ㄴ 이럴 줄 알고 미리 기저귀 입어둠.
ㄴ 캬; 도사가 여깄었네;
ㄴ 몇 살인데?
ㄴ 28
ㄴ 이 새끼도 어떤 의미로는 사람새끼 아닌 듯.
***
티아라는 그녀 특유의 황금빛 마력을 일으키며 시원하게 적들을 썰어버리고 있었다.
대검임에도 불구하고 예측할 수 없는 그녀의 검로는 순식간에 적들의 목숨을 앗아갔다.
“후우….”
절반의 적들을 정리한 그녀는 대검을 어깨에 지고 남은 잔당들을 노려보았다.
절망적인 수준으로 압도적인 실력차에 적들은 우물쭈물 거리며 어쩔 줄을 몰라 하고 있었다.
“하, 이거 내가 이렇게 날뛰어버리면 궁수는 어쩌려나.”
저 멀리서 굉음이 들려오긴 하였으나 그녀는 크게 상관하지 않았다.
쿠콰콰콰콰콰.
“어?”
거대하게 치솟은 토네이도를 보기 전까지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