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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접병기 활-94화 (94/172)

◈ 94화. 드래곤 캍!

“하아…. 하아…. 이, 이겼다!”

궁수는 식은땀을 흘리며 털썩 주저앉았다. 아직 주변에는 어둠이 짙게 깔려있었다.

내부를 둘러본 궁수는 혹여나 이 결계가 계속될까 불안한 마음에 천궁에게 물었다.

“이거 언제 풀려?”

- 주인이 죽었으니 마력이 떨어지면 알아서 풀릴 거다. 그것보다 저기 좀 봐라.

“응? 뭐?”

천궁은 뭔가 신경 쓰이는 게 있는 듯 자꾸만 끙끙 앓는 소리를 내었다.

“뭔데, 똥마려?”

- 그런 더러운 것 나는 배출하지 않는다.

“변비면 변비라고 말을 하지.”

- 하아…. 왼쪽으로 가보기나 해라.

“왼쪽? 어디?”

- 좌측…. 조금만 더 오른쪽으로…. 그렇지! 그쪽으로 쭉!

“왜, 뭐라도 있어?”

- 잘은 모르겠다만 뭔가 있는 건 확실하다, 함정일 수도 있으니 조심하 거라.

“흐으음…. 그렇다 이거지.”

기감을 최대한 일으킨 궁수는 주변을 노려보며 조심스럽게 내부로 진입했다.

한 손에는 불이 붙은 화살을 들고 내부를 비추었다.

온통 어두컴컴한 어둠이었기 때문에 조심한다고 뭘 알 수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말이다.

- 흐음, 역시 이곳은 레어인가.

“난 레어보다 미디움이 좋은데.”

- 어휴…. 레어는 드래곤들이 가지고 있는 보금자리다.

“아, 그래?”

- 그래, 드래곤이 모아둔 각종 보구들이 잠들어 있는 곳이지.

“우오오오오!”

드래곤이 집적 모은 보구라니!

사실상 보물창고나 다름없지 않은가!

궁수는 설레는 마음을 안고 조심스럽게 천궁의 말대로 레어를 탐사해 나갔다.

혹시나 레어가 사라질까봐 조금은 다급한 마음이 들기도 하였다.

그렇게 계속해서 내부를 향해 들어가자 둥근 방이 나타났다.

- 여기다.

“음? 설마 이게 전부야?”

- 흐음….

특이해 보이는 물건들이 몇 개 떨어져 있기는 하였으나 금은보화라던지 귀중한 것들은 거의 없다시피 하였다.

“…보물창고라며.”

- 물질욕이 없는 드래곤인가…. 신기하군.

“내 보물! 금 나와라 뚝딱 은 나와라 뚝딱 한다며!”

- 그런 적은 없다!

사실관계는 중요하지 않다.

궁수는 그저 천궁을 갈구고 싶을 뿐이었다.

“내 보물 내놔! 내놓으라고!”

- 나한테 맡겨뒀냐!? 없다! 직접 찾아!

“아 몰라, 내 돈 내놔!”

무지성 궁수와 유지성 도구의 수준 높은 말싸움이 일어났다.

잠시 소란이 있었다.

궁수는 천궁에게 쌍욕을 듣고 나서야 침착하게 주변을 뒤지기 시작했다.

“아무리 그래도 도구가 주인한테 돌대가리 병신 새끼가 뭐냐? 병신 새끼가….”

- 크흠, 실언이다.

“변기 막힐 때 넌 뒤졌다.”

- 끄아아악! 제발 그것만은!

“닥쳐 SSS급 뚫어뻥.”

궁수는 계속해서 레어를 뒤지며 쓸만한 물건은 없는지 유심히 찾고 있었다.

종종 검이나 방패 같은 쓸만한 무기들은 모두 궁수의 인벤토리에 들어갔다.

그러나 막상 궁수가 사용할만한 도구는 아직까지 드러나지 않고 있었다.

“쓰흡, 뭐 드래곤이 이렇게 거지새끼야?”

- 아니다. 아직 마력이 느껴진다. 조금만 더 찾아보 거라.

“딱히 찾으라고 한들…. 어?”

- 그래! 그거다!

투덜거리던 와중 땅바닥을 굴러다니는 붉은 주머니가 궁수의 눈에 들어왔다.

투박한 모습으로 별다른 무늬는 없었으나 뭔가 그 모습만으로 고고한 분위기를 내뿜고 있었다.

“으음? 설마 이 주머니가!”

아공간 주머니라거나 돌라애몽의 마법 주머니 같은 건가!

- 뭐래, 안을 봐봐라.

“내 설렘 돌려내.”

- 인벤토리만큼 좋은 주머니가 어딨다고 쯧.

“그건 그렇지만….”

궁수는 투덜대면서도 주머니를 열어보았다.

거의 무게가 느껴지지 않았기에 별다른 기대는 하지 않았다.

“이게 뭐지?”

주머니 속에는 물통 한 개와 선글라스 한 개가 들어있었다.

“선글라스가 왜…?”

물통은 그렇다 처도 어째서 선글라스가 있는지는 이해할 수 없었다.

게다가 멋들어진 선글라스도 아니고 아저씨들이나 낄법한 스포츠 선글라스다.

“이런 건 우리 아빠도 안 끼는데….”

- 마력이 느껴진다. 평범한 물건은 아니군.

“흐음…. 이건 또 뭐야? 평범한 물통?”

이번에는 다른 물통을 집어든 궁수는 요리조리 흔들며 유심히 살펴보았다.

가죽 케이스로 이루어진 물통은 적어도 현대 사회에서 사용할만한 물건으로 보이진 않았다.

“기왕 주려면 쉐이크 통이나 주지….”

아쉬운 마음에 입맛을 다시며 물통을 집어넣으려는 순간.

“어?”

거칠던 물통의 겉면이 매끈매끈한 재질로 변했다. 깜짝 놀란 궁수는 다시 고개를 내려 물통을 확인했다.

“뭐야…?”

방금 전의 거친 가죽 물통은 어디가고 궁수의 손에는 세련된 검은 쉐이크 통이 들려 있었다.

- 역시 마도구로군. 마력을 넣어 보거라.

“마력? 여기에?”

- 그래.

궁수는 약간의 기대감을 가지고 물통에 마력을 주입했다.

“어? 어어어?!”

- 역시.

텅 비어있던 물통은 어느새 찰랑거리는 물로 가득 차 있었다.

“…미친.”

- 대박이군.

고작 물가지고 뭘 그리 호들갑을 떠느냐고 할 수도 있지만 궁수는 억만금이라도 얻은 것처럼 환호했다.

“이것만 있으면!”

- 그래! 물이 다 떨어지더라도 얼마든….

“언제든 프로틴을 마실 수 있어!”

- …어휴.

궁수는 천고의 보물이라도 얻은 것처럼 거칠게 숨을 쉬며 물병에 볼을 비볐다.

애초에 물은 마법사들의 마법으로 충분히 만들 수 있다.

수속성 마법이나 혹은 빙결속성 마법을 사용하여 녹여 쓴다던지 말이다.

그러나 이제는 매번 귀찮게 마법사들에게 물을 받을 필요가 없었다.

뚜껑을 열고 냄새를 맡은 궁수는 혹시나 천궁에게 물었다.

“이거 마셔도 돼?”

- 음, 그냥 평범한 물이다.

벌컥! 벌컥!

“크하! 물맛 쥑이네!”

물이었다. 그것도 목이 서늘해질 정도로 차가운 냉수.

마법사들의 미지근한 물이 아닌 시원한 냉수에 궁수의 가슴까지 서늘해질 지경이었다.

“하악, 하악! 마이 프레셔스!”

궁수는 물통을 볼에 비비고는 이내 아기를 안는 것처럼 물통을 품에 안았다.

‘물통이 이 정도면 선글라스는 뭘까?’

기대감을 안은 궁수는 조심스럽게 선글라스를 썼다.

“와!”

그렇다.

이 선글라스의 능력은 무려!

“새까매!”

무려 시야를 새까맣게 바꿔주는 것이다!

“젠장, 내 눈을 까맣게 바꿔버리다니! 상당히 강력한 저주 아이템인 게….”

- 적당히 해라.

“넵.”

- 곧 공간이 풀리겠군.

“벌써?”

- 네가 다 죽여 놓고 뭘 벌써야.

“맞아…. 내가 죽였어!”

- 쯧, 드래곤 시체나 챙겨라.

“늬에늬에.”

드래곤의 시체를 인벤토리에 넣음과 동시에 주변을 가득 채우던 어둠이 사라졌다.

화아아아아악!

“어?”

어둠 밖으로 나오자 바깥의 동료들이 깜짝 놀란 눈으로 궁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선글라스를 쓴 궁수의 눈에는 다른 것이 비추어지고 있었다.

사람들의 머리 위로 잔여 마력, 체력, 그리고 그 아래에는 영문을 모를 숫자가 또 적혀 있었다.

[조나셈]

[잔여 마력 - 352]

[잔여 체력 - 4753]

[감정 상태 - 흥분, 기쁨.]

“뭐지 이게?”

궁수는 어리둥절하여 다른 헌터들을 바라보았다.

이 역시나 마력과 체력 그리고 그 아래에는 현 상태가 쓰여 있었다.

“스카우터야 뭐야?”

그리고 그 아래에 표시되는 현 상태까지.

궁수는 셈을 지그시 바라보더니 그 앞에 다가갔다.

“내 관심법으로 보아하니 네 놈 머릿속에 마구니가 가득하구나.”

“음? 갑자기 왜 그래?”

“어허! 노 프로틴 닭가슴살 형에 처한다!”

“끄아아악! 제발 그것만은!”

궁수가 셈과 낄낄거리며 놀기도 잠시 헌터들은 눈을 꿈뻑이며 현 상황을 파악했다.

“이…. 이겼어!”

“게이트가 사라졌다고!”

“나궁수 헌터가 쓰러트린 거야!”

사람들 사이에서 환호가 조금씩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승리의 기쁨은 너무나도 달콤했고 이는 순식간에 전장의 모든 헌터들에게 퍼졌다.

이윽고.

“와아아아아아아아!”

“이겼다아아아아!”

“이겼어! 이겼다고!”

“흐흐흑! 이걸로 무사히 집에 갈 수 있어!”

수많은 헌터들의 희망찬 함성소리가 전장을 뒤덮었다.

‘그러고 보니 그 여자는?’

주변을 둘러봤을 때 이미 그녀는 사라진 후였다.

이전 에티오피아에서도 극도로 노출을 꺼렸던 그녀였기에 궁수는 납득하며 동료들에게 달려갔다.

“궁수! 괜찮다?”

“당근 빠다지!”

“님 왜 살아있셈!?”

“씨발 그럼 죽어?”

“푸하하하핳! 살았으면 된 거지!”

오늘따라 더욱 친숙한 동료들은 늘 그랬듯 궁수를 따스하게 맞이해주었다.

“이걸 사네.”

빌어먹을 베로니카가 아쉬운 듯 입맛을 다시며 셈에게 돈을 주는걸 보았지만 아무튼 따스한 건 따스한 거다.

***

“크하하하하! 이것 좀 보라고!”

“아니 이미 열 번도 더 봤다니까요.”

“그럼 열 한번 봐!”

한국에 돌아오고 일주일이 지난 후 세계 랭킹이 크게 역전 되었다.

나궁수.

국내 랭킹 1위.

세계 랭킹 10위.

통칭 - LUNATIC ARCHER.

실력에서든 화력에서든 혹은 다른 의미에서던 미친 궁수라는 뜻이었다.

“쓰흡 사람보고 미친놈이라니.”

“왜? 아니야?”

“맞죠! 꺄르륵!”

미친 궁수에 미친 법사에 미친 힐러에 대머리 탱커라니!

혼종도 이런 혼종이 없을 것이다.

실제로 해외 언론에서도 궁수에 대한 뜨거운 관심을 보이고 있다.

에티오피아 내전 종결, 호주 게이트 정벌, 새로이 추가된 파도형 게이트 활약까지.

A급은커녕 S급도 이루기 힘든 업적을 궁수는 아무렇지 않게 세 개나 이루어내었다.

국내외 상관없이 인터넷의 모든 커뮤니티가 궁수로 뜨거워진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었다.

[나궁수 : 로빈후드? 걔는 활은 잘 못 쏘는데 착해.]

ㄴ 레골라수? 걔는 활도 못 쏘고 성격도 구려.

ㄴ 호구아이? 걔는 활 없으면 호구여.

늘 보이던 해외 궁수들 드립부터 각종 기출 변형 드립들이 궁수를 치켜세웠다.

[얘 마지막에 선글라스 쓰고 나온건 뭐냐?]

ㄴ 그 스포츠 선글라스ㅋㅋㅋㅋㅋㅋ?

ㄴ 그거 우리 아빠 낚시 갈 때 씀ㅋㅋㅋ

ㄴ ?

ㄴ 뭐 왜 물음푠데.

ㄴ ㅎ

[속보 - 나궁수 거품!]

[전투하는 ‘버블’ 너무 잘 알아.]

ㄴ 씹 기출변형 ㅋㅋㅋㅋㅋㅋ

ㄴ 언빌리버블 생각하고 들어왔는데 ㅋㅋㅋㅋㅋ

[엄마 전 나궁수가 될래요!]

[자 내가 나궁수 하고 엄마는 누가 할래?]

ㄴ 이러니까 엄마가 집을 나가지 ㅋㅋㅋㅋㅋ

[한국인이라면 나궁수 빱시다.]

[궁수복음 제 1장 1창. 전지전능하신 나궁수께서 이땅에 내려오신날 천지가 개벽한 날, 우린 이날을 ‘빅뱅’이라 칭하였다.

거칠게 닭가슴살을 뜯는 그의 모습은 대자연을 방불캐 하였으며 오른손에 쥔 그의 프로틴은 단백질의 신이 강림한 듯 하였다.

적들의 시체로 데드리프트를 하며 적들의 병장기로 풀 스쿼트를 당기는 그는… (중략)]

ㄴ 진짜 세상엔 병신이 많구나.

각종 밈과 드립으로 커뮤니티가 지배당할 수준이었으니 말이다.

분당 수십 수백 개의 주접글들이 쏟아져 내렸으나 이를 불편해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오히려 모두 댓글 달기 바쁠 수준이었으니 말이다.

궁수는 수천 개의 주접글들을 바라보며 흐뭇한 표정을 지었다.

우수에 젖어있기도 잠시 허가연이 커피를 들고 궁수에게 다가왔다.

“근데 니들 마강철 가지러 간다며, 그건 어떻게 됐어?”

마치 찬물이 아니라 얼음물을 부어버린 것처럼 분위기가 싸늘해졌다.

궁수는 물론 셈과 힐도 아차 했다는 표정으로 입만 뻐끔거리며 뭐라 말을 못하고 있었다.

“어휴.”

허가연은 한숨을 푹 쉬며 휴대폰을 두드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녀는 한 기사를 띄우고 궁수와 동료들 앞에 들이밀었다.

기사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철갑산 마강철 광산, 대 파괴로 인해 복구 불가능….]

화아아아악!

궁수는 물론이고 셈과 힐의 마력이 미친 듯이 끓어오르며 당장에라도 폭발할….

“씨브아아아아아아알!”

“내 원파아아아아안!”

“내 기구가아아아악!”

아니, 폭발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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