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6화. 마물 워터파크 개장 준비.
쾅! 콰아앙!
“제길! 또 놈들이야!”
차원을 찢으며 불길한 흑색의 게이트가 등장했다. 그 안에서 등장한 도마뱀들은 혀를 날름거리며 헌터들을 노려보고 있었다.
샤아아악! 샤아악!
무기를 들고 거리를 좁혀오는 헌터들에게 불길함을 느꼈는지 놈들은 둥글게 몸을 말고 뾰족한 가시를 세웠다.
콰아아아앙!
“온다! 피해!”
상위의 헌터라면 날아드는 적들을 일격에 처리했겠지만 이런 오지까지 상위 헌터들이 찾아오기란 묘연한 일이었다.
그나마 정부에서 지원을 해줘서 망정이지 그러지 않았다면 진작에 이곳은 폐허가 됐을 것이다.
“방패병!”
“크흑! 이미 버티고 있다고!”
놈들의 상대법은 방패로 먼저 힘을 뺀 후 지쳤을 때 긴 창으로 속살을 꿰뚫는 것이다.
“크흐으윽! 잠깐만 이거 너무 많은데…!”
“조금만 더 버티면 돼!”
“방패도 이미 너덜너덜하다고!”
매일같이 이어지는 전투에 그들의 대방패는 이미 너덜너덜해진 상태였다.
이것도 그간 쌓아온 방패 술로 겨우 버티는 것이지 그러지 않았더라면 이미 그들은 전신에 구멍이 송송 뚫렸을 것이다.
푸욱!
“하나 처리했어!”
평소에는 대여섯 마리 정도였으나 오늘은 거의 세 배에 달하는 적이 몰려왔다.
방패병도 비스듬히 적들의 공격을 흘리며 아슬아슬하게 전투를 이어나갔다.
쿵쿵쿵쿵!
마치 축구공처럼 뛰어난 탄성을 가진 적들은 몇 번인가 바닥을 튕기더니 그대로 높게 떠올랐다.
그리고는 그대로 적들을 향해 낙하하기 시작했다.
“위! 어떻게든 막아!”
“흐으윽! 수가 너무 많아!”
“제길! 피해!”
전후좌우 위까지 모든 공격을 막아내기에는 그들의 장비가 턱없이 부족했다.
변칙적인 적들의 공격에 진형이 붕괴되기 직전.
쐐애애애액!
콰득!
샤아아아아악!
좌측에서 날아온 화살이 그대로 도마뱀들의 두꺼운 가시를 통째로 뚫어버렸다.
“저 개자식들 때문에 내 원판이이이!”
“다 죽여! 부숴! 갈기갈기 찢어버려!”
“내가 전위에 서겠네!”
“전위 보조하겠습니다!”
전위에는 셈과 이은우, 그리고 전후에는 셈과 법사 궁수가 있었다.
사실 궁수는 언제든 근접과 원거리의 스위칭이 자유롭게 가능하기 때문에 큰 상관은 없었다.
고수혁은 먼 곳에서 전투를 바라보며 어떻게 해체를 위해 도구들을 다듬고 있었다.
애초에 패배 따위는 생각하지도 않은 너무나도 당연한 행동이었다.
“괜찮아, 고작 저 정도면 전위도 필요 없어.”
- 흐음, 오래간만의 활이군.
요즈음 계속해서 분쇄자를 애용하던 궁수는 오랜만에 활을 들었다.
자주 사용하지 않으면 어색할 법도 하지만 궁수에게 활은 거의 신체의 일부나 다름없었다.
말 그대로 심궁합일의 경지!
‘마음 같아서는 통째로 날려버리고 싶다만.’
잘못하다간 산사태가 일어날 수도 있었기 때문에 궁수는 구태여 다른 화살을 준비했다.
단단한 적을 관통하기 위해 화살촉 부분에 회전하는 바람을 담았다.
무엇이든 뚫어버릴 듯 드릴처럼 회전하는 화살은 당장에라도 적의 머리통을 뚫어버릴 기세로 매서운 바람 소리를 내고 있었다.
“트루 스나이핑.”
궁수의 눈이 빛나며 적들의 움직임이 더욱 눈에 익었다. 남은 적은 도합 열두 마리.
통통 튀는 움직임이 조금 거슬리긴 하였으나 궁수가 상대해온 적들에 비하면 귀여운 수준이었다.
촤좌좌좌좍!
첫발을 겨냥함과 동시에 궁수의 손이 활시위를 놓으며 화살을 발사했다.
콰직!
먼저 궁수의 손을 떠나간 다섯 발의 화살이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적들을 관통했다.
그리고 남은 적들은 나법사의 에어 커터에 깔끔하게 양단되고 말았다.
[캬, 이거지]
[맞다 얘 궁수였지.]
[그래욧! 허구한날 못 박힌 방망이로 줘패고 다니지만 궁수라구욧!]
[프리딜각 나올 때만 궁수임 ㅋㅋㅋㅋㅋ]
[이 새끼 이러다 심심하면 몽둥이 들고 뛰쳐나감ㅋㅋㅋㅋㅋㅋ]
ㄴ ㅋㅋㅋㅋㅋㅋㅋㅋㅋ궁잘알 ㅋㅋㅋㅋㅋ
ㄴ 그래서 싫어?
ㄴ 개좋아 헤으으응.
전투에 들어서고 1분도 되지 않아 적들을 처리한 궁수는 활을 어깨에 메고 중국 헌터들을 향해 다가갔다.
“음, 괜찮아 보이네.”
조금 놀란 기색이 있기는 하였으나 약간의 생채기를 제외하고는 별다른 상처는 없었다.
오히려 그들은 귀신같이 나타나 엄청난 실력을 보여준 궁수일행에게 놀란 상태였다.
자신들이 그렇게 애를 먹던 적들을 순식간에 처리하고도 아무렇지 않게 궁수일행은 태연히 괴물의 시체를 처리하기 시작했다.
안전을 확인한 궁수는 고수혁의 곁에서 해체를 구경하고 있었다.
그러던 와중 이를 유심히 바라보던 이은우가 먼저 중국 헌터들에게 다가왔다.
“반갑습니다. 저희는 한국에서 온 헌터들입니다.”
“한국? 그 먼 곳에서 여기까지 무슨 일로?”
“아아….”
은우는 잠시 궁수를 바라보더니 한숨을 푹 쉬며 적당히 둘러대었다.
“다급하게 마강철이 필요해서 왔습니다.”
“네? 하지만 지금은 게이트 때문에….”
“네, 그래서 온 겁니다.”
“아하.”
그런 연유로 온 건가.
그렇다 해도 이 정도 수준의 헌터들이 대거로 몰려오다니.
시기적절한 지원에 그는 안심하며 은우에게 말했다.
“그러면 먼저 저희 숙소로 가시죠, 설명도 조금 필요할 것 같으니.”
“흐음….”
은우는 잠시 그와 동료들을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군데군데 찢어진 방어복에 다 찌그러진 방패는 그들이 얼마나 고전했는지 알려주는 듯했다.
“네, 뭐 그러도록 하죠.”
***
분위기가 내려앉은 방.
푸른 달빛이 창을 타고 들어오며 방 내부를 밝혔다. 그곳은 원탁의 방이 아닌 첫 번째 가시의 개인 집무실이었다.
가시는 차분하게 책상에 앉아 수정구를 바라보고 있었다.
“흐으음, 어디.”
가시에게서 뿜어져 나온 붉은 혈기가 스르륵 수정구에 흡수되었다.
투명한 유리처럼 수정구가 그의 혈기를 받더니 서서히 소용돌이치기 시작했다.
마치 신호가 끊어진 TV처럼 치직거리던 수정구가 서서히 안정화되기 시작했다.
아직 약간의 노이즈는 남아있었으나 구슬 내부에서는 서서히 무언가가 떠오르고 있었다.
“흐으으음, 그런가.”
압도적으로 많은 양의 마물이 거대한 산을 집어삼키고 있었다.
푸르른 산이 은빛 마물로 뒤덮어져 산 전체가 은색으로 보일 지경이었다.
“이번 파도는 꽤나 흥미로운걸.”
유심히 수정구를 살피던 그는 피식 입가를 끌어올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느덧 수정구 안에서는 은빛 괴물들이 산이 아닌 산맥 자체를 집어삼키고 있었다.
***
“이렇게 최근 게이트 등장 빈도가 확 늘었습니다.”
중국 헌터들의 숙소에서 멤버들은 게이트에 대한설명을 듣고 있었다.
기존에는 해봐야 한 달에 한두 번 꼴이었던 게이트가 근 두 달간 그 수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했다는 것이다.
주에 1번씩, 나아가 일에 1번씩, 지금에는 거의 하루에 4~5번씩 게이트가 터진다고 한다.
실제로 그들의 눈 아래에는 두꺼운 다크서클이 자리 잡고 있었다.
매일 가슴을 졸이며 언제 게이트가 열릴지 몰라 불안해하는 그들을 보니 궁수는.
‘아 닭가슴살 먹고 싶다.’
별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그러던 말던 그들은 계속해서 프로젝터로 설명을 이었다.
“이렇게 동일한 개체의 지속적인 등장은 절대로 좋은 일이 아닙니다.”
“흐음, 확실히 그건 다소 부담이 되긴 하네요.”
은우와 셈은 그 말에 표정을 와락 구겼다.
“음? 왜요? 빈도가 늘어나긴 했어도 딱히 적이 강해지는 것도 아닌데.”
당장에 중국 헌터들만 보더라도 장비가 노화해서 그렇지 놈들을 상대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아 보였다.
“아뇨, 그렇게 간단한 문제가 아닙니다.”
“무슨 강력한 보스라도 등장해요?”
“하아…. 차라리 그런 거라면 훨씬 마음 편할 텐데요.”
매우 심각한 일인 듯 이은우는 낮게 혀를 차며 말했다.
“궁수님 제가 옛날에 파도형 게이트 설명 드린 거 아시죠?”
“네? 아 호주 그거요? 알죠.”
“그때 파도가 열리기 전 현상과 똑같아요.”
“…네?”
은우는 휴대폰을 두드리며 골치 아픈 듯 마구 얼굴을 구겼다.
“같은 종류의 몬스터들이 계속해서 등장하는 거, 그리고 그 빈도가 갈수록 높아지는 거요.”
“흐음, 그래도 겨우 그거 가지고 파도형이라고 생각하는 건 조금 성급하지 않나요.”
확실히 눈에 띄는 지표가 있는 것도 아니다.
고작 최근 일어난 기현상 가지고 너무 호들갑을 떠는 것이 아닌지 의문이 들었다.
그러나 궁수의 섣부른 생각이지 않냐는 말에도 은우는 확신하는 듯한 태도를 유지했다.
오히려 교조적으로 궁수에게 따박따박 설명을 시작했다.
“파도는 전 세계적 재앙입니다. 설사 아니더라도 최대한 민감하게 반응해야 하는 게 파도형 게이트에요.”
“그렇긴 하지만요.”
“주의해서 나쁠 건 없습니다. 그리고 그게 게이트라면 더더욱.”
이미 이은우는 심각한 표정으로 자료를 정리하기 시작했다.
“이쯤이면 한 달…. 아니 3주 정도인가…. 제길.”
“여기 추가로 관측한 자료입니다!”
“다른 자료는 없나요? 괜찮다면 좀 볼 수 있을까요?”
“네, 여깄습니다!”
파도형 게이트라는 말에 눈에 띠게 안색이 나빠진 중국 헌터들은 서슴지 않고 자료를 제공해 주었다.
그리고 그날 바로 한국을 비롯한 각 국의 헌터 협회에 비상이 걸렸다.
한국인 공무원 한 명의 보고였으나 그 보고 대상이 파도형 게이트라면 말은 달랐다.
괜히 무시 했다가 큰 코 다칠 바에야 차라리 호들갑을 떠는 게 났다는 것이 모든 협회의 생각이었다.
***
철갑산 주변을 가득 채운 헌터들의 행렬에 궁수는 혀를 내둘렀다.
베로니카와 여러 헌터들이 심혈을 기울여 만든 철옹성은 언제라도 오라는 듯 산맥 주변을 둘러싸고 있었다.
성벽 위에서는 최소 B급 이상인 베테랑 헌터들이 모여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있었다.
얼핏 보면 난잡해 보일 수 있으나 모두 맡은 바 자리를 지키며 언제든 전투에 임할 수 있게 단단히 준비하고 있었다.
게 중에서도 각 국가별로 보이는 최상위 헌터들, 마탑주와 같은 영웅들이 형형하게 눈을 빛내고 있었다.
“후우…. 떨리네.”
산 주변에는 서른 대가 넘는 게이트 관측기구들이 돌아가며 언제라도 파도를 관측하기 위해 상시 대기 중이었다.
그야말로 만반의 준비를 마친 상황, 아무것도 모르고 쓸려버린 호주 때와는 차원이 달랐다.
“허, 진짜 이렇게까지 모일 줄은 몰랐는데.”
“아직 모자라요, 이걸로도 막을 수 있을지 의문입니다.”
“에이 그래도 S급 헌터들이 이만큼이나 모였는데, 어떻게든 되겠죠.”
“흐으음, 그러면 좋겠는데요….”
처음에는 각 국의 헌터 협회도 혹시나 하는 마음이었으나 지속적으로 증가하는 게이트 빈도, 그리고 매번 같은 종류의 마물들에 더불어.
결정적으로 근 한 달 사이 미친 듯이 증가한 철갑산의 게이트 수치가 이를 가능하게 만들었다.
“그래서 에측하기로는 오늘이 그 날이다 이거죠?”
“예, 관측상으론 그렇습니다.”
실제로 이 주변의 게이트 수치는 상승하다 못해 계측기의 한계치를 뚫어버릴 지경이었다.
“하아, 가는 곳마다 사건 사고가 끊이질 않네요.”
“그러게 말입니다.”
[그럼 니새끼가 범인이네.]
[맞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도둑이 제 발 저렸네 ㅋㅋㅋㅋㅋㅋ]
[아 자수하라고 ㅋㅋㅋ]
[#논란 #나궁수 #내가 #범인]
[씨발 어쩐지 검은 쫀쫀이를 입더라ㅋㅋㅋㅋ]
“뭐라는 거야 그건 헬스웨어거든?”
[므르는그으~ 그근 흘스으으그든~]
[응 쫀쫀이 ㅋㅋㅋㅋㅋㅋㅋㅋ]
[파워레인저 코스프레ㅋㅋㅋㅋㅋㅋㅋ]
[공부 안하면 저런 거 해야하는구나 ㄷㄷㄷ]
ㄴ 그러면 당근 안 해야지.
ㄴ 공부 안 하고 월 억 헌터 꺼억~
ㄴ 하느님 두 놈 더 갑니다.
“어휴 그래 내가 니들이랑 무슨 말을…. 씨발.”
“계측 수치 최대! 옵니다! 다들 준비하세요!”
궁수의 입은 말을 끝까지 내뱉지 못했다. 말을 꺼내기에는 지금 눈앞의 광경이 너무나도 아찔했기 때문이다.
쩌어어어억!
마치 공간을 억지로 찢는 듯한 소리와 함께 게이트가 열리기 시작했다.
기존의 둥글둥글한 게이트가 아닌 일부러 상처를 내 찢어버린 듯한 모습이었다.
“전투준비!”
“각자 위치로!”
“먼저 준비해둔 것부터 터트려!”
전신이 저릿할 정도로 압도적인 광경이었으나 이곳에 모인 사람 중 얼어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모두 호주에서의 일을 기억하고 있었기도 했고 겁을 집어먹을 거였다면 이곳에 오지 못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옵니다!”
“아직이야! 첫 웨이브는 한 번에 처리한다!”
카드드드드득!
찢어진 차원의 틈 사이로 압도적인 수량의 괴물들이 쏟아져 내렸다.
전에도 상대했던 도마뱀 녀석들, 그러나 놈들의 위력은 기존에 비해 월등히 높아진 상태였다.
그런 놈들이 몰려오길 계속.
“지금! 지금이다! 터트려!”
도시 몇 개 정도는 가볍게 날려버릴 수준의 마력 폭탄들이 엄청난 폭음을 일으키며 전투의 시작을 알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