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근접병기 활-98화 (98/172)

◈ 98화. 친환경이 뭔데.

열두 번째 가시는 숲 최심부에서 궁수와 법사를 지켜보며 메마른 표정을 지었다.

“뭐야, 벌써 왔네?”

이미 찾아온 헌터들을 죽여 버린 터라 곧바로 다른 적들이 들이닥칠 것은 알고 있었다.

그러나 곧바로 궁수 일당이 올 줄은 몰랐기에 그녀는 턱을 괴고 유심히 궁수를 노려보았다.

수정구 너머의 궁수의 모습은 짜증이 잔뜩 나 당장에라도 뭔갈 터트릴 듯한 표정이었다.

“뭐, 그래봐야 내 숲 안에서는 아무것도 못하지.”

이 숲은 단순한 숲이 아니다.

그녀의 재량에 따라서 얼마든지 모습을 바꿀수도, 길을 꼬아버릴 수 있는 일종의 결계인 것이다.

그녀가 마음만 먹는다면 들어온 헌터를 평생 가둬버리는 것 또한 손쉬운 일이었다.

“어디 뭘 하나 볼까.”

첫 번째 가시가 주의하라 일러준 만큼 그녀는 궁수를 상대하기 위해 만반의 준비를 해 둔 상태였다.

그 위력은 가히 궁수가 가소롭게 느껴질 정도였다.

“어?”

그러나 그녀는 알지 못했다.

아무리 어려운 미로가 있다고 한들 그것을 통째로 부숴버리면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것을 말이다.

그리고 궁수가 하려는 것은.

“다 죽여어어어어!”

“아, 안돼애애애앳”!

미로를 부수다 못해 가루로 만들어버릴 정도로 강력한 일이었다.

***

“다 죽여어어어어!”

“죽인다! 펑펑!”

시작과 동시에 궁수의 신기전과 법사의 마법이 불을 뿜었다.

스트레스를 받을 대로 받았는지 법사는 시작부터 마법진을 열어 메테오를 소환하고 있었다.

궁수 또한 마력 포션을 들이키며 신기전에 익스플로전 애로우를 섞었다.

퍼퍼퍼퍼퍼펑!

콰아아아아앙!

“헌터는 씨발 휴일도 없냐아아아악!”

“죽어! 죽어!”

“추가 수당 내놔아아아악!”

헌터의 분노를 담은 궁수와 법사의 포화는 다른 S급 헌터조차도 입을 떡 벌리게 만들기 충분했다.

[헤으응 오빠 나 죽어!]

[오늘 화력 지리네 ㅋㅋㅋㅋㅋㅋㅋ]

[환경 애호가는 나가 있어, 뒤지기 싫으면.]

ㄴ 고맙다…

[아니 방송 들어오자마자 뭐냐고 ㅋㅋㅋㅋ]

[암흑 속 칠흑이여, 그 안에 나의 진홍을 엮으니, 무한의 일그러짐이 되어 나타나라! 익스 플로어어어어전!]

ㄴ 퍼펑! ( 니 엄마 속터지는 소리 )

ㄴ 쾅! ( 니 엄마 집 나가는 소리 )

ㄴ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러는 와중에도 궁수의 신기전은 계속해서 불을 뿜고 있었다.

“어…. 음….”

“화력 하나는 정말 죽여주네요.”

진심으로 분노한 궁수와 법사는 압도적인 화력으로 숲을 태워버리고 있었다.

그럼에도 숲은 너무나도 거대하여 아직 태울 나무들이 한참 남아있었다.

그러나 오히려 그것이 더욱 궁수와 법사를 자극하고 말았다.

“오냐! 더 해보자! 씨발 내가 이기나 너가 이기나 보자!”

“쾅쾅쾅! 펑펑펑!”

광기에 미친 둘은 서로 자신이 사용할 수 있는 최고의 스킬을 선사하며 숲을 쑥대밭으로 만들었다.

그러길 30분.

[인간이 미안해…]

[숲 (이었던 것)]

[숲 (강화 실패)]

[정부 : 이때부터였어요, 뭔가 잘못됐다고 느껴진게.]

[마물이 있든 없든 일단 조지고 보는거야ㅋㅋ]

[궁수랑 법사요? 제가 아는 방화범 중 최고였어요.]

숲의 전반부를 모조리 초토화 시키고 나서야 둘은 분을 삭이며 다시 동료들에게 돌아갔다.

“화는 좀 풀렸어요?”

“보스 넌 뒤졌다.”

“…그래요.”

“쩝…. 그럼 진입하도록 하겠습니다.”

유강함은 숲이라고는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훼손된 입구를 바라보며 아쉬운 듯 입맛을 다셨다.

“숲으로 들어가죠.”

숲인지 뭔지 모를 곳에 발을 들이민 순간 곧바로 맹렬한 바람이 궁수와 법사를 덮쳤다.

휘이이이잉!

숨을 쉴 수가 없을 정도로 거센 바람이었으나 둘은 너무나도 쉽게 바람을 가르며 앞으로 나아갔다.

“바람이 차네요.”

“조심하면서 가죠.”

조심이든 뭐든 다 태워 먹었기에 조심할 것도 없었지만 말이다.

그렇게 절반쯤 들어가자 서서히 타지 않은 숲의 모습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유강함은 드디어 자신의 차례가 됐다는 듯 뒤를 돌아 궁수와 법사를 통솔하려 했으나.

“걸리적거리니까 비켜요.”

이미 궁수와 법사는 또다시 숲을 날려버릴 준비를 한 상태였다.

애초에 숲 자체가 적의 홈그라운드인 셈인데 굳이 헌터들 입장에서는 순순히 들어가 줄 이유가 조금도 없었다.

적진에 들어가 적장을 죽이기보다는 적진을 통째로 날려버리는 것이 궁수와 법사의 스타일이었다.

[캬 이게 불지옥 헬반도지!]

[적도 나름 열심히 준비 했을텐뎈ㅋㅋㅋㅋ.]

[아 일단 태우고 보자ㅋㅋㅋㅋㅋㅋㅋㅋ]

[씨발 여기가 소각장이구나.]

ㄴ 타는 쓰레기만 몽땅 있누 ㅋㅋㅋㅋㅋㅋ

ㄴ 아니 친환경이 뭔데 ㅋㅋㅋㅋㅋㅋ

그렇게 숲을 날려버릴 준비를 마치고 곧바로 공격을 시작하려던 순간.

“멈춰 이 미친놈들아아아!”

저 멀리서 여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순간 사라진 헌터들인가 싶었으나 그들은 모두 남자였다.

그러나 들려온 목소리는 여자였다. 다른 헌터가 들어왔다는 정보는 없었기에 궁수는 슬그머니 활을 들었다.

“방심하지 마세요.”

“알고있습니다.”

일말의 방심도 없이 궁수는 목소리의 주인이 모습을 드러내길 기다렸다.

두두두두두두.

거대한 무언가가 거침없이 땅을 울리며 궁수 일행을 향해 달려왔다.

저 멀리서 적의 인영이 서서히 드러나기 시작했다.

“말…?”

하반신은 말의 모습이었으나 상반신의 사람의 모습을 한 거대한 창기병이 궁수를 향해 달려오고 있었다.

전신이 나무로 이루어진 듯 곳곳에는 새싹이 드러나 있었다.

“궁수씨, 저기 위에….”

“알아요, 보이네요.”

그리고 놈의 머리 위에는 초록빛 로브를 뒤집어쓴 여자가 궁수를 노려보고 있었다.

거기까지 확인할 수 있으면 나머지는 충분했다.

“법사야, 적이다.”

“알았다!”

적어도 아군이 저렇게 무시무시한 기세로 달려들 것 같진 않았다.

궁수는 일말의 고민도 없이 장전해두었던 신기전을 발사했다.

투다다다다!

궁수의 마력이 뭉텅이로 깎여나가며 폭발을 머금은 화살이 놈에게 날아갔다.

퍼퍼퍼퍼퍼펑!

붉은 진홍의 화염이 타들어가며 성대한 폭발이 일어났다.

당장에라도 어지간한 적들은 쓸어버릴 압도적인 화력이었으나 녀석의 돌격은 멈추지 않았다.

“이게 안먹혀?”

연기가 걷히고 그 안에서는 멀쩡한 모습의 창기병이 모습을 드러내었다.

“보호막이네.”

“응, 그래 보이네.”

말의 머리 위에 있던 여자가 소환한 듯 복잡한 기호가 새겨진 청록의 방어막이 창기병을 수호하고 있었다.

[ㅋㅋㅋㅋㅋ 아 철벽 치는거보소.]

ㄴ 미숙아… 보고싶다.

ㄴ 미숙한 건 님 얼굴이었구연.

ㄴ 씨발 어디사냐?

ㄴ 미숙이네 집.

ㄴ 미숙이냐?

ㄴ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님들 철벽 뚫는건 꾸준함이 생명임.]

ㄴ 어캐하는데?

ㄴ 매일 전화하고 메시지하면.

ㄴ 하면?

ㄴ 차단당함.

ㄴ ㅋㅋㅋㅋㅋㅋ 존나 현실적이네ㅋㅋㅋㅋㅋㅋ

ㄴ 아앗… 어째서 콧물이…?

보호막은 어디부터 뚫어야 할지 감도 오지 않을 정도로 견고했다.

“야, 니 차례다.”

“꺄하!”

그러나 궁수는 법사와 함께 한 뒤로 마법에 대해서는 고민을 해 본적이 없다.

다른 사람들은 술사를 죽이라느니 보호막의 핵을 터트려야 한다느니 말이 많았다.

그러나 마법에 대하여 궁수의 입장은 변하지 않았다.

“까짓 거 그냥 깨부수면 되는 거 아닌가?”

[선생님 보호막의 의미가 뭔지 아십니까?]

[ㅋㅋㅋㅋㅋㅋ 근육뇌 능지 수듄ㅋㅋ]

[보호막 안에 사람이 있잖아!!!!!!!!]

[보호도 하지마!!!!!!!!!!]

ㄴ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니 왜요. 부술 수 있으니까 부수는 거지.”

궁수가 아닌 다른 헌터였다면 헛소리라며 웃어 넘길 말이었으나 시청자들도 사실은 알고 있었다.

법사든 궁수든 마음만 먹는다면 저 보호막을 부술 수 있다는 것을 말이다.

다만 이번에는 차례가 법사였을 뿐.

휘이이이잉!

법사의 손 위에서 자그마한 산들바람이 모습을 드러내었다.

언뜻 보기에는 귀여운 바람이었으나 그 안에 압축되어있는 힘은 빌딩 한 채 정도는 가뿐히 날려버리고도 남았다.

자칫하면 손은커녕 팔 채로 뜯길 정도의 위험한 힘을 법사는 눈 하나 깜빡하지 않고 다루고 있었다.

“더, 더! 더!”

법사 주변에서 가공할 정도의 마력이 끓어오르기 시작했다. 대기가 저릿하며 파팍 스파크가 튀겼다.

휘이이이이이이잉!

귀가 따가울 정도의 바람 소리에 돌격하던 창기병조차도 순간 흠칫하며 돌진을 멈출 정도였다.

그러나.

쏴아아아아아.

순간 바람이 멎으며 전장에 고요가 찾아왔다. 법사의 손 위에 새하얀 바람이 한 줄기 곤히 잠들어 있었다.

“히힣!”

법사는 일말의 고민도 없이 손에 든 바람 한 줄 기를 적에게 날렸다.

마치 나비가 하늘하늘 날아가듯 소리 없이 적에게 날아간 바람은 그녀의 보호막에 막히며.

쿠콰콰콰콰콰콰!

“캬하하하하! 이거지!”

“느헤헤헤헿! 퍼퍼퍼퍼펑!”

“꺄아아아아악!”

엄청난 칼바람 폭풍을 일으키며 간단히 그녀의 보호막을 깨 부숴버렸다.

[나법사!나법사!나법사!나법사!나법사!나법사!]

[이게 그 나비처럼 날아가 존나게 팬다 인가요?]

[방심하면 뒤져야지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이게 힘숨찐이지ㅋㅋㅋㅋㅋㅋㅋ]

[이쯤되면 마법사인지 테러범인지 구분이 안된다.]

[아아아… ‘펑펑’의 선지자시여!]

ㄴ 아아아… ‘쾅쾅’의 아버지시여!

ㄴ 아아아… 앙 기모띠!

법사의 마법은 그녀의 보호막을 완전히 찢어버리고 나서야 그 모습을 감추었다.

궁수가 이 상황을 놓칠 리 없었다.

곧바로 궁수의 신기전이 불을 뿜기 시작했다.

“숲은 타오를 때가 제일 예뻐!”

[암쏘핫 오예! 후! 하!]

[캬 오늘 물 지리네!]

[인싸들이 왜 클럽 가는지 알겠네!]

“꺄하하하하하! 죽어! 죽어 이 새꺄!”

“안돼애애! 하지마! 하지 말라고!”

광기 넘치는 미소와 함께 궁수는 계속해서 숲을 불태웠다.

마력을 먹이삼아 타오르는 불꽃은 쉽게 꺼지지 않고 숲을 좀먹었다.

“감히 나궁수 상대로 숲을 가져와!?”

“싫어어어어어엇!”

[이 새끼 사실 헌터는 부업이고 테러범이 본업일 듯.]

[나궁수 - 아마도 정의의 편.]

[숲 : 개새끼야…]

[이게 씨발 헌터야 테러범이야.]

[씨발 네로가 여기있었네.]

[씨이팔 여기가 폼페이구나.]

“안돼애애애애!”

가시인 그녀는 애처롭게 궁수를 막아섰으나 그녀의 창기병만 궁수의 화력에 타들어갈 뿐이었다.

살아있는 나무는 불이 잘 붙지 않는다고 하지만 궁수의 화살은 놈의 몸에 박혀 안에서부터 태우다 보니 그런 것 관계없이 아주 잘 타올랐다.

“느헤헤헿! 휘잉 휘이잉!”

추가로 나법사의 돌풍 마법으로 더더욱 궁수의 불꽃이 확진되었다.

숲은 그야말로 아수라장에 가까워 불지옥이 펼쳐졌다.

창기병에 탄 그녀는 열심히 불꽃을 진압하기 위해 노력했으나 궁수의 불꽃은 쉽사리 잠재울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결국.

B22

콰앙!

“꺄아아아악!”

창기병 또한 궁수의 불꽃에 집어삼켜져 결국 그녀는 아래로 내려올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이와 동시에 유강함이 검을 치켜들고 그녀를 노려보았다.

“아, 잠시만요.”

“조심하십시오.”

“걱정 마요.”

숲은 이미 불꽃으로 가득 채워 복구는 어려워 보였다.

그녀는 포기한 듯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다.

“야.”

“….”

“말 안해?”

외모는 인간이었으나 궁수는 그녀에게 일말의 감정도 느끼지 않았다.

굳이 고른다면 마물을 상대할 때의 느낌.

그녀는 인간이 아닌 적이다. 반드시 목숨을 끊어버려야 할 적.

그렇기에 궁수는 그녀에게 자비가 없었다.

화르륵!

화살 한 개를 집어 든 궁수는 그녀의 팔을 겨누며 싱긋 미소 지었다.

“먼저 들어간 헌터들은 네가 다 죽였냐?”

“…응.”

“음, 그렇구나.”

결과는 사형이었다.

궁수의 화살 끝이 팔이 아닌 그녀의 머리로 향했다.

“가서 안부나 전해줘라.”

궁수의 화살이 시위를 떠나려는 순간.

콰직!

“오?”

바닥에서 솟아난 거대한 장미 가시가 궁수의 화살을 막아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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