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7화. 석양이 진다!
“궁수 뒤!”
“으잉!?”
콰아아앙!
“적, 제거한다.”
전신에 철갑을 두른 거인이 거대한 모닝스타로 궁수가 있던 곳을 내리쳤다.
“저건 또 뭐야!?”
티아라의 검에 찢겨져 나갔던 어둠이 일렁이더니 맨바닥에서 철갑을 꺼내 끈적한 어둠으로 이를 이어 붙였다.
마치 철갑의 빈 곳을 어둠으로 채운 듯한 기괴한 모습이었다.
“크흐으…. 모두 죽여주마!”
위이이이잉!
놈의 왼 손에 달린 헤비머신건이 섬뜩한 소리를 내며 돌아가기 시작했다.
“아니 방금 전까지 분명 권총이었는데?”
[아앗! 크고 근사해…♡!]
[내 크고 우람한 총을 봐줘.]
[오우야 미니건ㅋㅋㅋㅋㅋㅋㅋ]
ㄴ 미니 하지 않은데 왜 미니 건임?
ㄴ 니거는 미니건 맞으니 ㄱㅊ.
ㄴ 씨발 자주포가 여기 있는데 개소리야 ㅋㅋㅋ
ㄴ 자주포가 아니라 자지포 경 아니냐 ㅋㅋ
ㄴ 강제퇴장 되었습니다.
ㄴ 미친놈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ㄴ 빠꾸없네 ㅋㅋㅋㅋㅋㅋㅋㅋ
“셈! 지금 요새화 괜찮아요?”
“가능하네!”
이전부터 사용해오던 기술!
엄청난 파괴력과 아무리 강력한 스킬을 날리더라도 시전자는 어떤 피해도 입지 않는 바로 그 기술!
셈은 궁수가 요새화를 말하자마자 이미 눈치 챈 상태였다. 그는 당장 적을 바라보며 스킬을 준비했다.
“티아라! 네가 어그로좀 끌어!”
“명령하지 마!”
“그럼 뒤지던가!”
“치이잇!”
“내가 빠지라면 빠져!”
그녀는 싫은 척 하면서도 대검을 들고 놈에게 달려들었다.
투다다다다다!
카가가가강!
놈의 붉은 안광이 빛나며 엄청난 수의 검은 총탄들이 티아라에게 날아들었다.
그러나 그녀는 대검을 휘둘러 황금빛 검흔을 남기며 총탄들을 막아내었다.
그동안 궁수는 법사를 등에 업고 적을 향해 도약했다.
화려한 티아라의 검술에 시선을 빼앗긴 놈은 그녀에게 총구를 들이밀고 있었다.
“준비됐어, 법?”
“응! 궁!”
“준비됐어, 궁하라니까!”
“느헤헤헿!”
“그래, 가즈아아악!”
탓!
땅을 박차고 뛰어오른 궁수가 적을 노려보았다. 다행히도 적은 아직 티아라에게 관심이….
투다다다다!
“끄웨으으어!?”
“제길!”
카가가가강!
자신을 향한 살기를 느낀 놈은 순식간에 고개를 틀어 궁수를 향해 총구의 불을 뿜었다.
그러나 괴물을 예의주시하던 티아라가 재빨리 궁수의 앞에 대검을 던져 놈의 공격을 막아주었다.
마력이 담긴 대검은 그녀의 의지에 따라 궁수에게 날아오는 모든 공격을 막아주었다.
“나이스 티아라!”
“빨리 처리해!”
타앗!
그녀의 검을 밟고 뛰어오른 궁수가 소리쳤다.
“셈! 밥솥 준비!”
“오케이!”
콰아아앙!
거대한 대방패를 땅에 처박은 셈이 마력을 일으켜 적의 주변에 요새를 일으켰다.
일부러 마력을 조절해가며 궁수와 법사가 대미지를 넣을 수 있도록 조절했다.
먼저 궁수가 놈의 머리통을 향해 불꽃을 가득 머금은 화살을 처박았다.
화르르륵!
요새 안에서 궁수의 화염이 타올랐다. 그러나 아직 공격은 시작도하지 않았다.
“법사!”
“다 돼따!”
요새의 구멍 안에 법사의 마법진이 드러났다.
초록빛 마법진은 무시무시한 바람 칼날을 만들어내며 회전하기 시작했다.
궁수의 화염을 머금은 바람은 무시무시하게 회전하며 게이트 안의 괴물을 간단하게 갈아버렸다.
끼에에에에에에엑!
요새 안에서 괴물의 최후의 단말마가 들려왔다.
무사히 땅에 착지한 궁수는 손을 털어내며 말했다.
“취사 완료!”
“꼬들밥! 꼬들밥!”
[취사로 이행시 해봄.]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짜식… 햇쌀이었군…]
[꼬들밥으로 해와 썅련아!]
ㄴ 엄마한테 못하는 말이 없네;
ㄴ 나 엄마 없는데.
ㄴ ㅇㅇ 그래 보임ㅋ
ㄴ 미친놈들이 ㅋㅋㅋㅋㅋㅋㅋㅋ
[아니 이 행시 해본다고.]
궁수는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아내며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거지!”
“지렸다! 지렸다!”
“넌 진짜 지린 것 같으니까 조용히 해.”
“응? 갑자기! 축축…!”
“아아아악! 닥쳐!”
“뻥이다!”
궁수의 정신나간 유쾌함에 채팅창 또한 한껏 흥이 오른 상태였다.
[캬 이게 밥심이지 ㅋㅋㅋㅋㅋㅋ]
[어이… 내 ‘밥솥’은 너를 용서치 않을거다.]
[울어라! 지옥 참밥솥!]
[통째로 갈아놓고 뭘 취사 드립이야 ㅋㅋㅋㅋ]
ㄴ 너도 취사 당하고 싶냐? 그러려니 하라고 아 ㅋ
ㄴ 통에 넣고 불 지폈으면 된거지 뭘 ㅋㅋㅋ
[아니 이행시 해본다고 이 새끼들아.]
ㄴ 취.
ㄴ 취한다.
ㄴ 도배로 인해 강제퇴장 되었습니다.
ㄴ 엌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ㄴ 잘가요 취사좌…
ㄴ 밥솥이 낳은 괴물…
요새화를 해제하자 그 안에서는 갈리다 못해 고깃덩어리가 되어버린 괴물의 시체가 잠들어 있었다.
“이건 뭐 건질 것도 없겠군.”
“마석도 없어요?”
“음, 없어.”
“에잉 쯔쯧 꽝이네 꽝.”
“빨리 나오기나 해.”
“갑니다 가.”
티아라를 따라 밖으로 나선 궁수는 입이 찢어져라 하품을 하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주변에서는 미리 부상자를 치료하기 위해 이미 구급차가 도착한 상태였다.
시체 세구와 부상자 한 명이 실려가는 걸 보며 궁수는 조금은 씁쓸한 표정으로 길드 본부로 돌아갔다.
***
우드드득! 우득!
“끄아아아악!”
“살려줘!”
“헉! 헉! 저게 뭐야!”
어두운 밤 숲에서 헌터들의 단말마가 울려 퍼졌다.
모든 곳에 적이 있었고 모든 곳에 위험이 도사리고 있었다.
“끄아아아악!”
함께 온 동료들은 모두 쓰러지고 단 한명의 헌터만이 남았다.
그런 그의
“사, 살려줘!”
“안돼.”
콰직!
거대한 나무줄기가 마지막으로 남은 헌터의 가슴팍을 관통했다.
정확히 심장을 꿰뚫은 치명적인 일격에 헌터는 별다른 단말마도 외치지 못하고 즉사하고 말았다.
***
길드 본부 궁수는 여느 날과 다름없이 하체 풀세트를 조지고 프로틴을 마시고 있었다.
달콤한 프로틴이 전신의 근육에 흡수되는 듯 궁수가 몸을 파르르 떨었다.
“헤으으응!”
“크흠….”
셈이 역겨운 듯 궁수를 바라보았다.
그러나 다른 사람도 아니고 이 헬창 나궁수.
고작 그런 고까운 시선 따위 신경 쓰지 않는 남자였다.
오히려 더욱 프로틴을 음미하여 더욱 역겨운 반응을 보였다.
온몸을 배배 꼬며 각종 생지랄을 떠는 궁수를 뒤로하고 다른 길드 멤버들은 TV에서 흘러나오는 뉴스를 시청하고 있었다.
[하루아침에 생긴 숲을 조사하기 위해 떠난 헌터들의 행방이 묘연해져….]
어느새 다가온 궁수도 조용히 동료들의 옆에 앉아 뉴스를 바라보고 있었다.
“음.”
그리고는 곧바로 휴대폰을 꺼버렸다. 빌어먹을 공무원이 어째서인지 전화를 걸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번에 궁수의 휴대폰은 울리지 않았다.
띵동~
엘리베이터가 도착하는 소리와 함께 그 안에서 이은우가 걸어 나왔기 때문이다.
궁수는 물론 길드의 다른 멤버들 또한 그의 집착에 깜짝 놀라 혀를 내두를 지경이었다.
“와 저 독한새끼.”
“아하하하하하!”
“꺼져요 안 가.”
“우헤헤헤헤헤!”
“아 꺼지라고!”
“느헤헤헤헤헿!”
궁수의 거절에도 은우는 끈질기게 그에게 달라붙었다.
“아아아악! 꺼져! 꺼지라고!”
“이주일간 철야에 집도 못간 제가 불쌍하지 않습니까!”
“응! 그냥 회사에서 죽어!”
“끄아아아악! 싫어! 싫어어어어! 싫다고! 퇴사할거야아아악!”
“이 공무원이 미쳤나!”
그 뒤로 추가로 20분간 지랄이 이어졌다. 궁수의 발길질과 주먹질에도 그는 물러서지 않았다.
결국에는 그의 눈물로 궁수의 바지를 한껏 적시고 나서야 겨우 상황은 진정할 수 있었다.
궁수는 구시렁구시렁 욕을 뱉으며 은우를 쏘아붙였다.
실제로 은우의 눈 아래에는 엄청난 다크서클이 쌓여있어 궁수의 마음이 조금 약해졌다.
“또 뭔데요.”
“저거요. 숲.”
아니나 다를까 방금 전 뉴스에서 나왔던 숲에 대한 이야기였다.
그러나 궁수는 단숨에 표정을 구기며 단호하게 말했다.
“딴 놈들 보내요.”
너의 제안 따위 조금도 관심 없다는 듯 궁수의 답은 싸늘하기 그지없었다.
은우는 다시 입꼬리를 확 끌어내리며 궁수를 바라보았다.
“그렇게 봐도 안갑니다.”
분명 정부에서 내리는 일은 보수도 짭짤하고 정산도 깔끔하다.
그러나 그만큼 지랄 맞은 난이도를 자랑하기 때문에 꺼려하는 것이다.
그렇게 철벽을 치는 궁수에게 이은우는.
“뿌에에에엥!”
“궁수도 사람이야 사람!”
“아냐! 사람 아냐!”
“끼에에에에엑!”
“뿌에에에에엥!”
선즙필승이라고 일단 질질 짜며 궁수에게 매달렸다.
“사람들도 위험하다고 안 간단 말야!”
“다른 S급들은 뭐하는데!”
“걔네도 불렀어! 같이 가줘!”
“까잡숴! 안가! 아니 못가!”
***
세 시간 후 현장 앞.
“죽인다죽인다죽인다죽인다죽인다죽인다.”
“이왕 여기까지 왔지 않나!, 화 좀 풀게!”
“죽인다. 기필코 죽인다. 찢어 죽인다. 태워 죽인다.”
“흐음…. 완전히 미쳤군.”
그리고 이것이 이은우가 2시간 동안 질질 짠 결과다.
[엄마 나 무서워.]
[진짜 개 빡쳤네, 오늘 클로징 볼만할 듯.]
[??? : 노동청에 신고할 거야!]
ㄴ 기업 이름이 뭔가요?
ㄴ 대한민국이요!
ㄴ 엌ㅋㅋㅋㅋㅋㅋㅋ
숲 입구에 선 궁수는 이글이글 전의를 불태우며 화살통 가득히 화살을 준비했다.
아무리 서울 외곽이라 하더라도 이 숲의 규모는 너무나도 거대했다.
입구부터 음산한 기운이 흐르는 것이 썩 마음에 들지 않았다.
애초에 나무라곤 길가의 가로수밖에 없는 곳에 하룻밤에 거대한 숲이 생겼으니 말이다.
입구에서는 미리 도착한 다른 S급 헌터 두 명이 대기하고 있었다.
S급 힐러 한가은과 S급 근접 딜러인 유강함이 장비를 점검하고 있었다.
그들도 궁수의 일행을 확인했는지 반가운 듯 악수를 청해왔다.
“오! 반갑습니다!”
“네.”
궁수는 기분이 썩 좋지 않았기 때문에 설렁설렁 그의 악수를 받아주었다.
“유강함이라고 합니다! 만나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네, 나궁숩니다.”
한바탕 악수를 마친 다음 이번에는 한가은이 은근히 궁수를 바라보았다.
“난 알죠?”
“알죠.”
이전 호주에서도 합을 맞춰본 적이 있었기 때문에 그녀와의 소개는 별 필요 없었다.
짤막한 인사 후 헌터들은 조용히 숲 안으로 돌입했다.
“으음.”
숲 안으로 들어왔을 뿐인데 벌써부터 공기가 다르다는 느낌이 들었다.
마치 이곳만 공간이 다른 듯한 이질적인 느낌에 궁수는 순간 게이트와 비슷한 느낌을 받았다.
“제가 오더하겠습니다. 조나셈님을 앞으로 해서 천천히…. 저기요?”
유강함의 말과 상관없이 궁수와 법사는 조용히 앞으로 나아갔다.
궁수는 투명한 눈으로 숲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이 숲을 오기 전 정부 측으로부터 확인 받은 게 있습니다.”
“네…? 갑자기 정부요?”
“네, 정부가요.”
궁수는 어느새 신기전을 옆에 두고 가득히 화살을 채웠다.
궁수의 마력을 원료로 자동으로 신기전에 화살이 차오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붉은 빛을 띠기 시작한 수십 발의 익스플로전 애로우는 당장에라도 적을 찢어버릴 듯 흉흉하게 빛나고 있었다.
그런 그들을 바라보며 유강함이 침을 꼴깍 삼키며 물었다.
“정부 측에서…. 뭐라고 하덥니까?”
“하하하.”
나법사는 조용히 눈을 빛내며 초고속 캐스팅에 들어간 상태였다.
그 역시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휴식을 즐기던 찰나였기에 이번 일이 썩 달갑지는 않았다.
아니 오히려 이곳에 오기 직전까지도 오기 싫다고 징징댔던 것이 그였다.
화아아아악!
“허억!?”
법사의 앞에 마법진 세 개가 그 모습을 드러내었다.
작은 마법진, 중간 마법진, 큰 마법진.
모두 붉은 색을 띄는 찬란한 마법진이었다.
신기전의 발사 준비를 완료한 궁수는 뒤를 돌아 유강함에게 말했다.
“이번 일을 처리하는 와중 생기는 어떤 피해에도 책임을 묻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네? 그게 무슨…”
궁수의 생기발랄한 말에 유강함은 의문을 던졌으나.
쿠콰콰콰콰콰쾅!
콰아아아아아앙!
이미 불꽃놀이는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