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근접병기 활-84화 (84/172)

◈ 84화. 누구든 내 밥차를 건들면 뭣 되는 거야.

고수혁을 먼저 보낸 궁수는 셈과 함께 밤늦게까지 길드 하우스에 남아 쇠질을 하고 있었다.

최근에 조금 부족한 것도 사실이거니와 오늘은 과연 자신의 한계가 어디인지 체험해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아직이야, 아직 한참 모자라.”

“확실히 오늘 컨디션 죽이는군!”

“당연하죠!”

궁수는 헌터 특제 봉과 원판을 사용하여 수천 키로의 중량을 들어 올리고 있었다.

떨림이나 근육의 부하는 일절 없었다. 오히려 더욱 자신을 고통스럽게 해달라는 듯 더욱 뜨겁게 근육이 달아올랐다.

“후! 하! 후! 하!”

“더! 더 올려! 겨우 이 정도로 헬창이라는 게냐!”

“우오오오오오 가즈아아아아!”

드넓은 체육관 안 두 남자의 힘찬 기합소리가 가득 채웠다.

그렇게 1시간가량 쇠질을 하고 나서야 궁수는 잠시 휴식을 취했다.

땀으로 목욕을 한 듯 운동복이 전신에 착 달라붙어 아름다운 복근을 선보이고 있었다.

“후우, 뭐 연락이라도 왔나.”

휴대폰을 든 궁수는 메신저를 뒤적이며 최근 연락을 확인했다.

[밥차 - HELP]

“으음? 밥차…. 수혁씨가 무슨 일이지?”

다른 이라면 몰라도 그는 적어도 이런 장난을 칠법한 사람이 아니었다.

신뢰는 높지만 서로 예의는 지키는 그런 적당한 관계가 궁수와 그의 관계였다.

물론 최근에야 궁수가 예의라는 개념을 엿 바꿔 먹었지만 말이다.

“표정이 왜 그래! 그럴 시간에 중량 한 번 더 당겨야지!”

“이것 좀 봐봐요.”

“뭔데 그래.”

궁수는 수혁이 보낸 메시지를 보여주며 미묘한 표정을 지었다.

적어도 다른 메시지라도 보내줬다면 당장에 달려갔을 텐데 고작 HELP 이것 하나로 진위여부를 파악하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장난이겠죠?”

“음, 장난이겠지.”

“역시 그렇죠?”

“이럴 시간이 어디 있나! 이럴 시간에 풀 스쿼트 한 번 더 당겼어!”

“크흐 간다 간드아아아!”

궁수는 휴대폰을 던져두고 다시 사랑스러운 기구들을 향해 달려갔다.

***

‘궁수씨는 왜 안 오는 거야, 언제든 온다더니!’

구타를 당한 고수혁은 구석에 몸을 웅크리고 입술을 내밀고 있었다.

‘진짜 내가 요리 도구만 있었어도 다 썰었는데, 진찌로.’

고수혁은 말도 안 되는 자기합리화를 하며 그는 궁시렁궁시렁 혼잣말을 지껄였다.

물론 그렇다 한들 그의 노고를 알아주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끼이이익

“그래서 연락은 해 봤어?”

“해보긴 해 봤는데요.”

문이 열리며 바깥에서 각성 범죄자들이 안으로 들어왔다.

가운데에 있는 남자가 대장인 듯 주변의 부하가 뻘뻘대며 비위를 맞추고 있었다.

“뭐라고 왔는데 그래!”

“그….”

“뭔데! 시원시원하게 말 해봐!”

그의 강압적인 말투에 결국 남자는 눈을 질끈 감고 소리쳤다.

“좆 까랍니다!”

“…뭐?”

“인질한테 손가락 하나라도 까딱하면 손가락채로 잘라버린답니다.”

“…흐음.”

대답을 들은 남자는 입술을 핥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뭔가 맘에 들지 않은 듯 그의 눈이 차분하게 가라앉았다.

그렇지 않아도 반짝이는 그의 스킨헤드가 조명을 받아 더욱 섬뜩한 빛을 내고 있었다.

으드득.

이를 악문 그의 눈에 이체가 흘렀다. 마치 뭔가 일을 저지르기 전의 미친놈의 눈빛이랄까.

“뭐야, 저 놈은 왜 저러고 있어.”

구석에서 웅크리고 있던 수혁을 발견한 그가 거슬린다는 듯 물었다.

“저놈 헌터입니다. 갑자기 일어나서 덤비더니 발리고 저러고 있네요.”

“뭐? 저놈도 각성자라 이거야?”

“예, 그렇죠.”

“흐으음.”

뚜벅뚜벅 수혁을 향해 걸어온 그는 자세를 낮춰 그와 눈을 맞췄다.

자연스럽게 눈을 내리깐 수혁은 푹 고개를 숙였다.

‘제발 그냥 가라 제발 그냥 가라 제발 그냥 가라 제발 그냥 가라 제발 그냥 가라 제발 그냥…’

“야.”

‘제길.’

겁을 잔뜩 집어먹은 수혁은 몸을 벌벌 떨며 고개를 들었다.

“네?”

뻐어억!

“크허어어억!”

남자의 둔탁한 주먹이 수혁의 머리통을 후려쳤다. 마치 뇌가 흔들린 게 아닐까 할 정도로 강력한 두통이 이어졌다.

“씨발련이 누구한테 덤벼?”

뻐억!

“크허어어억!”

대머리가 수혁의 배를 발로 찼다. 수혁은 고통스러운 신음을 뱉으며 주변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그러나 각성자인 수혁도 맞고 있는 판에 일반 시민들이 이를 도와줄 수 있을 리 없었다.

“나는 씨발 니같은 헌터들이 제일 싫어.”

뻐어어억!

“끄아아악!”

“그 빌어먹을 협회가 뭐가 좋다고 꼬리나 살랑살랑 흔들어 대는 꼴이라니.”

뻐억!

“크흐으으윽!”

“네놈들 같은 병신들 때문에 우리 같은 각성자들이 괜히 협회 눈치를 보는 거 아냐!”

뻐어어억!

“끄아아악!”

마지막으로 남자가 수혁의 머리통을 발로 찼다. 순간 정신이 회까닥하며 시야가 깜빡였다.

“병신 고작 이런 것도 못 버티는 놈이 무슨 헌터라고.”

‘궁수씨…. 빨리 와요.’

사실 수혁도 이쯤 되면 알고 있었다. 궁수는 오지 않는다는 것을 말이다.

“흐그으으윽….”

“어쭈? 일어나?”

비틀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난 고수혁이 엉성한 격투기 폼을 잡으며 놈을 노려보았다.

“푸하하하핳! 이딴 놈도 싸움을 한다고 폼 잡는 꼴이라니!”

“흐흐흐흐…. 흐흐흐”

갑작스러운 각성이라거나, 목숨이 위험할 때 마력의 재능이 깨어난다거나 그런 대단한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저 미친놈처럼 수혁은 섬뜩한 웃음을 지으며 놈을 노려보았다.

그러나 아무리 그렇다 해도 허약한 고수혁에게 겁먹을 각성자가 아니었다.

“하 이 새끼가 처 돌…. 돌….”

방금 전까지만 해도 기세등등하게 살기를 피우던 놈의 얼굴이 창백하게 변했다.

고수혁 때문은 아니었다.

정확히는 고수혁 뒤의 창문에 붙어있는 무언가 때문이었다.

고수혁도 뭔가 이상함을 느꼈는지 조심스럽게 뒤를 돌아 창문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그곳에는.

나궁수가 개구리처럼 창문에 착 달라붙어 안을 바라보고 있었다.

쨍그랑!

“후우!”

창문을 깨고 들어온 나궁수는 손을 털며 앞의 각성자들을 바라보았다.

“구, 궁수씨!”

“나궁수 『강림』”

딱 보더라도 압도적인 포스를 내뿜는 궁수는 어깨에 걸어둔 천궁을 분쇄자로 바꾸었다.

“아직 할부도 안 끝난 우리 밥차를 그렇게 때리면 안되지!”

붕! 붕!

우드득 우드득 몸을 푼 궁수는 분쇄자를 휘두르며 방금 전까지 고수혁을 구타하던 놈을 노려보았다.

그리고 서서히 궁수의 입꼬리가 올라가기 시작했다.

고개를 서서히 기울이며 입꼬리를 한계까지 올린 궁수가 섬뜩하게 말했다.

“WHY SO SERIOUS?”

“히, 히이이익!”

자칫하면 마물로 착각할 정도로 기괴한 궁수의 등장에 범죄자들은 물론 일반 시민들마저도 겁에 질릴 지경이었다.

물론 궁수는 그저 범죄자들이 겁먹은 게 즐거워서 계속해서 미친놈 흉내를 내고 있을 뿐이었다.

사실 미친놈 흉내인지 평소 행동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말이다.

“느헤헤헤헿!”

궁수는 화살통에서 화살 한발을 꺼내 그 앞에 툭 떨어트렸다.

“뭐…. 뭐냐.”

궁수는 최대한 기괴하게 입술을 핥으며 말했다.

“궁수는 대머리가 그걸 관자놀이에 처 박아줬으면 좋겠어!”

다시 말해서 죽으라는 뜻이었다.

남자의 대머리에서 땀이 한 방울 흘러내렸다. 척 보아도 눈앞의 남자에게서는 범상치 못할 기운이 흘렀다.

‘어차피 죽을 거라면….’

“조, 좆까고 있어 또라이가!”

그는 궁수의 안면을 노리고 주먹을 뻗었다.

그 나름대로 위협적이긴 하였으나 고작 D급 헌터의 주먹이 S급 헌터에게 닿기란 묘연한 일이었다.

“아하하하하핳!”

정확히 놈의 주먹을 향해 궁수는 마력을 담아 주먹을 날렸다.

콰아아아아아앙!

“크헤에에에에엑!”

그리고 그는 궁수의 압도적인 힘을 버티지 못하고 벽으로 날아가 처박히고 말았다.

“아이 참! 왜 말을 들어주지 않지?”

궁수는 삐진 듯 상큼하게 말하며 허리춤에 손을 올려두었다.

“궁수는 똑땅해!”

“궁수씨?”

또라이인 줄은 알았지만 이 정도로 미친놈일줄은 몰랐기에 순간 고수혁 조차도 거부감이 들었다.

“조용히 해봐요, 지금 기선제압 중이니까.”

“아…. 넵.”

궁수는 오해하지 말라는 듯 조용히 고수혁에게 속삭였다.

‘아닌가, 맨정신으로 저러는 게 더 위험한 거 아닐까.’

그러든 말든 궁수는 뚜벅뚜벅 앞의 범죄자들에게 다가가 화살을 한 개씩 쥐어주었다.

“우리 친구들은 얼마나 말을 잘 듣나 볼 거예요!”

궁수는 화살을 머리에 박는 리액션을 보이며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또라이다.’

‘또라이야….’

‘이거 어떡하지….’

‘보스도 한방에 나가떨어진 거 못 봤어?’

자기들끼리 눈치를 살핀 그들은 슬금슬금 궁수로부터 멀어지며 도망갈 눈치를 보았다.

“아하하 한 걸음만 더 움직이면 선생님이 우리 친구들 다리를 때어줄 거랍니다!”

척!

그와 동시에 모든 각성자들의 움직임이 멈췄다.

궁수는 그제야 만족스러운 듯 팔짱을 끼고 이들을 바라보았다.

궁수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압도적인 마력은 일게 각성자 따위가 받아내기에는 턱없이 부족했다.

폭포를 종이컵으로 받아내기 어려운 듯 그들은 얼굴이 파랗게 질려 혼절하기 직전이었다.

“자~ 선생님한테 맞춰서 하나~ 둘! 하면 꽂는 거예요!”

화살을 쥔 각성자들의 전신이 벌벌 떨렸다.

심지어는 궁수의 압박에 지려버리는 사람도 나올 정도로 상황은 심각했다.

처음에는 모두 일제히 궁수에게 덤빌 생각이었으나 그의 기세는 너무나도 압도적이었다.

결국에는.

털썩!

“사, 살려주세요! 잘 못했어요!”

털썩!

“저도, 저도 잘못했어요! 전부 저 놈이 시킨 거라고요!”

“저도!”

“저도요!”

모두 무릎을 꿇으며 궁수를 향해 싹싹 빌기 시작했다.

모두 손이 발이 닳도록 비는 그 모습에 궁수는 기가 찼다.

그러나 궁수는 조금도 개의치 않고 고개를 기울이며 물었다.

“흐음, 왜 내가 시키는 대로 하지 않지?”

조금도 상관하지 않는 듯 싸늘한 표정의 궁수는 헌터들을 바라보았다.

그와 동시에 헌터들의 얼굴에는 절망감이 떠올랐다.

‘좆됐다.’

‘잘못 걸려도 단단히 잘못 걸렸다.’

아무리 빌어도 궁수가 봐줄 기미가 보이지 않자 결국 그들은 다시 한 번 더 눈치를 살폈다.

물론 궁수도 이들의 의도를 모두 캐치한 상태였다.

‘이 새끼들 봐라….’

궁수는 일부러 아무것도 모르는 척 놈들을 노려보고 있었다.

‘3초 뒤에!’

‘그래, 차라리 싸우기라도 해보자!’

눈을 맞춘 그들은 계속 비는 척 하면서도 서서히 추진력을 위해 발을 바꿨다.

‘3!’

‘2!’

놈들이 동시에 궁수에게 달려들기 직전 그 입이 열렸다.

“1! 하면 달려들려나?”

궁수의 말에 덤빌 준비를 하던 놈들이 일제히 얼어붙고 말았다.

궁수는 얼어붙은 놈들에게 다가가며 손에 마력을 모았다.

콰앙!

“크헤에에엑!”

머리통을 후려쳐 먼저 한 놈을 기절시킨 궁수가 입을 열었다.

“먼저 퇴근하는 직장인을 건든 죄.”

쿠웅!

“끄아아아악!”

“두 번째로 내 밥차를 건든 죄.”

퍽! 콰직! 우찌끈! 쿠웅!

“어, 음 이산화탄소를 배출하여 지구 온난화를 가속시킨 죄.”

그리고 마지막 한명.

“널 너무나 많이 사랑한 죄~”

“그건 또 무슨!”

“몰라 새꺄~”

콰아아앙!

***

헌터과에 놈들을 넘긴 궁수는 고수혁에게 포션을 넘겨주며 말했다.

“몸은 괜찮죠?”

“네, 덕분에요.”

찔끔찔끔 포션을 마시던 고수혁은 멍하니 잡혀가는 놈들을 바라보았다.

꼬르르르륵.

“앗, 아하하핳.”

우수에 젖어있기도 잠시 궁수의 눈치 없는 배꼽알람이 울리며 산통을 깼다.

피식.

“닭가슴살 스테이크면 돼죠?”

“캬하! 어떻게 또 아시고!”

“빨리 가기나 합시다.”

고수혁은 집으로 돌아가는 와중에도 한 번 더 생각했다.

‘무기만 있었어도 내가 이겼다. 진짜로.’

0