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9화. 포상주는 닭대가리.
“저급한 냄새가 여기까지 풍기는구나.”
고고하게 눈을 빛내는 그녀는 마치 신화 속 발키리 마냥 헌터들을 노려보고 있었다.
서늘한 그녀의 시선은 오물을 보는 듯 잔뜩 불쾌감이 서려있었다.
성스러운 모습으로 땅에 착지한 그녀는 날개를 확 뻗으며 헌터들을 향해 검을 치켜들었다.
[오우야]
[눈나 나죽어어어어어어엇]
[가능충들 등판해주세요.]
[손녀 피아노 학원까지 생각했다.]
[너↗와 결↗혼↘까↗지 생각했어.]
[같은 집 같은 방에서~]
ㄴ 집은 있음?
ㄴ 3bun choolgu에 삼.
ㄴ ?
ㄴ 3번 출구 씹 ㅋㅋㅋㅋㅋㅋㅋㅋ
ㄴ 캬 한남도일 반포차이 안부럽누ㅋㅋㅋㅋㅋ
휘이이이잉!
그녀의 주변으로 거센 바람이 몰아치기 시작했다.
심상치 않은 기운을 퍼트리기 무섭게 마법사들의 각종 마법들이 그녀에게 쏟아져 내렸다.
주로 적의 마법을 붕괴시키는 류의 스킬이 대부분이었다.
모두 단숨에 죽여버리겠다는 듯 이를 악물고 화력을 더했다.
그리고 궁수도 당장에 장궁에 시위를 메기고 있었다.
“후우….”
쏟아지는 포화 속에서 트루 스나이핑을 활성화시킨 궁수는 빙결의 기운을 화살에 넣었다.
단숨에 적을 얼려버릴 듯 서늘한 기운이 화살촉에서 일렁이기 시작했다.
- 날리지 마라.
“뭐?”
- 공격하지 마라, 내 말 들어.
“다른 사람들은 다 공격하고 있는데 왜?”
- 흐음 일단 참아봐라, 옆의 법사한테도 말하고.
“으음…. 알겠어.”
말리고 말 것도 없이 법사는 피로감에 아직 캐스팅에도 들어가지 않은 상태였다.
“아직은 공격하지 말아봐.”
다른 마법사들과 원거리 딜러들의 포화가 일제히 그녀를 향해 쏟아졌다.
대단위 마법도 소수 섞여있기는 하였으나 대부분이 단일 개체에게 효과적인 공격이었다.
“하아….”
키리에는 몰아치는 마법에도 눈 하나 깜빡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녀의 주변에 생겨난 새하얀 장막이 적들의 공격을 완벽하게 차단하고 있었다.
검을 양손으로 쥔 그녀가 순백색의 마력을 일으키며 그대로 한 바퀴 돌며 검을 휘둘렀다.
“스펠 브레이커!”
“디바인 브레이크!”
심상치 않은 기운에 곧바로 마법사들이 마법을 봉쇄하는 스킬을 날렸으나 어김없이 그녀의 장막에 막히고 말았다.
“리플랙션 쉴드.”
서걱.
그녀의 짧은 캐스팅과 함께 잠시 주변에 섬광이 번뜩였다.
“어엇?”
쿠콰콰콰쾅!
한 번 검을 휘둘렀을 뿐인데 주변의 모든 성벽에 검흔이 남아 당장에라도 무너질 듯 위태롭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심지어 서쪽 성벽은 벌써 벽이 반쯤 허물어지며 붕괴가 시작되었다.
“무너진다! 다들 도망쳐!”
“근접 전투원들 바로 출격해!”
“제길 이게 말이나 되냐고!”
궁수의 성벽도 당장 부서질 듯 위태롭게 버티고 있는 것이 전부였다.
“저게 말이 돼…?”
- 하아, 어쩐지 결계부터 다르더라니.
“아니 무슨…. 허”
반사계 스킬인 듯 그녀는 검을 휘두르는 것만으로 주변의 성벽을 완전히 깨부숴버렸다.
“제길, 근접 딜러들 바로 투입해!”
마법이 먹히지 않는다면 미련하게 마법 공격을 이어나갈 필요는 없었다.
곧바로 성벽이 열리며 대기하던 근접 딜러들이 그녀 주변을 감쌌다.
“으으….”
그녀는 적들에게 둘러싸인 것이 마음에 들지 않는 듯 인상을 마구 구겼다.
“벌레들이 가득….”
진심으로 싫었는지 그녀는 연신 욕을 뱉으며 주변의 헌터들을 노려보았다.
방금 일어난 압도적인 스킬 때문에 헌터들 중 감히 먼저 그녀에게 덤빌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야, 저거 마법만 튕겨내는 거지.”
- 흠 마력 수치 재조정이라…. 아마 그럴 거다.
“그러면 물리공격은 괜찮다는 거네?”
- 그건 그렇다만 저 정도 수준의 전사가 근접전이 약할 리가….
“허!”
군수는 어느새 컴파운드 보우에 화살을 넣고 그녀를 조준하고 있었다.
“나 궁수거든?”
- 아 궁수였군.
“쯧.”
속성화살이니 익스플로전 애로우니 스킬이 전혀 담기지 않은 화살.
이질적인 느낌이 없는 이 화살이야말로 궁수가 가장 잘 다루는 것이었다.
“흐으음….”
궁수의 눈이 가늘게 휘었다. 자신의 임무는 근접 전투원들의 엄호, 사살을 할 수 있다면 좋겠으나 방금 전의 화력으로도 멀쩡한 녀석을 고작 화살 몇 발로 죽이기는 묘연한 일이었다.
“빽빽하네….”
- 확실히 빈틈이 없군.
“뭐, 그래도 괜찮아.”
일반적인 원거리 딜러였다면 근접 딜러들이 틈을 만들어주기 전까지 잠자코 대기했을 것이다.
그러나 궁수는 달랐다.
틈이 없다면 강제로 틈을 만들어버리는 헌터.
그것이 나궁수였다.
“어디 실력 좀 볼까.”
쐐애애애액!
궁수의 손아귀를 떠나간 화살이 그녀의 왼쪽 눈을 향해 날아갔다.
어떠한 스킬도 담겨있지 않았지만 그것만으로도 파공음이 울려 퍼질 정도로 빠른 속도였다.
“흥.”
카앙!
그러나 그녀는 어림없다는 듯 제대로 보지도 않고 검을 휘둘러 궁수의 화살을 베어버렸다.
“지금이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던 헌터들이 그녀를 향해 달려들었다.
“계속 엄호한다.”
든든한 후방지원에 힘입은 헌터들이 위협적인 병장기들을 휘둘러가며 그녀를 압박했다.
먼저 가장 리치가 긴 창이 그녀를 향해 쇄도했다.
한 곳도 아닌 주변 네 곳에서 그녀의 허리를 향해 창이 날아왔다.
“허.”
땅을 박차고 뛰어오른 그녀는 가볍게 헌터들의 창을 피하며 한 바퀴 회전했다.
날개가 펄럭이며 공중에서도 자유로운 움직임을 보이는 그녀의 검이 순식간에 네 번의 참격을 날렸다.
서걱.
창의 장대가 모두 잘려나가며 단숨에 헌터 네 명이 무력화되었다.
그러나 여기.
“허? 내 앞에서 감히 날아?”
공중 타입의 천적인 나궁수가 호시탐탐 눈을 빛내고 있었다.
촤좌좍!
순식간에 세 발의 화살이 그녀를 향해 날아갔다.
첫 발은 미간.
너무나도 궤도가 뻔히 보이는 공격이었기에 간단히 그녀의 검에 베였다.
궁수의 화살을 베며 동작을 크게 만들었을 때 곧바로 그녀의 손목을 향해 두 번째 화살이 날아갔다.
“흐읍!?”
그녀도 이건 놀랐는지 곧바로 손목을 비틀어 아슬아슬하게 궁수의 공격을 피했다.
그러나 궁수의 화살은 아직 한 발 남아있었다.
‘어디냐? 위? 아래?’
하등한 종족의 궁술이라 하여 무시했건만 오히려 그게 독이 되어 그녀의 발목을 붙잡고 있었다.
로이드 같은 다른 궁수들도 대기하고 있었으나 놈들 중 궁수와 견줄 정도의 실력을 가진 사람은 단 한명도 없었다.
끝없이 달려드는 아군을 피해 그녀에게 견제를 날릴 수준의 궁수는 이 전장에서 나궁수가 유일했다.
마지막으로 날아온 화살은 그녀의 몸을 노리고 날아든 것이 아니었다.
당연히 급소를 노리고 날아올 것이라 생각했던 그녀는 검을 약점에 맞춰 들고 있었으나 애석하게도 궁수가 노린 것은 그녀의 날개였다.
푸욱!
“크흐윽!”
그녀의 오른쪽 날개에 궁수의 화살이 꽂히며 피가 번지기 시작했다.
“우오오오오오!”
“지금이라면 할 수 있다!”
“흥분하지 말고 차분하게 대응해!”
궁수의 화려한 활솜씨에 흥분한 헌터들이 더욱 기세등등하여 적에게 달려들었다.
카앙! 카가가캉!
“치잇…!”
모두 막히기는 하였으나 그녀의 방어는 여유롭지 못했다.
오히려 언제 날아올지 모르는 궁수의 화살에 신경을 팔려 자꾸만 폼이 흐트러지고 있었다.
‘어디냐, 어디를 노리고 날아올 테냐!’
그녀로서는 당장에라도 날개를 펴 헌터들로부터 벗어나고 싶었으나 어디서 날아올지 모르는 궁수의 화살에 섣불리 날개를 피지 못하고 있었다.
멀쩡한 상태라면 몰라도 지금 한쪽 날개에 부상을 입은 상태로는 다소 무리가 있었다.
그나마 그녀가 할 수 있는 거라곤 궁수의 위치를 알아내 고속 이동으로 단숨에 처리하는 수밖에 없었다.
원거리 딜러라면 갑작스러운 근접 딜러의 접근에는 분명 취약할 것이다.
- 슬슬 놈도 눈치 챌 거다.
“알아, 꼬우면 오라지 뭐.”
- 어휴, 이게 궁수인지 깡패인지 참….
궁수도 알고 있었다. 아까부터 그녀가 자꾸만 흠칫흠칫 궁수가 있는 방향을 노려보고 있다는 것을 말이다.
어중이떠중이도 아니고 저 정도 스펙의 검사라면 화살이 날아온 방향만으로 대충 궁수의 위치를 파악했을 것이다.
‘다음 화살에 눈치 채겠군.’
궁수는 일부러 화살에 덕지덕지 화염을 붙이기 시작했다.
평소와 같은 사납고 날카로운 느낌이 아닌 둔탁하고 뜨뜻미지근한 화염이 화살에 담겼다.
헌터들 사이에서 찬란하게 빛나는 화염이 타오르자 곧바로 그녀는 궁수가 있는 곳을 눈치 챘다.
‘감히 내게 마법을 사용하려 해?’
정확한 위치를 알아낸 키리엘은 곧바로 땅을 박차고 날아올랐다.
“크흑.”
방금 전 궁수에게 당한 상처가 조금 욱신거리긴 하였으나 비행에 큰 지장이 갈 정도는 아니었다.
“찾았다 바퀴벌레 같은 녀석!”
그녀가 궁수에게 날아듬과 동시에 그 또한 미리 준비해둔 불꽃을 그녀에게 발사했다.
물론 이 공격은 먹히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궁수의 노림수는 따로 있었다.
찬란한 불꽃이 그녀의 시야를 가렸다. 그러나 그녀는 방어하기는커녕 오히려 더욱 빠르게 궁수를 향해 돌격했다.
마법은 통하지 않기 때문에 할 수 있는 대담한 행동이었다.
“흥! 이런 것 통하지 않는다!”
성벽에 거의 도달한 그녀는 고함을 치며 속도를 높였으나.
“알아 닭날개년아!”
“뭣!?”
화살이 그녀에게 적중하기 전 궁수가 먼저 키리엘을 향해 뛰어내렸다.
한손에는 분쇄자를 든 채로 시야 차단용으로 날린 화염이 그녀의 보호막에 먹히기 전에 궁수가 먼저 선수를 쳤다.
“흐으읍!”
성벽에서 뛰어내린 궁수는 그대로 체중을 실어 그녀를 후려쳤다.
콰아아앙!
“선빵필승 이 새꺄!”
“크흐으으윽!”
워낙에 강렬한 궁수의 일격에 그녀는 휘청거리며
서서히 땅으로 떨어지기 시작했다.
궁수는 그런 그녀를 밟으며 계속해서 몽둥이 찜질을 시작했다.
쾅! 쾅! 쾅!
“크흑! 뭐 이런 궁수가 다 있어!”
“여기 있다 이년아!”
콰아아앙!
마지막으로 궁수가 양껏 힘을 담아 그녀의 갑주를 후려쳤다.
파직!
키리엘의 갑주가 찌그러지며 엄청난 속도로 땅에 낙하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궁수는 아직 공중을 활공하는 중이었다.
“어차피 마법이 먹히지 않는다면…!”
천궁이 발리스타의 형태로 모습을 바꾸었다.
- 신중하게….
“이쯤 쏘면 맞겠지!”
거대한 화살이 장전된 발리스타는 떨어지는 그녀를 향해 발사되었다.
콰아아아앙!
거대한 흙먼지가 일어나며 순간 그녀의 모습이 가려졌다.
휘이이이잉!
“궁수!”
“나이스 캐치!”
무사히 떨어지는 궁수를 받아낸 셈은 머리에서 흘러내리는 땀을 닦으며 상황을 지켜보았다.
“저거 아직 살아있습니다.”
“뭐? 그런 공격을 받고도 살아있다고?”
“경험치가 오르지 않았어요.”
“쓰흡….”
잠시 전장에 침묵이 일었다. 갑작스럽게 일어난 고요는 헌터들에게 약간의 희망과 기대를 선사하였다.
그러나.
휘이이이잉!
“하아….”
갑자기 중앙에서 일어난 거대한 바람에 흙먼지가 모두 날아갔다.
그 안에서는 만신창이가 된 그녀가 검에 지탱하여 비척비척 서 있었다.
“같잖은 인간상대로 힘을 빼고 싶지는 않았는데….”
그녀의 전신이 찬란한 빛에 물들기 시작했다.
빛 속에서 꿈틀꿈틀 형태를 변화하던 그녀는 더욱 덩치를 키우기 시작했다.
사람과 비슷하던 덩치는 어느새 더욱 몸을 불려 거의 5미터에 가깝게 그 크기가 증가했다.
“어어…?”
종을 알 수 없는 순백의 새가 전장 한 가운데에서 빛나고 있었다.
그것도 날개가 세 쌍이나 달린 새가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