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5화. 새로운 덤벨을 위하여.
“흐으음…. 모자라.”
“뭐!? 모가 자란다고!?”
“아뇨 무게가 모자란다고요.”
“아, 칫 괜히 설렜군.”
쇠질을 하던 대머리…. 가 아니라 셈이 흠칫 하여 궁수에게 물었다.
“그래서 뭐가 모자라다는 건데?”
“원판이 모자라….”
“원판?”
“특제 원판을 써도 만족할 수 없어! 그렇다고 이 이상 끼웠다간 봉이 부숴진다고!”
“흐음, 확실히 그건 곤란한 일이군.”
중량을 더 올릴 수 있지만 기구가 모자란 것은 헬창으로서 아주 중요한 문제였다.
“하, 어디 트럭이라도 들고 해야하나.”
“오? 트럭 스쿼트?”
“덤프트럭으로!”
“오오오오오!”
“트럭은 얼어 죽을 트럭이야.”
셈과 힐, 궁수까지 세 헬창이 모여 헬스에 대한 뜨거운 열을 올리고 있으니, 보다 못한 허가연이 디지털 패드로 궁수의 머리를 툭 쳤다.
“우리한텐 목숨이 달린 문제다.”
“뭐라는 거야 이 근육 돼지들이.”
허가연은 궁수 옆에 털썩 주저앉아 화면을 두드렸다.
“봐, 여기가 헌터 전용 헬스 기구 판매하는 곳이니까.”
“뭣!? 그런 게 있었으면 빨리 줬어야 할 거 아냐!”
“이미 거기서 제일 좋은 거 쓰고 있거든?!”
“하악! 하악! 좋아! 좋아아아악!”
이 순간을 위해 돈을 벌어온 게 아닌가 할 정도로 궁수는 열정적이었다.
“마이 프레셔스 하아아악!”
“이 미친놈아! 화면 핥지 마!”
“하아아악! 좋아! 화면만 봐도 좋아!”
“이 미친 새끼가!?”
거즘 두 시간이 넘게 웹서핑을 즐긴 궁수였으나 썩 눈에 띄는 수확은 없었다.
애초에 허가연이 직원 복지 차원으로 처음부터 최고급품으로만 주문하다 보니 딱히 사려고 해도 살게 없었기 때문이다.
“없어….”
“그러겠지.”
“난 끝이야…. 이대로 패션 근육 가짜 헬창이 되어버릴 거야….”
이전 쉐이크 통을 흔들다 통을 날려버린 이후로 처음으로 울적해하는 궁수였다.
“흠, 가연아, 여기 특별 제작이란 건 뭐냐?”
“음? 그런 게 생겼어?”
“봐라, 여기 있잖아.”
땅을 치고 울던 궁수가 금세 회복하여 화면을 바라보았다.
실제로 화면의 좌측 상단에 ‘주문제작’이라는 항목이 존재하고 있었다.
“바로 들어가 보죠!”
[헬창낙원]
[고중량의 끝은 어디인가. 일반의 범주로는 만족하지 못한 당신을 위해 만들어졌습니다!]
“우오오오오오오오오오!”
그 아래에는 여러 가지 옵션이 들어가 있었다.
[1. 기본 - 헌터 전용 원판.]
[마강철 10% 함유.]
“헌터 전용 원판이 이렇게 되있었구나.”
“마강철 10프로로 그런 효율을 냈던 거야? 대단하네.”
[2. 헌터용 강화 원판.]
[마강철 30% 함유.]
[3. 대 헌터용 강화 원판.]
[마강철 40% 함유.]
“이런 식으로 마강철 함량을 높이나보군.”
“볼 것도 없어요! 100프로로 가죠!”
“흠, 하긴 그게 효율이 좋겠지?”
“빨리 빨리!”
[10. 헬스 갓 원판.]
[마강철 100%.]
10프로만 가지고도 이 정도의 중량을 뽑을 수 있는데 100프로는 어떠랴!
궁수는 한 치의 고민도 없이 가장 끝에 있는 헬스 갓 옵션을 마구 터치했다.
“10개? 20개? 아니 100개!”
“야 이 미친놈아! 30개만 시켜!”
“싫어! 부족한 돈은 내가 낸다!”
“흐음! 나도 보태지! 돈은 이럴 때 써야하는 법이지!”
“하! 그렇다면 나도 보태도록 하지!”
물론 100개를 시킨다 한들 30개도 다 들지 못할 가능성이 컸기에 궁수는 그녀의 말대로 서른 개를 주문했다.
“흐흐흐흐 마강철 100프로 원판이 서른 개!”
“후후후! 마! 강! 철!”
“크흐흐흐흐흐 헬창의 피가 끓어오르는구만!”
셈과 힐도 덩달아 흥이 나서 기대를 감추지 못했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유는 무엇입니까아아악!”
“헬스를 위해서어어어!”
“마이 라이프 포 헬스으읏!”
“어휴 미친놈들….”
세 명의 헬창들이 괴상한 의식을 지내던 찰나 그녀의 패드가 벨소리를 울려대었다.
띠리리리리링! 띠리리리리링!
“음? 누구지?”
허가연은 웃통을 벗고 쑈하는 남자 셋을 버리고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안녕하세요, 헬창낙원입니다.”
“아, 예.”
전화의 발신지는 방금 궁수가 원판을 주문했던 쇼핑몰이었다.
“저, 다름이 아니라 현재 재료 공급의 문제로 인하여 주문하신 상품의 배송이 힘들 것 같습니다.”
허가연은 헬창 셋을 불러 휴대폰을 스피커 폰으로 바꿨다.
대충 허가연의 설명을 들은 그들은 순식간에 표정이 바뀌며 마치 정상회담이라도 하는 듯 인상을 구겼다.
“재료 공급의 문제라뇨?”
목소리를 깐 궁수는 더없이 심각한 듯 그녀의 대답을 기다렸다.
“후우…. 이걸 어떻게 말씀드려야 할지.”
“괜찮습니다. 말씀해주세요.”
상담원인 그녀도 곤란하듯 한숨을 푹 내쉬며 설명을 시작했다.
“다름이 아니라 마강철의 원료는 대부분 중국에서 생산됩니다.”
“중국이요?”
“네, 다른 국가에서도 나오긴 하지만 중국에서 나오는 물량이 워낙에 압도적이다 보니.”
“허어, 그렇군요.”
“실제로 중국에서 나온 것이 질도 훨씬 좋아서 말이죠.”
흠, 중국산이 질도 훨씬 좋다니, 그것 참 판타지스러운 이야기네.
“그런데요?”
“최근 중국의 마광철 광산 주변의 지속적인 게이트 현상에 의해 현재 생산이 중단된 상태입니다.”
“호오, 그렇군.”
거기까지 말한 궁수는 이미 주섬주섬 짐을 챙기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셈과 힐도 마찬가지였다.
“음? 어디 가?”
통화를 끊은 허가연은 갑작스러운 헬창들의 탈주에 고개를 기울였다.
“중국.”
“…뭐?”
“빌어먹을 게이트를 전부 다 부숴버릴 거야.”
“뭐라는 거야 이 미친놈이.”
“새로운 원판을 위해서라면, 까짓 원정이 대수로냐.”
“셈까지!?”
“오랜만의 원정이로군….”
셈은 물론이고 심지어 궁수와 힐은 호주로 원정을 떠날 때보다 더 진지했다.
어느새 준비를 마친 궁수는 후다닥 위층으로 올라와 베로니카와 법사, 고수혁까지 납치했다.
“쾅쾅?”
“그래 쾅쾅이다!”
“해외라니! 기대되는 거셈!”
“전 놓으라고요!”
“어허! 밥차는 닥치고 따라와!”
동료들과 함께 길드 사옥을 나서는 궁수는 입구에 서서 뒤를 돌아보았다.
“모든 것은 헬창의 뜻대로.”
그 말을 끝으로 궁수와 일행들은 공항으로 뛰어가 버렸다.
그리고 혼자 남은 허가연.
“음, 뭐 그거네.”
그녀는 마강철에 대한 정보를 궁수에게 전송하며 그 자리에 누웠다.
“미친놈이 미친짓 했네.”
***
“아니 저는 아직 밀린 업무가 있었다니까요!”
“시끄러! 지금 그딴 업무가 중요한 게 아니야!”
어느새 궁수에게 납치당한 이은우도 투덜투덜 거리며 반강제로 전용기에 몸을 실었다.
“렛츠 고 철갑산!”
***
엄청난 양의 마강철이 잠들어있다는 철갑산!
과연 그 이름답게 산에도 철갑 나무들이 무성했다.
“가즈아아아앗!”
“궁수님 낙하산은요!?”
“그런 거 몰라아앗!”
이전 에티오피아에서 낙하산 없이도 착지한 기억이 있던 궁수는 이번에는 그냥 맨몸으로 비행기에서 뛰어내렸다.
화아아아악!
땅에 착지하기 직전 궁수의 장궁에 바람을 머금은 화살 한 발이 걸렸다.
적을 꿰뚫는 날카로운 바람이 아닌 밀어내는 둔탁한 바람이었다.
“흐라차!”
휘이이이잉!
거친 바람에 주변의 나무가 기울어지고 말았다. 궁수의 뒤로 멤버들도 차차 낙하산을 타고 내려왔다.
“흐음! 과연 철갑산이라 불리울만 하군.”
“그러게요, 누구랑 달리 빽빽하네요.”
“아, 아프다! 아프단 말이다!”
소란도 잠시 방송을 킨 궁수는 먼저 주변을 둘러보았다.
“흐음….”
어딜 보더라도 나무와 풀이 무성하여 딱히 이렇다 할 게이트를 찾지 못했다.
“오기는 왔는데 말이죠….”
[뭐야 여긴 또 어디야.]
[지리산? 백두산?]
[셈 머리는 민둥산?]
[어엌ㅋㅋㅋㅋㅋㅋ]
“여기요? 여기 중국이에요, 중국 철갑산.”
[?? 이 새끼는 한국에 있는 날이 없누;]
[동해 번쩍 서해 번쩍이누 ㅋㅋㅋ]
ㄴ 동에 번쩍 서에 번쩍 병신아.
ㄴ 드립친건데;
ㄴ 드립 말고 니 뒤통수는 후려 칠 수 있음.
고민하던 궁수는 막상 주변을 둘러보았으나 게이트가 나오란다고 바로바로 나오는 것도 아니고 별다른 소득은 없었다.
“으음, 일단 산이라도 내려가 볼까요?”
“애초에 왜 여기서 내린 겁니까.”
“그게 더 임팩트 있잖아요.”
“낙하산! 꿀잼!”
“네~ 네~ 빨리 내려오기나 하세요.”
다행히도 그렇게까지 심각한 오지는 아닌 듯 산 아래에는 꽤 많은 여러 시설이 자리 잡고 있었다.
“오지라고 생각했는데 있을 건 다 있네요?”
“아마 광산에서 일하는 간부들 때문이겠지.”
“호오, 편의점에 마트에 식당에 그냥 번화간데요 여기?”
실제로 거리에서는 먹음직스러운 음식 냄새들이 가득 풍기고 있었다.
“뭐라도 좀 먹을까요?”
“난 닭가슴살이면 되는데.”
“쓰흡 닥치고 따라오기나 하세요.”
귀에는 자동 통역기를 끼고 주변의 음식점을 들어갔다.
“여긴 뭐하는 집인데요.”
“모르겠어요, 그냥 영양맛집이라고 써져 있길래 들어왔는데요.”
메뉴판을 받은 궁수는 그와 동시에 인상을 팍 구겼다.
[ㅋㅋㅋㅋㅋㅋㅋ영양은 죽여주겠네 ㅋㅋㅋㅋㅋ]
[군침이 싹 안도네!]
[든든하다 역시 중국!]
[먹을 수 있는거면 걍 입에 넣고 보자너 ㅋㅋ]
[튀기면 못 먹을게 뭐임ㅋㅋㅋㅋ]
ㄴ 신발.
ㄴ 휴대폰.
ㄴ 자동차.
ㄴ 캬 다 맞는 말이라 뭐라 반박할 수가 없네, 처맞는 말 이 새끼들아.
“전갈, 도롱뇽에 자, 잠자리?”
엄청난 메뉴의 로테이션에 당황한 멤버들은 모두 뭐라고 입을 열지 못했다.
그나마 정상적인 것이 계란 튀김이었기에 다른 선택지는 없었다.
“전갈! 존맛! 도롱뇽도! 닭고기 맛!”
한명, 법사를 제외하곤 말이다.
먹는 둥 마는 둥 식사를 마친 궁수는 잠시 휴대폰을 조작하며 산 주변의 정보를 탐색했다.
그러나 광산 주변의 마을과 마강철의 최대 생산지라는 점 이외에는 딱히 별다른 정보를 알 수 없었다.
“음식은 입에 맞으셨나요?”
“아, 하하하하 네.”
“어우 전 못 먹겠던데.”
“…네?”
서빙을 하던 종업원이 궁수와 멤버들을 보며 말을 걸어왔다.
“어우 저는 도저히 못 먹겠더라고요. 징그러워서 원.”
순간 어이가 탈출한 궁수는 당황하여 그녀를 빤히 바라보았다.
‘뭐지 이 특이하게 미친년은.’
[대충 니같으면 먹겠냐는 표정.]
[사실 그냥 맥이려는거 아닐까?]
[존나 표정보솤ㅋㅋㅋㅋㅋㅋㅋㅋ]
그러던 말던 그녀는 물을 가져다주며 말을 이었다.
“최근 자꾸 게이트가 텨져서 광부들이 영 일을 못한단 말이죠.”
“게이트요?”
“네, 전담 헌터분들이 노력하긴 하는데 이 놈들이 보통 단단한 게 아니어서 참 곤혹이에요.”
어느덧 그녀의 말에 다른 파티 멤버들도 이목이 집중된 상태였다.
“어떻게 생긴 놈들인데요?”
“한번 보실래요?”
그녀는 사진으로 찍어둔 듯 휴대폰을 조작하여 갤러리에 들어갔다.
“이렇게 생긴 놈들인데 말이죠.”
“으음? 도마뱀?”
외관은 도마뱀의 모습을 하고 있었으나 놈들의 등에는 뾰족한 철 가시들이 잔뜩 나 있었다.
“이놈들이 조금만 겁먹으면 몸을 말아서 공격하니까, 헌터들도 골머리를 앓더라구요.”
“아르마딜로처럼요?”
“네, 또 공격은 얼마나 빠른지 참. 통통 튀어다니는 거 보면 벌써 눈이 어지럽다니까요.”
그녀는 생각하기도 싫은 듯 절레절레 고개를 저으며 휴대폰을 집어넣었다.
‘그렇다 이거지….’
프로틴을 섞어 원샷한 궁수는 입을 닦으며 그녀에게 마저 물었다.
“흐음, 이놈들 때문에 지금 광부들이 일하기 두려워한다 이거죠?”
“예, 그렇죠, 어쩌면 그렇게 매일 똑같은 놈들만….”
위이이이이이이잉!
“으잉? 갑자기 웬 비상벨?”
그녀의 말이 다 끝나기도 전에 갑작스럽게 비상벨이 울렸다.
종업원은 또 한숨을 푹 쉬며 말했다.
“게이트가 열렸나봐요, 위험하니까 손님들은 여기에…. 응? 다 어디 갔지?”
궁수와 멤버들은 어느새 자리에 음식 값을 남긴 채 사라져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